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사이언스 클래식 38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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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이라는 과학자를 처음 알았던 지 벌써 20년도 넘었다. 또 그의 저작 『코스모스』 때문에 독자는 '천문학', '천체물리학'에 잠시 관심을 가졌다. 『코스모스』는 1980년에 첫 출간된 책으로 과학 교양서의 고전이 됐다. 이후 꽤 오랫동안 절판됐었는데 이유는 모르지만 많은 독자들을 안타깝게 했던 책이다. 우주의 탄생, 은하계의 진화, 태양의 삶과 죽음, 우주를 떠돌던 먼지가 의식 있는 생명이 되는 과정, 외계 생명의 존재 문제 등이 250여 컷의 사진과 일러스트, 우아한 문체로 흥미롭고 박진감 넘치게 묘사되었다고 평가받았다.

독자도 이후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코스모스』를 읽었지만 완독하지 못한 채 책장 속에 틀어박힌 불운이 있었다. 독자의 형편없는 과학 실력은 흥미롭고 쉽게 풀어썼다는 책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공도 아니고 당장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책은 아니어서 중도 포기했지만 어떤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한 책이었다는 기억은 남아 있다. 독자에게 충격은 있었다. '우주'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심오한 철학적 사색과 과학을 엮어 장대한 문명사적 맥락 속에서 '코스모스'를 탐구한 인간 정신의 발달 과정으로 재조명해 냈다는 평가를 들은 책인데 독자는 과학에는, 특히 '천체 물리학'이나 '우주 공학'에는 완전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을 발간할 즈음 우리나라는 어떤 수준인가?라는 생각이 미치자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한편 격차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후 이 책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 그의 저서 중 두 번째로 독자가 접하는 책이다. 이 책은 1995년 저자가 사망하기 직전에 출간된 저작으로 유사 과학의 위험성과 낱낱이 지적하고 오류를 비판한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수정할 부분이 없는 과학적 업적이다. 이 책은 칼 세이건의 과학관, 즉 과학의 본질, 과학의 방법, 과학의 의미, 과학의 윤리, 과학의 대중화 등에 대한 생각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사 과학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비판할 때 인간의 필연적 오류 가능성을 전제로 한 회의주의, 반증 가능성과 실험을 통한 검증, 비판 정신을 단련하기 위한 헛소리 탐지기 등에 대한 구체적 실증 비판이 담겨 있다.

언젠가 칼 세이건 연구자가 나온다면 연구하게 될 칼 세이건의 과학 사상이 핵심 개념들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칼 세이건의 정치관, 민주주의관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칼 세이건은 이 책 곳곳에서 과학과 민주주의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그리고 나아가 실질적 관련성도. 과학과 민주주의 모두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기본값으로 전제하고 그 오류를 수정하는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이건은 과학과 민주주의가 동일한 것도 아니고 과학적 방법에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에서 과학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책에서도 혼동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이 책은 모두 25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장의 제목에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책의 전편을 흐르는 맥락은 '유사 과학'의 허점과 인간에 미치는 악영향, 그리고 과학적이지 않는 점, 비민주적 방법으로 돈을 챙기려는 목적의 학문(?)으로 인간 삶의 혼란을 야기하는 점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물론 특유의 유려하고 관용적인 표현을 잘 쓰는 저자가 결코 '유사 과학'이 허무맹랑하고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들을 주장함으로써 인간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리게 하는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이를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의 전반부는 외계인이 타고 온 UFO, 외계인에 의한 납치 사건, 재앙으로 가라앉은 대륙, 초고대 문명의 초고도 과학 기술, 화성의 인면암(人面巖), 밀밭에 몰래 그려진 정체불명의 크롭 서클(미스터리 서클), 악마 숭배, 환생한 뉴 에이지 구루, 초월 명상, 심령 수술 같은 유사 과학, 유사 종교 등의 사이비스러운 헛소리들의 허와 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유사 과학의 허실을 파헤치고 그 허무맹랑한 논리를 탄핵하며 인간이 얼마나 속기 쉬운 존재인지, 심지어 자신조차 속이고 마는지 폭로하는 회의주의 도서들은 많다. 실제로 외계인 납치가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 미국인 중에는 지구인 중 1억 명 이상이 외계인에게 납치된 적이 있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외계인 납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도 상당수의 미국인이 바이러스 유행이 빌 게이츠 같은 특정 자본가 또는 권력자의 음모이며, 백신 역시 접종자의 정신을 조작하기 위한 특수 물질이 들어 있다고 믿고 백신 접종을 거부했다. 한국에서도 창조론자 단체의 민원으로 생물 교과서에서 진화 관련 설명을 일부 삭제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고,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운동처럼 자연 치유를 내건 유사 과학이 유행하기도 했다.

 


 

