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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의 루브르
박제 지음 / 이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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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의 첫 작품으로 피사넬로의 젊은 공주의 초상을 만났다. 초상화속에 그려진 나비가 죽음을 뜻하는지는 몰랐다. 그녀가 공주인지도 몰랐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아픈것처럼 보였지만 그런것은 아니였다. 이 초상화는 그녀가 죽은 다음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녀의 사연을 들으니 초상화속에서 그녀의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때는 권력의 소용돌이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시대를 넘어서 다양한 초상화와 만난다. 세번째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만난다. 모나리자는 인가가 많아서 수난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방탄유리에 보호되어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서 루브르에 방문한다고 한다. 나도 모나리자의 미소를 눈앞에서 보고 싶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만나고 고야의 작품인 솔라나 후작부인의 초상을 만났다. 나는 '고민하는 고야'와 '새 시대의 빛을 갈구하는 고야'가 진정 마음에 든다. 그는 족쇄에 묶인 구체제와 모순투성이의 전통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는 이성과 계몽정신으로 몽매한 사회를 개혁하려는 열망으로 살았다. (93쪽)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야가 친숙해졌다. 루브르의 작품을 만나면서 점점 그림이 재미있어 진다. 조르주 드 라투르의 사기도박꾼에서 여인이 눈을 흘기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그림속의 이야기를 풀어 내려가는게 개그 프로를 보는 듯한 느낌이였다. 하나의 그림안에는 요소요소 볼것이 많았다. 책을 읽어 내려가듯이 언제 보느냐에 따라서 또 느낌이 다를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루브르를 찾아오나 보다. 오늘 보고 내일 봐도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어서 말이다.

 

보고 또 보고 하다보면 내 마음에 유난히 들어 오는 작품이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작품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기도 하고 일상의 시름을 잠시 덜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조르조네가 왜 르네상스 풍경화의 선구자이며, 왜 전원의 합주의 원작자라는 논란이 거센가를 알려면, 먼저 보아야 할 그림이 있다. 바로 폭풍이다. (180쪽) 폭풍의 그림을 보면 인물의 저 뒷편으로 벼락이 치고 있다. 사진속의 그림에서는 손바닥만한 사진이지만 실제로 보면 세로가 73cm정도 되니 직접 보면 뒷편의 외곽으로 보이는 벼락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 사진속에서도 실감나 보인다. 곧 천둥소리가 하늘을 찢어낼 듯 울부짖을 것만 같다. 책을 읽다보면 살로몬 판 라위스달 햇살이 눈에 들어온다. 누워서 바라본 하늘의 뭉게 구름처럼,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로 햇살이 비추어질지 기대하게 만든다. 뭉게구름 사이로 한조각 햇빛이 곧 모습을 드러낼것 같다. 비온 뒤의 하늘은 참 개운하고 맑다. 흙냄새가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하늘이 높고 높아서 어디까지 일지 궁금해진다. 이제는 그런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지만 과학적이라는 것은 사람을 기운 빠지게 하기도 한다.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을 그리다 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매우 도도하게 보이는 루카스 크라나흐 풍경 속의 비너스다. 지금까지 알아왔던 비너스와는 사뭇 다르다. 그녀의 모습은 현대적인 느낌이 난다. 장 앙투안 와토 헛디딤에서는 여인이 쓰러지려고 하자 남자가 안아 잡아 주었다고 하는데 내 느낌에는 남자가 수작을 거는것처럼 느껴진다. 여인을 일으켜 세우려고 부축하던 남자의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면서 그 탐나는 몸을 와락 끌어당긴다.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287쪽) 실제에도 이런 일은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다. 정지된 그림속에서 미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엥그르 목욕하는 여인은 친숙한 그림이다. 알몸의 여자가 등을 돌리고 목욕탕에 앉아 있다. (323쪽) 보이지 않기에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뽀샤시한 뒷태가 멋지다. 예전의 그림속의 알몸의 여인은 지금에 추구하는 S라인과는 다르다. 그리고 여인에서 어머니의 몸을 연상케 한다. 그림은 무엇보다 매우 유혹적이다. 멈추어 있는 그 시간이 생생하게 작가에 의해서 부활한다. 생명력이 시간을 지나도 이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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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 73
아오야마 고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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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그냥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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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파탈]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아트파탈 - 치명적 매혹과 논란의 미술사
이연식 지음 / 휴먼아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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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눈길을 끈다. 미술사라는 학문은 미술이 음탕하고 저속한 취향을 만족시켜 왔던 역사를 가능한 한 배제하려 하고, 음란함이 미술의 '본류' 가 아니라 일탈의 지류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 한다. (7쪽)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 책이 음란함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에 균열을 내기를 희망하고, 소박하게 말하자면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야한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빙긋 웃는다면 좋겠다. (9쪽) 저자의 말처럼 정말 음란한 것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해 본다. 함께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다지 음란하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은밀하다는 것 자체가 음란함을 거들게 된다. TV를 볼때마다 담배 피는 장면을 안개 처리할때면 실소를 감출 수 없다. 담배 피우는 것을 눈가리고 아웅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을 더 자극시키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금기시 한다는 것이 성적인 욕망을 더욱 고조시키는게 아닐까 싶다. 거기에 더불어 호기심까지 말이다. 그리고 우습게도 알몸을 그린 수많은 그림 중에서 되는 것이 있고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직접적이면 안되는 것이다. 차라리 그리지 말라고 할 것이지 그 기준이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이 책에서는 적나란하게 보여준다. 지금껏 가리고 감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적은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회적 문제는 커져만 갔다.

