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미술관 - 서양미술, 숨은 이야기 찾기
최연욱 지음 / 생각정거장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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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서양미술, 숨은 이야기 찾기

  저자 - 최연욱

 

 



 

 

 

  사람의 심리란 묘해서 하지 말라면 하고 싶고, 말하지 말라면 더 말하고 싶으며, 알지 말라고 하면 기를 쓰고 알아내고 싶어진다. 그러기에 뒷담화가 유행하고 소문이 퍼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정사 正史보다 야사 野史가 더 재미있는 것도 어쩌면 그런 영향일 수도 있고 말이다.

 


  이 책은 서양 미술에 얽힌 비밀을 몰래 얘기하고 있다. 물론 어떤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더 이상 비밀이라고 하기 어려운 예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것들은 비밀이라고 해도 좋을 이야기들이었다.

 


  천재라 불린 화가가 앓았던 여러 질병이라든지 그 당시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던 술의 위험한 부작용은 안타깝기만 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저가의 술을 마셔야 했는데, 그 술이 화가들에게 악영향을 줬다니……. 그때나 요즘이나 돈이 문제다. 게다가 고흐의 질병 목록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병을 줄줄이 달고 살아 움직였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반면에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 속에 숨겨두었던 암호에 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특히 페테르 브뤼헐이라는 화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의 거의 모든 그림 한구석에는 반드시 용변을 보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아니 왜 그런 그림을? 저자의 설명을 읽고 그림을 찬찬히 찾아보니 진짜로 있었다. 어떤 그림은 심지어 설사까지 하고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화가이기에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예술가들의 연애 이야기는 그야말로 막장 중의 막장만 골라 수록한 느낌이다. 특히 마네 집안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예전에 ‘고양이네 박물관’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마네 동생 부부의 외동딸인 줄리 마네가 주인공이었다. 이 책에서도 그 소녀가 언급되긴 하는데,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소녀의 엄마와 시아주버니 모네의 불륜을 알았기 때문일까?

 


  그 외에 자신의 작품으로 소심한 앙갚음을 한 예술가들의 이야기 역시 흥미 있었다. 미켈란젤로와 추기경의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고흐의 그림을 성경적으로 해석한다거나 디에고 리베라가 록펠러에게 자신의 작품을 훼손한 것에 대해 어떻게 복수했는지에 대한 일화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미술관에 가면 느낌이 색다를 것 같다. 지인이나 가족들과 함께 읽고 전시회를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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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1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퍽 귀여운 심술이네요!^^
 
맹독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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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Strong Poison, 1930

  작가 - 도로시 세이어즈

 

 

 

 

 

 

 

  뒤표지를 보면 '추리소설 사상 가장 지적인 연인 피터 경과 해리엇의 첫 만남'이라고 적혀있다. 오오, 지적 커플이라니! 멋지겠다! 사건을 두고 자기가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이 해결하는 건가? 지적인 여자가 나오는 추리 소설은 별로 본 적이 없기에, 무척 기대가 되었다.

 

 

  추리소설 작가인 '해리엇 베인'은 전 남자친구인 '필립 보이스'를 독살했다는 혐의로 체포된다. 법정에서 그녀를 본 '피터 윔지'는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무죄를 증명하겠노라 결심한다. 하지만 모든 정황증거는 그녀에게 불리하기만 하다. 과연 필립 보이스를 죽인 것은 누구인가?

 

 

  내용 요약을 보면 무척 위태로운 상황이다. 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해리엇은 사형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유리한 증거는 하나도 없고, 모든 게 다 불리하기만 하다. 당연히 그녀를 변호하는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유죄를 확신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피터 윔지가 누구인가? 형이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도 유쾌발랄함을 잃지 않은 남자이다. 해리엇을 면회 갔을 때, 그는 마치 이 꽃밭에서 저 꽃밭으로 날아가는 나비처럼 팔랑거렸다. 혹시 그녀를 격려하기 위해서였을까? 내가 당신의 무죄를 확신하니까 다 잘 될 거라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래, 여기까지는 원래 이 사람이 그런 성격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리엇의 반응을 보면서 '헐!'하다가 '아…….'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자기가 안 했으니까 밝혀질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인지 아니면 이미 포기한 것인지, 그녀 역시 피터의 팔랑거림에 호응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두 사람은, 해리엇의 사건을 두고 소설로 만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토론을 할 정도였다. 아, 이래서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나왔구나. 역시 옛 말 틀린 게 하나 없었다.