왜 우리는 과학이 아니라 이런 유사 과학, 미신, 반지성주의를 믿는 것일까? 근거도 없고 효력도 없는 주장과 낭설이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암흑 시대라고도 불렸던 서구의 중세에는 고대의 악령이 마녀로 되살아났고, 현대에는 그 악령이 외계인으로 변신해 과학의 촛불이 미치지 않는 그림자 속에서 출몰한다. 저자가 'UFO'를 보는 입장은 일종의 '미신'으로, 특히 고대의 악령이 '마녀'로, 다시 '외계인'으로 변화하면서 과학이 아직 미치지 못한 곳에서 출몰한다고 강조한다. 칼 세이건의 이 책 역시 눈속임, 헛소리, 사이비를 쉽게 믿는 경신(輕信) 풍조가 얼마나 큰 참극을 불러일으키는지를 규명한다. 이 책의 집필이유기도 하다. 이 점이 이 책을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현대적 회의주의 운동의 핵심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첵에 따르면 2022년 5월 미국 의회에서 50여 년 만에 미확인 비행 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 UFO)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미국 국방부 차관과 해군 정보국의 부국장이 참석한 이 청문회에서 미군이 발견한 미확인 공중 현상(UNIDENTIFIED AERIAL PHENOMENA, UAP. 미군 당국이 UFO 대신 사용하는 용어)이 2004년 이후 400건 발견되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 현상들이 지구가 아닌 다른 곳, 즉 외계에서 기원한 사건이라는 물질적 증거는 단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다고도 보고했다. 전문가들은 UAP 또는 UFO 목격 사례 급증이 드론의 상업화와 연관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2021년 6월 갤럽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41퍼센트가 UFO가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이라고 믿는다. (이 수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8월 조사보다 8퍼센트 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이러한 사이비스러운 헛소리들의 바탕에는 과학의 오용, 과학에 관한 오해, 나아가 과학에 대한 반감이 있다는 진단을 바탕으로 세이건 스스로 생각하는 과학의 본질, 과학의 정신이 무엇인지 해설해 나간다. 세이건이 볼 때 과학의 핵심 정신은 인간은 반드시 잘못을 저지고 인간의 마음과 사고는 함정에 빠지기 쉬우면 심지어 자기마저도 속이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놓고 비판 정신을 단련해 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세이건은 20세기 후반 미국 사회 및 문화를 휩쓴 유사 과학 이야기에서 벗어나 수천 년간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종교인과 지식인이 온갖 논리로 옹호해 온 노예제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수많은 죄 없는 노파와 소녀를 불태워 죽인 유럽 문명 특유의 마녀 사냥이 어떻게 시작되고 확산되고 소멸했는지, 과학 기술을 추앙하고 발명가를 선망했던 ‘양키적 천재성’으로 가득했던 미국의 교육이 반과학으로 돌아선 게 무엇 때문인지, 인류 역사와 문화에서 다양한 사례를 골라 소개하면서 잘못된 사고의 함정에 빠진 인간이 어떤 오류를 범해 왔는지 생생하게 보여 주고,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데 회의주의적 사고와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려 낸다. 칼 세이건에게 있어 과학은 반증 가능성이라는 개념과 실험을 통한 검증이라는 실천을 통해 인간이기에 가진 필연적 오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비판 정신을 고양해 간다.

 


 

이 유사 과학이 발호(跋扈)하고 유행하는 원인을 세이건은 과학 교육을 포함한 과학 대중화의 결여로 진단한다. 그리고 책 곳곳에서 과학 대중화를 등한시하는 학계의 과학자들을 질타한다. 그렇다면 과학과 유사 과학의 차이는 무엇이고, 유사 과학이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마도 과학과 유사 과학의 가장 큰 차이는 과학이 유사 과학(또는 ‘무오류’의 계시)보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오류 가능성을 훨씬 더 신랄하게 인정한다는 점일 것이다. 만약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오류(또는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잘못)는 영원히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용기를 내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 생기는 서운함이나 안타까움을 반성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면, 우리의 가능성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참'이다.

저자의 책 속에서의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과학을 보급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과학에서 이루어진 위대한 발견에도 온갖 우여곡절(迂餘曲折)이 있었음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어떤 오해가 있었고, 어떤 경로 변경이 있었으며, 변화를 완고하게 거부하는 이들과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이 연구 현장에서 어떤 갈등을 벌였는지 진짜 역사를 전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과학 교과서, 아니 대부분의 교과서가 이런 역사를 잘 다루려 하지 않는다. 인간은 몇 세기에 걸쳐 끈기 있게 집단적으로 자연을 조사해 왔고 그 결과를 증류해 왔다. 물론 온갖 일들로 점철된 이 증류 과정을 미주알고주알 상세히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미 완성된 지혜를 화려하게 소개하는 편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은 겉보기에 다루기 번거로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방법이야말로 발견 자체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다."

 


 

『코스모스』를 비롯해서, 칼 세이건이 평생 펴낸 30여 권의 책들은 그의 이 진단과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가 방대한 저술들을 통해 펼친, 과학 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은 과학자들의 이야기와 발견, 코스모스에 대한 탐구가 실제로는 인간에 대한 탐구라는 가르침 들은 그를 20세기 최고의 과학 전도사로, 과학 저술가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사반세기가 지난 2020년대에도 최고의 과학자로 기억하게 만들고 있다.

 

저자 :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년 11월 9일∼1996년 12월 20일)

1934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우크라이나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인문학 학사, 물리학 석사, 천문학 및 천체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 대학에서 유전학 조교수, 하버드 대학교 천문학 조교수를 지냈다. 그 후 코넬 대학교의 행성 연구소 소장, 데이비드 던컨 천문학 및 우주 과학 교수,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의 특별 초빙 연구원, 세계 최대 우주 동호 단체인 행성 협회의 공동 설립자 겸 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의 자문 위원으로 매리너, 보이저, 바이킹, 갈릴레오 호 등의 무인 우주 탐사 계획에 참여했고 과학의 대중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저술과 방송을 통해 세계적인 지성으로 주목받았다. 행성 탐사의 난제들을 해결한 공로와 핵전쟁의 영향에 대한 연구와 핵무기 감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NASA 공공 복지 훈장, NASA 아폴로 공로상, 미국 우주 항공 협회의 존 에프 케네디 우주 항공상, 탐험가 협회 75주년 기념상, 소련 우주 항공 연맹의 콘스탄틴 치올콥스키 훈장, 미국 천문학회의 마수르스키 상 그리고 1994년에는 미국 국립 과학원의 최고상인 공공 복지 훈장 등을 받았다. 그 외에도 과학, 문학, 교육, 환경 보호에 대한 공로로 미국 각지의 대학으로부터 명예 학위를 스물두 차례 받았다.

