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현재에는 당신이 열두살이던 시절의 세계에는 없던 것들이 아주 많고, 그것들은 대부분 당신이 그때 알던 것들보다 중요하다. 당신은 자신이 그 사실을 이해하는 엄마라는 점을 뿌듯하게 여기고 있다.
- P200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서도, 운동을 못해서도 아니고 게임을 못해서 사람을 따돌린다는 점이다.
- P202

솔직히 말해서 당신은 가끔 당신 아이가 되고 싶다.
- P205

그런데 게임이라니. 그런 건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해?
아이가 방금 털어놓은 이야기는 당신이 거의 처음 맞닥뜨린당신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숙제 같다. 그러나 당신은 아이가 따돌림을 당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고백했을 때에도 그렇게생각했다. 답이 없다고 느껴지는 일에 도전한 전적이 이미 있다.
- P206

그러니 어떤 면에서 이 소설은 그때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못했던 말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P232

그런데 아이에게 공부, 음식, 체중, 키, 운동, 교우관계, 취미, 학생회활동 등 다방면의 자기계발을 요구하는 최신 입시제도는 왜 당신의 몫인 걸까. 이뿐만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감정, 인성, 소통과같은 학제 밖의 영역마저 개인의 경쟁력‘으로 간주되고, 이에 대한 책임 역시 여성 보호자인 당신에게 부과된다. 교육이 계급 재생산을 위한 투자 수단으로 바뀌는 과정은, 그것이 이미 젠더적으로 분업된 재생산 노동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자연스러워진다.
- P238

 아, 열받네 진짜. 말을 하다보니까 갑자기 열이 받았다. 말을 하다보면 열이 났고, 열이 나니까 말을 하지말아야 했지만, 아우씨, 열이 났다. 
- P249

프로그래머는 여기에 남아 있는 관객을 위로하고 싶어했고, 나는 프로그래머를 위로하고 싶었다.
- P258

누군가는 ‘자기들끼리 찍고 자기들끼리‘
보고 자기들끼리‘ 해먹는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자기들끼리라도 안 보면, 정말로 독립영화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 P263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로 요약되기를 거부하는 말이었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어째서 이야기를 그렇게 써야 하냐고 반문하는 이야기였는데. 그러나 나는 거부할 수도 반문할 수도 없었다. 
- P267

영화 찍으면서 애들 가르치는 거지. 근데 뭐 안 그런 게 어디 있어. 지혜의말처럼, 정말로 이건 영화만의 일도 아니었다. 대학교에서 예술을 배운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서 일을 했다. 문학을 전공했든, 음악을 전공했든, 무용을 전공했든 미술을 전공했든, 연기를 전공했든 내 동기들도 때에 따라 과외를했고 학원에서 일을 했다. 때에 따라 상업현장에서 일을 하기도했고, 때에 따라 독립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때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이제 세상 모든 예술학교 사범대지. 
- P273

작은 극장과 작은 책방과 작은 공연장과 소극장이 사라지지 않기를, 그곳에서 우리가 조우하는 일이 벌어지기를, 그런 행운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 반드시 문화예술체험의 불평등이 해소되어, 그 누구도 빠짐없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 P295

 즉 ‘어디선가 잘 해내고 있을 사람을 생각하며 영화를 하는 삶이란, ‘어디선가 잘 해내고 있을 자신‘을 발견하려는 다짐이며, 그런 미래를 만들어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들은 변변찮은 현실을 보고도 "계속 영화를 하게 되" (같은쪽)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소설의 제목 ‘0%를 향하여‘는 무언가가득차 있던 것이 줄어들어 비어감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삶의어느 시점에서는 0이 있기만 하다면 언제고 ‘다시 하는‘ 삶을 시작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 P304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게. 그리고 기억할게."
그러니까 우리는,
"낙관하자."
- P339

