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JUDGE YOU BY YOUR BOOKSHELF.
- P1

고백할게.
나는 책에 단단히 빠졌어.
남들 앞에서도 책을 읽어.
무슨 물건이든 책갈피로 써.
허구와 현실을 혼동해.
도서관 연체료 미납자로 수배 중이야.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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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우리의 사랑을 어렵게 만든다. 그 수많은 다름을 견주어보는 동시에 그 다름을 감내해내야 한다는 점이 우리의 사랑을 아프게 만든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평소 자신에게조차 내색하지 않던 스스로의 속마음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것은 대개 오랜 상처나 열등감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사랑을 외롭게 한다.
- P94

사월, 서풍이 들면 매화나무의 흰 꽃들은 얼마쯤 바람을타고 날아가 낯선 이의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이런 일은 슬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 P102

사람에게 미움받고.
시간에게 용서받았던.
- P103

오전, 남해의 한 마을에 도착한 나는 바다의 푸른빛과 하늘의 푸른빛을 번갈아가며 눈에 담아두었다. 
- P105

또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것들 가운데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내고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애써 마음을 피해 다니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 P108

일상의 공간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 P110

나는 왜 거절도 못하고 이렇게 일을 받아두었을까 고민하다. 그것은 아마 내가 기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한없이 우울해졌다. 가난 자체보다가난에서 멀어지려는 욕망이 삶을 언제나 낯설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 P116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처럼 적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여러 사실들을 모아희미하게나마 진실의 외연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몇번이고 몇 번이고 죄송한 마음을 드립니다.
- P144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삶의 궤적을 따라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꼭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상까지는 못되지만 사유하며 살아가고 혁명은 어렵지만 무엇인가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내가 가닿고 싶어하는 어른됨 또한 그리 비범한 것은아니다.
- P146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잘 구분이 되지앓던, 이해는 가지만 딱히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던 말들.

- P148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 P157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실했고 간결했지만 점점 억울한 마음이 짙어졌다. 내 삶이 점점 시와 문학에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생각 탓이었다. 맹목에 가까울 정도로 썼던 습작시들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지만 이십대 초중반,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애를 쓴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 P177

 다만 어떤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쓰이는 일만으로 저마다의 능력과 힘을 가지는 것이라 믿는다. 마치 마음속 소원처럼. 혹은 이를 악물고 하는다짐처럼.
- P180

시를 짓는 일이 유서를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아마이것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에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고 이 숱한 사라짐의 기록이 내가 쓰는 작품 속으로 곧잘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 P181

어쩌면 유서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에대한 용서와 화해를 넘어 자신이 스스로의 죽음을 위로하고애도하는 것이므로.
- P183

다시 새해가 온다. 내 안의 무수한 마음들에게도 한 살씩 공평하게 나이를 더해주고 싶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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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하든 문학을 하지 않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현실은 꽤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하게 하고 또 감내하게만든다.  - P61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선생님의 이 말은 당시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삶의 장면 장면마다 불러내는 말이 되었다.
- P63

먼 시간과 먼 공간을 오래 생각하다보면 먹먹한 기분이 드는데 나는 이 순간이 꼭 고요하고 넓은 들판처럼 느껴지기도했다.
- P67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날, 공항은 분주했고 나는 비행기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지금도 신문에 ‘공항 동정이라는 꼭지가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나의 출국 목적란에는
‘한파로부터의 도피‘ 정도로 적어야지 하는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 P66

배추는 먼저 올려보냈어.
겨울 지나면 너 한번 내려와라.
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 P69

자신이 말을 하는 시간과 상대방의 말을 듣는 시간이 사이좋게 얽힐 때 좋은 대화가 탄생하는 것이라 나는 그때 김선생님을 통해 배웠다. 
- P74

더없이 사소한 일이고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상대가 누구든 간에 정중함과 예의를 잃지 않는 선생님의 태도를 좋아했다.
- P75