그의 저서 「코스모스(COSMOS)」(1980년)는 전 세계 출판계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평가받았고, 30여 권의 저서 중 「에덴의 용(THE DRAGONS OF EDEN)」(1978년)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외계 생물과의 교신을 다룬 소설 「콘택트(CONTACT)」(1985년)는 1997년에 영화로 상영되어 전 세계에 감동을 선사했다. 이 외에도 「우주의 지적 생명(INTELLIGENT LIFE IN THE UNIVERSE)」(공저, 1966년), 『UFO, 과학적 논쟁(UFO’S: A SCIENTIFIC DEBATE)』(공저, 1972년), 「코스믹 커넥션(THE COSMIC CONNECTION)」(1973년), 「화성과 인간의 마음(MARS AND THE MIND OF MAN)」(공저, 1973년), 「브로카의 뇌(BROCA’S BRAIN)」(1974년), 「다른 세계들(OTHER WORLDS)」(공저, 1975년), 『지구의 속삭임(MURMURS OF EARTH)』(공저, 1978년), 『혜성(COMET)』(공저, 1985년),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길(A PATH WHERE NO MAN THOUGHT)』(공저, 1990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1994년),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 HAUNTED WORLD)」(공저, 1995년), 「에필로그(BILLIONS & BILLIONS)」(1997년, 사후 출간),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THE VARIETIES OF SCIENTIFIC EXPERIENCE)』(2006년, 사후 출간) 등을 썼다. 평생 우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일구었던 그는 1996년 12월 20일에 골수 이형성 증후군으로 시작된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 이상헌

서강 대학교에서 칸트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기술의 대융합』, 『인문학자, 과학 기술을 탐하다』, 『따뜻한 기술』, 『싸우는 인문학』(이상 공저), 『융합 시대의 기술 윤리』, 『철학자의 눈으로 본 첨단 과학과 불교』, 『철학, 과학 기술에 말을 걸다』, 『철학, 과학 기술에 다시 말을 걸다』 등이 있다. 현재 서강 대학교 전인 교육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 : 앤 드루얀(ANN DRUYAN)

미국 항공 우주국(NASA) 보이저 성간 메시지 프로젝트의 기획자였고, 2005년 러시아 ICBM으로 발사된 솔라 세일을 활용한 최초의 심우주 탐사 우주선의 프로그램 기획자였다. 작고한 남편 칼 세이건과 함께 1980년대에 「코스모스」 텔레비전 시리즈를 만들어서 에미 상과 피보디 상을 받았고, 공저로 6권의 책을 써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렸다. 드루얀은 또 워너브러더스 제작, 조디 포스터 주연, 밥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 「콘택트」를 공동 제작했다. 폭스 채널과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이 제작한 「코스모스: 스페이스 타임 오디세이(COSMOS: A SPACE TIME ODYSSEY)」의 대표 제작자, 감독, 공동 저술가로 2014년 피보디 상, 미국 제작자 조합상, 에미 상을 받았다. 에미 상 13개 부문에 오른 「코스모스: 스페이스 타임 오디세이」는 전 세계 181개국에서 상영되었다. 드루얀은 2020년 전 세계 동시 방영된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COSMOS: POSSIBLE WORLDS)」을 제작, 감독했으며, 이 다큐멘터리의 동명 원작을 책으로 펴냈다. 소행성 세이건(2709)과 드루얀(4970)은 결혼 반지 같은 궤도로 영원히 함께 태양을 돌고 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는 20, 21, 24, 25장을 함께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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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박소현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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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는 중견작가 박소현의 수필집이다. 등단 20년 세월 동안 그만의 맛과 향으로 숙성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온 저자의 그동안의 많은 글들처럼 담담한 언어를 통해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이 수필집 제목에 쓰인 '윤슬'처럼 그의 글들은 2022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고향의 풍경 같은 그들로 문학적 향기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다하며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이르는 순우리말이다. 저자의 고향(남해) 바다 해녀들이 물숨을 참아내며 삶을 이어가듯, 그 역시 기나긴 시간 속 “한 줄 문장을 찾아 문학의 숲을 유영”하며 수필의 씨앗을 건져내었다. 문학과 철학, 인문학과 예술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견고한 문장에서 삶의 깊이를 엿볼 수 있어서 그의 글은 우리의 가슴에 깊이 적셔든다.

 

 

저자는 이번 두 번째 수필집의 끝을 시인과의 대담 두 편으로 마무리했다. 첫 번째는 세상에 와서 억울하게 죽어간 넋들을 위한 헌화가를 부르는 ‘시대의 무당’이 되길 자청한 강은교 시인과의 대담, 두 번째는 제주 4·3의 슬픈 역사를 알리는 부드러운 전사 허영선 시인과의 대담이다.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꺼이 글로써 담아내는 두 시인과의 대담을 통해 저자는 윤슬처럼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에 대한 사랑을 보낸다.

저자의 이야기는 늘 그렇듯 ‘특별’하지 않다. 누구나 탐낼 만한 부나 명예, 쉽게 겪어볼 수 없는 경험을 자랑하듯 늘어놓는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평범한 순간을 포착해 그만의 시선으로 문학을 빚어낸다. 그래서 그의 글은 삶과 밀착해 있으며 읽는 이의 마음에 쉽게 다가간다.

 


 

누구의 삶이든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바로 문학은 되지 않는다는 박상률 작가의 추천사처럼, 박소현의 수필은 흔하디흔해 미처 소중한 것인 줄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 물결에 빛나는 윤슬로 탄생시킨다. 거기서 함께 빛나는 것이 저자의 “그 사랑의 마음"이다. 앞으로도 ‘작가 박소현’을 가능케 하는 근원적 에너지”가 될 것이다. 매일 똑같은 하루에 번아웃을 겪는 이들, 평범한 일상 속 빛나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이 수필집 『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는 담담한 사랑의 언어로 위로의 손길을 뻗는다.

