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제 - The Priests, 2015

  감독 - 장재현

  출연 - 김윤석, 강동원, 박소담, 김의성

 

 

 

 

  교통사고 이후 악령에 빙의된 ‘박소담’. 그녀를 구하기 위해 구마의식을 하던 노 신부가 쓰러지자, ‘김윤석’은 부제를 구하기 위해 신학교를 찾아온다. 김윤식의 튀는 행동은 교단에서도 골칫거리였고, 이미 열 한명의 부제가 그를 거쳐 간 전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 중에서 같이 일을 할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가 내건 조건에 부합된 인물은 다름 아닌 ‘강동원’. 두 사람은 소녀에게 깃들인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구마의식을 벌인다. 하지만 악령은 강동원의 아픈 어린 시절 기억을 끄집어내며 괴롭히는데…….

 

  한국에서 퇴마를 소재로 다룬 영화라면, 제일 먼저 ‘퇴마록, 1998’이 떠오른다. ‘맨데이트, 2008’라는 영화도 있었는데, 그건 봤는데도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나서 패스. 그리고 올해 본 ‘퇴마:무녀굴, 2015’도 있다. 아쉽게도 이 모든 영화들 다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야기의 흐름이라든지 인물의 성격 같은 부분이 자연스럽지 않고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문에 이번 작품 역시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영화 ‘엑소시스트 The Exorcist, 1973’의 반이라도 따라가면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소담이라는 배우가 눈에 들어왔고 돼지가 불쌍했다.

 

  어린 돼지는 생각할수록 불쌍하다. 신부 손에서 귀염 받으면서 잘 자라다가, 갑자기 낯선 이의 손에 이끌려 삼겹살집으로 끌려가더니 나중에는 귀신들림까지 당한다. 돼지의 죄라면 맛있는 삼겹살과 목살, 갈비, 그 외의 다양한 부위의 살코기와 순대까지 제공하는 것밖에 없는데……. 아, 갑자기 침이 넘어간다. 이건 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귀신들 탓이다. 그놈들이 지나가던 돼지 몸에 들어가 강에 빠져죽는 바람에, 이후 구마 의식에서 돼지를 쓰는 거다. 나쁜 놈들!

 

  그리고 박소담. 엑소시스트의 ‘린다 블레어’ 못지않게 악령 들린 여고생 연기를 보여줬다. 목이 돌아가거나 몸을 뒤집어 계단을 내려오는 연기는 없었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이고 무서운 장면을 보여줬다. 빙의되기 전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나면서,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처음에는 개성적인 신학생의 모습을 보여주던 강동원이 후반으로 갈수록 그런 표정을 잃어버리는 게 좀 아쉬웠다. 처음에는 그의 전작인 영화 ‘전우치, 2009’의 가톨릭 신부 버전이라고 여겼는데, 나중에는 처음의 이미지와 완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건의 중요성을 깨닫고 진지하게 임하기로 해서인지 아니면 악령이 계속해서 그에게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예수의 열두 번째 제자는 가롯 유다로 예수를 로마 군인들에게 넘긴 사람이다. 그래서 나중에 소녀의 몸에서 나온 악령이 열두 번째 부제인 강동원에게 들어가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결말이었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랬다면 종교계에서 반발했을지도 모르겠다.

 

  장미십자회나 세계 곳곳에 숨어있는 12악령의 존재, 그리고 12지신의 힘으로 악령을 누른다는 발상은 신선했다. 동서양의 신앙이 조화를 이루어 악을 퇴치한다는 설정에서 세계는 하나라는 말이 실감났다. 하지만 영화는 심심했다. 뭔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는 풍겼지만, 그냥 그랬다. 구성이 그냥 평범하다는 느낌이었다. 기승전결의 형식을 너무도 정확하게 지켜서 예측 가능한 전개를 보여줬다. 뭔가 점점 조여 오는 긴박감도 없었고, 힌트들이 휙휙 지나갔다. 집중을 하라는 제작진의 의도였을 것이다. 나같이 집중을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좀 무리였을지도…….

 

  사건이 일어나는 골목 안과 밖의 대비는 인상적이었다. 골목 밖은 화려한 불빛과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환했다. 그곳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일어나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하지만 골목 안은 어둡고 좁았다. 빛이라고는 하나도 들지 않을 것 같은 그곳에는 사람들이 숨기고 싶었던 과거와 악몽이 꿈틀대고 있었다. 단지 한 걸음 차이로 빛과 어둠이 나뉘어 있었다.

 

  우리의 삶이나 진실이라는 것들이, 어쩌면 몇 발자국 차이밖에 나지 않은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발을 디디면 알 수가 있는데, 우리는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지내는 건 아닐까? 그래서 언제나 열려있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하는 것이다.