 

성적인 이야기를 하면 왜 민망해지는가. 그리고 웃음짓는가.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기에는 민망하다. 목욕탕에서 모두가 알몸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발가 벗겨진다면 더이상 궁금하지도, 몰래 보고 싶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에서 옷을 벗은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다. 작가가 그림을 통해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따로 있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중 <아담의 창조>의 그림에서 조물주와 아담의 손가락이 닿을락 말락 하는 그림속에서 여러 이야기와 상상력이 흘러나온다. 아담은 어머니와 이어진 탯줄을 끊은 적이 없으니 배꼽이 없었을게 아니냐는 의문은 오래도록 가톨릭교회를 괴롭혔다. (112쪽) 조금씩 알면 알수록 그 그림이 더욱 궁금해진다. 알고 싶어지는게 많아진다. 카톨릭교회가 지키고 싶어했던 고귀함과 신성함 때문에 말도 안되는 억지를 심하게 부린다. 외면하고 감추려한다고 해서 모든게 덮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성행위는 배설물을 배설하는 행위이며 오물, 부패, 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임을 강조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는 하느님의 '거기'를 외면할 수 없다. (115쪽) 이 글을 읽으면서 웃음이 터진다. 외설과 예술 사이를 오가는 작품속에서 여전히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들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궁금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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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먹는 서양 철학 써먹는 시리즈 1
레슬리 레벤 지음, 이시은 옮김, 윤형식 감수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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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렵고 복잡하다. 윤리시간에 배웠던 철학은 어렵기만 했다. 삶에 있어서 철학은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어디에 써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많은 것들이, 그때는 생활하면서 필요할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일정부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하였든 대학교에 갈 생각이라면 성적이 나와야 하니까. 그외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반짝이는 생각들이 어쩌면 그동안 쌓여있던 지식에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자유분방한 사고력과 무한한 상상력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안타깝다.

 

철학자는 삶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호기심을 제발 참아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수학과 과학을 배우면서 그랬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눈이 초롱초롱 해지면서 거기에 덧붙여져서 지식에 대해서 더욱 목말랐겠지만 난 그 이상을 바란적이 없었다. 이 책에서는 그리스때부터 현대까지 철학자들에 대해서 알아간다. 철학자들의 모습을 잘 표현한 캐릭터들과 설명이 복잡하지 않아서 좋았다. 나도 철학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철학하면 생활에서는 거리가 먼 학문처럼 느껴진다. 실제로도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의 학문이 신보다 높은 경지였다면 그래 좋다. 아무리 유익하고 높은 학문일지라도 소수의 사람들로는 이어나가기 어려운 법이다. 쉬운말로 하자.

