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기에 책과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나에게 흥미를 준다. 책 속에 책 얘기가 들어있으면 그 형식을 떠나 일단 관심이 간다. 책을 소재로 한 카툰 역시 매력적이다. 짤막하고 간결한 그림 속에 들어있는 위트와 유머, 많은 의미에 감탄한다. 별로 힘들이지 않게 읽을 수 있지만 거기에서 얻는 가성비는 다른 형식의 책보다 훨씬 높다. 독서 중 쉬어가거나 자투리 시간에 읽기에 적당해서 좋다.

 

톰 골드의 카프카와 함께 빵을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다. 책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어 깊이가 있었고, 작가의 글이 은유적이라 그것을 생각하고 납득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작가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하기까지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작품, 작가, 독자, 서점, 출판시장, 미디어, 미래의 독서 경향에 대해 비판적이고도 현실성 있게 서술되어 있어 공감뿐만 아니라 작가의 센스에 슬며시 웃기도 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작가 소개에서 톰 골드의 카툰은 세련되고 유머러스한 풍자가 녹아들어전 세계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고 했는데 정말 맞는 표현이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 연재된 카툰으로 구성된 이 책의 글과 그림은 모두 다 나름의 의미가 있어 버릴 것이 없었다.


나의 책장도 읽은 책보다는 읽을 작정이며, 시간 날 때 읽으려고 아껴 둔 책이 더 많다.


한 번씩 번역된 책을 읽을 때 책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작가는 주위의 모든 것을 깨부수고 싶겠지....


AI에 동물의 뇌를 직접 심는다는 소식도 들린다.(꼭 그래야만 할까?) 언젠가는 인간의 뇌도 심을 것이다. 미래엔 이북 리더기에 이런 헌책 모드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상상한 기발한 생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실제가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어쨌든 어떻게 이런 멋진 생각을 해 낼 수 있는지! 작가는 언제나 위대하다.


책만으로 통했던 시대가 지났다. 찰스 디킨스가 살아 돌아오더라도 책만으로는 힘들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와 마르셀 프루스트는 언제든지 불쑥 나온다. 톰 골드 작가는 특히 제임스 조이스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이북 리더기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책!


카프카와 함께 빵을아이스너상최고의 유머 부문을 수상했다고 했는데 이 책에서 이 부분이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레이스님께서

 

허무주의적 실존주의.

죽음이 가장 실존적임.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도무지 없다고 생각.

차라리 불행을 느끼는 순간에는 존재느낌을 갖는다는,

그래서 삶이나 죽음이나 무에 무를 더한다.

그러므로 생을 마치는 순간만큼은 실존을 극단적으로 경험한다.

카프카가 벌레로 변신한 것도 그런 의미라고 해석하죠.“

라고 철학적으로 해석해주셨다. 역시 대단하신 분이다

 

단순히 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고 감동하면 그만이지만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는 사람의 인생은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힘들게 글을 쓰고 어렵게 책을 출판하고,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그것으로 돈을 벌며, 만족하고 실패하고, 다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는 작가의 삶에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냐고 누군가는 얘기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뭔가를 창작해내는 고통만큼 힘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도끼로 머리를 내려치는듯한 카프카적 신선함과 독창성으로 글을 쓰고 싶지만 그게 어디 쉽게 되는가? 끊임없는 창작의 고통은 죽어서야 끝날지도 모른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작년 에에올이 처음 개봉되었을 때 보고 싶었지만 기회를 놓치고, 올해 아카데미가 7개 부문에서 이 영화에 상을 줬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보러 갔다. 관객들의 입소문을 탔고, 아카데미에 많이 노미네이트되어 영화는 재개봉 되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양자경의 수상소감도 좋았고 가족을 모티프로 한 영화라고 해서 기대되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이 영화를 수입, 배급한 워터홀컴퍼니의 대표인 주 현씨가 <세상의 모든 에블린에게>라는 에세이를 연재중이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는 왁자지껄하고, 횡설수설하며, 엉뚱하고, 정신없고, 이상하고, 북적이고, 흔들리고, 괴랄하고, 불안하고, 비약하고, 휘청대는 영화였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이미 우리가 다 아는 것이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인데, 이런 내용을 2시간이 넘는 영상으로 표현하기위해 메타버스 기법을 동원하여 관객의 혼을 빼놓는다. 그렇지만 보통사람들의 메타버스답게 버스-점프<평소에 하지 않을 이상 행동들(신발을 양쪽 바꿔 신는다, 일부러 종이에 손을 벤다 등)을 통해 다른 우주의 나와 연결되어 그의 기술을 빌려오는 것>’로 시공간을 넘나든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는 사람과 미국으로 건너 와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은 어느새 투사가 되어있다. 식탁위에는 영수증이 쌓여있고 세무조사를 받기위해 그것을 정리해야하지만 손님들을 응대해야하고 몸이 불편해 미국으로 모셔 온 아버지의 식사를 준비해야한다. 외동딸인 조이는 동성애자이고 착하기만 한 남편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에블린에게 뭔가를 계속 얘기하고 싶어 하지만 에블린은 그들의 말을 들어줄 여력이 없다......

