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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2012년에 출간된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가 2018년에 표지를 새로 하고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최근에 읽는 소설책 중 이렇게 주인공을 비호라 여기며 읽었던 적이 있던가? 란 생각을 하게 만든 비프케 로렌츠의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를 만났다. 어쩌면 비프케 로렌츠는 독자로부터 주인공을 이해하고 공감하길 바라기보단 오히려 좀 더 뒤틀어서 유쾌하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으며 슬프기만 상황을 찰리라는 인물을 통해 소개하는 걸까? 우리에게 정작 말하려는 건 무엇이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잊고 싶고 돌아가서 다시 고치고 싶은 사건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더불어, 만일~ 만약에~ 란 말을 종종 하며 살기도 한다. 만약 내가 그때 이랬더라면... 이란 상상은 누구나 한다. 나 역시 와인을 마시며 종종 신랑과 대화를 한다. 우리가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스파이더맨에서의 유명한 명언 중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이 생각이 난다. 큰 힘에는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르는데, 나의 소중한 인생에서 내리는 수많은 결정들의 책임은 내가 지어야 하는 법, 내가 내린 그 결정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나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찰리는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서른이 거의 다 되었는데 카페 겸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교는 중퇴를 했고, 돈도 없고 제대로 된 남자친구와 교재를 해본 적도 없다. 부모님에게는 좋은 딸이 되고 싶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 화려한 스펙에 번듯한 직업을 가진 동창들에 비해 한없이 초라하고 작고 한심하게 느끼는 찰리는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실현된다.
찰리라는 인물을 통해 모순된 우리의 행동을 발견한다.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찰리는 날씬해지고 첫사랑이었던 모리츠의 아내가 되어 대저택에 살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곁에는 잘 나가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고 원하는 삶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질 못하며 예전의 삶에서 알고 지낸 사람들을 찾아 헤맨다. 난 오히려 이 대목에서 찰리가 너무 이기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은 하기 싫고 뭔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일들은 사실 본인이 초래했고, 새로운 삶이 주었지만 여전히 상황에 맞게 행동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다. 다 갖고 싶어 하며 더 갖고 싶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교양 있고 품위를 지키며 하는 행동이 꼭 겉멋이 든 것이라거나 솔직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컨설팅 회사를 다니며 하는 업무가 항상 비굴하고 영업을 엄청 해서 프로젝트를 따야 하고 인맥 쌓기에 혈안이 되어 잘못된 인생을, 행복하지 않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 어찌 판정하랴.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인맥을 쌓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 꼭 진정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부분이 매우 거슬렸다. 찰리가 뒤늦게 팀을 만나게 되어 앞뒤 상황 고려 안 하고 팀의 부인 앞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모습 또한 그녀의 행동거지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생각이 될 뿐, 동정이나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냥 이 책에 등장하는 찰리가 정말 나에겐 너무 비호감이라 이야기를 읽는 내내 좀 짜증이 났다.
새로운 인생에서도 과거의 인생에서처럼 '헤픈 여자'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만족스럽게 거울 앞에 서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당당히 자신의 추구하는 인생을 살려는 행동이라기보단 찰리의 깊은 내면에는 "나 좀 봐줘요~"라는 애정결핍이 있다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모리츠와 계속 결혼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운 인생에 들어와 모리츠와 주변 사람들에게 준 피해는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책 초반에 자신이 초라하다 생각이 된다며 열거된 내용은 공감이 된다. 동창회가 있어도 나 역시 참석을 안 하기 때문이다. 다른 동기들은 다 잘 나가는데 나만 집에서 육아를 하고 있고, 몸은 퍼질 대로 퍼져있고 화장은 언제 마지막으로 했던가란 생각을 하니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는다. 화장실에서 화장품 몇 개를 꺼내들었다. 그런데 너무 오래되어 다 말라버렸고 아이섀도는 분홍색하고 하늘색(내가 이걸 대체 왜 샀을까?)밖에 없고 마스카라도 그다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pg59 나 역시 매일 화장을 하지 않는 요즘이기에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약속이 생겼을 때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마스카라의 상태를 보고 좀 우울함을 느꼈던 기억이 났었다. 하지만 마스카라는 새로 사면 되는 것이고 나의 현실에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으니 이 또한 행복한 삶이라 생각하며 하루를 또 보내게 된다.
술술 읽게 되는 책은 맞다. 주인공 찰리처럼 행복한 인생의 정의를 내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 책 속으로
나는 아무것도 끝까지 해내지 못했고 남자와도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어. 게다가 이미 몇 년 전에 대학을 그만둔 사실을 부모님한테 말할 용기조차 없어. 난 술도 마시고 담배도 너무 많이 피워. 남성 편력은 말할 것도 없고. 허벅지랑 팔에도 점점 탄력이 떨어지고 있어. 그런데 운동을 하기에는 너무 게을러.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깅을 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데,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가는 어떤 할머니한테 추월당한 후 2분 만에 그만뒀어. 균형 잡힌 영양식은 나하고는 너무 거리가 먼 얘기고 그저 정크푸드와 맥주로 연명하고 있어. pg63
찰리에게 주는 나의 조언: Stop complaining and do somthing about it!
인생은 수없이 많은 가능성으로 이루어져 있죠. 우리는 매일매일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매분 매초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립니다. 우리는 일단 어떤 결정을 내리고 나면 그에 따르는 모든 결과를 안고 살아가게 되죠. pg 123
나의 생각: 현명한 결정을 내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