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자라는 집 - 임형남·노은주의 집·땅·사람 이야기
임형남.노은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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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인간 삶의 필수요건인 의식주 중의 하나이다. 집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밥이나 옷과 같은 필수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다. 시대에 따라 의식주 3대 요소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지만 삶의 필수요건에서 한 번도 빠질 수 없는 절대적인 요건이다. '요즘은 집 없이도 사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의 개념이 변화하긴 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은 '집'의 개념을 단순 주거지로서의 개념으로 보는 입장에서 하는 말이지, '신변 안전과 휴식'을 위한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독자는 후자의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집의 개념에 더 가깝다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족이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능력이 없어 집을 못 사는 경우는 있어도 필요치 않아서 안 사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 현재 생활 공간인 남한 쪽만 생각해보면 인구밀도가 세계 최상위권에 해당한다. 이를 사람이 밀집해 사는 도시의 경우로 국한해보면 인구밀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그러니 집값이 평생 벌어도 마련하기 힘들 정도로 뛰는 이유이기도 하다. 집은 적어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주거나 휴식의 개념에 '축재', '이재'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이유도, 땅값·집값이 폭등하는 이유도 모두 한정된 공간에서 높은 인구밀도가 빚어낸 결과라는 주장엔 반박할 공간이 없을 것 같다. 건축가인 저자도 집을 짓는다는 것은 기초를 깔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붙이고 지붕을 덮는 물리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가족의 생활을 깔고 가족의 이야기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한다고 한다. 집은 엄마 혹은 고향 같은 단어처럼 온도를 가지고 있다. 건축은 어딘가 차갑고 무뚝뚝한 구석이 있지만, 집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따뜻해진다. 특히 ‘우리 집’이라는 말처럼 좋은 말이 또 있을까? 집은 땅과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이다. 지금도 집은 자라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듯이 집은 자랄 것이다. 그리고 그 집은 나무처럼 열매를 맺고 자랄 것이다. 집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가 담기고 역사·문화까지 고려한 말이다. 단순히 축재나 이재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그 집은 역사가 담길 수도, 우리 삶의 이야기들이 담길 공간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건축에는 시간이 담긴다고 강조한다. 어떤 찰나일 수도 있고, 어느 길고 긴 시간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의 생각일 수도 있다. 저자는 건축은 타임캡슐이라는 입장이다. 좋은 시간이든 나쁜 시간이든 건축에는 그런 시간들이 담긴다. 그래서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고, 그 안에서 살아간 사람이 남기는 기록의 저장소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에게 집이란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비와 바람을 피하는 물리적인 껍질만이 아닌, 자아의 실현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진다. 그래서 건축이란 땅과 같은 리듬을 가져야 하고, 주인과 같은 리듬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도 성장하는 것이다. 건축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땅의 이야기를 듣고 그 둘 사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가 쓴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이들이 생각하는 땅과 사람이 함께 '꿈꾸는 집'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에는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집을 설계해온 임형남·노은주의 집에 대한 성찰과 건축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들에게 집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나무처럼 자라고 괴로우면 신음을 내고 즐거우면 모두에게 복이 되는 그런 생물체다. 또 집은 시간이 갈수록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바로 집이라는 공간이고 집이라는 단어이고 집이라는 온도다. 행복은 바로 집에 있다. 체온이 남아 있는 이불 속에, 햇살이 내려앉은 낡은 소파에, 보글거리는 찌개 냄비 속에 있다. 집은 얼었던 마음을 풀어주고 딱딱하게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괜찮아’ 하면서 위로해줄 것만 같은 한없이 넓고 넉넉한 품을 가진 곳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집은 생각으로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집이란 생각의 집적체이며, 집의 이름을 짓는 것은 그 생각을 정리해서 집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집의 이름을 짓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의 자세를 정하는 것이고, 가족의 미래를 꿈꾸는 일이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임형남·노은주가 20년 전에 출간한 첫 책으로, 2022년에 새롭게 개정·증보한 ‘출간 20주년 기념판’이다. 이들은 첫 번째 집을 설계하고 완성한 이후 그 이야기를 담은 첫 책인 이 책을 냈다. 이들은 이 책을 10년마다 개정판을 낸다면 몇 번이나 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나무처럼 자라는 책’이라고 했다. 이들은 집을 한 채 짓고 나면 책을 한 권 쓰고도 남을 만큼 이야기가 모이기 때문에, 그 안에 사는 한 가족이 모두 한 권의 책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의 이야기를 남기기 때문에 100권 정도의 책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집은 땅과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은 최근 10년 동안 집을 지으면서 썼던 글들이다. 집에는 시간이 담기고 이 시간이 모여서 이야기가 된다는 「오래된 시간이 만드는 건축」(제2장)과 집짓기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인 땅, 돌, 나무, 빛 등에 대한 이야기인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제3장)과 충주 산척면 상산마을의 김 선생 댁을 지었던 이야기인 「나무처럼 자라는 집」(제4장)은 초판의 원고를 다듬고 일러스트를 추가로 그려 넣었다. 표지도 앞표지는 20년 전의 표지를, 뒤표지는 20년 후 즉 2022년의 표지를 담았다. 어쩌면 2002년과 2022년이 공존하는 느낌의 표지다. 그만큼 이 책에는 20년이라는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건축가의 새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금산주택은 충남 금산 외곽, 진악산이 마주 보이는 언덕에 있다. 이 집은 거주 면적 43제곱미터(약 13평), 마루 26제곱미터(약 8평)의 소박한 집으로 마루에 앉으면 산이 걸어 들어오고, 발아래 경쾌하게 흘러가는 도로를 내려다보는 시원한 조망을 가졌다. 한옥 같은 느낌이면 좋겠다는 집주인에게 진악산을 바라보는 동서로 긴 집을 권했다. 집의 여러 가지 조건이 600여 년 전의 철학자 이황의 집 ‘도산서당’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 집은 교육자인 집주인과 책들과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들을 위한 집이다. 그리고 서양식 목구조를 적용하되 한국 건축의 공간을 담은 집이다.