한껏 취해 읽다보니 바둑 이야기가 나온다. 독자도 취미로 바둑을 즐기는 편이라 눈이 더 커진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가로 19줄, 세로 19줄, 361개 교차점의 바둑판 위에서는 흑과 백의 치열한 진검승부가 벌어진다. 수많은 묘수와 전략으로 공격과 방어가 난무한다. 하지만 바둑에서는 신의와 절개는 있어도 배신이나 변절은 없다고 한다. 경기가 시작되면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에게 주어진 바둑돌을 놓아야 하듯 우리는 매 순간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았을까. 그 선택이 성공이든 실패든 자기 앞에 놓인 삶의 한 부분임에야···."

 


 

여기까지는 바둑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음의 글은 "지난날들을 복기(復棋)한다면 성공을 백으로, 실패를 흑으로 봤을 때 우리네 인생은 흑일까 백일까? 남편과 함께 바둑 삼매에 빠졌던 오빠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그때 당시 신입사원이나 다름없던 서른 살의 남편은 얼마 전 퇴직을 하고는 인생 2막을 향해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앙증맞은 얼굴로 엄마 아빠를 부르며 아장아장 걷던 아들은 모자란 잠에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얼마 전 입사한 직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가고 있다.(p.31~32)

남편과 바둑 사랑이야기가 뒤따른다. 남편이 바둑대회에서 상으로 받아온 바둑판을 애지중지하던 아끼는 물품인데 그 바둑판에 어린 아들이 이마를 찧어 스무 바늘이나 꿰매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 후 남편이 말없이 바둑판을 말없이 다용도실로 옮겼을 때를 회상한다. "화려한 월계관을 쓰고 보무도 당당하게 집으로 왔던 그 바둑판은 아들의 이마에 상처를 냈다는 불명예를 쓴 채 그렇게 방치됐다" 친정오빠도 바둑을 좋아해 두 분이 만나면 곧잘 바둑을 즐겼는데 사건 이후 휴대용 바둑판을 이용한다니 남편의 속마음을 궁금해 한다. 그러던 남편이 이제는 정년 퇴직을 하고, 아들은 얼마 전 입사한 직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가고 있다는 보통의 가정의 일상사로 담담하지만 애틋한 정감이 솟아나온다.

 


 

남해 출신의 한 작가가 해녀 이야기를 안 쓸 리 없다. 해녀는 우리 어머니의 삶이고 우리들의 삶이고 우리 아이들의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우리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문학 소재다. 저자는 자신의 문학 방정식으로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상징적·은유적으로 풀어낸다. "어느 험준한 골짜기를 헤매다 온 바람처럼 해녀들의 몸에 새겨진 거친 생존의 무늬들. 그녀들이 토해낸 설움들을 껴안아주느라 바다는 저렇게도 울부짖고 있는 것일까? 포구엔 먹이를 찾아 모여든 갈매기들의 군무가 황홀하다. 저들도 생존의 한가운데에서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이 바다를 찾았으리라.

삶은 고해라고 했던가. 얼마나 많은 시름들이 그녀들의 가슴에 머물다 간 것일까. 힘겨운 삶의 파도를 헤쳐 온 그녀들의 이야기가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 내면의 상처가 깊은 사람은 더 깊은 동굴 속으로 침잠한다. 우리는 손 안에 그 무언가를 더 많이 움켜쥐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숨을 참으며 견뎌냈을까. 어떻게 해야만 그것들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을까. 삶이란 어쩜 모범답안을 찾지 못한 시험 같은 게 아닐까? 나는 오늘 이 바다의 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다.(p.75~76)

 


 

「달려라 장 여사」에서는 어머니의 삶을, 자식 사랑을 표현해 내면서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기도 한다. 누구나 공감하는 어머니의 사랑과 삶을 담담하게 표현한 것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어머니도 여자란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살았다.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홀로되신 어머니에게 행복은 자식들이 무탈하게 살아가는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자기 몸속에서 자라던 새끼들에게 몸을 다 파 먹히고 빈껍데기가 되어 생을 마감하는 다슬기처럼 자식을 위해 온 생을 다 바친 내 어머니 장채란 여사. 어쩌다 한 번이라도 안아드릴라 치면 삭정이 같은 몸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어머니에게도 행복했던 봄날이 있었을까? 오늘따라 거친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어머니 삶의 궤적들이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다.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옛날처럼 힘찬 달음질로 달리고 달려서, 어머니가 우리 집으로 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머니 심장 같은 하얀 봉투를 가만히 만져본다. 어머니 따스한 체온이 손끝으로 전해오는 듯하다. 나는 어쩜, 아주 오랫동안 이 봉투 속의 돈을 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눈물 같은 이 소중한 사랑을.(p.170~171)

 


 

얼마 전 읽었다는 소설 『웨이 백』을 통한 사색은 자유, 민주주의, 전쟁, 탈북자 등으로 확대되며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의지를 훌륭하게 솎아낸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역사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자유를 향한 외침이다. ‘티베트의 자유’를 요구하며 분신하는 티베트의 젊은이들, 시리아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극한 투쟁, 4 · 19 때 우리 젊은이들의 피 흘림,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내려온 탈북자들. 이 모든 것은 자유라는 종착역을 쟁취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도 알고 보면 결국은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종교개혁은 신앙의 자유를, 르네상스는 예술에서의 자유를."(p.110~111)

 

