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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ㅣ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겔만 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월
평점 :
원제 - Kaffe Med Ran/ Little Old Lady Who Broke All the Rules, 2014
작가 -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제목을 보는 순간, 의아했다. 아니 왜 할머니가 감옥에 가려고 하는 거지? 영제는 더 대단했다. 모든 규칙을 위반하는 할머니라니……. 표지에는 뒤돌아선 다섯 노인들, 두 명의 할아버지와 세 명의 할머니가 그려져 있다. 두툼한 옷을 입고 모자와 목도리, 거기다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하게 서 있다. 그런데 헐? 가운데 서 있는 할아버지의 손에 공구가 들려있다! 요즘 외로움이나 빈곤 같은 노인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그런 얘기를 다룬 건가?
다이아몬드 노인 요양소에서 사는 79세의 '메르타'는 기분이 좋지 않다. 요양소의 사장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안 좋아졌다. 방마다 딸렸던 간이 부엌이 사라지는 것도 모자라 식사는 전보다 더 형편없어졌고, 매일 제공되던 차와 간식의 양과 횟수가 줄고, 외출도 금지되고 심지어 산책도 제한된다. 그러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감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그녀는 화가 난다. 세상에! 감옥에서는 산책도 할 수 있고, 제공되는 식사나 시설이 요양소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요양소는 자기가 자기 돈 내고 들어오는 곳이고 감옥은 죄를 저질러 가는 것인데, 어째서 감옥이 더 나은 거지? 분개한 메르타는 요양소 합창단 친구들과 감옥에 가기로 한다. 각자 은행원이나 기술자였던 전적을 되살려, 노인들은 난생처음으로 범죄자가 되기로 한다. 우선 첫 번째 목표는 미술관에 있는 국보급 명화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는 법은 없다. 특히 범죄를 목표로 하는, 초보 노인들에게는 말이다.
600쪽에 가까운 두툼한 책이지만, 이야기는 즐거웠다. 국보급 명화를 훔치고 현금 수송차량을 습격하려는 범죄자들의 이야기지만, 어쩐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아, 난 원래 범죄도 미워하고 범죄자는 더 미워하는 인간인데…….
그런 내가 왜 범죄자인 노인들을 응원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너무도 순진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그에 비해 영악한 관련자들이 대비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국보인 명화를 무슨 일이 있어도 돌려줘야한다는 애국심(?) 때문에 전전긍긍해하고, 요양소에 남아있을 다른 노인들에게도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는 등 노인들은 현대판 '로빈 훗'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에 비해 메르타에게 접근해 명화를 숨긴 곳을 알아내려는 '리사'나 그들을 협박해 범죄 계획을 캐내려는 '유로'와 같은 인물은 감옥을 여러 번 들락날락거린 흉악한 사람들이다. 거기다 불륜관계인 요양소 사장과 직원 '바르보로'는 욕심 많은 자들이다. 노인들에게는 형편없는 음식을 주면서 자기들은 자물쇠를 채운 냉장고에 온갖 맛있는 것들을 숨겨놓는가 하면, 요양소의 노인들을 내버려두고 둘이서 호화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물론 여행 경비는 노인들의 돈이다.
그러니까 등장인물 거의 모두가 다 범죄자라고 볼 수 있지만, 그나마 노인들은 양심적인 도둑이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그들은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알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이 범죄라는 걸 깨닫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자기들을 뒤쫓느라 고생한 경찰들에게 돈을 기부하는 관대함까지 보이고 있다. 또한 언론사에 노인 문제에 대한 성명서까지 보낼 담대함까지 갖고 있다. 그런 점들 때문에 자연스레 그들을 응원하게 되는 모양이다.
책은 단순히 노인계층만의 문제만 다룬 것이 아니라, 거기에 연관된 여러 사회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열악한 요양소 관리라든지 횡령, 공공기관의 관리 소홀, 책임지기 싫어하는 사회 분위기 등등. 그 때문에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이야기는 유쾌하고 즐겁게 흘러갔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노인들의 성격 탓일 것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 그 두 가지가 그들이 그토록 열정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아니, 나이는 훌륭한 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