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가는 울진의 불영사 위의 불영계곡 중간쯤 ‘서면(西面)’이라는 곳이다. 소 내장처럼 구불구불한 불영계곡의 도로를 넘어서 끝까지 가면 그 끝에 송이로 유명한 봉화가 나온다. 불영사도 통도사처럼 비구니들만 있는 절이다. 불영사는 울진군 ‘서면’ 하원리 천축산에 위치해 있으니, 외가나 불영사나 지역은 같다. 하지만 걸어서 가려면 진땀을 빼야 할 각오를 단단히 먹어야 한다.


모친은 불영사의 비구니가 되려고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불영사에서 뛰어놀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어린아이 때 엄마의 손을 잡고 불영사에 가면 나이 많은 여승이 엄마와 담소를 나누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겨울의 불영사보다 여름의 불영사가 참 좋은데(대체로 나라는 인간인 자체가 여름을 좋아하는 것 같다), 길을 따라 죽 들어가면 불영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부르는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들린다.


막힘없이 흐르는 물소리와 중간중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소(沼)의 분위기는 신기하기만 하다. 옛날에 간첩이 불영계곡 쪽으로 많이 넘어왔을 때 저기 소에 빠져서 죽은 사람들이 밤이 되면 귀신이 된다고 옛날이야기를 해주던 외할머니가 불영사로 들어갈수록 떠오른다.


불영사의 입구에는 100년 묵은 노목이 있다. 아니면 사목이거나. 고목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많이 기울어져 있는데 중간에 머리 하나가 들어갈 구멍이 있어서 그 속에서 머리를 내놓고 사진을 찍어서 기념하기도 한다. 해서 외할머니부터 외가댁 가족들은 어릴 때부터 역사처럼 고목의 구멍에 머리를 내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통도사가 사당이 많고 무척 넓은 것에 비해 불영사는 큰정원이 하나가 있다. 중간에 연못이 있고 연꽃이 가득하다. 연꽃의 향은 가까이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은은하게 퍼지기 때문에 거닐다 보면 연꽃의 향에 도취되기도 한다.


요즘은 또 어떤 모습일지 모르나 내가 늘 가던 불영사는, 여름의 불영사는 그러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여름에 걸어서 불영사에 도착을 하면 땀이 줄줄 흐른다. 여름의 땀이 몸을 적셔도 불영사의 그늘에 앉아 있으면 나무가 춤을 추며 만들어내는 바람에 땀이 식어버리고 만다.


나는 어릴 때 5, 6살쯤에 사정이 있어서 집에서 떨어져 외가에서 2년 정도 살았다. 매일 밤마다 잠이 들었다가 깨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었고 외할머니나 큰 이모는 밭은 숨을 내쉬는 내 등을 슬슬 문질러 주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여름에 으레 나를 데리고 불영사에 갔다. 나는 혼자 그곳을 뛰어놀다가 오줌이 마려워 아무 곳에서나 누다가 혼이 난 이후로 화장실을 찾아갔다.


해우소를 처음 들어간 나는, 압도적인 냄새에 놀랐다. 또 열을 받아 밖의 날씨가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의 질식할 만큼의 찜통 같은 해우소 더위에 더 놀랐다. 놀랐다고 마냥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피부를 찌르는 냄새에 숨을 합, 하고 참아야 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학교에 들어가야 하니 아무 곳에서나 오줌을 누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들어서 나에게 그런 말을 해 준 스님들에게 자랑을 해야 했기에 해우소의 문을 덜컥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6살 인생 전반에 내게 닥친 상황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는 변기 속에서 수백만 마리의 흰 벌레가 내가 떨어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끼익 하며 내는 발판의 소리는 순간적으로 체내에 냉기를 불어넣었다. 참았던 숨을 쉬기 위해 입을 열었는데 냄새가 입으로 들어와서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지옥’이었다. 절에서는 해우소에 지옥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얼마나 울었을까. 외할머니와 스님이 해우소의 문을 열었는데 나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얼굴은 눈물과 콧물이 입술 위로 비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바지는 오줌으로 다 젖었는데 스님이 동자승 바지를 내게 입혔다.


불영사의 연못 옆에 작은 수돗가에서 나를 씻긴 할머니는 불영사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금남의 지역으로 위험해 보이는 폭포도 있고 그 밑에서 스님들이 상추를 키우고 있었다.

