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안경점 - 2022 읽어주기 좋은 책 선정도서 신나는 새싹 165
조시온 지음, 이소영 그림 / 씨드북(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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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안경을 중학 시절부터 착용했습니다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입학 전에도 초등시절에도 아주 활동적이고 매년 열중하는 특정 스포츠 종목이 있을 정도였는데 덕분에 집에 야구핸드볼배구 용품 등이 수북 안경을 사용하면서는 체육시간 구기 종목도 불편해졌습니다.

 

인간은 청각후각미각 등은 겨우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수준이고그나마 시각 정보에 집중하는 편이니시력이 약한 것나쁜 것은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다행히(?) 한국은 입시교육 체제라 덜 불편하게 성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온 가족이 안경을 사용하니 이 책은 가족이 함께 읽기에 완벽했습니다각자의 일화를 불러내는 감상이 다 다르다는 것도 재밌습니다시야가 흐려지면 안경의 도움을 받고안경을 닦으면 세상이 환하게 보이기도 하는데마음에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체육시간에 안경이 부러져 안경점에 간 미나는 어떤 이유로 자신이 남들에게 희미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합니다안 보이게 하고 싶으나 감출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뜻이겠지요혼자 생각으로 아주 강한 반감을 가지게 될 리는 없으니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나 봅니다오히려 지금은 마스크로 인해 가리고 다닐 수 있는 시절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제 기억 속 어느 시절엔 사람을 다리 길이로 부르던 때가 있었습니다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방송에서 남발하며 비웃던 개그 소재이기도 했습니다다리가 없거나 다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으로 이 현상을 견딜까 끔찍하다고 친구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지요

 

한 존재를 이렇게 신체 일부의 모습으로특징으로혹은 특징이나 단점이 아님에도 굳이 부각시켜서 놀리거나 괴롭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모두가 광고상품이나 성형외과 알바생들일 리는 없을 텐데요.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인간의 뇌가타인들을 구별하고 분리하면서 최대한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했다는 인지과학뇌과학의 이야기들도 있습니다만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로만 살지도 않고사회적 현상으로 부추긴 다른 이유들도 분명 있겠지요.

 

다채롭고 아름답고 기분 좋은 그림책을 읽고 묵직한 글을 남기고 맙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지만, 11월의 첫 날이라 힘을 내보려다가도 마음이 거듭 흐려져서 그런가봅니다외부의 영향에 팔랑거리는 저는 게으르지 않게 매일 마음을 들여다보고 안경 닦아 쓰듯 잘 닦아야겠습니다.

 

숨은 그림(?)과도 같은 그림의 재미가 있습니다읽게 되심 무엇이 무엇과 연결되는 것인지 재밌게 찾아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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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3분 철학 2 : 서양 중세·근대 철학편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2
김재훈.서정욱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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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을 읽고 즐겁게 많이 배웠다

두 종류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신의 한 수! 라 여겨지는 구성이라

대화를 듣다 보면 철학을 설명하는 캐릭터보다 

설명을 듣고 배우는 캐릭터에 공감하고 몰입하기 좋았다.

 

재밌는 유머들도 있고 사투리도 나오는데 내용은 철학적으로 충실하다

모르던 철학자들에 관한 내용을 읽고 나니 뿌듯하고

순서대로 시리즈를 계속 읽으면 

쉽고도 유익한 철학사의 지식이 생길 거란 기대가 크다.

 

접근성과 가독성이 좋은 인문교양서가

7월에 이어 11월에 출간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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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런웨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6
윤고은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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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서점을 자유롭게 방문하고 책을 구입할 수 있기 전까지책을 만나러 가는 장소는 도서관이었다책이 목적이기도 했지만 도서관에 들어가는 그 순간의 가 설레고 좋았다조용하고 정갈한 책의 거리서가 사이를 조용히 걸으면비염도 사라진 듯 책의 향기책 공간만의 냄새들이 심장을 떨리게 했다.