저자 : 박소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바다를 놀이터 삼아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 했으며 2002년 『책과 인생』에 수필 「가지 않는 길」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 수혜자로 2회 선정되었으며(2008, 2020년) 경북문화체험전국수필대전 대상, 해인문학상 대상 등을 받았다. 국제PEN,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종합문예지 『에세이 문예』에 ‘박소현의 명작 산책’을 연재하고 있다. 수필집 『별들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 『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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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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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지울 수 없는, 그렇게나 빛나는 시들을 보았는가? 우리에게 잊히지 않는 세계의 시를 한 권으로 읽는다. 이 책을 촘촘히 읽다보면 위대한 시인들은 왜 시를 썼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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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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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짓지도, 잘 읽지도 않는 독자가 어느 날 갑자기 『시의 역사』을 읽자고 달려들었다. 평소 시와 멀리 하는 생활을 하지만 아직도 젊은 날의 '시'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올라와서다. 사춘기를 지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감성이 한창 높은 시기에 우리들은 '시'에 대해 막연한 동경심, 그리고 아름다운 언어의 조합을 감탄하면서 시를 읽는다. 그리고 한 편쯤 써보자고 노트에 끄적끄적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감성에 치우쳐 감정 섞인 몇 마디 써놓고는 더 이상 잘 나가지 않는다. 한숨을 내쉴 때도 있다. 시란 아무나 쓰는 게 아니구나... 그러나 그 시에 대한 미련이나 동경은 삶의 일상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계속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를(번역시) 놓고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짧은 시는 무조건 외워보기도 한다. 그러다 한 권 두 권 시집을 사다 읽어보기도 한다. 또 세계 명작 시집이 나오면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필사도 해보고 읽기도 하면서 시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않는다. 독자의 청춘 시절 경험했던 일들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시란 무엇인가'부터 정리해두어야 할 듯하다. 사전에서 '시(詩)'에 대해 찾아본다. 간단하게 한 줄로 표현한 사전도 있고, 장황하게 시의 형식, 시의 역사까지 늘어놓은 책도 있다. 국어사전에는 대체적으로 "자신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 및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라고 풀이돼 있다.

 


 

백과사전류에는 장황한 설명이 들어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에 어려움이 있어서겠지만 시의 기원, 형식적 구분(서정·서사·극시), 시의 시대적 구분, 시의 변천 등을 함께 다루어 설명한다. 두산백과는 시대적 분류를 하면서 서양의 시의 변천사를 기술했다. 이에 따르면 서양의 시는 호메로스의 작품이라는 그리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BC 800?)에서 비롯된다. 두 가지가 다 트로이전쟁을 제재로 하여 반전설적인 영웅들의 활약상을 그린 장편시로서 그 후 서양 서사시의 교과서가 되었다.

이 두 서사시로 출발한 그리스 문학은 서사시·서정시· ·산문의 순으로 새로운 문학형식을 완성해 나갔는데 그 서사시 시대는 앞에서 말한 호메로스와, 교훈서사시 《일과 나날》의 작자 헤시오도스에 의해 대표된다. 이어서 BC 7세기에서 BC 6세기에 걸쳐 서정시의 시대가 오는데 사포와 아르카이오스 두 사람의 작품이 두드러진다. 특히 사포는 그리스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명성이 높다. 그 후 그리스 문학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등 3대비극시인의 등장으로 극(劇)문학은 최전성기를 맞이하지만, BC 4세기의 산문시대 이후 시는 거의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리스의 시에서 배운 로마 시인들 가운데에는 BC 1세기의 철학 시인 루크레티우스와 서정시인 카툴루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3대시인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가 유명하다.

 


 

굳이 백과사전을 들춘 이유는 이 책 『시의 역사』 역시 서양시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 특히 고대시의 기원이나 발전 과정에 대표적 시와 시인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두산백과에는 베르길리우스는 『목가(牧歌)』 『농경가(農耕歌)』 그리고 로마 건국의 서사시 『아이네이스』 등 3대 작품을 썼다. 호라티우스는 카툴루스로 시작되는 로마 서정시를 완성시켰으며 오비디우스는 사랑이야기를 꾸미는 데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고 기술돼 있다. 이 책에도 앞 부분에 「길가메시 서사시」를 시초로 보고 있다는 부분만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앞에 붙였다. 독자는 학교 다닐 때 세계 최초의 서사시로 「일리어드」, 「오디세이아」로 배웠지만 이보다 앞서 바빌로니아 문명의 지금 이라크 지역에서 「길가메시 서사시」가 적힌 발굴돼 일부 해석됨으로써 세계 최초 서사시를 「길가메시 서사시」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우리는 왜 시를 읽을까?란 진부하지만 버릴 수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영문학의 거장 존 캐리가 주관적인 관점에서 써내려간 시 한 편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따듯한 위로를 건네줄까?에 대한 답을 대신해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주의 깊게 읽다보면 우리가 '문학의 원형'이라고 하는 고대시가 수천 년이 흘렀는데도 잊히지 않는 시의 생명력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에 대한 해답도 독자들이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현재를 사는 우리는 누가 지었는지, 왜 지었는지, 어떤 독자나 청중을 염두에 두고 지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고대의 서사시를 여전히 명작으로 받아들이며 그 의미를 곱씹고, 때론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다. 신과 영웅, 괴물, 전쟁, 모험, 종교, 죽음, 사랑, 정치 등 인간의 삶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로 쓰인 시는 현대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과 동떨어진 세계를 그리는데도 그 옹골진 파노라마는 쉽게 빛바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시가 갖고 있는 매력이자 신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저자 존 캐리가 고대의 서사시부터 현대시까지 시대별로 두드러진 시인과 그 대표작을 인용, 시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하면서 시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시 읽기의 즐거움을 전해주고자 한다. 물론 시인이 언어의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짧지만 의미와 운율이 조화를 이루는 시를 어떻게 판단하고 받아들일지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 각자의 주관에 따를 수밖에 없다. 똑같은 시를 읽더라도 선호도가 다르고 미학적 판단에는 옳고 그름이 아닌 개인의 의견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시를 읽는다는 것은 곧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생활에서 놓쳐버린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맞닿아 있다. 그런 시들이 고대부터 중세, 그리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속에는 수많은 논쟁과 비판, 그리고 해석이 존재한다. 시어 하나에, 또는 시행 하나에 시인은 어떤 의미를 담으려 했는지, 어떤 맥락에서 그 시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대중에게 널리 읽히는 그 시만의 매력은 무엇인지 등 시대에 따라, 지역(문화권)에 따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시의 변천사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고 속도감 있게 정곡을 찌른다. 영시의 시초가 된 장편 서사시를 출발점으로 삼아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대륙의 문예사조에 따른 변화, 근대의 미국 시인들, 동서양의 만남, 세계대전과 국내외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내는 시인들의 삶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술술 풀어낸다. 시의 형식 또한 끊임없이 변화했는데 주로 구술하거나 노래로 전해진 고대에는 특별히 정해진 순서를 따르지 않았지만 이후 두운시, 수수께끼 시, 소네트, 무운시, 대화시 등 다양한 형식이 창안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형식이 어떻게 나타나고 반영되었는지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시라는 프리즘을 통해 투사된 역사의 중요 지점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한 시대를 풍미한 시인의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적 요구 사항을 담아냈다. 점토판에 새겨져 보존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폭군을 질책하고 경고하며,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편들은 후대 시인들에게 극적인 상상력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또한 중세 유럽의 기독교적 신앙이 투영된 시와 찬송가, 서정담시, 그리고 18~19세기를 수놓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들을 거쳐 20세기 초의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형식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여정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사실 이처럼 광범위한 시의 발자취를, 서로 다른 언어와 주제로 쓰인 시를, 수많은 비평가의 논조까지 받아들이면서 작품 또는 시인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시의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써내려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타임스 추천평)