오늘 이거 따서 맛있게 밥 먹자.라는 말에 히에로니무스의 지옥은 온데간데 잊어버리고 또다시 땀이 송골송골 맺혀가며 상추를 땄다. 30분 정도 나는 상추 따는 일에 집중을 했다. 옆에서 배테랑 할머니와 스님이 따는 것에 뒤쳐지고 싶지 않았다. 잘 보이고 싶었다. 그땐 그랬다.


그렇게 딴 상추는 스님과 외할머니가 흐르는 물에 잘 씻어서 탁탁 털어서 소쿠리에 담아냈다. 우리는 작은 밥상에 밥과 된장뿐인 반찬과 상추를 놓고 밥을 먹었다. 내가 수확했다는 뿌듯함 때문에 밥맛은 더 좋았다. 그랬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상추에 이렇게 밥을 싸서 나에게 먹여 주었다. 그 덕분으로 나는 지금까지 상추에 고기를 싸 먹지 않고 밥을 싸 먹는다. 작고 보들보들한 불영사의 상추의 맛. 그건 내 외할머니의 맛으로 추억된다. 트럭에 치여 그대로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고통이랄 것도 없이 가버린 내 외할머니. 어떤 면으로는 지독한 죽음이었다.


 작고 어린 나를 달래느라 수고했던 내 외할머니. 나는 내 외할머니에게 받은 애정을 지금까지 조금씩 태워가면서 지냈다. 이젠 다 태우고 그을음이 남았지만 그래도 그리웁다.



이렇게 울진의 상추를 받아서 밥에 싸서 멸치볶음을 얹어 입에 넣어 씹고 있으면, 그때 외할머니와 스님이 호호거리며 주고받던 대화, 불영사를 감돌던 향내, 지금처럼 습하지 않고 기분 좋은 여름의 태양이 외할머니의 피부 냄새처럼 옅게 떠오른다.


100년 묵은(100백 년인지 잘 모르겠음) 노목. 노목 사이에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머리를 내고 사진을 찍곤 했다.


100년 묵은(100백 년인지 잘 모르겠음) 노목. 노목 사이에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머리를 내고 사진을 찍곤 했다.


불영사를 들어가면 반기는 연못.


불영사의 모습.


여름의 불영사는 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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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fXaJ0XUmCM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자꾸 보게 되는 이유 여러 개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면이 있다. 소피는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려는 하울을 완강히 붙잡는다

하울은 특유의 미소와 목소리로 “이제 지켜야 될 것이 생겼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바로 “너”라고 소피에게 말한다. 누군가 지켜야 할 대상이 생긴다는 것은 책임감이 증가되는 동시에 행복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켜야 할 누군가를 위해 이 시간에도 열심히 택시를 붕붕 몰고, 전기를 각 가정에 공급하고, 수도국에서 일을 하며, 어두운 곳에서 눈을 비벼가며 밤을 지새울 것이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몸을 움직이고 달린다는 것이 눈물이 나올 만큼 아름답다. 여러 영화에서 이런 대사를 하고 이런 장면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하울이기 때문이다. 하울이 그 말을 소피에게 하기 때문이다

하울은 지켜야 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다하는 태도를 보인다.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다. 그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이 없다. 내가 아니면 안 되기에 하울은 그렇게 한다. 참말로 신기하게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재미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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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조금씩 조깅을 한지도 거의 십오 년이 지났다. 하루키는 먹는 것도 가리고 사반세기를 매일 강도 높게 조깅을 하고 마라톤에도 출전을 하지만 나는 조깅을 하다가 힘들면 걷거나 중간에서 팔 굽혀 펴기를 하다가 그냥 돌아오기도 하는 등 강도 높게 조깅을 하지는 않는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12킬로미터 정도를 매일 달렸는데 5년 전부터는 6, 7킬로미터 정도를 달리고 코스에 오르막길이나 계단 따위를 집어넣어서 달린다.


대신에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조깅을 한다. 2018년에는 이틀 빼고는 363일을 조깅을 하거나 비 오는 날 걸었다. 이렇게 말하면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루 24시간 중에 고작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을 하기 때문에 전혀 대단한 일은 아니다.


매일 조깅을 조금씩 하는 이유는 먹는 것을 가리지 않고 음식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기에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살로 가버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일 글을 좀 쓰려면 몇 시간 의자에 딱 앉아 있을 수 있는 엉덩이의 근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체 운동 위주로 매일 조깅을 한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나가서 코스를 걷다가 강변에 천막이 있는 곳에서 근력 운동을 조금 한다. 비가 와도 조깅을 나가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자.