  별점 5개 중에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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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렉트라 (1disc) - 할인행사
롭 바우만 감독, 제니퍼 가너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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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lektra, 2005

  감독 - 롭 바우만

  출연 - 제니퍼 가너, 고란 비즈닉, 윌 윤 리, 캐리-히로유키 타가와

 

 

 

 

  전에 영화 '데어데블 Daredevil, 2003'을 봤을 때, 그의 여자 친구로 나오는 인물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엘렉트라', 악당 킹 핀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는 여전사 캐릭터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아버지를 죽인 자들에게 복수했던 미케네 공주의 이름과 극 중 설정이 잘 맞아떨어지는 인물이었다. 그 당시 인기가 좋았는지, 단독 주인공으로 영화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영화에서는 '데어데블'의 'ㄷ'도 나오지 않았다. 또한 엘렉트라의 배경이나 인물 설정이 너무도 달랐다. 마치 그녀의 일생에서 데어데블이나 '킹 핀'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전작에서는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단 둘이서 서로 의지하고 사랑받으면서 지낸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아버지를 죽인 자를 위해 분노를 표출하고 앞뒤 가리지 않고 복수하는 모습이 이름과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어린 시절 의문의 존재에게 살해당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만이 나올 뿐이다. 그냥 영화 '데어데블'에서 나왔던 배우가 똑같은 캐릭터 이름으로 새로운 영화를 찍었다고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 세상에는 선을 대표하는 집단 '키마구르'와 악을 대표하는 집단 '핸드'가 있다. 엘렉트라는 부모를 잃고 키마구르에서 자라는데, 그곳을 뛰쳐나와 암살자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암살 의뢰를 받고 도착한 곳에서 '마크'와 '애비' 부녀를 만난다. 그들과 친분을 맺을 즈음, 엘렉트라는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이 바로 그 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애비에게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본 엘렉트라는 암살을 포기하고, 대신 그들을 도와주기로 한다. 알고 보니 애비가 선택받은 '트래져'로 두 집단에서 찾고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엘렉트라는 핸드의 젊은 후계자 '키리기'와 마지막 승부를 벌이는데…….

 

  이야기 부분을 보면 구멍이 숭숭 뚫려서 여름밤에 창에 붙여놓으면 무척 시원할 것 같았다. 조직에서 혈안이 되어 찾는 아이인데 단 한 번의 싸움으로 포기하느냐 마느냐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인지, 그것도 조직의 대표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 결정할 권한이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또한 어느 나라 경찰이 엄마가 살해당한 현장에 아이를 그대로 남겨두는지도 의아했다. 비록 엄마의 사체를 봤다고 해도 그 다음에는 다른 곳으로 보내야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초능력을 가진 악당들이 한 사람에게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애초에 승기를 잡은 건 그들이었는데? 처음부터 협공을 하면 쉽게 이길 수 있는데 왜? 명색이 악을 대표하는 집단이라면서 뭐 하러 그리 정정당당하게 싸우려고 하는 거지? 악을 대표한다고 해서 뭔가 엄청난 꼼수나 얍삽한 스킬을 쓰는 줄 알았는데, 기껏 한다는 게 매복을 숨겨두거나 혼자 나온다고 하고는 부하들을 끌고 나오는 게 다였다. 악이지만 명색이 유서 깊은 조직이라 품위를 지키겠다는 건가? 아니면 한쪽이 너무 강하면 밸런스 붕괴가 일어날 수 있으니, 그걸 맞추기 위해서였을까?

 

  핸드의 악당들 캐릭터는 무척이나 개성적이고 매력적이었다. 몸에 새긴 문신그림이 실체화되어 공격하는 '타투'나 손에 닿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입김이 닿는 것은 다 죽이는 '타이포이드'의 능력은 신기하고 멋졌다. 그에 비해 엘렉트라는 너무 고뇌만 하느라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몸에 착 달라붙는 빨간 가죽옷으로 입고 다녔나보다. 몸매로라도 호감을 이끌어내고 싶어서.

 

  상영시간은 88분이라고 되어있는데, 체감시간은 한 8시간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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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8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다별 2015-12-31 22:11   좋아요 0 | URL
미드도 있었군요!!!
 
어느날 갑자기 vol.2 : D-day + 죽음의 숲 (2disc) - 할인행사
김정민 외 감독, 김서형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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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제 - Dark Forest, 2006

  감독 - 김정민

  출연 - 이종혁, 소이현, 김영준, 최성민

 

 

 

 

  ‘어느 날 갑자기’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그런데 미리 결말부터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시리즈 네 편 중 최악이었다. 어지간해야 영화적 상상이라든지 작가의 설정이라고 넘어갈 텐데, 이 영화는 으…….