 

조조영화 관람시간에 카페라떼 한 잔을 들고 오랜만에 혼자 영화를 보러갔다. 얼마 되지 않은 관람객중에 혼자 영화 보러 온 사람이 대다수였다. 영화가 시작되고 정신없는 스토리를 따라가느라 계속 집중해야했지만 나에겐 투사 에블린만 각인되었다. 주 현 대표의 에세이 제목인 <세상의 모든 에블린에게>의 제목처럼 내가 꼭 에블린같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는 에블린에게 우주의 곳곳에서 다르게 살고 있는 에블린들을 보여주며 지금과는 다르게 살라고 설득하며 에블린을 현실에 내려놓는다.

 

동그란 베이글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가두어버리는 무기력증과 허무주의에 빠지기 직전의 딸을 구하고, 언제나 다정하게살라는 철학적인 좋은 의미의 내용이었지만 결국 에블린은 자신이 운영하는 세탁소 안에 서 있게 된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고, 그 누구든 현명하게 이 세상을 잘 살려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맞는데 결론은 다시 세탁소로, 엄마, 아내, 딸로 돌아 온 에블린에게 내가 본 것은 답답함과 먹먹함이었다. MZ세대가 특히 이 영화를 좋아했다고 했는데 그들이 본 것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작가, 엄마, 아버지, 직장인, 자영업자 등 자신이 선택했지만 전쟁같이 마주쳐야할 현실에서 다정하게, 긍정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산다는 건 너무나 중요하지만 사실 힘들기도 하다. 바라지 않았지만 어느새 투사가 되어있는 자신이 타인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그리고 언제나 현실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고 현실은 우리를 배반하기를 밥 먹듯이 한다. 누군가에게 어떤 이름으로 불리며 산다는 것, 그 이름에 걸맞게 일상을 기계적으로 나를 돌리며 살다보면 누구나 나사 하나를 빠뜨린 채 살게 된다. 지금의 현실이 무수한 과거의 선택과 결정의 결과라고 하지만 사실 그 순간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한번쯤은 무기력과 허무주의에 빠져도 되지 않을까!

오늘만큼은 최선을 다해, 다정하게 살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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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3-27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세상의모든에블린들 한주잘열어제치기를요 월욜 잘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3-03-27 13:33   좋아요 1 | URL
세상의 모든 에블린을 위하여!
한 주의 시작, 서곡님에게도 행복하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 바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3-03-27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대 이상이어서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낭중에 헌책방에 나오면
사서 쟁여 두려구요 :>

압축과 정제의 미라고나
할까요. 이 정도 수준의
콘텐츠를 생산하려면 정말
얼마 만큼의 내공이 필요
할 지 상상이 가지 않더군요.

페넬로페 2023-03-27 14:20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 내공이 엄청 나더라고요. 철학적이고도 유머가 위트가 넘쳐 감탄하며 읽었어요^^

희선 2023-03-28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I에 동물 뇌를 넣는다는 말이 있기도 하군요 그런 건 안 했으면 좋겠네요 정말 그러다 보면 사람 뇌까지 넣겠네요 사람이 뇌를 AI로 옮겨서 영원히 살려고 하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은데, 실제 그런 일 있을 수 있을지도...