 


 

임형남·노은주는 “왜 우리는 우리의 몸에 맞지 않는 집을 원하는 것일까요?”라고 묻는다. 현대인들은 집에 집착하고 집의 크기에 집착한다. 그리고 집도 커져야 사회적 성공을 이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화려한 집에 담기는 것은 빈곤한 마음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집도 사람을 기형으로 만든다. 어느 날 물밀듯이 밀려오는 존재에 대한 회의처럼, 집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집은 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신전과 같은 거대한 집이 아니라 생각이 담긴 집이어야 한다. 금산주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기면서 자연과 조화롭게 마주 보고 있다.

또 제따와나 선원은 강원도 춘천에 있는 ‘처음도 과정도 결과도 즐거운 중도의 집’이다. 당시 선원장 스님에게서 불교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설계의 가이드라인 중 사성제는 고집멸도(苦集滅道), 즉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소멸에 대한 고찰이다. 집착을 통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 공간이므로 사성제가 기본적인 개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중도’라는 개념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다.’ 그래서 과거의 방식과 불교적인 교리를 바탕에 깔되 현대적인 생활 습관에 적합하게 설계했다. 그리고 불교의 기본 정신을 되살렸다. 대부분의 사찰처럼 한옥으로 짓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로 뼈대를 만들고 벽돌로 옷을 입혔다. 그렇게 1년 동안의 설계 기간을 거쳐 공사를 시작했고, 뼈대를 올리고 벽돌을 외부에 쌓고 바닥에 깔아서 무려 30만 장의 벽돌로 공간을 완성했다. 처음도 과정도 결과도 즐거운 중도의 정신이, 집의 안과 밖에 스며든 공간이 완성되었다.

 


 

특히 까사 가이아는 바다색이 아름다운 김녕 바닷가에 제주도의 풍광을 담은 집이다. 건축주는 제주도 토박이 부부로, 제주도 바닷가의 전망 좋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란한 형태와 색채를 집어넣은 집은 결코 짓지 않겠다고 했다. 단지 바다가 훤히 보이는 욕실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바다를 가리지 않으며 바닷바람에 견딜 만한 집을,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제주도의 돌처럼 단단하게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그 자리에 옛날부터 있었던 오랜 집처럼 보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까사 가이아는 무수한 비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제주도의 강인한 여성성을 상징하고, 어머니의 안온한 품처럼 따뜻하고, 바다와 오름 사이를 넘나들며 오가는 햇빛과 바람과 바다라는 제주도의 자연으로 채워졌다. 까사 가이아는 2021년 1월 EBS 〈건축탐구 집 : 그 집으로의 특별한 초대〉에 소개되기도 했다.

