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드는 지상으로 나와 쾌적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노랫말이 들려왔다. 뭐랄까, 마음은 무거워 죽겠는데 걸음은 가볍고, 슬퍼 죽겠는데 용기는 불끈 솟았다. 그 길로 ‘굿바이 서울‘을 들으며 별 받고서당차게 걸었다. - P23
그리워할 각오 없이는 무엇과도 작별하지 못한다. 그리위할 각오가 됐다면, 작별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신호다. - P24
서울이든 부산이든, 사람이든 물건이든, 추억이든 감정이든 간에 열심히 쓰다 보면 나도 어느 독자와 친밀도 94도를 이루는 사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 P24
부모님은 내가 여태 담담한 척 견뎌온 고통의 크기를 헤아려 주셨다. 다만, 서두르지 말라는 말씀은 하셨다. 비로소 지난 세월과의 작별까지는 오로지 내 몫만 남게 되었다. - P25
가끔 좋은 소설을 만나면 지면 위의 활자들이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잉크가 지형과 지물을 이루고 색과 냄새, 생물과 영혼을 창조하는 것이다. - P27
때로는 얼떨결에 밸는 말이 가장 정답에 가깝다. - P29
그들은 등장인물에게 서술할 가치가 있는 생각만을 부여하고, 전개에 필요한 행동만을 허락한다. 소설가에게 그렇지 않은 부분은 실수다. 어쩌다 범했더라도 세심히 걷어내야 하는 실수. - P30
삶이 무의미하다 느껴지면 한 번쯤 되돌아보는 게 좋다. 하루를 서술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행동으로채워 나가고 있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취미 삼아 소설을 써보는 것도 좋다. 별 싱거운 삶을 살고 있다면 글에서 절절히 느껴질 것이다. - P31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것 자체가 우울증을이겨내기 시작했다는 증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는 거다. - P38
아, 가능하다면 고층 빌딩은 싹 밀어버리고, 세계의 모든 연인들이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 밖으로 나와 별과 함께 데이트를 즐겼으면 좋겠다. 그 정도 되는 세상이 온다면내 머릿속에 엉켜있는 잡념쯤은 단번에 술술 풀려 줄지도모른다. - P39
동행자로는 유한 사람이 좋아요. 그렇지 않다면 밤바다 앞에서 한없이 우울해지니까요. 어쨌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먼 길 떠났겠지요. 밤바다 앞이라 할지언정 우울보단 낭만을 느끼는편이 좋습니다. - P42
반면, 이 책은 우주에 비해 인간 개인은하둥 먼지도 못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도, 그렇기에 나름의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똑똑히 짚어준다. - P57
아직은 당장 손에 잡힐 듯 선명한 기억이지만, 갈수록 희미해져 간다. 측두엽은 기억을 편집하고 편집하다 마침내는 썩 많은 걸 남겨두지 않겠지. 그 황량한 정취를 느끼기위한 과정은 점점 더 복잡한 절차를 요구하면서도 이전만큼의 향수를 일으키지는 못하겠지. 이내 기억 속 세계에 내리는 비에 속옷까지 젖기란 아예 불가능해질 거야. 어쩔 수없는 일이라지만, 허망하다. 노스텔지어는 역시 통증에 가까운 걸까. - P72
밸런스가 좋은 여행이었어. 피타고라스와 세계의 많은예술가를 사로잡은 황금비가 떠오를 만큼 얻은 것과 내려놓은 것의 비, 1: 1.618. 과감하게 뛰어든 일탈과 소소하게누린 안주의 비.1 : 1,618. 눈으로 담은 풍경과 기록을 남긴 풍경의 비, 1: 1.618. 길을 잃는 두려움과 헤쳐나간 즐거움의 비, 1: 1.618. 다만, 알아들은 만과 얼떨결에 고개만 끄덕인 문장의 비는 1: 99. - P73
그러니 이렇게 미리 덧붙이는 게 좋겠습니다.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은 이들이 느끼는 알량한 허영심마저도 과시가 전부가 아닌,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함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낭만일 수밖에 없다고. - P81
‘알아서 할게‘의 미학이 세상에 널리 통용되었으면 좋죄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어련히 알아서 할 일들이 세상엔 많은데, 그런 걸 일일이 참견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그만큼이나 많기 때문이다. 다소 쌀쌀맞아 보이겠지만, 용기를 내 ‘알아서 할게‘라 말하자. 너도 나도 그런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하다 보면 ‘알아서 할게‘ 쯤은 그다지 쌀쌀맞은 말이 아니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야 세상이 너무 날카롭게변하지 않겠냐고? 글쎄, 이런 식으로 서로 괴롭히는 것보단 그게 몇 배는 낫다고 생각한다. - P92
현실과 이상은 원래 양극성 말고는 별관계가 없는데, 내가 매일 지나쳐 온 ‘오늘‘과 꿈꿔 온 ‘내일‘ 사이에는 정말 일말의 연관도 없을지 몰라. 이렇듯 봄을 맞닥뜨리는 내 마음가짐은 늘 무언가 들끓는 동시에 딱 그만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어. - P94
취미가 됐든 뭐가 됐든,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건 인생에 있어 무척 중요한 일인데, ‘꾸준히‘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을 세운다거나,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하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꾸준히‘라는 단어의 의미를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필요하지 않을까. 그러지 않고서는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지나치게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 P103
그렇다고 힘을 빼는 법을 깨닫는다고 해서 모두가 일류가 되는 것 또한 아니지만 적어도 일류가 될지도 모른다는 어떤 가능성은 힘을 떼지 못하는 사람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사실 일류가되고 못 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작전 상 후퇴‘를 모르면 결국은 ‘완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비밀인 것이다. 단언컨대, 모든, 모오든 일이 그렇다. 일종의 공식으로 모두가 숙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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