중요한 건 15분씩 하더라도 매일 하는 것이다. 매일 하는 것에 이길 수 있는 건 없다고 본다. 운동과 책을 읽는 건 시간이 날 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든 시간을 내어서 해야 한다. 모두가 바쁘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려고 시간이 나지 않는다. 그 사이를 비집고 어떻든 시간을 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어딘가로 이동을 할 때, 누군가를 기다릴 때 충분히 할 수 있다. 브런치나 인스타그램에 매일 책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는 사람은 그렇게 시간을 내서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차인표(는 두 편의 장편 소설도 써냈다. 나는 그 두 편의 소설을 다 읽었는데 정말 소설이 좋았다. 심지어 무뚝뚝한 내가 다른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린 적이 없는데 차인표의 한 소설을 읽고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창피하게도 외국인들이 잔뜩 술을 마시는 퍼브에서 그랬다. 그중 한편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가 미국에서 생활을 할 때 길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팔 굽혀 펴기를 하고 길을 걷다가 팔 굽혀 펴기를 했었다고 했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어디서나 팔 굽혀 펴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된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조깅을 하다가 팔을 굽힐 곳에 있으면 어디서든 했다. 그 장소가 조깅코스일 때도 있고, 길거리 우체국 앞일 때도 있고, 버스정류장일 때도 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누구 하나 관심 주지 않기 때문에 그냥 하면 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신호등을 기다릴 때 스쿼트를 해도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다. 나를 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부질없는 짓이다. 누구도 나에게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시간을 벌려 운동을 하고 책을 읽으면 된다.


나는 헬스클럽을 한 번도 다녀본 적은 없다. 물론 앞으로도 다니지는 않을 것 같다. 헬스클럽에서 제대로운동을 하면 근육이 예쁘게 자리를 잡아서 몸은 아주 보기 좋을 것이다. 일하는 곳 위층이 대형 헬스클럽이라 늘 트레이너들이 와서 운동을 하자고 꼬드기고 있지만 아직 넘어가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운동은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 아주 좋다. 하지만 야외를 봄여름 가을 겨울 조깅을 하다 보면 계절의 변화와 함께 매일 스치는 변수와 마주하게 되는데 그게 묘미다. 요컨대 매일 지나치는 횟집 앞에서 생선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길고양이 단추(양추의 동생이나 자식)의 모습을 본다든지, 매일 보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안 보이게 되면 아, 하는 생각이 든다든지.


이런 복장으로 조깅을 하면 시선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아버님들이다. 이제 노력으로는 근육을 만들 수 없는 아버님들이 저녁이면 조깅코스에 나와서 걷기 운동을 하다가 나를 보며 한 마디 하거나, 엄지를 보이거나 손뼉을 쳐주기도 한다. 그러면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 아버님도 멋지십니다.라고 한다. 사람마다, 또 체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운동은 공복에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밥을 먹고 운동을 하면 소화가 되기 때문에 운동이 끝나고 샤워하고 티브이를 보거나 눕게 되면 또 허기가 진다. 그러면 먹을 걸 찾는다.

 

매일 조깅을 좀 하면서 느낀 건 하루키는 참 대단하네,를 넘어서 독한 사람이구만, 하는 생각이 든다.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도 매일 19킬로미터씩 조깅을 한다. 로커가 무대 위에서 뚱뚱하게 보이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는 것이다. 아직도 스키니 진을 입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하는 이승환 역시 마찬가지다. 무대 위에서 가장 멋진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팬들을 위한 것이다.


하루키가 대단하다는 건, 그건 해보니까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반세기를 지치지 않고 매일 마라톤을 하듯이 조깅을 한다는 게 인간이 할 짓인가. 왜냐하면 달리기 직전까지 하기 싫어서, 달리고 싶지 않은 이유 백가지가 바지단을 붙든다. 그걸 뿌리치고 운동화를 신기까지가 정말 힘들다. 달리는 행위나 운동 자체는 딱히 힘들지 않다. 두 시간 걸으면 힘들지만 한 시간 달리면 상쾌한 법이다. 달려야 하는 사소한 이유 한 가지가 달리고 싶지 않은 백가지를 물리친다. 신체에 기분 좋은 고통을 주고 나면 그 고통을 느끼는 일이 즐거워진다. 살아있기에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사진은 조깅을 하고 난 후 찍은 것인데 얼굴은 못생긴 관계로 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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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8-2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지십니다!ㅎ 막 달리고 싶어지네요!ㅎ