 

 

  분명히 사건은 심각하고 해리엇이 처한 상황은 더없이 불리한데, 전반적인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피터가 단서를 찾아 사교 클럽에 갔을 때도, 용의자의 사무실에 스파이를 보낼 때도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아! 용의자 사무실에 비서로 위장 취업한 여자가 나오는 부분은 좀 긴장되었다. 혹시 들키지 않을까, 누군가 그녀의 정체를 눈치 채지 않을까, 모두가 퇴근한 빈 사무실을 뒤지다가 들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긴 했다. 하지만 정작 해리엇이나 피터가 등장할 때는 그냥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남자는 사랑에 빠지면 애가 된다는데, 그래서 피터가 그렇게 유치하게 행동한 걸까? 하긴 그는 자기 입으로 자신은 진지하면 안 되는 사람으로, 익살꾼 역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면 더 좋을 텐데…….

 

 

  지적인 연인이라고 하지만, 어쩐지 수다스러운 커플 같았다. 여자가 감옥에 있다는 사실만 빼면, 그냥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유머가 풍부한 커플의 대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책에서 피터가 족발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고 나오는데, 영국도 족발을 먹는구나. 어떻게 만든 요리인지 궁금했다. 추리 소설을 읽어도 먹는 것에 더 관심을 보이다니. 이건 내가 족발을 먹고 싶어서 그러는 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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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탐구 생활 박람강기 프로젝트 6
엘러리 퀸 지음, 홍지로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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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In the Queens' Parlor and Other Leaves from the Editors' Notebook, 1957

  저자 - 엘러리 퀸

 

 




 

 

  역자 후기에도 나와 있지만, 원제가 ‘Queens' Parlor’ 그러니까 ‘퀸의 응접실’이다. 그걸 생각하고 책을 읽으면, ‘엘러리 퀸’과 다른 추리 소설 작가들 특히 ‘딕슨 카’와 함께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당대의 추리 소설 작가들이 모여서 각자 생각해온 트릭이라든지, 자신이 생각하는 명 소설 또는 새로 나온 작품에 대해 얘기하다니…….

 

 

  아, 옆에서 보기만 해도 멋질 것 같다. 열혈 방청객 모드로 열심히 박수치고 ‘오오~’라든지 ‘아하!’하는 추임새 넣을 수 있는데……. 하지만 여기 나오는 작가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살아생전에 그런 일을 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죽는 건 무섭지만, 죽어서 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아니 잠깐. 죽어서도 만난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냥 책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퀸의 응접실에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옆에 앉아서 그가 들려주는 탐정 소설과 작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담배는 안 피니까 거절하고, 차나 술 한 잔을 곁들이면 더 없이 좋다.

 

 

  지난번에 읽은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Queen's Quorum: A History of Detective-Crime Short Story’가 탐정 소설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면, 이 책은 소설과 작가를 주로 얘기하고 있다. 퀸과 친구 작가들이 각자 선정한 소설 목록이라든지, 트릭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 작가가 작품의 소재를 어떻게 얻고 그것을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지에 대한 얘기 등등이 들어있다. 퀸의 학구열은 너무도 왕성해서 심지어 작가 증정본에 적힌 문장을 읽고 작가와 증정 받은 사람의 관계를 연구할 정도였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헐?’하는 대목을 발견했다. 퀸이 탐정인 엘러리를 독신으로 남기겠다고 말한 것이다. 어째서? ‘로마 모자 미스터리 The Roman Hat Mystery, 1929’에서 분명히 엘러리는 은퇴한 아버지, 부인 그리고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고 나왔었는데? 게다가 비서인 ‘니키’라는 사람에 대한 언급도 나오는데, 아직까지 내가 읽은 시리즈에서는 본 적이 없다. 아직 나오지 않은 작품에 등장하는 모양이다. 갑자기 포와로의 유능하고 개성 넘치는 비서 ‘레몬’양이 떠오르면서 퀸의 니키양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언제쯤 그녀를 볼 수 있을까?