 

철학이 좋은 이유는 좋은 말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참 옳고 바르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로운 인간은 두려움에 이끌리지 않고, 선한 것 그 자체를 열망하며, 이성의 인도하에서 살아가는 자이다.' (102쪽) 이런 사람들만 지상에 살아간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착한 사람들만 살아간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세상에서 살아본적이 없으니까. '반드시 그러해야 하고 달라서는 안 되는 충분한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105쪽) 자꾸 생각하고 고뇌하게 만든다. 철학자들의 말은 하나같이 심오하다. 중요한 것은 헛된 사상이나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교훈처럼 느껴진다. '의심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114쪽) 의심이 많은 것은 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모든것을 내맡기며 살 순 없다.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그 반대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에서나 사슬에 얽매여 있다." (119쪽) 이 말에 무릎을 치는 사람이 많을꺼라 생각된다. 자유롭게 태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수없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 역시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는 것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철학을 알면 인생이 보인다는데 그러기에는 철학이 너무 심오하고 어렵다. 인생도 어렵고 철학도 어렵다. 어디 만만한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둘이 한배를 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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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 - 상
신용우 지음 / 작가와비평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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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가 살아 있었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수도 없고 내 맘대로 바꿀수도 없는 것이기에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바꿀수 있다고 해도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잘못된 판단이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어떤 상황이라도 좌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정조에게 전해지는 비서 그것은 바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였다. "그렇습니다. 소현세자께서 볼모로 청나라에 머무시는 동안 쓰신 것은 물론, 함께 가셨던 봉림대군께서 귀국한 날부터 훗날 효종대왕이 되시고 승하하실 때까지 적으신 것까지 모두 갖고 있습니다. (33쪽) 박제가는 두권으로 필서한 내용을 정조에게 바치고 있다.

그 기록속으로 들어가면 소현세자는 볼모로 청으로 가서 한 민족인 황보유장군을 만나서 대진국에 대해서 듣게 된다. 나당연합군으로 인해 고구려는 무너졌지만 고구려 장군 출신인 대조영와 그 아버지 대중상이 개국의 근원으로 자리 잡은 요동지방에 세운 나라가 대진국이다. 대진국의 영토가 무려 6,000리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간직한 나라였고 대제국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다할 대진국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책은 없다. 당대에서 이루지 못한 일을 후손들이 그 뜻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역사를 기록한 책이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 그것은 복잡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나라를 위해서 힘쓰는게 아닌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그들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인조때 우리가 청에 당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읽으면서 다시금 이를 갈게 된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면서도 마음가짐이 남달랐다. 볼모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청의 문물을 배우러 간다고 생각하고 얼른 청나라 말을 배웠다고 한다. 볼모가 되기를 아무도 원치 않았는데 소현세자가 직접 가겠다고 해서 그때 용골대 장군은 그의 됨됨이에 반하고 진정으로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소현세자가 청에서 편하게 지낼수 있도록 용골대 장군이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인조의 병환이 심각해졌다는 소식이 소현세자에게 전해지면서 청나라의 허락하에 소현세자는 조선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중에서 인조가 들으면 매우 못마땅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충분한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5리를 가다가 사라지지만 나쁜 소식은 100리를 가서 보면 더 나쁘게 되어 있다"는 속담이 있다.(170쪽)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오른 자리임에 그런 성격이 아닐지라도 인조는 불신이 심하였을 것이다. 원래 도둑이 제발이 저리게 되어 있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소현세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조선의 방향은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재미있게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인조의 이야기가 나오면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가 소현세자의 이야기가 나오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어찌하였든 하늘이 소현세자의 편이 되어 주지 못한것이 안타깝다.

 

이책은 북카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 http://cafe.naver.com/readbook.cafe 에서 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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