 


 

책에 따르면 시의 역사는 단순히 연대기로 살펴볼 수도 있지만 각각의 주제, 한 시대의 사상적 흐름, 지역 등과 같은 기준으로 읽어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모든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과 죽음은 이 책의 출발점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드러난다. 인간의 본성과 감정에 순순히 따르는 시의 주제는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그중 사랑은 흔히 이성 또는 동성 간, 신 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 여러 형태로 시에서 표현된다. 때로 그것은 명료하고 관능적이고 열정적이다. 불투명하고 슬프고 절망적이기도 하다. 불행한 사랑을 다룬 담시도 있고 찬송가로 불리는 종교적 사랑도 있다. 전쟁 중에는 여성 시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비탄을 시로 썼다. 그토록 많은 사랑시가 한 개인에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어 오늘날까지도 감명 깊은 시로 남아 있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시의 역사는 곧 시인의 역사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한 시인들을 살펴본다. 중세 후반에 위대한 걸작 『신곡』을 쓴 단테, 타국의 문학과 그리스·로마인의 유산을 자신의 시에 녹여낸 『캔터베리 이야기』의 영국 시인 초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서 후대의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셰익스피어, 과거의 낡은 틀을 깨뜨리고 새로운 종류의 시를 발명한 미국 시인 휘트먼과 디킨슨, 현실로부터 도피해 예술, 신화,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한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 등이다.

 


 

왕정 시대에서 종교적 가치가 우선된 중세를 지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분야의 대변혁에 호응한, 18~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시인들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부분이다. 17세기 말 영국의 권력 기반이 요동치는 중에 드라이든과 포프는 엄격한 양식의 시를 쓰면서 신고전주의자로 불렸다. 그리고 18~19세기에는 독일과 영국에서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선연했다. 낭만주의를 발명한 괴테에서 하이네, 그리고 릴케가 독일의 시를 주도했고 영국에서는 워즈워스와 콜리지, 키츠, 셸리, 블레이크, 바이런 등이 개성 강한 시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세기 후반에는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등과 같은 상징주의 시인들이 득세했고 20세기 초에는 엘리엇과 파운드가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개인에 기반을 둔 모더니즘의 길을 열었다. 또한 미국, 스페인, 칠레, 멕시코 등 다양한 국가에서 주목받는 시인들이 등장하고 동양의 시가 영어권에 번역 소개되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대다수 시인들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알게 된다.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거나 성장배경이 불우했거나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해 생을 마감한 시인도 있다. 그런 중에도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희망을 짧은 시어로 그려내고, 때로는 시대의 부조리와 깊은 고뇌를 오롯이 뿜어냈다. 이 책은 또한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장벽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려보고자 하는 바람에서, 인용된 시들의 영어 원문을 함께 수록했다. 평소에 시를 읽지 않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흥미로운 교양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20세기는 세계사에서 가장 정치화된 시기였다. 그 시작은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이었고,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세워졌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종족 학살을 저지른 파시즘 독재정권이 세계 정복을 목표로 독일에 들어섰으나 1939~1945년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전쟁은 유럽의 식민주의 열강의 힘을 약화시켰고, 신흥국가들이 독립을 추구하면서 제국들이 해체되었다. 전 세계의 민족국가 수는 약 50개국에서 200개국으로 늘어났다.(p.476)

 

저자 : 존 캐리(JOHN CAREY)

옥스퍼드 대학교 명예교수. 비평가, 도서 평론가, 방송인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맨부커상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지식의 원전(THE FABER BOOK OF SCIENCE)」, 「역사의 원전(THE FABER BOOK OF REPORTAGE)」 등을 엮었고, 지은 책으로 「필독 실낙원(THE ESSENTIAL PARADISE LOST)」과 「예술의 효용(WHAT GOOD ARE THE ARTS?)」, 존 던과 에밀리 디킨슨 연구서, 윌리엄 골딩의 전기가 있다. 회고록 「뜻밖의 교수(UNEXPECTED PROFESSOR)」는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며, 최근에는 「100명의 시인들(100 POETS)」을 집필했다.