나는 낙관할 것이다. 사랑의 지속을그렇게 우리는 더 많은 사랑과 아름다움을!!!
- P350

한 편의 소설에 대해 말해야 할까.
하나의 세계에 대해 말해야 할까
- P3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여 년간 잡지, 교과서, 단행본 등 잡다한 분야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가끔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일들도 궁금해졌다. 가능하다면 여러 갈래로 난 샛길들을 함부로 걸어보기로마음먹었다. 조금은 엉망인 사람으로 남아, 당신과 함께 그 샛길들을 헤매고 싶다.
- P1

이쯤이면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모범적인 삶이나 정형화된 산책길을 권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단 몇 시간의 독서나 여행만으로 어떤 사람 또는 장소의 정수를 발견하는 일은 도저히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정수를 발견한 척하는 일 역시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을 벗어나 낯선 어딘가를 걸어볼것을 권하고 싶다. 낯선 길을 걷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때, 그리고그 길이 전에 겪어본 바 없이 급변할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달리 볼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리하여 당신도 어느 곳에선가 새롭고도 생소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 P7

이런 문제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고민한 결과 캠페인이만들어졌어요. #TAKE3FORTHESEA‘라는 해시태그를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혼자서 이 해변의 쓰레기를 모두 줍는다는 건 불가능해요.
서핑숍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기본적으로는 서핑을 즐기려는 사람이니온종일 쓰레기만 줍고 있을 수는 없고요. 그러니 서핑을 하고 나서 각자 쓰레기 세 개를 줍자. 그래서 깨끗한 바다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자.
이런 의미예요. 저는 #바다사용료는쓰레기줍기‘라고 쓰고 있어요.
- P44

속초 여기저기에 건축봄이 일고 있어요. 이곳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속초가 점점 아름답지 못한 도시가 될 거라는 불안을 갖게 돼요. 그래서 속초 시민들은 난개발방지를 위한 조례 개정안‘을 청구하기 위해 서명운동 등을 진행하고 있어요
- P97

선착장에 묶인 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 매듭을푼 그들 부부는 낯선 곳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그들의 어깨 뒤에는 이미낯선 곳으로 항해해본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누군가가 겪었던 고난은 이제 고스란히 이 부부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이 부부 이전의 누군가가새로운 항로를 훌륭히 개척해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어떤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리라 믿는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를 써가기 위해 자기 힘으로 배를 밀고나가고 있다. 자기 근원을 찾아 항해하는 현대의 오디세우스가 가맣게 될 육지가 그들의 바람만큼 멋진 곳이길 기대한다.
- P123

서울에서 일하던 일러스트레이터 박한영 씨는 시골의 이듦에 따라 김포로, 고성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그는 시골에서 보낸 몇 해의 시간이 그림같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무엇보다도 도시에 살 때 그곳의 사람들과유지했던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간격이 그리운 눈치였다. 적지 않은 시간을 도시에서 살아온 그에게는 자신의 친구로 정의되는 이나 가족같이 느껴지는 이들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범연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사람 사이의 간격이 훨씬 더 좁혀진다고한다. 그래서 말 못할 알력이 생기기도 하는 듯하다.
- P150

그는 지금도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각각의 공간이 끼치는 인력과 척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 P151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게 힘들진 않냐고요? 괜찮아요. 마음이 풍요로워진 느낌이니까요. 여기에서는 많은 것들을 자급자족해요. 직접 재배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 무척 행복해요.
- P168

고성을 포함한 영동 지방은 고려 시대에 해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군사적 목적의 행정구역인 동계로 구분되어 다른 지역과 달리 취급되었다.
한쪽은 바다, 다른 쪽은 드센 형세의 산에 둘러싸인 영동 지방의 길 위에서면 이 지역이 왜 특별히 여겨졌는지 느끼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느꼈을 막막한 심정도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한 고립감을 숨기지 않은 설화가 고성 화암사에 전해온다.
- P174

고성에서도 더욱 외딴 곳에서 남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이순임 씨도,
수바위와 같은 화수분은 아니겠지만 부족함 없이 생활을 이어나갈 만한 방법을 찾은 듯하다.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고 낙향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주부로서의 익명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계망 속으로완전히 복귀하게 된 이순임 씨는 고성에 정착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가치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백발노인이 스님들에게 쌀을 내어준 것처럼, 고성이 그에게 자신의 너른 품을 내어준 덕분이 아닐까.
- P175