교관 2020-08-27 11:35   좋아요 1 | URL
오늘은 신나게 달려보세요 ㅎㅎ
 


https://youtu.be/Fe93CLbHjxQ


고스터버스터즈는 경쾌한 이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유령에 대해 가장 과학적이고 괴짜이며 유쾌하게 접근한 영화 버스터버스터즈는 84년에 나온 영화치고는 그래픽의 완성도가 높다. 게다가 아직도 피규어 마니아들에게 고스터버스터즈의 자동차 엑토1은 최고다

20세기 이후에 고스터버스터즈 후속편이 인기를 얻지 못하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결과다. 먹깨비를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의 유령이 도심 속에서 왕창 등장하면서 사람들을 공포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다. 그 와중에도 빌 머레이, 댄 애크로이드, 해롤드 래미스의 농담은 더욱 빛을 발한다

고스터버스터즈 이후 전 세계는 먹깨비와 머쉬 맬로우맨에 대한 애정을 한 없이 뿜어냈다. 소품으로, 피규어로, 또는 배경으로 장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인간과 친숙했던 이티가 누렸던 인기를 유령이 대신했다. 그리고 그 인기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B급 유령영화에 싫증이 났다면 오히려 고전인 고스터버스터즈 1편을 보라고 하고 싶다. 2021년에 고스터버스터즈 라이즈가 나오는데 빌 머레이가 조연으로 출연을 한다고 한다. 빌 머레이의 능청 개그는 인종과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고 심지어 시간도 초월한다. 키 마스터의 릭 모나리스 또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했다. 당시에 이런 영화를 상영관에서 보는 즐거움은 얼마나 컸을까. 미국인들은 가족을 대동해서 랄라하며 고스터버스터즈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이제 극장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영화는 거의 사라진 것 같다. 각자 보는 영화가 있으면 컴퓨터나 집에서 본다. 극장에는 가족끼리 가지는 않는다. 뜬금없지만 가족끼리는 사랑하는 거 아니야,라며 아내가 남편에게 다가오니 그렇게 말을 하는 예능프로그램이 생각난다

포털을 터트릴 때 고스터버스터즈의 뒤에 있는 머쉬 맬로우맨의 오우하는 표정이 압권이다. 고스터버스터즈는 2편도 재미있다. 2편은 5년 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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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먹으면 더 좋은 음식이 있다. 방울토마토가 그런데 또 하나 있는 그것이 바로 ‘무’다. 무우라고 하고 싶지만 그냥 ‘무’라고 표기를 해야 한다. 그게 이치에 맞는 표기법이다. 나는 좀 못된 구석이 있어서 이치에 벗어나는 표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신는 스레빠를 절대 슬리퍼라 쓰지 않는다. 아예 안 쓰면 안 썼지, 슬리퍼는 거실에서 신는 우아한 그것의 느낌이 강하다. 발가락이 튀어나올 것 같은 여름의 청소년 같은 그것은 스레빠 내지는 스렙빠라고 표기하고 싶다. 잘못된 표기라고 우겨봐야 소용없다.


그런 것들이 몇 있다. 닭도리탕이 먹고 싶을 땐 닭도리탕을 해 먹는다. 상상만으로도 닭도리탕은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며 침이 꼴까닥 넘어간다. 닭도리탕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닭도 맛있고 그 속의 감자도 맛있다. 건더기를 다 먹고 나면 양념에 밥을 슥슥 비벼 먹는 맛 또한 말해 무엇하리.


그런데 어느 날 닭도리탕이 닭볶음탕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바뀌었다. 이런 지랄 옆차기 같은 소리가 있나. 닭볶음이면 볶음이고 탕이면 탕이지, 볶음탕은 무슨 말이란 말인가. 게다가 닭볶음탕은 닭도리탕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의 상상에 1도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고추냉이보다 와사비라고 쓴다. 이러면 큰일 나는 사람들이 있다. 마돈나를 마다나로 표기하면 큰일 난다. 남자에게 큐티라고 표기하면 큰일 난다. 오픈을 오프튼이라고 표기하면 큰일 나는 사람들이 있다. 고작 고추냉이를 와사비로 표기했다고 일단 똥부터 싸질러 놓고 보는 인간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싸질러 놓고 수습 못하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그것처럼 무도 무우라고 말하고 싶은데 무는 나 자신과 타협을 해서 무라고 표기를 한다. 여기는 지방이니까 ‘무시’라고도 부른다. 무시 다리, 무시 있나, 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그냥 무라고 표기한다. 고집스러운 내가 양보한 무는 뜨겁게 익혀 먹으면 아주 맛있다.


