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 대단한 울보였던 모양으로 너무 울어서 어른을 애먹인 에피소드가 다양한데 그중엔 노을이 유난히 붉던 날, 할머니 등에 업혀서 그걸 손가락질하며 몹시 울었다는 얘기도 있다. 등에 업혀 다닐 만큼 어릴적 일이니까 그걸 보고 왜 울었는지 생각날 리는 없고,
아마 강렬한 빛깔에 대한 공포감이었겠지 정도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때 느닷없이 그게 생생하게 되살아난것이다.
그건 이미 단풍이 아니었다. 고향 마을의 청결한 공기, 낮고 부드러운 능선, 그 위에 머물러 있던 몇 송이 구름의 짧고 찬란한 연소의 순간이 거기 있었다.
어쩌면 그건 기억도 상상도, 그 두 가지의 혼동도 아닌 이해가 아니었을까? 나의 어릴 적의 그 울음은 자연의 신비에 대한 나의 최초의 감동과 경외였다는 걸 살날보다 산 날이 훨씬 더 많은 이 초로初老의 나이에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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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깼을 때, 새로운 날이 밝아 있었다.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노튼은 변하지 않았다. 노튼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여전히 내 옆에서, 여전히 내가 자기를 안고 있는 것에 만족한 채.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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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사람과의 소통

지난겨울은 추위도 유별났지만 큰 눈은 또얼마나 자주 왔는지. 나는 도시보다 기온이 3~4도는 낮은 산골 마을에 살기 때문에 거의 한 달을 집에서 꼼짝못 하고 갇혀 지내다시피 했다. 나는 눈 공포증이 있다.
어머니가 눈길에서 가볍게 넘어지신 줄 알았는데 엉치뼈가 크게 부서지는 중상이어서 말년의 5~6년을 집 안에만 계시다가 돌아가신 후부터이다.
- P11

혼자 걷는 게 좋은 것은 걷는 기쁨을 내 다리하고 오붓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다리를 나하고 분리시켜 아주 친한 남처럼 여기면서, 70년 동안 실어 나르고도 아직도 정정하게 내가 가고 싶은 데 데려다주고 마치 나무의 뿌리처럼 땅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다리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늘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 P13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잠에서 깬 듯 부수수한 얼굴이었다. 내가 먼저 사과를 했다. 자고 있었다면 깨워서미안하지만, 졸리면 집에 가서 편히 자야지 그런 불편한자세로 자면 쓰느냐고 말하다 말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소녀는 암말 안 했지만 참 별꼴 다 본다는 불손한 표정이 역력해서이기도 했지만, 소녀에게 집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들어서였다.
소녀의 옷차림은 초라하지도 사치하지도 더럽지도않은 그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거였고, 머리 모양도 약간의 멋을 낸 티가 귀여운, 그 나이의 평균치의 머리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건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대화가 있고, 자유와 구속이 적당히 조화된 가정으로서의 집이었다.
- P48

그러나 그 작은 숲이 불안에 떨 적에 보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특히 요새처럼 숲이 진녹색으로 두렵게 번들거릴 때 어디서 오는지 모를 수상한 바람이 숲을 흔들 적이 있다. 그럴 때 숲은 온몸에 비늘을 뒤집어쓴한 마리 거대한 공룡으로 변한다. 중생대의 공룡이 멸종의 예감으로 괴롭게 몸을 뒤채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감이다. 숲의 나무들이 저희들끼리 연대하여 한 마리의 거대한 공룡으로 변신한 걸 보면서 느끼는 공포감이 제발 나만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만일 사람들이 함께 그런 것을 느낀다면 어떡하든지 숲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다 콘크리트를 치든지 아파트를 짓든지 하고 말 것 같아서이다. 인간은 공포감을 느꼈다 하면 무슨 수를 써서든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숲이 괴롭게 뒤채는 건 미구에 닥칠 그런 운명을 예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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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면서 나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노튼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저 끔찍한 침묵만 흐를 뿐이었다.
여삼추 같은 1초가 흐르고, 2초가 흐르고…… 그리고…… 니야아아아아옹.
숲 밖으로 귀가 접힌 회색 머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노튼을 마지막으로 봤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리고 이어 나머지 몸통도 모두 밖으로 나왔다. 노튼은 길에 서서 특유의 ‘왜 그러세요?‘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노튼에 대한 신념을 완전히 잃고 패닉 상태에 빠졌다.
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잠깐 동안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시장을 지나 걷기 시작했다. 별장 앞에 올 때까지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노튼은 집으로 오는 내내 당연히 1.5미터 거리를 유지하면서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을 테니까.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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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어새의 경우, 미적 리모델링은 수컷의 구애용 구조물의 혁신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런 변화들이 모두 그렇듯, 혁신적인 구애용 구조물은 맨 처음에 우연히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아마도 구에장소를 장식하는 과정에서, 바우어를 짓는 새들의 초기 조상들은 막대기 몇 개를 물어다 ‘녹색 잎이라는 표준 레퍼토리 위에 얹었을 것이다. 막대기를 배치하는 방식이 조금 바뀌어기본적인 가리개가 탄생했고, 이것은 암컷을 위한 ‘성적 학대의 피난처‘의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막대기를 모으는새들은 암컷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지은 바우어의 전구체 proto-bower가 그녀들에게 평가와 선택의 기회를확대해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암컷에게 미적 구조물을 제공하는 것의 성적 이점은, 계속 증가하는 수컷 자손들에 의해 바우어 건축이 진화한다는 것이다.
- P308

배우자선택의 과학은 우리를 창의적인 길로 이끌었다. 오리와 마찬가지로, 바우어새는 ‘선택의 자유‘를 이해하는 전혀 새로운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선택의 자유는 성적 자율성을 보장하며, 성적 자율성은 아름다움의 진화를 추동하는 원동력이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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