목적지인 신선대에 오르면 맞은편 울산바위의 모습에 일단 놀라게 된다. 그러고 나서 하산을 위해길을 찾다가 동해를 마주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한참을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저 멀리 바다로 마음속 이것저것을 던져버리자.
- P180

자기 기록을 하는 사람이 자기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사로 살면서 글쓰기를 중심에 두기로 했어요. 
- P196

자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흔한 교훈은 박성진 씨가 보여주는 삶의 궤적을 통해 그 의미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자신이 정말로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직선이 아닌 발자국을 남기면서 산책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낯설어 보이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 P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에는 우리가 헤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어떤이유에서든 영지의 마음은 이미 떠났는데 무너질 나를 위해 유예기간을 주는 거라고. 
- P130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영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야말로 ‘안물안궁‘의 기분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나는 네가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인 네가 자라는 내내 나와의 가정 내 이권 다툼에서 늘 교묘히 우위를 점하던 네가 나와는 점점이 거의 없어 십 분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무리인 네가 나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생각이란 걸 하든 말든, 이해를 하든가 말든가, 응원이고 나발이고 아무 관심이 없었지만, 정말 어쩌라고 싶었지만, 내 인생 하나 살기도 벅차다! 하고 외치고도 싶었지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보여준 하해와 같은 아량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같은 표정을 짓는 것 정도는 전혀어렵지 않았다.
- P134

"고마워."
하지만 정말 고맙기도 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니 더욱 그했다. 곱씹을수록 단맛이 배어나는 쌀알처럼 그 마음은 점점 진해졌다. 진심이라는 건 형식에 뒤따르기도 하는 법이니까. 고마운 마음이 뒤늦게 다시 밀려왔다.
- P134

아주 어릴 때 내가 울면 할머니는 커다란 솜이불을 덮어주었다.
"그 안에서 실컷 울어라."
눈을 떠보면 어둡고 솜이불은 무거운데 그 어둠과 무게가 나를달래주었다. 
- P146

하지만 더는내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버리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에게는 할머니 중심의 서사가 나에게는 나 중심의 서사가 있다. 할머니의 서사가 발단, 전개, 위기, 절정을 거쳐 결말부근에 이르렀을 때 내 서사는 전개 비슷한 것을 지나는 중이었다. 내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할머니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으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부정하면서 전개된다.
- P147

"내가 거길 어떻게 가. 가서 뭐 먹고 살라고."
"엄마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큰이모도 있고."
"엄마가 제일 걱정이야."
- P149

 가족들을 사랑하는 건 이미 주어진 일 같은 거였는데, 그 사랑을 이어가는 일, 계속해서 사랑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무조건적인 사랑 같은 건 없으니까. 
- P450

시간이..... 멈취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시간은 내 마음 같은 건 아랑곳 않고 자기 할일을 했고 우리도 그저 우리 할일을 할 따름이었다.
- P151

다만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병원 신세를 오래 졌고, 악착같이 사는 대신 적당히 사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이만큼 사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뭐든 나쁠 게 없다고 했다. 
- P166

고작 냉면 한 그릇을 함께 먹었을 뿐인데, 왜 이토록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지의아한 기분이 들었으나 이유를 묻진 않았다. 다만 그 시간들이순미에게 얼마간 힘겹고 고단했을 거라고 짐작했을 뿐이었다.
- P166

자신의 허기를 깨운 것이 다만 그런 것만이 아님을 만옥은 모르지 않았다. 만옥은 지난 사흘간 병원을 찾아온 사람이 아무도없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잠든 승석을 내려다볼 때면 불안한 예감이 무섭게 떠오른다는 말도, 병실 한쪽에서 정신없이 묵을 삼키는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고 서글프다는 말도 참았다.
- P168