책에 따르면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한다. 집이란 짧은 시간 동안 단번에 지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집 자체가 스스로 완성을 유보한 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완성되어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에게 집을 짓는 것을 허락한 땅과 돌과 나무들도 집에 대해서 일정 부분의 몫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집은 사람이 계획하고 쌓고 세워서 짓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의 모양과 공간은 갖추게 되겠지만, 최종 완성은 집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과의 원만한 합의와 조화가 이루어질 때다. 시간은 그렇게 사람이 만들어놓은 건물에서 풀기를 빼주기도 하고, 생경한 색깔을 누그러뜨려주기도 하고, 성질을 눌러주기도 한다.

 


 

이들 건축가는 집에도 격이 있다고 설명한다. 집에도 안에서부터 은은히 번져 나오는 향기가 있다는 것. 산천재는 격이 있고 향기가 있는 집이다. 집이 크지도 깊지도 않다. 그저 빠르게 지나가는 국도변 강가에 앉아 있는 낮고도 단순한 집이다. 그러나 위엄이 있다. 산천재 뒷마당은 지리산 천왕봉이 잘 보이는 몇 곳 중의 하나다. 산천재는 지리산 천왕봉을 쳐다보며 고즈넉이 앉아 있다. 특히 산천재가 지리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좋다. 아무런 자기 주장도 없어 보이는 낮은 집이지만, 집을 드러내지 않고 산의 흐름에 몸을 맡긴 그 모습이 근엄하다. 그리고 절대 낮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위와 어울리는 품위가 있다.(p.238)

 

저자 : 임형남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2014년 ‘루치아의 뜰’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리사랑상을, 2020년 ‘제따와나 선원’으로 아시아건축사협의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공간을 탐하다』, 『건축탐구 집』, 『도시 인문학』,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사람을 살리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 풍경 화첩』 등이 있다. EBS <건축탐구-집>에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고, 최근 ‘이야기로 집을 짓다(이집)’라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했고, ‘금산주택’으로 2011년 공간디자인대상,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제따와나 선원’으로 2020년 아시아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건축탐구 집』,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도시 인문학』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사람을 살리는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등 15권의 저서가 있고,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에 건축칼럼을 집필 중이다. 또한 EBS 〈건축탐구-집〉에 프리젠터로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금산주택(House in Geumsan)〉 〈루치아의 뜰(Lucia's earth)〉, 〈까사 가이아(CASA GAIA〉, 〈제따와나 선원(Buddhist temple ‘Jetavana’〉 등이 있다.

 

저자 : 노은주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2014년 ‘루치아의 뜰’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리사랑상을, 2020년 ‘제따와나 선원’으로 아시아건축사협의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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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대화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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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꽃을 닮았나요?” 꽃을 만나면 떠올리게 될 아름다운 이야기. 유년시절 꽃들에게 배운 언어로 작가는 희망을 노래한다. 독자는 작가의 노래에서 조금은 모나지만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희망을 따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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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대화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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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꽃들의 대화』는 '출판 실험'의 본보기로 인식되는 책이다. 출판(publishing, 出版)이란 문서·그림·사진 등의 저작물을 인쇄, 기타의 방법으로 복제하여 다수 독자에게 발매 또는 배포하는 일을 말한다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독자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인쇄술이 행하여지지 않던 시대에는, 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필사(筆寫)에 의해서 복제되어 소수의 독자에게 반포되었다.

