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 대단한 울보였던 모양으로 너무 울어서 어른을 애먹인 에피소드가 다양한데 그중엔 노을이 유난히 붉던 날, 할머니 등에 업혀서 그걸 손가락질하며 몹시 울었다는 얘기도 있다. 등에 업혀 다닐 만큼 어릴적 일이니까 그걸 보고 왜 울었는지 생각날 리는 없고,
아마 강렬한 빛깔에 대한 공포감이었겠지 정도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때 느닷없이 그게 생생하게 되살아난것이다.
그건 이미 단풍이 아니었다. 고향 마을의 청결한 공기, 낮고 부드러운 능선, 그 위에 머물러 있던 몇 송이 구름의 짧고 찬란한 연소의 순간이 거기 있었다.
어쩌면 그건 기억도 상상도, 그 두 가지의 혼동도 아닌 이해가 아니었을까? 나의 어릴 적의 그 울음은 자연의 신비에 대한 나의 최초의 감동과 경외였다는 걸 살날보다 산 날이 훨씬 더 많은 이 초로初老의 나이에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