 

  등산여행을 떠난 다섯 친구가 있다. 산불로 들어갈 수 없는 산을 뒷길로 몰래 들어간 그들은 처음에는 신나한다. 하지만 통화권이 이탈되고 일행 중 한 명이 발을 접질리면서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특히 무속인이었던 집안의 영향으로 미래가 보이는 ‘정아’는 자꾸만 보이는 환상에 불안해한다. 급기야 혼자 물을 뜨러 갔던 ‘준후’가 사라지고, 텐트에 남아있던 ‘세은’이 습격을 받는다. 정아와 ‘우진’은 사라진 둘을 찾아 헤매다가 세은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런데 죽은 세은이 벌떡 일어나 그들을 공격하는데…….

 

  초반부터 ‘이건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은 남자 셋, 여자 둘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야영을 한다고 했을 때 두 개의 텐트가 세워진다. 그런데 황당한 건, 그 전에 그들이 산을 오르는 장면에서는 아무도 텐트를 들고 있지 않았다. 두세 명이 잘 정도로 큰 텐트라서 누군가 등에 메고 있다면 보였을 텐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그럼 그 텐트는 누가 들고 온 걸까? 아, 스태프가……? 그리고 산에 올라가는데 민소매라니,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산에 처음 와보니? 그리고 누가 계곡 물을 그대로 마시니? 식수로 적합한지 아닌지 확인도 안 해보고? 혹시 그 물병이 자체 정수가 되는 기능이 있니?

 

  게다가 마지막에 신파조로 흐르는 분위기는 진짜 지루했다. 그러니까 너희 둘이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서로를 사랑해서 대신 죽겠다는 마음은 알겠는데, 왜 얘기만 하는 걸까? '죽지 마'부터 시작해서 '오빠 사랑해', '너 없으면 못살아', '제발 이러지 마', '이렇게 해야 해. 방법이 없어'라고 주저리주저리 떠드는데 지루해서 짜증이 다 났다. 특히 후반 거의 이십분 동안 질질 짜는 정아는 못 봐줄 지경이었고, 그녀가 우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서있기만 하는 우진은 그냥 한심했다. 가서 달래주기라도 하라고! 왜 굳이 그 둘의 마지막 장면을 그렇게 지루하게 끌었는지 모르겠다. 자기를 희생해 남을 살리는 사랑의 숭고함을 보여주기 위해? 하지만 이미 그 전부터 지루하다 못해 한숨만 나오는 전개였기에 사랑의 숭고함을 느낄 여력이 없었다. 죽으려면 빨리 죽던가! 아니면 몸을 던져서 막아보던가! 이런 생각만 들었다. 여자애가 대신 죽겠다면서 괴로워하는데, 남자애가 하는 건 그냥 이름만 부르면서 서있는 것뿐이다. 그게 뭐야, 도대체! 보면서 욕이 절로 나왔다.

 

  영화가 긴장감도 없고, 재미있는 요소도 없고, 뭐 하나 제대로 갖고 있는 게 없었다.

 

  금지된 숲, 죽었지만 살아나 공격하는 친구들, 공격자이자 희생자가 되는 사람들, 저주의 고리, 미래를 보는 능력자, 돌로 만든 결계와 실수로 그것을 깨버린 등산객, 숲에서 피를 흘리면 악령에 빙의되는 사람들 등등의 좋은 설정을 가지고 이런 ㅈ같은 전개라니……. 소재가 아까웠다.

 

  계속 리뷰를 쓰다보면 욕만 나올 거 같아서 여기까지만 쓰겠다. 아, 기분 풀려고 영화 봤다가 되레 스트레스를 받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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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vol.2 : D-day + 죽음의 숲 (2disc) - 할인행사
김정민 외 감독, 김서형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영제 - Roommates, 2006

  감독 - 김은경

  출연 - 김리나, 이은성, 유호린, 허진용

 

 

 

 

  세 번째 이야기의 배경은 여학생 전용 기숙 재수학원이다. 우리 사회는 대학 입시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거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인생에서 큰 실패를 한 것처럼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공부하면서 배워가는 과정보다 성적이라는 결과를 더 중시한다.

 

  이 학원 역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언제나 무표정한 굳은 얼굴로 아이들을 감시하는 사감, 쉴 틈을 주지 않은 빽빽한 시간표, 매월 시험 성적에 따라 바뀌는 자리 등등. 그곳에서 아이들은 인생의 실패자처럼 대우받으면서 갇혀 지낸다. 사감이 열쇠를 갖고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외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같은 방에 배정된 네 소녀가 있다. 식구들이 다 명문대생이라 오점이 되기 싫어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하는 은수,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규칙적인 학원에 적응하지 못하는 반항아 유진, 소심하고 여린 성격을 가진 다영 그리고 모든 일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내레이션을 맡은 보람.