 

 

  ‘코넬 울리치’라는 작가가 있다. 그의 다른 필명은 ‘윌리엄 아이리시’인데, 퀸의 설명이 너무 웃겼다. 작가 약력에 윌리엄 아이리시는 화,목,토에 기혼이라고 적혀있고, 코넬 울리치는 월,수,금에 기혼이라고 되어있단다. 그러면 일요일은? 뭔가 음모가 떠올랐지만, 진상을 알 길은 없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미 다 고인이 되어버렸다. 분신사바를 하면 되려나?

 

 

  이 책에서 퀸은 탐정 소설의 정수를 한 문장으로 정의했다. ‘있음직하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탐정의 역할이니까. 그 과정에서 독자는 ‘어머어머’를 연발하면서 뒤통수도 한 번 맞고, 자신의 센스 없음을 한탄하고 그러는 것이다. 그게 탐정 소설의 묘미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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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이 너무 많다 귀족 탐정 피터 윔지 2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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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Clouds of Witness, 192

  작가 - 도로시 세이어즈

 

 




 

 

  피터 윔지 경이 등장하는 두 번째 이야기다. 지친 심신을 쉬게 하려고 여행을 떠난 피터에게 놀란 소식이 전해진다. 그의 형인 덴버 공작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피해자는 여동생 메리의 약혼자인 캐스카트! 영국으로 돌아온 피터는 충실한 조수이자 하인인 번터와 함께 수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사건이 있던 날 밤에 무엇을 했는지 절대로 말하지 않는 덴버 공작 때문에 모든 상황은 불리하게만 돌아간다. 과연 캐스카트를 죽인 것은 덴버 공작인가? 그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마을 주민인 그림소프는 왜 그렇게 부인을 의심하는 걸까? 메리는 왜 아무도 만나려하지 않는 걸까? 그 날 밤 덴버 공작은 누굴 만난 걸까? 죽은 캐스카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가? 급기야 피터는 누군가의 습격까지 받는데…….

 

 

  전편과 달리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이나 풍부한 이야기였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등장하는 사람마다 숨겨둔 사연들이 하나둘씩은 꼭 있었다. 하지만 비밀이란 차곡차곡 쌓아갈수록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뭔가가 덧붙여져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기 마련이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그랬다. 각자 숨기고 싶은 것들을 꽁꽁 싸매는 바람에, 사람들의 각색과 오해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내고 말았다.

 

 

  어차피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덴버 공작이 진범이 아니라고 알아차릴 수 있다. 주인공이 존경하는 사람이 범인이 되는 설정은 흔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진범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형이 살인 혐의를 받고 감옥에 있는데, 피터는 여전히 유쾌하고 수다스럽게 실마리를 추적한다. 형이 무죄라는 걸 확신하고 있기에 그럴 수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거 너무 발랄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만약 내가 경찰이었다면, 형을 죽이고 자기가 공작이 되기 위해 피터가 함정을 파놓은 건 아닐까하는 의심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의 알리바이는 너무도 명확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조바심이 났다. 덴버 공작은 동생의 약혼자를 죽였다는 혐의보다 더 중요한 게 도대체 뭐기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걸까? 무슨 국가 기밀이라도 되는 걸까? 게다가 그 날 밤에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것은 메리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녀의 옷에 피가 묻어있는 걸까? 그녀 역시 방에 틀어박혀서 아무와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왜 일까?

 

 

  하지만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진지하고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그 와중에 파커는 어쩐지 메리에게 호감을 가진 것 같았다. 그걸 눈치 챈 피터는 자네라면 감지덕지지라고 말하면서 신랄한 어조로 동생을 깐다. 음, 이게 바로 그 ‘현실적인 오누이?’ 드라마나 만화, 소설에서나 볼 법한 서로를 아끼고 꿀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 서로 디스하고 까기 바쁜 그런 오누이 관계라는 건가?

 

 

  피터 경의 단호한 여동생 평가를 보면 “나는 누구든 간에 내 여동생하고 왜 결혼하고 싶어 하는지 이유를 당최 모르겠지만~경찰관이면 감지덕지일걸.~걔는 남자 취향이 영 형편없지 않나. 그러니 자네처럼 정말 괜찮은 남자를 알아볼까 모르겠어.” -p.341 저 대목을 읽으면서 그만 웃어버렸다. 와, 동생이 들으면 진짜 기분 나쁘겠는 걸? 아마 피터는 여자에겐 관심도 없지 않냐고 쏘아붙일 것 같다. 하지만 3권 표지를 보니 그에게도 여자가 생기는 모양이다.

