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허균, 서울대 가다 ㅣ 탐 철학 소설 36
김경윤 지음 / 탐 / 2018년 2월
평점 :
'서울대'란 말만 들어도 괜히 가슴이 묘해진다. 학부로 졸업한 곳은 아니지만 MBA를 그곳에서 공부해서 그런지 자부심도 있음과 동시에 나와는 안 맞는 스펙을 한 줄 넣은 것 같은 곳. 나의 자녀들이 나중에 커서 서울대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그곳. 승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그곳에 가면 왠지 비슷하게 학업에 대해 갈망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함이 들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가혹한 학업에 시달려야 하기에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공부인가를 벌써부터 학부모로써 느끼게 되는 요즘, <허균, 서울대 가다>를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김경윤의 <허균, 서울대 가다>는 청소년과 학부모, 교육자들이 꼭 읽어야 하는 필독도서라고 감히 추천한다. 김경윤 작가의 글이 너무 재치 있고 심오하기도 하면서 동기부여와 많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묵자 양주, 로봇이 되다>,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 가다>, <스피노자 퍼즐을 맞추다>를 집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 제목부터 재치가 엿보이고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허균, 서울대 가다>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다른 책들도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허균이란 인물을 위인전 형식의 글로 업적을 나열한 내용이 아니라 소설로 각색되어 탄생했다는 점이 매우 참신했다. 언급되는 인물들, 역사 속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최대한 소설 속에 녹였다.
허균이 만약 오늘날에 태어난다면 어떻게 현재 시점에 벌어진 이슈들을 바라볼까? 허균이라는 인물을 현재 시점으로 소환해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함께 본다는 점에서 매우 참신하다 생각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거리마다 촛불이 밝혔다. 2014년 12월에는 쌍용자동차가 노동자들을 대거 해고하면서 수많은 노동자가 자살을 하였다. 서울대 총학생회의 서울대 본관 점거 농성 사태 역시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허균은 이 사건들을 통해서 어떻게 성장하는가?
나 역시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이유가 사실적 사건(FACT)을 암기해서 잘난척하고픈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이 몇 년도에 어떤 대첩을 어디에서 벌였고, 나쁜 왜놈들을 무찔러서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영웅이라고만 얇게 인지하고 있던 중, <난중일기>를 읽고 가슴이 여미는 경험을 한 후, 역사를 다른 각도로 보게 된 경험이 기억이 났다. 이 책 역시 또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세상사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는데 탁월하다.
소설 허균을 읽기 전에, 허균에 대해 부록을 통해 배울 수 있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의 모든 것을 소개된다. 그의 작품과 사상, 주변 실존 인물, 허균의 생애 역시 매우 자세히 소개된다. 조선 명기로서 개성의 황진이와 더불어 유명했던 이매창과의 관계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생애의 연대기를 통해 개성이 강하고 괴짜스러운 면모를 보여준다. 결국 50세라는 젊은 나이에 역모를 꾸민다는 모함으로 인해 능지처참이 되어 말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가 남긴 업적과 사상은 고스란히 현대까지 전해내려온다.
소설 속 허균이 고등학생 시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입시만을 위해서 기계처럼 살면서 정작 자신의 삶은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떠올려 보면서, 학교 공부가 정말로 불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허균, 초중고 12년을 온전히 입시만을 향해 달려가는 청소년들이 입시에 실패하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소설 속 허균처럼 나 역시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걸,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나만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나? 우리 아이만 다른 방법으로 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나에게, 학부모인 나에게 쏟아진다. 우리 아이는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이 들까?
실제 허초희(허균의 누나)는 결혼 후 출산한 딸과 아들을 잃었다. 그때 자식을 잃은 슬픔을 시로 남겨 우리를 더욱 애달프게 하는데, 시를 읽고 울컥하게 된다.
지난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올해는 사랑스러운 아들 잃다니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비치네
소지 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 놓으니
알고말고 너희 넋이야
밤마다 서로서로 얼려 놓을 테지
아루미 아해를 가졌다 한들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면서
애끊는 피눈물에 목이 멘다
- 허초희 <아들딸 여의고서>
소설 속 허초희는 페미니스트로서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데, 요즘 센세이션을 불렀던 페미니스트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서 눈길이 간다.

책 마지막 부분에 허균에 대해 더 깊게 알아갈 수 있는 질문들이 있다. "읽고 풀기"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의 질문들을 보며 한번 더 짚고 갈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특히 함께 나누는 이야기는 논술 능력 향상에 매우 도움이 되리 것 같다. 교육혁명을 한다면 가장 시급하게 바뀌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 역시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막연히 불만만 갖지 말고 뚜렷한 주장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삶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동시에 허균이라는 인물에 대해 배우고 재구성을 하며 현재 시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책이다. 청소년, 학부모, 교육자 모두 읽으며 유익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