 

역자 : 김선형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르네상스 영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이노센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프랑켄슈타인」, 「시녀 이야기」, 「미 비포 유」, 「수치」, 「도롱뇽과의 전쟁」, 「캐주얼 베이컨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센서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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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푼 영화 - 술맛 나는 영화 이야기
김현우 지음 / 너와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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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도 술깨나 마신 사람 중에 속한다. 예전 이야기다. 지금은 '너무' 많이 마신 탓으로 술이 가져오는 부작용 등에 노출돼 의사로부터 경고를 여려 번 들은 후에야 겨우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물론 몸이 회복될 때까지지만. 술은 의학적으로 5년 이상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아야 그동안(5년) 술을 끊은 것으로 인정해준다는 말도 들었다. 의사가 알기 쉽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하는 말인 줄 뒤늦게 알았지만. 의학적으로 알코올에 중독될 경우 현재까지의 치료 방법으로는 죽을 때까지 한 잔도 마시면 안 된다고 책에 쓰여 있다. 알코올 중독은 진행성 질병이라 오랫동안 안 마셨다고 해도 '술을 끊었다'고 표현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의학적 용어로는 '중독'이라는 말이 거부감이 있어 '의존'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영어 표현을 그대로 번역해서 쓴다고도 책에 나와 있었다. '알코올의존증(alcohol dependence)'이라고 한다. 알코올의존증은 개인의 신체적, 사회적 문제를 심각하게 드러내 '공공의 적'이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백과사전에도 풀이돼 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병적인 음주의 양상을 나타내거나 음주에 의한 사회적 또는 직업적 기능 장애와 더불어 내성(tolerance)이나 음주의 감량·중지에 따라 금단 증상(이탈 증상)이 생기는 현상을 가리킨다. 알코올의존증이라는 병명은 최근에 사용된 용어이며 이전에는 만성알코올중독이라 했다. 그러나 음주를 하는 동안에 일어나는 행동상의 변화는 중독의 개념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유럽과 미국에서는 그 행동상의 변화에 주목하여 알코올병(alcoholism)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의사의 말을 직접 듣지 않아도 알코올의 해악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히 알려져 있다. 독자가 서평에 왜 알코올의존증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책 『술푼 영화』가 술에 대해 쓰여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다는 알코올이 이렇게 심각한 질병인데 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최근에야 이러한 내용이 알려질 정도로 알코올의 해악을 말하기에는 알코올이 주는 선한 영향력 때문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사실 단순히 술 자체가 좋아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술을 좋아하다 보면, 술기운에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이렇게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습관이 된다. 그래서 알코올의존증을 '습관성 질환'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알코올은 우리 몸속에 들어가면 많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위, 간 등 내장기관은 물론 뇌신경에도 공격을 한다. 이 때문에 알코올 중독을 정신과에서 치료하는 것으로 독자는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 속에도 알코올 중독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영화 〈물랑루즈〉에 나오는 압생트는 독자가 마셔보지도,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술이지만 굉장히 관심이 간다. 압생트라는 술은 술병에 압생트 라벨이 붙어 있고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압생트의 원료인 향쑥의 라틴명 압신티움(absinthium)에서 유래했다. 알코올 도수가 높게는 80도나 되는 강력한 독주였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향쑥은 간질과 환각을 일으킨다고 해서 원산지인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압생트의 위험성은 조연으로 출연한 실존인물인 화가 앙리 드 톨루즈 포트레크의 생애에서 잘 드러난다.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과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진 똑똑한 남자였지만 로트레크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독자가 알기로는 화가 고흐도 이 술을 함께 즐겨 마셨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김현우는 '영화인'이다. 작가로도 영화제작사의 대표이사와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다. 저자도 영화 못지 않게 술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책이 영화 이야기보다는 술 이야기에 치우쳐 있어 하는 말이다. 읽다 보면 '세계의 모든 술'을 설명할 듯하다. 저자는 책에서만큼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한다. "무언가를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 또는 남보다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전문가스러워지고 싶을 때, 대부분 다양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찾아 읽고, 듣고, 스크랩하여 각기 나름대로의 정보를 축적하게 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것’의 이야기는 거의 ‘탄생’이나 ‘기원’부터가 그 시작이다. 그런데 다들 그렇지 않나? 우린 어떻게 태어나서… 이런 부분보다는 ‘그래서 하루아침에 뒤바뀌게 되었단 말이지’… 대충 이런 부분에 주목하게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무엇이든 정해진 룰보다는 변주곡이 가능해야만 대중의 흥미 역시 가능하다. 술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술에 관한 어떤 다양한 사실과 재미를 내 안에 쟁여놓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면 주저 말고 『술푼 영화』를 펴면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 술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술에 대한 배경을 알고 나서 그것을 마셔보는 경험도 덤으로 즐겨보시길." 독자도 한때는 술을 '지나치게' 좋아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흥미를 느낀다. 특히 세상의 모든 술에 대한 설명은 듣고만 있어도 즐겁다. 지금은 아쉽지만 언젠가는 마실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술이나 영화에 관한 깊이 있는 전문서적이 아니다. 좋은 영화를 리뷰하거나 강력하게 추천하는 내용도 아니다. 그저,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도 편히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친구 같은 에세이다. 읽다 보니 그 영화가 다시 보고 싶고… 가끔 그랬었지, 라는 추억이란 것도 돋고… 그래서 알고 마시니 그 술맛이 좀 더 좋아지고… 그렇게 쉽고 부담 없이 꺼내 보고 싶은 이야기 한 편씩을 엮었다. 굳이 저자의 말이 아니라도 이 책 전체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잘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얽힌 '썸씽 스페셜' 이야기다. 영화 내용과 출연 배우들의 이야기를 거쳐 본 내용에는 이 술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주인공 입에서 엉겹결에 튀어나온 '스페샬'이라는 단어가 연결고리다.

