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권리가 투표할 권리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절대적인 인권임이 인정되는 날이 올 것이며 또 와야만 한다. 그날이 오면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의사의 도움을 받아자살할 권리를 갖게 될 것이다. 그 선택은 ‘범죄자‘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 P102
잘 자거라, 악의 힘이여, 동그란 통 안에서 잘 자거라. 내가 너를 필요로 할 때까지 잘 자거라. 내 마음 같아서는 불필요하게 너를 깨우지 않으리라. 오늘은 비가 오나 내일은 해가 날지도 모른다. 해가 나더라도 그 빛이 오염되고 병든 듯한 날이 오면 오직 그때 너를 깨워 내가잠들리라. - P103
사람들은 사랑받기 원한다. 그러지 못하면 칭찬이라도 받기 원한다. 그것도 아닐 경우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원한다. 그마저 아닐 경우 혐오와 멸시의 대상이라도되기 원한다. 사람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반응을 원한다. 우리의 영혼은 공백 앞에서 불안해한다. 우리의 영혼은어떤 대가를 치르든 접촉을 원한다. - P105
적어도 나는 그녀의 행동을 오해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든다. - P107
그러니까 이 아이가 첫애였던 것이다. 당시에 그녀가배고 있던 아이가 바로 이 아이였다. 그녀가 떼 달라고통사정했지만 나로서는 의사의 의무에 따라 내버려 둘수밖에 없었던 태아가 바로 이 아이였다. 인생이여, 난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 - P109
가령, 우리가 길을 걸으며 고상하고 훌륭하며 획기적이기도 한 생각을 한다고 치자고, 세상의 그 누구도 가져 보지 못했을 그런 생각 말이야.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는 오랜 세월의 경험에 기반을 둔 어떤 목소리가 다음날 아침이면 그 생각을 잊으리라고 속삭이거나, 이제 보니 거기에는 고상하고 획기적이 요소란 없다고 속삭인다는 사실은 일단 접어두자고,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 생각이 지속되는 동안만은 도취감과 들뜬 기분이 감소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길을 가며 드는 생각일랑 당장 잊어버리는 게 좋다고 깨닫는 데는, 고개를 들어 굴뚝 사이에 빛나는 작은 별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해. - P115
하지만 그 별은 제법 오랫동안제자리를 충실히 지키고 멋진 빛을 발했잖아. 어떤 미지의 행성에게는 태양으로서 그 행성의 바다에 비치지만이 작고 어두운 지구에 와서는 도랑 같은 운하에 비친다는 말이지. 그 별을 좀 본받게, 이 친구야. 운하에 얽매이지 말고 일반적이고 전체적인 측면에서 말이야. - P116
별로 고상하지 못한 내 이해력에 의지해서 하는 말인데, 그와는 반대로, 그레고리우스 목사와 결혼해서 적정 기간이 지난 다음에도 저 여자에게 신앙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게 이해할 수없는 일이겠지. - P117
세상은 연애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들은 결국 어둠 속에 들 것이다. 그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 - P119
비르크가 돌연 나를 보고 말했다. "한번 대답해 보게, 자네는 행복을 찾고 있나?" "아마도."나는 대답했다. "내가 아는 행복의 유일한정의는 각 개인이 찾아볼 가치가 있다고 믿는 무엇의 총합이란 거야. 그러니 우리가 행복을 찾기 바란다는 것은자명한 사실이겠지." - P120
마르켈이 말을 이었다. "이거야 원, 그럼 자네는 그 잘난 행복을 택하게, 난 쾌락을 택할 테니. 건배! 하지만언어의 사용에 관하여 자네 의견에 동의한다 해도 모든사람이 행복을 추구한다는 게 진리가 되지는 않아. 자기는 행복에 재능이 없으며 또 그 사실을 잔인하고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네. 그런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지 않아, 그저 자신들의 불행에 어떤 형식과스타일을 부여할 뿐이지." 그러고 나서 그는 불쑥 한마디를 보탰다. "글라스가그런 사람이지." - P122
맥라렌호수 쪽 상공에 보랏빛 구름 한 조각이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 P123
목사가 어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녀가 다시나를 찾아올 테지. 그녀를 보고 싶고 그녀의 목소리를듣고 싶다.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 - P124
내 모든 것을 드러내 보여도 괜찮을 여자는 없다. 그렇지만 이런것은 어떨까? 그녀와 함께 살면서도 내 본모습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 - P127
그 달은 언제나 흰 지붕 위에 떠 있었다. 어머니가 우리들에게 빅토르 뤼드베리의 시 <크리스마스꼬마 요정>을 읽어 준 적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듣고 거기 나오는 달이 그 달임을 알아보았다. 나중에 그 달에붙게 될 속성들이 거기엔 아직 없었다. 즉 온화하지도 다정다감하지도 차갑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 P128
‘네 말은 틀렸어, 하지만 내가 아직 그에 관해 충분히읽은 것도 없고 생각해 보지도 않아서 네 말을 반박할수가 없어. 기다려, 1년만 기다려, 내가 오늘처럼 달빛아래, 같은 장소에서 네 말이 어떻게 틀렸는지, 네가 얼마나 멍청한지 보여 줄 테니. 네 말은 어떤 경우에라도진리일 리 없고 또 진리여서도 안 되니까. 만일 그게 진리라면, 나는 더 이상 그런 세상의 일원이길 원치 않아. 그런 세상과는 결별하고 싶어.‘ - P130
어렸을 때 한번은 오후 내내 기하학 문제를 풀려고 머리를 짜내다 풀지 못한 채 그만 잠이 들었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두뇌는 계속 돌아갔고 나는 꿈속에서 그 문제를 풀었는데, 그것은실제로 정답이었다. - P137
날이 밝았을때 그런 갈망과 욕망을 신중히 저울질하고 시험해 보았지만, 밝은 빛의 시험에 견디는 건 거의 없었다. 그러면나는 보통 그것들을 원래 있던 마음속 깊고 어두운 곳에 도로 밀어 넣었다. - P135
맨 먼저, 나는 정말 목사를 죽이려는 의지를 갖고 있을까? ‘의지‘란 무슨 말일까? 인간의 의지는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서로 상반된 수많은 충동들의 종합체이다. - P138
도덕은 닭에게 최면을 걸려고 닭 주위에 분필로 그은 원과 같아. 그 원을 인정하면거기에 속박되는 거야. 도덕은 남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지. 하지만 이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야! - P140
무언가를 의지력으로 행한다는 것은 선택을 의미한다. 아, 선택하기가 이리도 어렵다니!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은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이다. 아, 포기하기 또한 이리 어렵다니! - P149
우리는 행동의 흥분을 원하는 동시에 구경의 평정을 원한다. 사막의 고요를 원하는 동시에 광장의 소음을 원한다. 은둔자의 생각을 바라는 동시에 민중의 목소리가 되기 원한다. 멜로디인 동시에 화음이고자 한다. 동시에!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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