여러 곳에 사는 자신을 보고 다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쉽지 않겠지요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전처럼 살겠군요


희선

페넬로페 2023-03-28 06:45   좋아요 1 | URL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Ai가 사람을 지배한다는, 영화에서 나오는 얘기가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과거에 우리가 수많은 결정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그런 모습들이 우주의 다른곳에 있기도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 주기도 해요^^

2023-03-28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8 0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8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0 0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3-03-29 17: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 특히 소설가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요. 오늘 단편소설들을 해설해 놓은 걸 읽었는데
소설 창작은 역시나 어려운 것 같아요.
과학의 발전으로 AI가 지배하는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오디오북과 이북의 편리함! 이런 종류의 발전은 환영하지만 말이죠.^^

페넬로페 2023-03-29 23:12   좋아요 1 | URL
저도 소설가를 너무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인간에게 주어진 소재가 비슷한데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는것을 보면 그만큼 개인의 경험과 느낌들이 다 다른 것 같습니다^^
이북이나 오디오북이 생각보다 좋더라고요^^

서니데이 2023-03-31 17: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얼마전 아카데미에서 양자경님의 여우주연상 소식 들고 좋았던 기억이 나요.
이 영화 작년에 우리 나라에서도 개봉했었나요. 잘 몰랐습니다.
전에도 화제가 되긴 했지만, 요즘엔 넷플릭스 등 OTT가 있어서요.^^;
오늘은 3월 마지막날이고, 내일부터 4월이예요.
좋은 일들 가득한 한 달 되세요.^^

페넬로페 2023-04-01 08:31   좋아요 2 | URL
작년에 이 영화를 개봉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재개봉했어요. 아카데미 수상 소식에 저도 보고 왔어요^^
서니데이님!
벌써 4월이 되었어요.
세월이 빨리 간다고 생각되지만 이제 그런 말 하지 않고 그저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하려고 해요^^
서니데이님에게 행운이 가득한 4월이 되었음 좋겠어요**

그레이스 2023-04-05 0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희선 2023-04-08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또 축하합니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페넬로페 2023-04-25 21:59   좋아요 0 | URL
희선님!
감사합니다♡♡♡

2023-04-21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5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케냐 야라 AA TOP #5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평점 :
품절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가 커짐에 봄이 왔다는 걸 실감한다. 케냐 야라 커피의 고소한 맛의 여운과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다정한 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은은하고 묵직한 커피의 잔향과 아이들의 경쾌함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이런 게 인생이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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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3-22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의 그 겨울에 쓰셨던 커피 명백자평 2탄 같아요!^^
이건 봄 시리즈편이군요!

페넬로페 2023-03-22 17:24   좋아요 1 | URL
커피 마시고 있는데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소리가 넘 정겹게 들렸어요.
추운 날에는 안 나오더니 날씨 조금 따뜻해지니 냉큼 나와 노는 녀석들이 넘 귀여워요^^

새파랑 2023-03-22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의 장인 독서의 장인인 페넬로페님~!!

페넬로페 2023-03-22 23:02   좋아요 1 | URL
뭔 장인씩이나요 ㅎㅎ
새파랑님!
잘 지내시지요? 반가워요.
일 때문에만 바쁘시고 아프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2023-03-23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4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만 읽어도 된다 - 50에 꿈을 찾고 이루는 습관 좋은 습관 시리즈 23
조혜경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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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은 재미있는 것이 많고 볼 것이 넘친다. 직접 어디를 가거나 뭔가를 하지 않아도 몇 시간씩 앉아 영상을 통해 알지 못했던 다양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런 기발하고도 변화무쌍한 곳에서 책만 붙들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다. ‘정말 책만 읽어도 괜찮을까?’라는 의심과 그래도 책 만 한 건 없어라는 자기 합리화를 번갈아가며 한다. 이런 시점에서 알라딘 서재에서 다양하게 책을 읽고 있는 분들을 알게 되고, 책만 읽어도 된다라고 호기롭게 외치는 책을 만나면 반갑고 든든하다. 외동아이를 키우며 외동이라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외동아이가 성공한다라는 책을 발견할 때의 기쁨과 같은 것이다.