 

<도서관 런웨이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독자 모두를 설레게 하는 작품의 시작은 이렇다.

 


뒷굽이란 단어가 대학시절 도서관의 나를 소환한다브랜드 모델이 착용한 구두를 꼭 선물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굽이 딱딱한 신을 신고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던 서가오후의 그 시간산더미 같은 과제에도 불구하고 흘낏 한 눈을 팔기도 했던 안온했던 장소였다.

 

그땐 도서관도 못 가보는 시절을 살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휴관이 늘고 언제가 휴관인지 헷갈리는 지경이 되어 불편해서 점점 더 안 가게 되었다지난 사진을 보다 마지막으로 찍은 도서관 사진이 작년 겨울이라는 걸 알고 놀랐고 슬펐다.

 

2년간의 영화와 책도 판데믹 시절을 굳이(?) 현실감 있게 묘사하거나 다루지는 않았다그래서 잠시 잊기도 했고 그래서 현실감 없는 작품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이 작품은 코로나 판데믹을 다큐처럼 묘사에 활용한다도서관은 제한 운영을 하고머무는 방문은 안 되고 겨우 대출만 할 수 있고결국 문을 닫고친구와는 줌으로 대화하고구체적인 거리두기 지침까지내가 경험한 현실의 풍경들이 서사에 펼쳐진다안나는 내내 마스크를 하고 도서 대출을 받으러 갔을 것이다.

 

결혼준비를 하는 중에 제목을 보고 대출한 몇 권 중에는 <지속 가능한 결혼생활을 위한 지침서>라는 책이 있었다가이드북이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보험약관집이다. 30년이 넘게 도서관을 열심히 들락거렸지만 보험약관집을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지 몰라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재밌기도 했다물론 내가 아는 그 매뉴얼 책자일 리는 없겠지만.



공공연한 비밀 혹은 상식처럼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다양한 신화와 아름다운 스토리로 장식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해피엔딩의 종착지로서 결혼은 계약관계를 마무리하는 일이다연애와 결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혼인 계약서에 양자가 합의하고 법적 관계를 성립시켰는지 아닌지의 차이이다.

 

혼인 외에도 현실에서 계약을 통하지 않고서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은 거의 없다. AS는커녕손해배상손실보상도 기대하기 어려운 결혼과 보험약관집이란 설정은 전혀 우습지도 생뚱맞지도 않게 느껴진다.

 

이런 현실은 캐나다 동부를 여행하다지그재그로 뻗은 핼리팩스 도서관 내부를 걷는 런웨이를 계기로 만난 남자 정우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는 극도로 낭만적인 서사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여기 안심결혼보험에서요비동거에 따른 고독 항목이 있고 보험금을 지급하잖아요그럼 동거에 따른 고독거기에 대한 보장도 있었을까요?”

 

결혼이란 게 동거에 따른 고독을 선택하는 거 아니겠어요그건 예상 불가한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그러니 보험사에서 보장해줄 수 있는 게 아닐 듯하고요.”

  

도서관이 들어간 제목에 끌렸지만대거상Dagger* 수상자인 윤고은 작가의 작품이 어떤 내용일지 설레며 읽었다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요소가 숨어 있을 지도 모른단 생각에복선으로 보이는 것들을 찾아보려고도 했다완독 후 남은 것은 감정도 관계도 뒤엉킨 등장인물 네 명의 관계와조금 멍하니 사랑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보는 나였다.

 

바닥을 보면 안나의 그림자와 거대한 나무의 그림자가 이미 꼭 붙어 있어서 서로의 실루엣을 무너뜨린 상태가 되어 있다고창밖에 바람이 불면 잎사귀의 그림자들은 더 요란하게 흔들리고 그 요동 속에서 그와 안나는 키스를 한다고그림자는 실체보다 더 빨리 닿는 거라고.”

 

한 사람이 말하지우리 그럼 눈이 녹기 전에 끌어안읍시다.

