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미생물군 유전체 프로젝트‘의 창립자 릭 스티븐스의 말대로 "지구 생명체의 50퍼센트는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지구를 생명이 사는 곳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이다." 과학자들은 이제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먹는 음식을 포함하여 지구의 체제가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지구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들이라는 것을 안다.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막강한 생물인 것처럼 으스대지만,
실제로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미생물이다.
미생물은 다세포 생물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산소를 생산한다. 우리는 산소가 주로 나무들이 호흡으로 내뿜는 물질이라고 배웠지만, 실제로는 산소의 28퍼센트만이 우림 지대에서나온다. 대다수 산소는 바다에서 식물성 플랑크톤과 해조류가 만든다. 하지만 이런 광합성의 원천은 육지에 사는 식물과 조류도 공통으로 갖고 있는 바로 그것, 역사의 어느 시점에 그들 속으로득어간 박테리아다.
- P41

그리고 우리는 크기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는 편이지만,
크기야말로 동물의 생존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크기는 우리가 이 행성에서 어디에, 어떻게, 심지어 얼마나 오래 사는지도 정한다. 하지만 지구에서 살아가는 종들에게 있어서 크기는 한계가 있다.
‘요정파리‘라고 불리는 기생벌은 몸길이가 200마이크로미터에불과하다. 이 자그마한 벌 다섯 마리를 합치면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문장 마지막 마침표에 딱 들어간다. 믿기지 않는 사실은 요정파리가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복잡한 생물 기관들을 말도 안 되게 작은 꾸러미 안에 집어넣은 다세포 생물이다. 몸 안에는 박동하는 심장, 날개, 다리, 소화계, 제 기능을하는 뇌까지 다 들어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요정파리는작아지는 대신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뇌세포를 희생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요정파리가 성체가 될 즈음이면 뉴런의 95퍼센트에서 핵을 포기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핵은 세포에서 유전 정보가 저장되는 장소다. 이 말은 곤충의 경우 이보다 더 작아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박테리아는 뇌가 없으므로 이보다 공간을 더 줄일 수 있다. 요정파리는 마침표에 다섯 마리만 들어가지만, 단세포 박테리아는 수십만 마리도 가능하다. 크기에 관해서라면 박테리아가 훨씬 더 한계 지점까지 나아간 것이다. 다세포 생물은 단백질과 DNA 같은 필수 구성 요소가 들어설 공간이 필요하므로 이보다 작아질 수 없다. 생명을 무작정 쥐어짤 수는 없다. - P44

 영국의 작가 헬렌 맥도널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규모를 잘 다루지 못한다. 흙 속에 사는 존재들은 너무 작아서 마음을 쓰지 않고, 기후 변화는 너무 거대해서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위압적인 규모의 대상과 숫자는 모호하게 뭉개져서 연구자들이 규모맹scale blindness‘ 이라고 부르는 현상에 빠지고 만다. 거대한 우주와 극소의 양자 세계는 우리의 존재의 근본이겠지만, 대개의 경우 우리는 우리가 차지하는 세상의규모보다 크거나 작은 규모를 의식하는 일이 거의 없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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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까지 ‘현실‘은 인간이 만지고 냄새 맡고 보고 들을 수 있는모든 것이었다. 전자기 스펙트럼 도표가 처음으로 공개되고 나자인간은 자신들이 만지고 냄새 맡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현실‘
의 백만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미래에 영향을 미치게 될 요인의 99퍼센트는 인간의 몸으로 감지하지 못하는 영역의 현실에서 인간이 도구를 사용해서 벌이는 활동으로 인한 것이다.
- 리처드 버크민스터 풀러 - P9

개인으로서 우리는 명백한 것을 못 볼 수 있지만, 집단으로서 사회 역시 그럴 수 있다. 여기 생각해 볼 만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21세기에 우리는 온갖 곳에 카메라를 설치했지만, 우리가 식량을 얻는 곳, 에너지를 얻는 곳, 쓰레기를 보내는 곳은 예외다. 지구 상 가장 막강한 생명체가 자기 삶을 지탱하는 것들을 보지 못하는 건 어찌 된 영문일까?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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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오래된 벽돌 건물 창 너머로가냘픈 그림자가 지나다닌다고 하네요.
흰머리에 잿빛 눈을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대요.
길고 검은 옷을 입은 그 여자는 새하얀 타일이 빛나는 방을 지나가서는 전화기가 놓인 널찍한 나무 책상 앞에 앉습니다.
그러고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죠.
- P3

하지만 마리는 나무와 납으로 만들어진 상자 앞에서 가장 오래 머물러요. 그럴 때면 그 잿빛 눈 속에서작은 불꽃이 춤을 추어요.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다이아몬드보다 귀한 보물, 미국에서 보내 준라듐 1그램이 거기 있답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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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헬은 아예메넴의 몬순기 공기가 얼마나 눅눅한지 잊고 있었다. 부풀어오른 옷장이 삐걱거렸다. 잠긴 창문이 벌컥 열렸다. 표지 사이의 책장이 눅눅해져 물결쳤다. 저녁때면 낯선 벌레들이 망상처럼 나타나 베이비 코참마의 흐릿한 사십 와트짜리 전구에서 타들어갔다. 바싹 화장된 사체가 낮이면 마룻바닥과 창틀 여기저기 널려 있어, 코추 마리아가 플라스틱 쓰레받기에 그것들을 쓸어담아 버릴 때까지는 공기 중에 ‘뭔가 타는‘ 냄새가 감돌았다.
- P23