 

조혜경의 책만 읽어도 된다는 책을 통해 한 사람이 성장하고,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책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와 저자가 경험한 독서의 방법도 다양하게 서술되어 있다. 책을 읽고 어렵게 글만 조금 남기는 나 같은 독서가와는 달리 조혜경의 독서는 미래를 설계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게 한다. 블로그를 통해 단기간에 많은 서평을 쓰고 일본어를 공부해 번역가가 되기로 한 결심은 집중과 혹독한 자기 관리로 이어진다.

 

책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작가와 나의 경험이 만나는 부분이 있다. 이 책에서 나쓰메 소세키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언급되어 있어 좋았다. 리뷰, 후기, 서평, 독후감의 차이를 생각하며 글을 쓰라고 했는데 그런 것을 구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글쓰기를 하는 내가 생각해 볼 문제이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때 질문지를 만들어 보는 방식도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건강하게 책을 읽기 위해 108배 운동을 한다. 아주 오래 전 엄마를 따라 절에 갔을 때 108배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것을 해 본 사람만이 108배가 엄청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기 위해 건강을 챙겨야한다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책만 있으면 언제까지나 독서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몇 년 전 목디스크로 허리까지 아프고 서 있는 것조차도 힘들 때 건강하지 않으면 절대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걷기를 좋아해 혼자 많이 걷는다. 길 가다가 카페를 만나면 커피를 마시고 싶어 들어가고 싶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커피만 마시자고 카페에 들어가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산책하고 커피 마시면서 책도 읽어야 되니까. 시간 여유가 많은 날은 산책길에 책을 꼭 챙긴다.

 

얼마 전 공원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여자 둘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는데 한 사람이 거의 일방적으로 말하고 상대방은 그 말에 수긍만 해주고 있었다. 그 사람은 자기 시댁에 대한 불만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시댁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보기 싫다고 했다. 그녀는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했다.

 

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내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얘기를 경청하는 것이고 그것을 훈련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난 옆 테이블의 여자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같이 온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 별로 좋지도 않은 자신의 억울함과 신세한탄을 위해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이 나에게 좋은 것을 많이 주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일방적이지 않게 누군가의 말을 먼저 들어줄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먼저 물어봐주고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멋있는 내가 되기 위해 책 만 한 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책만 읽어도 된다의 행간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의미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어 즐거웠다.

 

[그렇다. 나는 좋아하는 책 읽기와 공부로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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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3-03-19 22: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과 함께 공감할 수 았는 부분이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정말 저도 책을 좋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 많이 합니다. 앞으로도 책과 함께 행복하고 성장하는 시간 보내기로 해요.^^

페넬로페 2023-03-19 22:53   좋아요 3 | URL
우리가 책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는 사람들이라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모나리자님!
챽 내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두 번째 책 출간으로~^
가즈아~~~~~

서니데이 2023-03-20 22: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모나리자님의 책 읽으셨군요.
저도 얼마전에 책을 보내주셔서 읽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건 좋은 일 같아요.
시작이 어렵지만 하루라도 먼저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잘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2023-03-23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3-03-21 17: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라 모나리자님처럼 꿈을 가지고 정진하는 분을 존경해요~~
독서에 대한 여러 생각도 했습니다^^

희선 2023-03-23 0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재미있는 게 많아도 책이 가장 재미있죠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에 좋고 여러 가지 생각하게도 하니... 책을 보고 자기 세계를 넓혀가면 좋겠지만, 저는 그러지 못하고 더 갇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것도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갖고 보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도 했는데 지금은 또 그냥 봅니다 책만 읽어도 된다 좋은 말이에요