눈이 있는 동안만 가능한 것처럼 서둘러 끌어안읍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그러는 거야그럽시다.”


친구 관계인 안나와 유리의 관계 묘사 중에도 인상적인 장면들이 무척 많다. ‘어느 시기에는 많이 뭉쳐 있고 어느 시기에는 또 완전히 공백상태인 그런 관계’, 나도 이런 오랜 친구들이 있어서 읽는 중에도 문득 지난 시간을 돌아보곤 했다둘의 근무지가 이야기 소재와 찰떡인 여행사와 보험사인 것도 재미있다.


다소 평범하게 시작한다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어느 순간 마음이 서늘하게 내려앉기도 했고설레며 긴장하는 장면들도 있었다지금 여기 옆에 있는 사람과 밖에 할 수 없는 찰나적이지만 체온을 교환하는 따뜻한 사랑이야기라니결론이 예상보다 따스해서 상상 속에서 뽀얗게 내린 눈보다 마음이 먼저 녹는다.



추리소설이라면 떡밥 회수를 잊으셨다고 알려 드리고 싶은 죽음도 완독을 하고 나니 따지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다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에 가면 <도서관 런웨이>가 꽂힌 서가 사이를 포스트잇을 붙이는 느낌으로 뒷굽을 내려놓으며 소심하게 걸어보고 싶다.

 

주의소설보다 더 공을 들인 것은 아닌가 싶은 ‘683쪽이나 되는 양장본 <안심결혼보험 약관집>의 소개된 내용들이 기막히게 구체적이고 감탄스러워서 구해 읽고 싶은 기분이 든다.

 

.............................................

 

* 1953년 창립된 상추리문학계의 가장 중요한 상 중 하나영국추리작가협회(Crime Writers' Association)는 각 부문별로 '대거(Dagger)' 상을 제정하고최고의 범죄스릴러 소설을 가리는 영예로운 상의 주인공들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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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라비니야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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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은 다르지만 결국엔 힘내라 토닥토닥하는 책을 두 권째 읽으며 뜬금없는 상상을 해본다세상에 아무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을 겪고 있다면 어떤 감정일까그래서 아무도 내 상황을 이해 못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건 한편으로는 그게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통계이기도 해서나 혼자 빠져나오기보다는 함께 해결할 부분을 찾아보자이렇게도 된다최종 해결이 오래 걸린다 해도 그 과정에서 비슷하게 느낀 감정을 나누며 서로를 살려줄 수도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이 모두 달라 정확한 해법도 위로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겠지만누구의 말이 다른 누군가의 구원이 될 지는 당사자밖에는 모를 일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존재가 라서우리는 간혹 속속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기도 한다악의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개인에게 돌리는 세력도 있을 수 있고명백한 가해자가 존재하는 범죄마저 피해자 탓을 하는 일도 있다.

 

정교한 사회화와 교묘한 가스라이팅 사이에서 우리가 내면화한 자기비난의 뿌리는 튼튼하게 깊이 내려갔을 지도 모른다작가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아 일상의 언어로 깊은 고민과 다짐을 들려주는데 내 감상글은 왜 대적하듯 이런 투로 이어지는지 모를 일이다.

 

작가는 무척 고단한 시기를 지나는 중에도 자신이 마주한 일상을 흘려버리지 않고 담았다가 자신만의 글로 전한다더 이상 꿈을 물어주는 나이도 아니고현실이 반겨 주지도 않고안정된 생활을 하기엔 부족한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는 직장생활도 선택하기 어렵다.

 

내가 먼저 나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할 때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거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작품에 대한 애정의 부족을 들여다보면 자신을 향한 애정에 인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작품은 곧 나고내가 나를 해체해서 풀어낸 것이 바로 작품이니까자신을 존중하고 스스로에게 애정을 보낼 때 타인도 나를 내가 쓴 글을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을 포기한 적도생활을 책임이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음에도사회가 제공하는 선택의 폭은 참 야박하다연재 구독자가 많이 늘었다니 뒤늦게라도 기쁘다갈등이 심해 힘들었을 모든 순간에도 글쓰기를 계속한 용기가 대단하다이제는 도전하는 사람에서 도전하는 다른 이들의 격려가 되는 존재가 되었다.