간혹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밥을 볶아 먹는다. 그때 깍두기를 썰어서 같이 볶으면, 정말 다른 건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맛있다. 연기가 엑토플라즘처럼 피어오를 때 계란 하나를 탁 깨트려서 비비면 한 끼로는 손색이 없다.


무생채를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컵라면에 넣어서 먹으면 더 맛있다. 컵라면에 무생채를 잔뜩 넣고(주둥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뜨거운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에 2, 3분 정도 돌리면 무생채에 라면 국물이 배어 들어서 아주 굿이다.




사진은 삼계탕이다. 삼계탕은 칼로리와 열량이 높은 음식이다. 그래서 자주 먹다 보면 살이 찔 수 있지만 삼계탕은 참 맛있다. 무라카미 류의 삼계탕 찬양 글을 보라, 삼계탕이 얼마나 멋진 요리인지. 삼계탕의 장점이라면 삼계탕이 먹고플 때 아무 삼계탕집에 가면 된다는 것이다.


삼계탕집의 맛은 평준화되어서 이 집이나 그 집이나 저 집이나 비슷하다. 짜장면은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 돼지국밥도 돼지머리를 삶아서 국물을 내느냐, 뼈를 삶아서 국물을 내느냐, 살코기를 삶아서 국물을 내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삼계탕은 특별히 다르게 맛이 나지 않는다. 고민 없이 삼계탕이 먹고 싶을 땐 아무 삼계탕 집에 문을 스륵 열고 들어가면 된다.


삼계탕은 집에서 해 먹기도 간단하지만, 사진의 삼계탕은 편의점 삼계탕이다. 만원 정도 하는데 역시 삼계탕 전문점의 맛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신기하다. 편의점에서 먹는 다면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봉지를 잡고 군대에서 봉지라면을 먹듯 먹으면 된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삼계탕을 편의점에서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와 있다니. 편의점에 앉아 땀을 흘려가며 삼계탕을 먹으며 폰으로 티브이를 볼 수 있다니. 또 신기하다.


하지만 편의점 삼계탕을 더 맛있게 먹으려면 집에서 냄비에 넣어서 끓일 때 깍두기를 잔뜩 넣으면 더 맛있다. 무가 삼계탕의 국물을 빨아들여서 씹을 때 뜨거운 무의 맛이 훨씬 좋다. 돼지국밥을 먹으러 가면 깍두기를 나오자마자 국밥에 왕창 넣어서 먹는데 무는 뜨거우면 맛있다.


일본에 가면 오뎅 파는 곳에도 무가 있다. 한국에도 어묵 파는 곳에 무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무를 팔지 않는다. 만약 단골 분식집이나 어묵집에서 무를 먹어보라. 국물을 빨아들여서 엄청 맛있다. 그래서 일본의 오뎅 파는 곳에서는 무가 제일 비싼 축에 속할 것이다. 아마 몇 천 원 한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동안 뜨거운 무를 맛있게 먹어 왔다. 고등어조림이나 갈치조림에는 바닥에 무가 반드시 깔린다. 그리고 양념을 잔뜩 머금은 무를 먹어왔다. 나는 고등어조림을 먹으러 가면 고등어는 뒷전이고 무를 먼저 먹는다. 그게 제일 맛있다. 무는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맛으로 웃음을 준다.

 

무김치가 삭으면 그냥 먹기 힘들어 한 번 씻어서 마치 통통한 새끼돼지 같은 무를 어머니들은 찌개에 넣었다. 그러면 국물 맛이 좋은 것으로 기억되곤 한다. 팔팔 끓이면 온 집에 찌개 냄새가 퍼진다. 아버지는 일 마치고 들어오면 그 냄새에 꼬르륵 소리가 난다. 빨리 씻고 오세요, 소리가 퍼진다. 그런 내면의 추억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전에 먹던 맛을 찾게 한다. 박찬일 요리사의 책에서처럼 추억의 절반은 맛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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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0-08-24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뎅무 참 맛있죠^^

교관 2020-08-25 12:15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럼요 ㅎㅎ 뭘 좀 잘 아시는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