희선

페넬로페 2023-03-23 19:50   좋아요 2 | URL
지금 살고 있는 환경에서 변화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저도 책이 좋아요. 영화와 음악도 좋아하고요^^
저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지는 못하고 있어요. 좀 더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책만 읽어도 된다‘라는 말이 위로를 줬어요^^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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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알지 못했던 작가를, 자전적 에세이로 먼저 만난다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는 선택이다. 대책 없이 사랑고백을 먼저 하는 것과 같은 건지도 모른다. 다행히 고백에 성공하여 관계가 좋게 지속될 수도 있지만 인간적 결함에 실망해 뒤돌아보지도 않고 도망칠 수도 있다.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은 고백자를 받아들이되 천천히, 냉정하게 접근하게 만든다. 현대 도시의 상징인 뉴욕 곳곳을 엄마와 딸이 산책하며 보여주는 대립, 사랑, 감정에는 국적과 인종에 관계없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 책표지의 사진에서 누구나 그들이 모녀관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듯이 그들에게 뿜어지는 맹렬한 애증은 세상 모든 딸과 엄마에게 있는 것이고,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다양성도 존재한다.

 

그들은 산책과 동시에 외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의 거주지로 이루어진 조각보 같은 곳(p.6)인 뉴욕의 브롱크스에서 오래 산, 과거의 삶도 보여준다. 연대기적 순서가 아닌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연결이 부드럽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것은 작가의 치밀한 설계에 의해 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엄마와 딸이 중심이 되는 그들의 얘기에 여자와 결혼이라는 관점이 연결된다. 그것이 나를 끌어당기고, 나 역시 그들의 걷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서 뉴욕으로 이민 온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엄마, 브롱크스에 살던 이웃 여자들은 화자의 성장과정에서 뼈대를 이루어주는 것들이다. 남들보다 금욕적이며 당당하게 살았던 엄마이지만, 결혼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관습의 굴레에는 벗어나지 못한다. 딸이 공부하기를 원하지만 거기서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편의 죽음으로 엄마는 나머지 삶을 슬픔과 우울로 도배해버린다. 그 우울의 증상들은 화자의 모든 것에 영향을 주며, 끝까지 끈끈하게 붙어있다.

 

[우린 둘 다 어떤 면에서 자질 미달이라는 것을, 늘 하던 대로 살다가 우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만다. 우린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자기만의 세상에서 고립된 채 살아 온 사람들, 평생 서로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해 닮아버린 두 여자다.......

가족의 삶이라는 것 모두 해석이 불가능한 세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p.72]

 

엄마가 집안에 드리운 무거움은 딸의 삶에 부정적이면서도 진취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결혼은 그녀에게 관습적 관계라는 어쩔 수 없는 식상함과 무기력을, 그 후의 남자들은 육체적 쾌락만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자기연민과 공허감은 언제나 화자와 같이 한다. 그렇지만 여섯 살 이후부터 입을 꾹 다물고 책에만 파묻혀 살아온 문학소녀이고 시티칼리지를 해방구(p.163)'라고 생각한 그녀에겐 똑같이 남편을 잃은 이웃 여자 네티가 그려준 프레임에 갇힐 생각은 없다. 자신 안에 직사각형의 공간을 만들고 그것을 넓혀간다. 그것은 불행과 행복 사이에서 쪼그라들고 확장되는 현상이 수없이 반복되지만,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 된다.

 

남편을 잃은 여자의 모든 것은 당사자가 되지 않고서는 절대 알지 못한다. 거기에는 슬픔과 불안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실로 인한 우울과 무기력은 자신을 가두고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게 한다. 엄마가 느끼는 그 어둠은 자식에게 전달되고 그것은 고스란히 그들의 나머지 삶을 지배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것이 엄마와 딸이지만 그들도 언제나 상호관계속에서 서로를 알 뿐이다. 엄마는 딸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기를 원하고 딸은 엄마로 인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평행선은 징글징글한 애착을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모녀는 평생 뉴욕의 거리를 언제나 같이 산책한다. 그들의 산책은 위태롭다. 날이 선 상태에서 서로를 공격하며, 계속 상처를 받는다. 나는 그들을 마음 졸이며 바라본다. 언제쯤 그들에게 평화와 진정한 위로가 있을지를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간다. 세월이 흐른다. 두 사람은 늙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오래된 친구가 된다. 여전히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이 날 위해 해 줄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초조해 하면서도(p.48)' 딸의 직사각형 공간을 침범할 수 없다는 지혜를 얻는다. 끝까지 되받아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엄마라는 입장에서 벗어나 수긍하고 이해해주려는 한 인간으로 남는다.