그러는 동안 그는 어디에 있든 그 배경 - 책장, 정원, 커튼, 문간, 거리 - 에 녹아드는 능력을 갖게 되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익숙지 않은 눈에는 투명한 존재와도 같았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에스타와 한방에 있더라도 한참 후에야 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에스타가 전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어떤 사람들은 전혀 알아채지도못했다.
에스타는 이 세상에서 극히 작은 공간만을 차지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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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지금 말한 게 사실이라면, ‘인간 남성의 오르가슴적 쾌락은 왜, 어떻게 진화했을까?‘라는 의문이 떠오르는 게 당연하다.
물론 정답은 심미적인 배우자선택을 통해서‘일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침팬지와 고릴라 수컷들은 성적으로 까다롭지 않으며, 어떠한 성행동의 기회라도 주어지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배우자선택이 개입되지 않는 한, 성적 쾌락에 작용하는 모든 진화적 영향력은 오로지 자연선택에 한정된다. 그러나 인간은 유별나게 까다롭게 진화했다. 여성과 남성의 배우자선택을 비롯하여 성행동과 짝짓기의 빈도 지속시간 등의 진화사史. 이 모든 것이 하나같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오르가슴적 쾌락의 미적 공진화와 정교화를 위한 기회‘
를 제공했다. 남성의 성적 쾌락의 진화적 향상은 ‘싸구려 정자의 헤픈 공급자profligate purveyor of cheap sperm‘라는 진화심리학적 고정관념에서벗어남으로써 빚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의 성적 쾌락이 생식기능에 필요한 기준선을 넘어 미적으로 공진화한 것은, 그들이 선호하는 여성들에게 호의를 표시하기 위해 다른 성적 기회를 어느정도 포기함으로써(다시 말해서, 배우자선택 메커니즘을 가동함으로써)가능했다.
- P418

진화인류학의 지배적 견해는, 호미닌hominin 의 복잡한 사회행동은 ‘남성 간 경쟁‘과 ‘채집생태계에서의 자연선택(즉, 환경 속에서 식량을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채취함)‘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류학자 겸 영장류학자인 브라이언 헤어Brian Herr, 빅토리아 워버Victoria Wobber,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 은
"독특하게 부드럽고 협동적인 보노보의 행동과 기질은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를 통해 진화했다"라고 제안했다. 자기가축화란 인위적인 가축화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위적 개입이 아닌 생태적 자연선택을 통해 공격성이 순치致되는 과정‘을 말하는데, 그들은 "보노보가 서식하는 채집생태계의 독특한 특징(고품질 먹이가 풍부하고고릴라와 경합할 필요가 없음)이 이러한 과정을 추동했다"라고 상정했다. 세부사항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지만, "협동적인 그룹이 보노보사회를 안정시키고 생태적 효율을 전반적으로 향상시켰다"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자기가축화 가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사회적관용 및 협동은 ‘종의 생태적 적응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지, 수컷의 사회적 성적 행동 개혁‘을 통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 P436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몸집의 성적 이형성이 감소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송곳니의 미적 무장해제가 비리비리하고 겁 많고 순종적인 남성의 탄생으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그와 정반대로, 여성의 짝짓기선호는 매력적인 남성 형질(예: 이상적인 신체 비율, 넘치는 성적 매력)을 지속적으로 진화시켰다. 여성이 남성을 개인적으로 지배하는것은 진화적 이점이 전혀 없으며, 진화적으로 유리한 것은 오로지선택의 자유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적응적이 아니어서, 인간과 환경 사이의 적합성이 조금도 향상되지 않는다. 인류가 이런방향으로 진화한 이유는, 여성의 성적 자율성이 ‘남성의 성적 강제‘로 인한 피해를 감소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영아의 생존율이 증가하고, 여성의 직접적 피해가 감소하고, 개체군의 성장률이 증가했다.
- P448

동성 간 성행동에 관한 진화 이론들은 대부분 오늘날까지 ‘생식성과 감소에 대한 적응적 해법daptive solution‘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동성 간 성행동을 설명해왔다. 예컨대 널리 인정된 가설에 따르면, "동성 간 선호를 지닌 개인들은 대가족extended family 내 다른 구성원들의생존 및 생식성과에 기여할 수 있다"라고 한다. 이를 혈연선택 가설kin selection hypothesis이라고 하는데, 그 핵심은 "동성 간의 행동이 이어지는 이유는, 동성 간 선호를 지닌 비생식개체nonreproductive individual들이 어린 형제자매, 조카, 조카딸, 삼촌 등을 보살피는 데 실질적으로기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도우미 삼촌(또는 숙모)들HelpfulUncles or Aunts 은 친척들과 유전자를 공유하므로, 동성 간의 선호에 기여한 유전자의 복사본이 다른 대가족 구성원을 통해 간접적으로다음 세대에게 전달될 수 있다.
- P459

그 과정에서 ‘조류관찰과 과학이란 게 결국은 세상에서 자아를 탐구하는 방법이며,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계의 다양성, 복잡성에 몰입하는) 자기표현 self-expression 및 의미 찾기 경로와 병행된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 사실이 여전히 진리라니! 지식이 살아 움직이며, 풍부하고 심오한 경험과 감동적 발견을 위한 기회를 창조하며,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다니!
나는 아직도 다음 기회, 다음 발견 그리고 다음에 관찰할 새롭고 아름다운 새를 상상하며 흥분한다. 메인주에서 맞이했던, 기대에 가득 찬 안개 낀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 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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