이 시대에는 판매가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소수의 수신자에게 보내거나 보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쇄술(특히 활자 인쇄)의 발명으로 대량 출판의 시대가 열렸고, 지식을 전달하는 출판업은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 대량의 출판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날은 인쇄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컬러는 물론 실물에 가까운 정교한 인쇄로 독자들의 사랑과 인기를 한몸에 받았으나, 이젠 디지털 영상 시대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신문 등 인쇄에 의한 지식 전달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독자가 알기로는 책을 한 권 내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관여하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대량 생산하더라도 출판 전(全) 과정의 비용 등을 감안해 제작 비용이 나오지 않는다면 출판을 담당하는 출판사에서 발행을 꺼릴 것이다. 문학 작품의 경우 시는 수십 편을 함께 묶어야 한 권의 책으로 제작 가능하고, 200자 원고지 80장 안팎의 단편소설도 10편은 넘어야 한 권의 책으로 출판이 가능하다. 이는 독자들이 책값을 지불하고 책을 사서 보는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 같다. 즉, 몇 권 팔릴 것인지를 추정하고 이익분기선을 넘어야 출판사 측은 출판을 결정하지 않겠는가? 단편소설 한 편으로 한 권의 책을 낸 이 책은 실험적 출판물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이 책에 대한 출판사 측 소개글에 따르면 단편소설은 대부분 소설집에 속한 형태로 다른 여러 단편들과 함께 독자들과 만난다. 단편소설 역시 작가가 창조한 하나의 세계인데, 어쩐지 그렇게만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게 작가로서 못내 아쉬웠던 것일까? 단편소설 한 편을 한 권의 완성된 책으로 선보이는 출판 실험을 시도했다. 정사각형 판형에 본문의 문단을 나누고 컬러 일러스트도 함께 담았다. 나누어진 문단은 얼핏 시(詩)처럼 보이기도 하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일러스트는 그림책을 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예전에 외국 작가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이 책처럼 짧은 글(단편소설의 길이보다는 더 길었다)의 우화를 번역해 크게 히트 치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었다.

 


 

저자 서경희는 “단편소설을 이런 방식으로 출간하는 건 나의 오랜 꿈이었다. 나는 내가 쓴 단편소설에 제대로 된 표지와 함께 온전한 세계를 선물하고 싶었다.” 섬세한 저자의 오랜 꿈을 실현시킨 것이다라고 밝힘으로써 출판계의 실험작으로 발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책을 처음 내는 것도 아니다.

앞서 ‘하우스 마루타(부실시공된 아파트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를 소재로 청년들의 눈물 나는 생존 투쟁을 그린 장편소설 『수박 맛 좋아』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단편소설 「미루나무 등대」로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독자들과 처음 만났다고. 「미루나무 등대」는 원전마을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에 다문화가정의 문제를 겹쳐놓은 작품으로, 초등학생 소녀를 내세워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낮게 설정해 오히려 어른들의 위악을 부각시킨 점이 높게 평가됐다고. 필리핀 사람인 엄마와 그런 엄마를 ‘이천만 원’이라고 부르는 할머니 사이에서 사라진 엄마를 그리워하며 “내가 등대였다면 엄마에게 길을 가르쳐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소녀의 마음은 애잔하게 독자들의 마음에 와닿았다.

 


 

이 『꽃들의 대화』에도 세상에 태어나 처음 “꽃”이란 말을 내뱉은 소녀가 등장한다. 「미루나무 등대」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역시나 엄마와 할머니가 등장해 작가가 소녀, 엄마, 할머니까지 여성들의 관계에 관심 갖고 창작 세계를 넓히고 있음을 드러낸다. 소설가 윤영수는 이 아름다운 책과 책을 탄생시킨 서경희에 대해 “그녀는 작가다.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재료와 귀한 향료를 섞어 한 방울의 마약을 짜내는 마녀처럼, 그녀는 글 한 줄 낱말 하나를 찾아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아름다운 글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준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 헛되지 않음을 알려준다. 마치 한 송이 꽃처럼.” 하고 추천사를 보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한 말은 ‘엄마’가 아닌 ‘꽃’이었다. 어눌한 발음으로 꽃을 가리키며 ‘꼬오’라고 불렀다. 소녀의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 역시 꽃이었다. 모래로 만든 밥 위에 제비꽃을 점점이 뿌리고 잡초로 만든 국수에는 민들레꽃을 올려놓았다. 소녀가 만들었다는 꽃으로 만든 음식들. 진달래꽃으로 장식한 진흙 케이크, 원추리꽃을 둘둘 말아서 만든 김밥 등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애틋해진다. 어른이 된 소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쓴 〈꽃들의 대화〉 희곡으로 신진작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공연을 준비 중이다. 봄은 벚꽃, 여름은 장미, 가을은 국화, 겨울은 동백. 계절을 꽃으로 나누고 그와 연관된 에피소드를 만든 것이다.

 


 

꽃이 유일한 친구였던 소녀. 말 걸어줄 가족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도 없는 여자. 자신의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그는 원하는 대로 무사히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 산뜻하고 화사한 그림과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화자는 사람을 꽃에 비유한다. “인동꽃”을 닮은 아빠, “작약꽃”처럼 예뻤던 엄마, “새침한 능소화” 같은 동생. 연출은 “어떤 꽃보다 크고 화려하며 고개를 들어야만 볼 수 있는 해바라기”, 볼품없어진 자신의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어주는 규는 “여름철 장독대 옆에 피어 있던 봉선화”다. 그렇다면 화자 자신은 어떤 꽃일까?