 

내 삶을 설명하는 방법나라는 사람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아주 사소한 것들임을 깨닫는다누가 보든 보지 않든 정성스럽게 삶을 일구는 자들에게서 흐르는 그 멋이 (...) 그 우아함을 본받고 싶다.”

 

꾸준히 정성을 들여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가진 힘은 엄청나다작가는 사소한 것들이라고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 자존심이 강한 선한 사람들이 우아하게 계속 살 수 있기를세금을 내고 사과 편지를 쓰며 남은 책임을 최대한 다하고 삶을 중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증언하는 사회의 병리를 더 귀 기울여 듣는 사회이기를.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의미이며 잘 지내냐는 안부의 표현이니까그 소중한 말을 단순한 빈말로 사용하고 싶지 않은 게 나의 마음이다따뜻한 끼니로 허기진 가슴을 가득 채울 누군가가 내게도 있으므로.”

 

나는 밥 먹자는 제안을 참 안 하는 편이다먹는 일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그래도 빠트리지 않고 불러주는 자리는 감사히 출석했는데그런 약속도 만남도 참 옛 일 같다일상이 어떤 모습으로 회복될지 모르겠지만언젠가 반갑게 만나 밥 한번 먹자!

 

굳이 내가 느낀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부조리하거나 납득이 가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게 마음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 아무 말이나 편하게 할 수 있는 만만한 사람보단 지켜야 할 선이 존재하는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게 경험상 더 나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따져 묻는 게 정체성의 일부이고연령주의가 공고한 한국사회에서 나이 덕도 보는 나는 여기까지라는 경계도 분명히 할 수 있고불편한 사람이 되는 일이 두렵지도 않다하지만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살았는데 역사상 사회적 최약체가 되고 만 가장 많이 배웠고 가장 오래 일하나 가장 가난한 - 20대들은 작가처럼 이런 마음을 먹고 단단히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크다무조건 힘껏 끝까지 응원한다.

 

대단한 자아실현이나 내적 성장은 아니더라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업무의 즐거움을 찾고 나니 의욕적으로 일과 생활을 병행할 힘이 생겼다 이 변화만으로도 난 충분히 사회에서 오래 버틸 만한 단단한 볼트가 된 게 아닐까 싶다.”

 

: 10월 마지막 주는 두려움과 불안이 교차하다 위경련과 비염의 공세로 육체적 고통이 커지니 정신의 아픔이 밀려난 괴이한 시간이었다추가근무를 하고서야 마무리가 된 것은 아쉬우나 어쨌든 잠시 끝이다최선업무의 즐거움의욕이란 단어들을 내 것으로 삼을 수는 없지만버티려면 버틸 수 있다는 생각.

 

충분히 이기적으로 살면서 여전히 타인에게 무해한 존재이고 싶은 욕심이 내게 가득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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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오해하면 그대로 둔다 - 김다슬 에세이
김다슬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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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는 예전 어느 날 내 결심과 같고도 조금은 다른 문장들이 자주 등장한다못된 마음을 먹고... 누가 잘 못 알고 있어도 애써 설명하며 살기 싫다고 생각한 날의 내가 소환된다잘 못 알고 있는 대상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런 지식을 설명할 능력은 없다.
 
요점은 지식정보의 대상이나 정확성이라기보다는 타인에게로도 흐르던 체력과 정신력과 친절과 다정함을 거두어들이기로 한 날의 나의 문제이다지쳤고 좀 더 단순하게 말끔하게 집중해서 살고 싶었다.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데 그걸 모른다당신이 실망스러운 행동을 했음에도 별말 하지 않는 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기는 게 아니라거듭된 실망 끝에 이제는 그만 놓아버리고 외면하는 단계란 의미다.
 