 

 

  아, 크리스티 소설에서도 1920년대 작품에서 소비에트 클럽이니 사회주의 같은 것을 따르는 젊은이들이 등장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랬다. 다만 크리스티 소설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었는데, 여기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건의 해결은 좀 싱거웠다. 그런 이유였다니, 허무하다고 해야 할까? 옛날 사람들은 낭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사연에 집중하다보니 사건이 묻혀버렸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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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Storage 24 (에일리언 인베이젼) (2012)(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Magnolia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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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Storage 24, 2012

  감독 - 요하네스 로버츠

  출연 - 노엘 클라크, 안토니아 캠벨-휴즈, 로라 하독, 콜린 오도너휴





  제목이 스포일러를 하고 있는 영국 영화다. 원제인 ‘Storage 24’는 사건이 벌어지는 창고의 번호이다.


  군 화물기가 추락했다는 뉴스 속보와 함께 심각한 얼굴을 한 두 남자가 차를 타고 간다. 여자친구인 ‘셸리’에게서 이유도 모른 채 이별을 통보받은 ‘찰리’. 그래서 그는 친구인 ‘마크’와 함께, 맡겨뒀던 짐을 챙기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창고 24로 향한다. 그곳에서 ‘크리스’, ‘니키’와 함께 짐정리를 하던 셸리를 만나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대답을 회피하는 셸리. 화가 난 찰리는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정전과 함께 창고 문이 잠겨버린다. 그와 동시에 창고 직원이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살해당하고, 찰리와 친구들 역시 공격당하는데…….


  영화는 밀폐된 공간에서 공격하는 괴생명체와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는 인간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뉴스에서 극비의 수송물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만, 그 형체를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지만, 한국 제목이 대놓고 얘기해준다. 그게 아니었다면 군에서 비밀리에 벌인 실험 결과일까라는 상상도 할 법했는데, 아쉽기만 하다. 물론 영화 마지막 부분에 가면 괴생명체의 정체가 확실히 드러나지만, 그 때까지 뭘까뭘까라고 상상하는 재미는 확실히 줄었다. 제목을 자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뭐……. 다른 제목이 뭐가 좋을까 생각해봤는데, 그나마 지금 제목이 제일 나았다. ‘창고의 괴수’나 ‘죽음의 창고’같은 건 너무 쌍팔년도 느낌이 나잖아? 하아, 내 빈약한 상상력이 안타깝다.


  영화를 보면서 화가 났다. 영화 ‘더 플라이 The Fly, 1986’의 거대 파리를 연상시키는 괴생명체의 비주얼때문은 아니다. 미국 영화에서는 흔하게 나오는 총 격 장면 한 번 안 나오고, 창고에 있는 온갖 물건들로 싸우는 것 때문에 실망한 것도 아니다. 그건 참신했다. 영국은 미국처럼 총기 소지가 자유롭지 않은지, 아이들은 총 대신 칼이라든지 폭죽 같은 것으로 괴생명체와 싸웠다. 어차피 고도의 신무기를 가져도 결국 마지막은 육탄전으로 끝나니까, 그건 별 상관이 없었다.


  내가 화가 난 이유는 셸리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았기 때문인데, 그 상대가 헐……. 와, 진짜 보면서 욕이 절로 나왔다. 뭐 저런 XX같은 놈이! 찰리 앞에서는 세상에도 없는 친구처럼 굴더니만, 뒤로는 그 여자 친구를 꼬여냈다. 그러면서도 대놓고 말할 용기가 없어 셸리보고 찰리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었다. 이건 뭐, 엄청 찌질한 놈이다. 결국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 셸리가 폭로하긴 하지만, 이후 그는 찌질하고 비겁한 행동을 계속 보여준다. 그런 친구는 되지도 말고, 갖지도 말아야겠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마무리를 짓는다. 아니, 어떻게 보면 끝이 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주인공 찰리 배역을 맡은 배우가 영국 드라마 ‘닥터 후 Doctor Who, 2005’에서 다른 평행 차원 세계에서 로봇인간들과 싸우는 역할로 나왔었다. 흐음? 어쩐지 그래서 인간과 괴생명체들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나중에 닥터 후가 이 차원으로 건너오게 된 거라고 연결시켜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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