 

나와 딸아이도 비비언 고닉의 모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싸우면서도 항상 모든 것을 같이 한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어딘가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서 딸아이와 나는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와 딸아이의 그런 모습을 남편은 불편해한다. 작은 것으로 큰 갈등을 일으킬까봐 언제나 노심초사하며 중간에서 막아보려고 애쓴다. 그날 딸아이와 나는 그런 남편의 노력에도 차 안에서 끝까지 말다툼을 멈추지 않았다. 남편의 일 때문에 우리는 중간에서 차에서 내려야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딸아이와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잡고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신호등에 멈춰서 우리를 위태롭게 바라보던 남편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우리를 보며 엄청 기함했었다. 그렇게 싸우던 사람들이 금방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반감까지 느꼈다고 했다. 딸과 엄마사이에는 이렇게 같이 사는 사람조차 알지 못하는 깊은 것이 존재한다. ‘사나운 애착은 호들갑스럽고, 고개를 내젓게 하지만 그 안에 사랑과 여성만의 연대가 촘촘하게 들어있다.

 

좋은 책이란 그들의 얘기에서 나의 기억과 추억을 소환하고 그것을 객관화시켜 줄 수 있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준다. 이 책은 시간이 지나도 한 번씩 펼쳐 보게 될 것 같다. 저자의 다른 책에도 관심이 간다. 나의 대책 없는 사랑고백이 성공했다는 확신이 든다.

 

[엄마를 놓아주지 않는 저 끈질긴 삶이라는 혼란.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다. 우리는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 아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 바라보는 두 여자다. 엄마는 젊어 보이지도 늙어 보이지도 않고 그저 당신이 목도하고 있는 바, 그 혹독한 진실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엄마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나도 모른다.

-p.3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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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18 0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속 엄마와 딸을 보면서 페넬로페 님은 따님하고 자신을 생각하셨군요 엄마와 딸 사이는 하나만 있지 않겠지요 사이가 좋은 사람도 있고 그저 그런 사람도 있고 사이가 안 좋은 사람도 있는...


희선

페넬로페 2023-03-18 10:29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저에게 딸이 있으니 이 글을 읽으며 연관이 되더라고요. 부모 자식 사이가 좋았다가 나쁘다를 반복하니 그 과정에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어요^^

서곡 2023-03-18 0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 ... 늘 하던 대로 살다가 우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만다 / 인용하신 부분으로부터 되짚어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3-03-18 10:25   좋아요 2 | URL
이런 문장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비비언 고닉 작가는 그런 통찰을 문장으로 잘 표현하더라고요. 역시 작가들은 남다르다는걸 다시 깨달았어요 ㅎㅎ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3-18 17: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엄마와 딸 사이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로 표현한다 한들 이해되어지지 않는 그 무언가의 관계가 있죠!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리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페넬로페 2023-03-18 19:57   좋아요 3 | URL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엄마와 딸의 스토리는 무궁무진하고 그 어떤 것이든 공감할 수 있어 좋게 읽었어요
그 관계들도 참 이해가 가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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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여행은 일상이지만, 어떤이에게는 언젠가는 가야 할 버킷리스트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든 가장 중심에 있는 곳이 ‘파리‘일 것이다. 이 책은 파리에 대한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고 번잡하지 않게 잘 정리되어 있다.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실 다 둘러 볼 시간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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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3-17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코시국 지나면서 답답함이 쌓였는지 여행가고 싶어지네요 휴우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3-03-18 00:58   좋아요 1 | URL
세상은 넓고 갈 데도 많은데 막상 가려고 하면 많은 제약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면은 좋구요.
서곡님!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