 

  사건의 시작은 유진이었다. 처음부터 학원이 싫었던 그녀의 눈에 자꾸만 다른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사감의 지도에 격하게 반항하다 창고에 갇히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피투성이의 시체들로 가득한 환영을 보게 된다. 그 충격으로 병원에 실려 간 유진. 그렇지만 부모에 의해 다시 학원으로 끌려온 그녀는 자살하고 만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은수가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거의 300일 넘게 갇혀있으면, 이상하게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중간에 쉰다거나 기분 전환 할 시간 없이 공부만 해야 한다면……. 공부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탈출을 꿈꿀 것이다. 상상을 하고 망상을 하고 어쩌면 환각을 볼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기숙학교에서는 몇 년 전에 큰 사고가 나서, 학원생들이 죽었다고 한다. 살아있는 소녀들의 염원과 죽은 소녀들의 원한이 모여서 음산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몇 년 전에 무엇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는지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추측은 가능하다. 이 나라에서 어른들의 무관심이나 부주의로 아이들이 살해당한 사건이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그런 상황이 나온다. 사고가 나서 아이들이 희생된 학원 자리에 또다시 비슷한 학원이 생기고, 또 사고가 났지만 그곳에는 다시 학원이 문을 연다. 사고가 났을 때만 안전 불감증이 어쩌고 하면서 부글부글 끓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모든 것은 잊히고 없던 일이 된다. 그리고 또 다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고 말이다 유치원생부터 대학신입생까지, 아이들이 죽어나가도 그때뿐이다.

 

  영화는 그런 부분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은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의 어른들은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의 피를 손에 묻혀야 정신을 차릴 것인지 묻고 싶다.

 

  이번 이야기 후반부에 지하철에서 보람이 안 어린 소녀와 마주치는데, 바로 두 번째 이야기의 주희였다.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이야기에서 기숙학원의 사고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데, 그게 이번 이야기였다. 묘하게 연결되는 것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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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색시
이명현.박민아 지음, 양은정 그림, 중앙대 문화콘텐츠기술연구원 기획 / 작가와비평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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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이명현, 박민아

  그림 - 양은정

 

 

 

 

  우리 전래 동화에는 인간이 아닌 종족과 결혼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꽤 있다. 하늘에 사는 선녀와 결혼하는 나무꾼도 있고, 심지어 민물 고둥인 우렁이와 결혼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이 책처럼 여우와 결혼하는 건 뭐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평범하고 일반적인 우렁이와 여우가 아니라 변신이 가능한, 꽤나 영험한 존재들이다. 어떻게 보면 신선이 되기 직전의 존재들일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그런 동화에 나오는 남자들은 특출한 능력을 보인다거나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냥 가진 거라고는 튼튼한 몸과 성실함 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 모습에 홀딱 반해서 인간 여자로 변신한 여자들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한다. 그녀의 외모에 반한 지주나 탐관오리가 세력을 내세워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할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들을 대신해 여자들이 사건을 해결한다. 그렇게 일이 잘 마무리되면 둘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남자가 멍청하게 사람들의 꼬임에 넘어가면 둘은 헤어지게 된다. 남자는 달을 보면서 여자를 그리워하는 걸로 이야기는 끝나기 마련이다.

 


  어릴 때는 그냥 동화라고 넘겼는데, 조카들 때문에 커서 다시 보니 어찌나 남자들이 한심하던지……. 성실하면 뭐해, 귀가 너무 얇아서 창호지보다 더 바스락거리는데. 몸이 튼튼해봤자 뇌에 든 게 없는데 뭐 어쩌라고. 그래서 멍청하게 자기를 사랑한다는 여자를 못 믿고 처음 보는 사람의 말을 믿어서 여자를 떠나보내기나 하지. 아니면 여자 뒤에 숨어서 사건이 해결되길 기다리기만 하거나.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봤다. 이런 동화가 주는 교훈은 농촌 총각들이 결혼하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인 걸까? 같은 종족인 인간과 결혼하는 건 선택지에 있지도 않고, 다른 이능력이 있는 존재들이 찾아오길 기다려야 한다는? 그런 존재들이 없으면 결혼은 평생 꿈도 못 꾸는?

 


  그런데 이 책의 결말은 예전 동화와 달라서 마음에 들었다. 남자가 멍청하고 귀가 얇아서 화를 자초하긴 했지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종족의 차이, 그러니까 외모보다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를 사랑했기에 그녀는 아픔을 꾹 참고 꼬리털을 뽑아 밤새 옷감을 만들었다. 세상 어디에서 그가 그토록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재를 만날 수 있을까? 게다가 능력도 짱짱인 존재를! 나중에 등 따시고 배불러진 그가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파는 전형적인 뒷이야기로 흘러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문득 이 이야기에서 다문화 가정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외모가 주위 사람들과 다르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동화는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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