뭐든 남들보다 천천히 한다고 생각하면 돼. 아무 문제 없어요.
밥 잘 먹으면 그걸로 된 거야. 걱정할 거 없어.
그것이 순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단순하고 시시해서 싱겁게까지 여겨지는 그 말이 왜 항상 일렁이는 마음을 단번에 진정시키는지도.
- P169

좋은 일인지 아닌지도 살아봐야 알지. 좋은지 나쁜지 뭐든 당장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 P179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는 동안 어쩌자고 서로의 사정을 이렇게 속속들이 알아버렸을까 생각했고, 그게 뭐든 차라리 몰랐으면 나았을 거라고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지난 시간 동안 저 낡은 집이 자신에게 선사한 좋은 일이란 고작 이런 것이고, 이제 이것마저 지킬 수 없게되었다는 것을, 이 집을 팔면서 자신이 각오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 셈이었다.
- P180

만옥은 순미와 처음 냉면을 먹었던 그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가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고, 새삼 좋았다고 생각되었다. 아니, 불행과 비극 속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던 그 시간들이야말로 정말 좋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 P182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복도를 걷는 그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것이 다만 눈에 보이는 저 낡은 주택들만은 아닐 거라고 말이다.
- P184

집을 채우는 것은 가구와 가전, 온갖 물건들이 전부인 것 같지만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시간이 더해져서 비로소 집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당시 나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집과 나만이 공유했던 어떤 순간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 P186

하지만 타인의 속사정을 알게 되는 일은 "마음의 부채감" (173쪽)을남긴다. 그건 ‘마음을 쓰는 일‘이 언제나 ‘마음이 쓰이는 일‘에 뒤따르는 까닭이고, 이 ‘마음 쓰임‘은 이미 주고받은 ‘마음 씀‘을 상쇄하는 잔여물을 남기기 때문이다. 요컨대 마음 쓰임의 여러 양태인 기쁨과 슬픔과 사랑, 분노, 연민과 동정 등의 감정은 나 이외의 다른 대상으로부터 받은 어떤 영향의 결과이자, 뒤따르는 마음 씀의 원인이다.

목화멘션의 임정균 평로가의 해설
- P191

무엇보다 그것들에 마음이 쓰이고 마는 까닭이다. 만옥과 순미가 서로의 속사정을 ‘가만히 들어주었듯이 우리도 그저그 속내와 민낯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 P1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을 터보니 인문학 책도 좀 읽는 것 같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가끔은 위트 있는 농담도 할 줄 아는 그런대로 말이 통하는 상대였다. 우리는 정확한 지칭을 피하면서 연구소 꼰대들에 관한 시니컬한 농담을 나누었다. 
- P9

그에게 딱히 바라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연구소같이 삭막한 곳에서는 작은 우정같은 것도 꽤나 소중했으므로 그와의 마주침은 내게 의미 있는일로 여겨졌다. 
- P10

우리는 별 의미 없지만 묘하게 평등한 분위기로 잡담을 나누었다. 묘하다고 한 이유는 연구소의 계급 체계가 매우 철저했기 때문이다. 나는 계약직 행정사무 보조였고, 으레 내 몫으로 남곤 하는 복사기와 물티슈와 커피 필터를 앞에 두고 종종 불가촉천민이된다는 건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 P10

그는 적당한 무관심과 호의로 나를 대했다.
- P10

나는 왜인지 매번 그에게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리운 기분을 느꼈고, 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그건 뭐랄까. 아무 뜻도 없는 말이지만 어쨌거나 너무 사적인 감정이었고, 일단 튀어나오기만 하면 종잡을수 없는 고백 비슷한 게 되어버릴 것 같았다. 아무튼 오다가다 만나는 사이에서 불쑥 꺼내 보이기엔 선을 넘는 주제였다. 
- P11

너무 부드러운 나머지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의 진심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겸양이 묻은 언짢음. 예의바르지만 단호한 거부. 나는 못 들은 척 넘겼지만 어쩐지 거절당한 기분으로, 어쩐지 도둑맞은 감정의 주인으로서, 그와 나의 신분 차이를 다시금 환기했다. 익숙한 일이었다. 
- P11