“꽃보다 예쁜 밥상을 차리길 좋아하던 할머니, 본인이 꽃보다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엄마”라고 설명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쓴 희곡의 두 주인공 배우와 같이 꽃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으며 그녀는 혼자였던 지난날의 아픔 위에 새로운 추억을 포갠다. 꽃 같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진짜 원하는지 알아갈 것이다. “외롭고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고 싶다.”는 작가의 각오처럼 이 책 역시 혼자인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책이다. 이제 꽃을 마주하는 날이면 독자들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 같은 이야기 『꽃들의 대화』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암만케도 쟈가 꽃에 홀렸지 싶다. 그만 델꼬 가라. 여 더 뒀다가는 사람 구실 몬한데이."(p.10)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유년시절로 돌아간다. 소녀는 다섯 살이 되도록 대여섯 개의 단어밖에 말하지 못할 정도로 말문이 늦게 트였다. 소녀의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는 꽃이었다. 모래로 만든 밥 위에 제비꽃을 점점이 뿌리고 잡초로 만든 국수엔 민들레꽃을 올려놓았다. 진달래꽃으로 장식한 진흙 케이크, 원추리꽃을 둘둘 말아서 만든 김밥은 소녀 스스로 보아도 먹음직스러웠다. 어느 날 학교 화단에서 꽃을 먹다 친구한테 들킨 뒤로 이상한 아이라는 소문과 동시에 아무도 소녀와 놀아주지 않았다. 이후 오랫동안 꽃을 입에 대지 않았다.

 

저자 : 서경희

 

2015년 단편소설 「미루나무 등대」로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하우스 마루타’를 소재로 수박 한 조각 마음 편히 먹지 못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담은 장편소설 『수박 맛 좋아』를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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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 공감의 대화법을 찾아 나선 소심한 라디오PD의 여정
이진희 지음 / 마일스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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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비폭력대화를 만났고, 대화법을 공부하면서 왠지 모르게 불안했던 하루하루가 편안하고 평화로워지는 변화를 경험했다고 밝힌다. 공감 대화법은 독자들의 삶에 새 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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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 공감의 대화법을 찾아 나선 소심한 라디오PD의 여정
이진희 지음 / 마일스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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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는 원만한 대인 관계를 통해 사회 생활의 적절한 적응을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사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이 대인 관계인데 대인 관계가 원만치 못하다면 사회 생활을 해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나 경험하고 아는 사실이다. 물론 자신의 직업적 능력(실력)이 부족한 것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대인 관계가 원만한 사람이라면 능력이 부족해도 어떻게든 업무를 해결해 나가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을 것이다. 동료나 주위 사람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영역이기에 사회 생활 적응을 크게 좌우할 문제는 아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대인 관계는 대화로서 이루어진다.