이러한 상황을 소위 말하는 ‘미련‘이라는 말로 치부하고 싶지만은 않다. 다만 관계가 조금 덜 죽어서 그런 것이라고, 이러한행동 또한 관계를 잘 죽이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 P81

대부분의 연애는 상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자라나 있을 때 시작되는 것이므로 연애의시작은 사랑의 시작보다 늘 한발 늦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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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인천

그해, 너의 앞에 서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내 입속에 내가 넘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 P14

일출과 일몰의 두 장면은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았다. 일부러 지어 보이지 않아도 더없이 말갛던 그해 너의 얼굴과 굳이 숨기지 않고 마음껏 발개지던 그해 나의 얼굴이서로 닮아 있었던 것처럼, 혹은 첫인사의 안녕과 끝인사의안녕이 그러한 것처럼.
(두 얼굴)
- P17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 P19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은 답서를 할 것이다. 우리의 편지가 길게 이어질 것이다.
- P26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오래 침묵했고과거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조금 안도했습니다.
(그해 협재)
- P33

사실 대부분의 병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당뇨나 고혈압은 정해진 수치에 이르러야 병으로진단받게 되는데 아직 정상 범위 내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수치가 점점 오르는 중이라면 그는 병의 전 단계에 있는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이것을 미병이라 부른다.
- P44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나는 것처럼우리가 살아가며 맺는 관계에도 어떤 정량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 정량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적어도 나는 한번에 많은 인연을 지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 P49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 P51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나에게는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당신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함께하지 못할 앞으로의 먼 시간은당신에게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나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여행과 생활)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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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말하면 내 감정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인간이란,
한낱 짐승이며,
사랑만이 인간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 P70

Vale et me ama!
- P71

어떻게 너는 때로는 유쾌해졌다가 때로는 슬퍼할 수 있니? 나는 미칠 듯한 즐거움 속에서도 이따금 쓰디쓴 회상에 사로잡히곤 해. 그래, 나는 알고 있어. 앞으로 영영 나는 결코 경박하게 그저 즐거워하며 지낼 수는 없을거라는 걸! 내 앞에는 언제나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의유령이 서 있을 테니까!
- P72

너의 영혼이 지상의 얽매여 있다고? 공부하라! 희망을 가지라! 사랑하라! 독서하라!
- P73

세월은 흐르고우리를 시들게 해. 그러나 실제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없어. 우리는 늘 우리일 뿐이야.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어, 기운이 빠지고 나이를 먹었다는 느낌 외에는.
- P76

너는 이 황량한 세상에서 나를 위해 피어난 다정한 장미꽃이고, 너의 정다운 가슴속 깊이 나의 어두운 슬픔을 파묻어 줘!
- P77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기 시작했어. 아, 벗이여, 이것이야말로 모든 책 중의 책이라는 생각이들어! 
- P77

추신 - 이 편지를 간직해 줘 네 마음이 처량해질 때, 그리고보람 없이 어둠 속에서 부르짖는 일이 있을 때 이 글을 다시 읽어줘.
- P78

나는 고민하고 사랑하고 희망하기 위해 태어났고, 또한희망하고 사랑하고 고민하고 있어! 내 일생의 이야기는단 두 줄로 요약될 수 있어. 나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것은 사랑, 그리고 나에게는 단 하나의 사랑이 있을 뿐인데, 그건 너야!
- P82

그러나 이모든 것은 글로 표현할 수 없어! 글로 쓴다는 것은 한 송이의 꽃을 찍은 사진과 같으니까!
- P83

아마도 너는 도움과 위로와 희망이 필요할 텐데, 나는 애정의 말은 커녕 고작 자신을 위해서 밖에 살지 못하는 에고이스트의 한탄만을 섞어 보내는구나.
사랑하는 벗이여, 용서해 줘! 다른 말은 쓸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위기를 겪고 있어. 지금 나의 마음은 산골짜기의 자갈밭보다도 더 메말라 있어! 모든 것에 대한 불안.,
또 나 자신에 대한 불안, 이것이 가장 잔인한 괴로움 아닐까? 
- P84

