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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날엔 샴페인을
정지현 지음 / 그여자가웃는다 / 2018년 4월
평점 :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유익한 <슬픈 날엔 샴페인을>을 만났다. 와인에 대해 설명해주는 듯하지만 왠지 인생사에 대해 논하는 것 같고, 에세이 같은 느낌에 와인과 샴페인, 역사 등에 고루고루 설명해주는데 귀에 쏙쏙 들어온다.
목차만 보고 궁금증을 자아내서 책을 집어 들었다. 최근 한스 라트의 <그리고 신은 내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와 같은 신 시리즈를 읽으며 책 안에 인물들이 와인을 갈망하고 마시며 즐기는 대목을 읽으며 나 역시 어찌나 좋은 와인이 탐나던지. 꼭 좋은 와인이 아니더라도 와인을 마시는 분위기에 취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이 책의 목차를 보고, 와인에 대해 좀 배워볼까~싶어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처음부터 와인에 대한 것 자체에 거품을 확 빼준다. 와인에 대해 좀 알면 괜히 있어 보이고 교양 있어 보일 것 같은, 뭐 그런 어줍지않은 생각에 찬물을 확 끼 얻는다. 와인은 그저 음료일 뿐, 특별하지도 않고 그럴 이유도 없으며 그렇게 격식이 필요하거나 지식이 요구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절로 고개를 끄덕끄덕.... 막걸리나 소주, 맥주는 마시며, 전통과 역사, 만드는 과정, 등급을 다 알고 마셔야 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결국, 왜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는지, 와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또는 알아두면 좋은 팁들, 야간의 상식과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된다.
다른 와인에 관한 책 보다 이 책이 더 와닿는 이유는 아마 저자의 자유로운 영혼임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정보나 지식보다는 와인 한 잔이 있는 식탁에서 너무 진중하지 않은 인문학과 역사 이야기, 사랑과 사막과, 존재하지 않는 시간에 대해서, 그리고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을 읽으며 그 순간 작가의 말을 들으며 어찌 빠져들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저자 정지현은 괜히 친근감부터 느껴진다. 캘리포니아 주 나파 밸리 근처에서 살았고, 현재 한국의 여러 곳에서 와인과 테마여행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미국 서부 대륙을 가이드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 와인 및 주류 소매점을 운영하기도 했고, 사막과 오지를 여행하는 자유로운 영혼, 현실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 냄새나는 사람일 것 같았다. 나 역시 유년기를 캘리포니아 주에서 지냈고, 와이너리를 구경하고 싶어 나파 밸리 및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다양한 와이너리에 방문해서 작은 피크닉도 했었다. 나파 밸리가 가장 유명한 건 맞지만, 작은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소중한 추억을 쌓았던 옛 생각이 들어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저자는 와인을 된장국이나 콩나물국과 같은 본토 한국 음식이나 한국 문화를 많이 언급하며 비교해서 이해하기가 쉬웠고, 와인에 대한 질의응답이 가장 효과적으로 머리에 남는다. 와인 한 병의 원가, 와인병 밑은 왜 움푹 파였는지, 테루, 빈티지, 타닌의 뜻은 무엇이며, 내가 최근 가장 궁금했던, 코르크와 스크루 캡의 차이 중 어떤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한 질문 등 다양한 기본 상식 수준의 내용이 담겨 있다. 가장 유익하고 까먹을 때쯤 다시 펼쳐보기에도 좋을 것 같다.
우선 코르크와 스크루 캡 중 어떤 것이 더 나은가? 현실적으로 스크루 캡의 장점이 압도적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기능만 있고 문화가 없다'라는 점이다. 실제 와인을 오픈할 때 사람들은 '뽕'하는 소리를 기대하게 되는데 그냥 소주처럼 돌려 따면 왠지 기품이 없어 보이고 재미마저 덜하다. 하지만 코르크의 변질로 인해 와인이 오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매력 또한 떨어진다. 최근 호주에서는 거의 모든 와인병에 스크루 캡을 쓴다고 한다. 최근 구입한 엘로 테일 와인이 스크루캡인 것이 그 이유인가 보다.
와인에 대한 기본 상식과 소소한 이야기가 곁들인 <슬픈날엔 샴페인을>을 읽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나파 밸리, 다시 가보고 싶다.
어머니가 중요한지 아버지가 중요한지를 묻는 것은 우리가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천당과 지옥, 이것 아니면 저것, 좌와 우, 너와 나를 언제나 구분하고 선택하도록 교육받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어디가 남쪽이고 어디가 북쪽이겠는가? 권력이라는 버스가 오른쪽으로 쏠리면 우파가 되고 왼쪽으로 쏠리면 좌파가 되는 것이다. 천사와 악마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이성을 잃으면 악마가 되고 본성을 바로 보면 천사가 되는 것이다. 마음이 지옥 같으면 그것이 바로 지금 지옥에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갈등과 죽음을 지켜보면,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사유해보면 천국과 지옥이 어디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pg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