저자 이진희도 이 점에 착안, 개인적 성찰 끝에 '비폭력대화' 프로그램을 참여하며 꾸준하게 노력해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대인 관계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대화법'을 터득해 나가는 과정을 책에 담았다. 저자는 라디오 PD란 직업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의견을 나누며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종종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목소리나 말투를 살펴봐 달라는 부탁을 받곤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화법과 대화법을 혼동하고, 말투를 바꾸는 것만으로 대화를 잘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저자는 화법은 발성을 배우고 나쁜 습관을 고치면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 혼자 반복해서 연습하고, 녹음해 모니터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진다고 조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화법과 대화법은 다르다. 특히 대인 관계에 있어서의 대화법은 대화를 해나가면서 대화의 목적에 다가가는 것으로서 대화를 더 끌어갈 수 있도록 상호 공감이 이루어져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목소리가 멋지고 말투가 친근하면 듣기 좋다. 듣고 있으면 빠져들고, 같은 내용도 더 믿음이 간다. 반대로 불필요한 특정 단어를 반복하거나 집중을 흩뜨리는 습관을 가진 사람의 말은 아무리 맞는 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호흡이나 발성, 자세와 손동작 같은 비언어적 요소도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방법을 '화법'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대화법은 한층 어렵다. 서로 주고받는 말을 통해 공감하는 '상호 작용'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역동적이다. 대화하는 주체의 감정과 욕망이 대화를 움직인다. 스스로 말은 곧잘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막상 대화에는 서툰 이유가 여기 있다. 저자는 적절한 비유로 '운전'의 예를 든다. "운전을 상상하면 쉽다. 화법은 자동차 모는 법을 배우는 거싱다. 차의 각 기능을 알고, 기본적인 운전 기술을 익혀야 하낟. 대화법은 도로주행에 가깝다. 운전면허를 따고 혼자 공터에서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막상 도로에 나가려면 긴장된다. 다양한 상황에서 능숙하게 운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비폭력대화법'은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마셜 로젠버그가 창안했다고 밝힌다. 비폭력대화(Non Violent Communication)는 '연민의 대화' 또는 '삶의 언어'라고도 불린다고 말한다. 로벤버그는 "인간의 본성은 서로의 삶에 기여할 때 기쁨을 느끼는 것"이라고 믿으며, 두 가지 문제에 천착했다는 것. ① 왜 우리는 본성을 잃고 서로 폭력을 씀녀서 살게 되었을까? ② 반면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자기 본연의 인간성을 잃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을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였다고 한다. 로젠버그는 타인과 유대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 방법을 개발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비폭력대화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받기도 하면서 깨달은 경험들에 대한 기록이자 좀 더 괜찮은 대화법을 찾기 위해 여전히 고민 중인 저자의 얘기로 구성돼 있다. 라디오 PD로 일하며 누구보다 많이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수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하루하루 커져가는 헛헛함을 지울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 주지 않기 위한 방법, 폭력적인 말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 일상을 평화롭게 가꾸는 방법을 찾다가 비폭력 대화를 만났다. 대화법을 공부하면서 왠지 모르게 불안했던 하루하루가 편안하고 평화로워지는 변화를 경험했다. 팟캐스트 〈대화만점〉을 만들어 다양한 사연을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변화를 경험했다.

 


 

이 책은 그 변화의 여정을 함께하는 과정이다. 함께하는 길에서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베는 칼이 될 수도 있음을, 동시에 누군가의 마음을 보듬고 단단하게 하는 약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저자의 글 중에는 독자와 같은 환경과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공감을 느꼈다. 사회생활의 절반은 말, 즉 대화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는 대화를 통해 관계를 쌓고 또 유지한다. 순간의 실수로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가 하루아침에 허물어지기도 하고, 별 의미 없이 뱉은 말이 누군가의 삶을 바꿔놓을 수도 있기에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는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한다.

특히 내 말이 폭력이나 무기가 되어 다른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거나 고통으로 기억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독자의 경험에 의한 말과 저자의 경험과 대화법을 배워가는 과정의 사례들은 독자에게 공감을 넘어 완전 동감과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독자는 좀 더 성찰을 거듭해 저자와 같은 생각이 들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볼 생각을 갖고 있다. 저자의 비폭력대화 참여의 시작은 오래 전 감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시에 울음이 터지고,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수백 개가 넘지만 정작 내 마음을 보여줄 친구는 한 명도 없고, 그렇다고 이런 마음을 상담실이나 병원에 가서 토로하기는 싫고. 어디에도 풀어놓지 못한 답답함은 이내 내 감정을 잘 알고, 적절한 때에 적절한 대상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이를 통해 좀 더 공감에 능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으로 바뀌었단다.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 주고 싶지 않고, 폭력적인 말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을 찾고, 소소한 매일의 일상과 대화를 풍요롭고 평화롭게 가꾸는 방법도 알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저자는 비폭력대화를 만났고, 대화법을 공부하면서 왠지 모르게 불안했던 하루하루가 편안하고 평화로워지는 변화를 경험했다고 밝힌다. 팟캐스트 〈대화만점〉을 만들어 다양한 사연을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변화를 경험했다. 누군가를 대하는 표정, 상대를 받아들이는 자세, 그리고 무언가를 행하는 모습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 책은 그에 대한 기록이자 경험을 함께 나누기 위한 제안이다.