나를 스스럼없이 대하던 것도 나이든 여자, 아예 이성의 범주에 들지 않는 상대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쾌하진 않지만 뭔가 모든 것을 납득시키는 설명이었다. 
- P14

한때 소유했던 드넓은 영지를 바라보는 몰락한 귀족처럼 언덕길과 그너머를 훑어보았다. 인생에 별로 기대하는 바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그의 것보다는 단명한 듯한 나의 젊음을 잠시 애도했다. 나의 우울과 상관없이 봄날은 아름답기만 했다. 불과 며칠 만에 계절이 변한 것이다. 
- P15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사랑이란 어떤 시기로의 지속적인 퇴행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 P22

 장 피에르는 완벽한 삼십칠세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장 피에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 P23

장 피에르 같은 사람은 모든 걸다 소유하고서도 불행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야. 저런 우울감은 특권층만 가질 수 있는 거라고. 그게 자기 매력이라는 것조차 의식할 필요가 없어.
- P23

그는 소년 같은 남자였다. 자신을 소년으로 생각하는 부류의 남자였다. 그리고 우리는 더 자랄 것도 없다는 듯이 굴고 싶어하는 여자애들이었다.
- P32

그즈음 나는 연수가 장 피에르를 만나고 오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고다르를 싫어하면서 왜 장 피에르를 만나고 다니는지, 나는연수를 이해할 수 없었고, 없었으나, 또 동시에 완벽히 이해했다.
- P41

삶의결정적 순간들과 돌이킬 수 없는 잘못들도 아직은 일어나기 한참전인 그때.
- P45

한때 그가 대항했던 권위는 그 자신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커스터마이즈되어 찬란히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 P50

명심하라. 반드시, 네가 싫어하던 그 무엇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 P50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각자의굴욕을 꿋꿋이 견디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 P51

우리는 동시에 키득거렸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어떤 시간은 때에 따라서 수백 년 전의 일처럼도, 혹은 불과 몇 달 전의 일처럼도 느껴졌다.
- P53

그중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우연히 집어든 책들에서 어떤문장을 발견했을 때다. 아주 평범한 얼굴로 페이지 속에 숨어 있던 그 글자들이 어떤 단서를 암시하며 내게 다가왔을 때 느꼈던그 미세한 전율, 어렴풋한 존재감으로만 감지되던 미지의 의미망에 접속하던 그 찬란한 순간. 어쩌면 무심코 스쳐지나가버렸을지도 모르는 백 퍼센트의 무엇. 그런 우연들에 주저하지 않고 따라나선 것을 지금도 기쁘게 생각한다. 
- P61

어느 날 두 사람은 학생회관 옥상에 앉아 부당한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하다 그 미움을 사랑으로 바꿔 특별한 목적 없이 세상을 향해 온정을 베푸는 일을 도모했다. 
- P91

그녀는사람에게 다가가 마음을 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먼저 주고, 준만큼 되돌려받지 못해도 다시 자기의 것을 주었다. 결국 그건 자기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했다. 멀리, 크게 보면 그렇다고. 그런 말을 할 때 체의 얼굴은 느긋하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앙헬은 체보다 여러 가지 일에 능숙했지만 사람을 대하는 체의 태도에는자신이 다 헤아릴 수 없는 크고 높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 P94

봉사고 명예고 공짜로 부려먹을 생각 하지말고 제대로 돈을 지불해요. 앙헬은 가끔 체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고 돈을 헤프게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체의 그말을 떠올렸다.
- P95

믿음이란 상대가 자신을 해치거나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안심의 또다른 표현이라고 앙헬은 생각했다. 
- P99

다만 어떤 베품은 인과적인 타당성을 설명할 수 없듯 어떤 거부도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 P107

이유를 묻고 그 답을 찾으려는 간절함만큼이나 답을 모르고 사는 힘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 P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