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John Wick: Chapter 3 - Parabellum, 2019
감독 - 채드 스타헬스키
출연 - 키아누 리브스, 할리 베리, 로렌스 피쉬번, 마크 다카스코스
지난 2편에서 ‘최고 회의’의 규칙을 어기고 ‘뉴욕 콘티넨털 호텔’에서 살인을 한 존 윅. 그 결과, 그는 파문을 당하고 한 시간의 유예를 얻게 된다. 이번 영화는 그 직후부터 시작한다.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나 킬러들이 주목하며, 시간이 다 되길 기다린다. 그에게 걸린 현상금은 무려 천 사백만 달러로 무시 못 할 금액이었다. 겨우 위기에서 벗어난 그는 모로코에 있는 ‘소피아’를 만나, 도움을 청한다.
한편 최고 회의에서 파견한 ‘심판관’은 존 윅을 도왔던 호텔에 점장인 ‘윈스턴’은 물론이고, ‘바워리 킹’ 등을 조사한다. 그리고 최고 회의를 위해 일하는 ‘제로’와 그 제자들을 이용해, 존 윅과 그 지인들을 처리하는데…….
뉴욕을 벗어나기 전까지의 추격 전투 장면은 그야말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극장에서 사운드에 신경을 썼다고 홍보하더니만, 칼이 베는 소리라든지 암기 내지는 단도가 날아가는 소리가 무척이나 실감 나고 서늘하게 들렸다. 영상도 화려했고 소리는 좋았으며 진행도 무척이나 빨라서 다른 데 정신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또한 소피아와 그녀가 기르는 두 마리 개의 합동 공격 역시 멋있었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남자의 성기 부분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개의 공격은 어떻게 보면 총 쏘는 것보다 더 잔인해 보였다. 거기다 심판관의 너무도 매정한 판결과 이를 집행하는 제로 일당의 전투, 아니 학살 장면은 이야…….
영화는 굳이 스토리를 따지기보다는, 존 윅이 어떻게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죽여가는지에 더 집중했다. 사실 영화를 보다가 ‘왜? 굳이? 어째서?’라는 의아함이 들 때가 몇 번 있었다. 예를 들면, 왜 숨어있다가 공격할 때는 기합을 크게 내는 거지? 저번에 다른 사람들하고 싸울 때는 안 그랬잖아? 왜 존 윅과 싸울 때만 굳이? 하지만 그걸 일일이 따지자면 다시 영화를 보면서 대사를 기억해야 하는데, 굳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그냥 머리 아프게 복선이고 암시나 갈등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존 윅이 예수님 헤어스타일로 온갖 멋진 폼을 잡아가며 싸우고 박살 내고 때리고 쏘고 베고 밟아버리고 던져버리고 메다꽂고 차고 던지면서 확인 사살까지 알뜰하게 하는 영상을 보는 거로도 만족하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는 그런 점에 집중하여, 거기에 어울리는 영상미와 농담 그리고 재치를 보여주었다. 사람이 떼로 죽어 나가는데 웃음이 나올 수 있다는 건,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의도하고 제대로 몰아간 제작진의 능력 덕분이었다. 물론 그 때문에 존 윅이 그 전까지, 그러니까 2편까지 지켜왔던 킬러의 자긍심이라든지 명예를 우습게 보는 것 같았지만 뭐, 그건 그러려니 하겠다. 그거 지키려고 했다가 개죽음을 당할 뻔했으니까, 심경의 변화가 있었으니 하겠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해리 포터 시리즈’가 떠올랐다. 두 작품 사이에 연관성은 없는데, 존 윅 세계관에서 등장하는 컨티넨탈 호텔이라든지 행정실(?) 같은 시스템과 조직의 구성체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대물이긴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재와 공존하는 다른 세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랬다. 해리 포터에서 등장하는 마법사들의 세계나 존 윅의 암살자들의 세계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각자 나름의 조직과 규칙에 따라서 지배되었다. 그 세계 밖에서 존재하는 법이나 규칙보다 그들 내부의 것이 더 우위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분쟁은 거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사람 많은 도서관에서 대놓고 싸우는데, 어찌 된 일인지 경비도 달려오지 않았고 도서관 이용자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후반부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은 뉴욕 한복판에 있는 건물이었는데, 그 엄청난 총격에도 불구하고 경찰이나 기자 하나 등장하지 않았다. 그들의 조직은 아날로그적이면서 동시에 최신식이었다. 그게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후반에 가면서는 좀 피로감을 느꼈다. 쉴 틈 없이 싸우는 장면이 이어지는 것도 그렇고, 제로나 그 제자들과 싸우는 장면은 어쩐지 그 전까지의 장면들과 위화감이 느껴졌다. 왜 저들은 그 전에 학살을 벌일 때와 달리 저리도 장난스럽게 싸움에 임하는 거지? 이미 그들은 존 윅을 여러 번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계속해서 봐주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손에 쓰러지고 만다. 왜 계속해서 봐주다가 당하는 건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영화에 스토리나 개연성이 없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친선 경기도 아니고, 자기 동료 몇 명 죽었는데 복수해주겠다는 피눈물까지는 아니어도 화도 안 나? 그게 웃음을 주기 위한 장치였던 거 같은데,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뭐, 4편이 개봉하면 보러 갈 것이다. 아마도.
오랜만에 영화에서 만난 마크 다카스코스의 빛나는 대머리에 잠시 슬퍼졌었다. 영화 때문에 일부로 깎으신 거죠? 여전히 그의 눈은 부리부리하게 컸고, 무술 실력은 녹슬지 않은 것 같아서 반가웠다.
아, 마무리하기 전에 한국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의 횡포에 대해 언급하고 가야겠다. 멀티 플렉스 영화관은 단 한 가지 영화만 하루종일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틀어놓으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난 다양한 작품을 선택할 권리를 고객에게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멍청했다. 이 영화를 주말에 보기 위해, 서울 마포에 사는 내가 분당까지 갈 줄을 생각이나 했을까? 집 근처에 3개 회사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무려 ‘5개’나 있는데 말이다! 하아, 분당에서라도 주말 낮에 한 번 상영해주는 걸 감사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