당신에게 쓰이는 모든 감정이 낭비라고 선을 그은 거다사람이 사람을 포기하는 것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게 없다. (...) 이 순간 이후로는 모든 것이 늦다. (...) 이는 깊게 새겨져 평생 바뀌지 않는저주에 가까운 일이다.”
 
이런 태도의 변화가 참 나쁜 것은 이런 결심 이후로 나는 좀 더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란 평이 조금이지만 늘었다는 것이다인간관계라는 것이 진실로 무슨 생각을 하고 타인을 대하는 지 알 도리가 서로 없겠구나싶어 서럽고 암담했던 느낌은 아직 남아 있다.
 
그 후로 여러 다른 실험을 거쳐 지금은 다른 태도다른 생각다른 절망다른 결론을 배웠지만 나이와 체력 탓을 하며 더 말을 아끼고 더 성격 좋은 사람이 되는 이율배반의 방향만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이제는 오해하면 그대로 둔다예전엔 너무 억울해서 하나씩 따지고 바로잡기 바빴다굉장히 피곤한 소모성 일이더라더는 그러지 않는다. (...) 보잘것없는 인연이나 멋대로 오해하고 마음대로 떠들고 다니더군그런 사람은 부디 오해한 채 그대로 멀리 사라져주길.”
 
별 인기가 없는 덕분에 극렬하고 억울한 오해를 받고 살지는 않았다그런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펄펄 난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4학년 때 수업 들어가기 전 후배 두 명이 반갑게 인사하며, “약혼하셨다면서요졸업과 동시에 결혼하신다면서요?” 하고 물었다금시초문이라고 하니 재밌어하며 크게 웃었다강의실에 들어와 거의 매일 보고 사는 동기들에게 그런 얘기 들어봤냐고 하니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졸업하고 바로 취직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서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지도교수가 되어 주실 분과 약속을 정하고 학교를 방문했다후배 한 명을 우연히 건물 앞에서 만났는데, “결혼하셨다면서요못 가서 죄송해요.”라는 인사를 받았다. “그 결혼식 나도 못 갔으니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하니 엄청 재밌어하며 크게 웃었다.
 
그러니까 나와 내 친구들은 모르는 약혼과 결혼이 있었던 것이다이 정도면 그 결혼식에 갔다는 사람이 있을 지도도플갱어가 떠올라 잠시 오싹하기도 했다출국 전 아들 돌잔치 얘기까지 들었는데지금도 누가 시작한 굴뚝 연기인지는 모른다정말 도플갱어라면 끝까지 잘 피해 살아보자.
 
힘든데 괜찮다고 속인다타인을 속이는 김에 나마저 속여 버린다힘듦을 일일이 말로 풀어서 전달하기엔 구질구질하다.”
 
구질구질이라기보단 모두 다 정확히 설명하기가 불가능하고결국 결정도 선택도 내가 할 일이라 타인이 알아주기를타인에게 잘 하소연하지 않는다사소한 일은 잠시 징징거리기도 하지만중요한 일은 더 침묵하게 된다설마 나만 그럴까.
 
신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 관계가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느냐나를 아프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느냐 알 수 있다즉 신뢰는 관계의 미래를 예측하는 척도다.”
 
그래서 나는 신뢰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아주 잘 듣는 귀로 산다.
 
시간이 흘러흐릿해진 기억 속에서 헤매야만 하는 일이 없도록세상에 단 하나만 붙잡을 수 있다고 하면 시계추를 붙잡겠다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반드시 사라진다는 진리가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다.”
 
괴로운 사실은 시계추를 붙잡아도 시간은 간다는 것지구를 멈춰야하는데그 대가는 절멸이다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이 여러 분 떠나신 올 해는 힘들고 아프고 무참했지만감정 역시 살아 있는 존재에게만 머무는 것.
 
속을 들여다 본 듯한 내용을 짚어 써 준 내 이야기라 느낄 독자들이 많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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