"위스키에도 등급이 있따. 발렌타인 17년산, 로얄살루트 등 숙성 기간 15년 이상의 슈퍼 프리미엄(SP)급, 발렌타인 마스터스, 임페리얼 15년 등 디럭스(D)급, 윈저 12년 등 프리미어(P)급 등으로 구분된다. 이제 더 이상 '스페셜'하지 않은 썸싱스페셜은, 사실 태생부터도 가장 가격대가 낮은 스탠더드(S)급이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된 1991년 당시 썸싱스페셜은 이름 그대로 아주 특별한 술이었다. 광고 카피도 한껏 오만했다. '많은 분들께 제공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술의 팔자가 아닐 수 없다."(P.19)

 


 

저자가 영화인이자 작가란 말대로 그의 영화와 술에 대한 지식은 보통 사람들보다 매우 엄청나다는 사실을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또 영화 속의 술 이야기는 영화를 더 기억하게 또는 필요한 장치로 사용되었을 것이란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저자는 영화 속의 술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이 책도 술 이야기로 집중되는 것 같다. 물론 술을 많이 마시라는 광고 차원의 책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속의 저자가 사랑했던 술 이야기를 덧댄 것으로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기억속에선가, 아니면 책쓰기 때문인지 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 책을 집필한 것처럼 느껴진다.

동서고금의 잘 알려진 영화 속 술 이야기니 대체적으로 영화가 생긴 이후의 술 이야기가 맞다. 술의 무한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은 그 술을 마셔본 사람도, 마셔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흥미롭다. 몰랐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으니 호기심 충족과 함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곁들이니 '안주 없이 술 마셔도(읽어도) 좋을(재미있을) 책'이다. 독자는 세상 모든 술을 다 줘도 바꿀 수 없는 술이 있다. 바로 '소주'다. 저자는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여주인공 배우 손예진이 한 잔 '원 샷'을 계기로 술 이야기와 연결한다. 그야말로 '술맛 나게' 만드는 장면이다. 그러나 독자는 우리 술 소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술 회사 '진로'라는 브랜드이고, 한때 유행했던 CM송이 기억난다. 소주는 당연히 우리 '국민술'이었고 무엇보다 값이 쌌다. 그래서 가벼운 주머니에 알맞은 술이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에 열중할 때 산업 현장 최일선에서 뛰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위안주' 성격을 띠기도 했다.

 


 

국내에서 양주 수입이 허가되지 않았을 때도 간혹 양주를 시중에서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바로 '진빔'이나 '조니워커'라는 술이었다. 둘 다 위스키 종류였던 것 같다. 이 이야기도 이 책에서 빠지지 않는다.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란 영화를 저자는 가장 섹시한 남녀 배우의 만남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영화 속 인연은 콜롬비아의 어느 술집에서 이루어진다. 임무를 끝낸 킬러 존(브래드 피트)은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런데 혼자 여행하는 외국인 암살자를 쫓는 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이번에는 역시 임무를 마친 듯한 여자 킬러 제인(안젤리나 졸리)이 술집으로 들어온다. 두 킬러는 일행인 척하며 위기 상황을 모면한다. 당연히 남녀는 함께 술을 마신다. 영화 속 두 남녀는 결혼도 하고 잘 지내다 서로의 직업을 숨긴 채 6년을 산다. 그러다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가 실패함으로써 알게 된 두 사람의 정체. 그리고 남자를 죽이라는 동료의 조언에 괴로워하는 여자. 제인이 존과의 지난 사랑을 회상하며 마신 술이 바로 '조니워커 레드'다.

저자는 이 술의 원산지와 활약, 현재의 위치까지 모두 좔좔 꿰고 있다. 조니워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사람은 존의 아들 알렉산더다. 영국 내수용과 수출용이 각각 다른 이름으로 판매되던 술을 1908년 조니워커로 명명하고 레드 라벨과 블랙 라벨로 분리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애주가라면 조니워커의 상징인 '스트라이딩 맨'을 알 것이다. 만화가 톰 브라운이 그린, 실크해트를 쓰고 지팡이를 든 남자. 그의 모습은 활기차고 미래 지향적인 조니워커의 상징이다. 스트라이딩 맨도 알렉산더가 처음 만들었고 1996년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이 책에는 모두 44개의 영화와 같은 수의 술이 소개된다.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술이 멋진 인테리어로 디자인된 주류상점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한때는 수입금지 품목이었고(산업화 과정에서 사치품으로 분류됨), 지금은 우리가 만들어서 파는 술보다 더 많이 소비될 것이다. 술이 삶의 한 부분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과, 어두운 곳에서 악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는 마시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한자로 술을 표시하는 '酒'는 한자를 풀어보면 '물 수, 닭 유'자다. 닭이 물 마시듯이 조금만 마시라는 의미란다. 독자에게 누군가 술 좌석에서 해준 한마디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술과 어울리되 경쟁하지 마라."

 

저자 : 김현우

 

영화 만드는 사람이면서 글 쓰는 사람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범죄 누아르 영화 〈악마를 보았다〉를 시작으로 〈신세계〉, 〈브이아이피〉, 〈시간 위의 집〉, 〈살인소설〉, 〈뷰티풀 데이즈〉, 〈마녀: PART 1. THE SUBVERSION〉, 〈낙원의 밤〉, 〈미드나이트〉 등 많은 한국 영화를 제작한 ㈜페퍼민트앤컴퍼니의 대표이사이자 프로듀서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 콘텐츠투자 부문 이사, 산수벤처스㈜ 대표이사를 역임한 벤처캐피털리스트이며, 한국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작품인 〈명량〉을 비롯하여 〈국제시장〉, 〈설국열차〉, 〈수상한 그녀〉, 〈괴물〉 등 많은 흥행작에 투자자로 참여했다. 영화 이외에도 공연, 패션쇼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기획, 제작했다. 여성 잡지, 패션 잡지, 스포츠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소프트뱅크미디어에서 발행한 디지털 경제·문화 매거진 ENABLE 편집장으로 2000년대 닷컴 벤처 붐의 중심에 있었다.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첫 직장은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글로벌 IT기업의 엔지니어였으나 3개월 만에 사표를 던진 것을 시작으로 10여 차례 취직과 사직을 경험했고, 일찍이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며 드라마틱하게 살았다. 최애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의 말미에 나오는 ‘꿈꾸지만 말고 행동하라’는 문구를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다. 현재 영화 〈마녀 PART 2. THE OTHER ONE〉이 개봉됐으며, 아울러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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