또 그의 긴 얼굴은, 선이 분명하고 의지가 강하면서도 조용하며 난폭한 데라고는 조금도보이지 않는 턱까지 길게 뻗어 내렸다. 그는 겁먹은 빛도 없이, 그렇다고 도전적인 기색도 없이 호텔 주인의 질문을 받아넘겼다. 
- P87

다니엘은 대꾸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타협하는 듯한 표정으로 자크가 화내는 것을 아무 저항 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듯이 미소를 띠었다. 그의 미소는 독특했다. 입술이 치켜진 그의 작은 입이 슬쩍 왼쪽으로 올라가며 치아가 드러났다. 그리고 이러한 뜻밖의 명랑한 모습은 그의 진지한 얼굴에 매력적인 환상 같은 것이 감돌게 했다.
- P90

다니엘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방금 또다시 내면의경고를 들었다. 집을 떠난 뒤에 벌써 여러 번 듣는 경고였다.
그러나 이번만은 도저히 그 소리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그소리를 똑바로 의식해야만 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불만에 찬목소리가 반대하고 있었다.
- P93

 그러자 그는 금방 위안과 안도를 느꼈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그를 감싸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새로운 공포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집을 떠나 온 뒤로 그는 단 한 번도 하느님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보이지 않는그 ‘시선‘이 그를 굽어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많은 생각을 꿰뚫고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 P100

 다니엘은자기들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튼 반드시 그러리라고 확신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자기 생각이 틀렸기를 바라기도 했고, 환상이 상식을 뛰어넘어 이겨주었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다.
- P113

그렇게 되는 건 때때로 또다른 한 사람 - 불행하고 신분도 낮고 조금만 돌봐 주면 반드시 구해 줄 수 있을 그런 사람을 동정하기 때문일 수가 있어.... - P139

그리고 머리를 숙이고 자기도 모르는 그 무엇을 기다리면서 울고 싶기도 하고 웃고 싶기도 한 심정을 동시에 느끼면서 서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그토록 애정이 복받쳐 있었다!
- P151

그는 생기 없는 얼굴을 들었다. 지금 하느님에게 자신의 실망과 이 새로운 시련을 바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부터 모든 원한을 풀어 버린 그는 지금 아버지로서 길 잃은 자식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기도대 아래에 있는종교 서적들 틈에서 묵주를 꺼냈다. 그것은 그가 최초의 성체배령 때 받은 묵주로서 사십 년 동안 길이 들어 이제는 손가락사이에서 저절로 굴렀다. 그는 두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마는여전히 그리스도를 향했다. 그의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내면적인 미소, 이 꾸밈 없는 행복한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154

 그는 어떤 구원책이라고나 할 수 있는, 숨 막힐 듯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애정을 한꺼번에 다 쏟아 버릴 수 있는영웅적이고도 엉뚱한 희생이나 속 시원히 헌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자기 연민에 빠져 머리를 번쩍 들고는 알아주지 않는 사랑과 증오와 자부심이 하레 뭉친 비뚤어진 쾌감의 한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 P155

자크는 목구멍에서 울음이 터져 나오지 않도록, 그리고얼굴 근육 하나에라도 그 표정이 나타나지 않도록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턱을 가슴께로 바짝 끌어당겼다. 용서를 빌지 못한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으며, 자기도 다니엘처럼만 맞아 주었더라면 얼마나 따뜻한 눈물을 흘렸겠는가를아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렇다! 어차피 이렇게된 이상, 아버지에 대한 자기의 심정, 원한이 섞인 이 동물적인 애정,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된 뒤로 오히려 더 복받치기까지 하는 이 동물적인 애정을결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해야 했다!
- P157

지금 그에게는 오직 자신의 이 절망적인 광경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겠다는 의식만이 겨우 남아 있을 뿐이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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