‘비폭력대화’라는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폭력적이라는 거야? 나는 욕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하는데?”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비폭력’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비폭력’은 인간 본성인 연민으로 돌아간 상태를 의미한다. 욕이나 극단적인 말만 폭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상대를 소외시키고 자기를 기만하는 표현 모두가 ‘폭력’이다. 차근차근 비폭력 대화를 배우고 익히다 보면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바로바로 반응을 보이는 대신 자신이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원하는지를 의식하면서 정직하고 명확하게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이에 더하여 나를 넘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저자는 이제 더 이상 상대가 내뱉는 무례한 발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 않는다. 부적절한 타이밍에 부적절한 대상에게 부적절한 방법으로 표출하는 일도 현저히 줄었고, 낮에 나눈 대화를 상기하며 애먼 이불을 발로 차는 후회의 밤도 반복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낸다.

 


 

‘이건 아닌데’, ‘어? 이건 좀 불편한데’ 싶지만 “싫어요” “안 돼요” 한마디를 못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강매 당하는 일도 없고, 식당에서 나온 맛있는 반찬이 더 먹고 싶을 땐 큰 소리로 자신 있게 “이모, 여기 반찬 추가요”를 외친다. 명분이나 의무감 때문에 유지해왔지만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나를 이용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은 이제 과감히 끊어낼 줄도 안다. 비폭력대화는 이렇게 마음을, 생각을, 행동을 아니 삶을 변화시켰다. 특히 여성 PD로서 동료 선배로부터 격려의 말 속에 듣기 거북한 것을 들을 땐 화도 났지만 적절한 대화법을 몰랐던 과거의 이야기가 공감을 돋운다.

책에 따르면 말과 대화라는 단어 뒤에는 늘 상처란 단어가 따라다닌다. 말이라는 게 그만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쉽고, 또 누군가에게 말로 인한 상처를 받기도 쉽다는 의미일 것이다. 말이 마음을 베는 칼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 너와 내가 우리로 하나 되길 바라는 마음, 그 말들이 이어져 우리 모두가 좀 더 즐거운 대화를 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썼다. “대화 속 폭력을 의식하며 평화를 향해 살아가길,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연민과 공감의 손길을 건네길 저자는 기도한다. "비폭력대화라는 아름다운 도구가 조금이나마 익숙해지길 바란다”라는 저자의 당부처럼 우리의 마음을 성장시키는 과정에 이 책이 꼭 필요한 가이드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진희 씨, 연애를 안 하니 몸이 자꾸 아프지. 남자친구 사귀고 잠자리도 갖고. 어? (알 거 다 알지 않느냐는 웃음을 지으며) 그래야 건강하고 튼튼해진다고.” 여기서 발목 잡히기 쉬운 대목은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의 ‘걱정’은 관심이자 진심일 때가 많다. 내용이 아무리 쓰레기 같아도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뜻이다. 걱정이라는 의도가 워낙 숭고해서 건드리기 어렵다.

품위 있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기 연결이 필수다. 단단하게 자기를 공감해야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다.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계속 내 느낌과 욕구에 집중해야 언어폭력을 들었던 상황을 다시 떠올려도 덜 힘들고,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도 달리 대응할 수 있다. 나를 표현할 에너지도 생긴다.(p128~129)

 

저자 : 이진희

 

KBS에서 라디오PD로 일하고 있다. ‘가요광장’, ‘박준형의 FM인기가요’, ‘밤을 잊은 그대에게 소유진입니다’, ‘조충현의 럭키세븐’ 같은 대중음악 프로그램과 ‘생생클래식’, ‘KBS 음악실’ 등의 클래식 프로그램을 거쳐 뉴미디어 시대 라디오의 생존을 고민하는 디지털 팀까지 업계의 여러 부서를 두루 지나왔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힘내세요”라는 말에 헛헛함을 자주 느꼈다. 힘을 내라는데 이 말을 들으면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다. 청취자와 더 깊이 연결되고 싶어 온갖 대화법을 탐구했다. 함께 공부하겠다는 이들이 모여 팟캐스트 〈대화만점〉을 론칭했다. 세 시즌 동안 수많은 이들의 대화 고민을 들었다. 평화와 연결의 대화법인 ‘비폭력대화’의 매력에 빠져 햇수로 7년째 공부 중이다. 《건강한 몸, 착한 몸, 부러운 몸》과 《크게 라디오를 켜고(공저)》를 썼으나 ‘작가’라는 호칭은 여전히 어색하고 민망하다. MBTI 유형 중 전체 인구의 2% 내외라는 ‘INFJ’로 사느라 고단하다. 많이 듣고 쓰려고 애쓰며, 같은 날 태어난 두 아이와 비폭력대화 실전 연습을 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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