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공동체 - 미세먼지, 코로나19, 폭염에 응답하는 과학과 정치
전치형 외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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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적일 수밖에 없더라도 매 순간의 곤경에 충실히 대응하는 것완벽한 도피가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최선의 돌봄으로 피해를 줄이는 것무엇보다 폭염 취약계층이 재난 앞에서 흩어져 각자 살아남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이들과 같이 숨쉴 수 있는 공기를 마련하는 것우리는 일시적이지만 일상적이고급박하지만 든든하고낯설지만 호혜적인 공기 관계를 구성함으로써 더 자주 더 극심하게 찾아올 공기위기를 겨우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이제 피서는 끝났다피난 준비를 시작할 때다.”

 

저는 과학자들 인문 사회 자연 이 하는 말을 잘 듣습니다그래서 공기종말air-pocalypse’이라 명명하고 위와 같은 당부처럼 들리는 제안을 하는 이 책을 읽고 무척 겁이 납니다알지만 마지막까지 부정하고 싶은믿고 싶지 않은그래도 아닐 가능성만 찾는 그런 마음은 이제 그만둬야할 날이 머지않았나 봅니다버텨보려 했는데……심장이 세차게 뜁니다.

 

비 오는 장마철이면 안전한 실내에서 제습과 냉방을 쾌적하게 하고 향이 좋은 뜨거운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고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곰팡이가 번진 자리들을 보며 곰팡이와 섞인 습한 집에서 잠을 못 이루는 이가 있습니다.

 

거의 완벽하게 정제된 안전한 물을 마시고 부드러운 연수로 원하는 만큼 몸을 씻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매일 십 수 킬로를 걸어 다니는 이가 있습니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세상을 뒤덮으면 집을 밀폐시키고도 공기를 환기하고 정화하며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뿌연 공기 속에서 보호 장비도 없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가 있습니다.

 

인간 공동체에 한정한 분류이지만 확대하면 더 많은 양상들이 있겠지요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주저하지 않는 산업이 만들어낸 온갖 공해로 매 순간 죽어가는 생물체들과 아예 멸종이 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분명 지구에서 서식지를 나눠 쓰며 함께 사는 거주 생명체들인데지구공동체라고 하기에는 삶의 양상들에 유사성보다 차이가 더 도드라집니다.

 

호흡공동체는 과학과 정치가 함께 만들어내는 지식테크놀로지제도규범윤리 등을 통해 고유한 공기관계를 설정하고 유지한다같이 사는 것은 같이 숨 쉬는 것이다혼자 쉬는 숨은 없다.”

 

미세먼지코로나19, 폭염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지 묻는다호흡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어떤 공기를 어떻게 나눠 마실 것인가우리는 누구와 숨을 바꿔 쉬며 살 것인가.”

 

영원히 사용할 충분한 에너지원이 없다면평생을 실내에서 머물 수 없다면적어도 호흡의 문제는 공동체의 문제로 인지하고 함께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그리고 인간의 모든 활동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이므로에너지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가 고민의 핵심입니다.

 

공기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존재의 기본 조건이고인간이 맺는 모든 사회적 관계의 자연적 토대.”

 

과학자들의 경고가 이 정도로 섬뜩한데이런저런 고민을 하자는 말이 한가하게 들리긴 합니다그래도 무서우면 공부를 더하고 생각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삶을 중단한 이들의 심정을 아예 이해 못한다고도 할 수 없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제목처럼 호흡공동체를 살려나가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만납니다늘 누군가 노력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실증적으로 아는 바가 적어 막연한 기대 이상이 아닌 경우도 많은데많은 분들이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읽으니 호흡이 좀 편해집니다.

 

시민들정부병원관련 연구자들도시계획 입안자들……. “같이 사는 것은 같이 숨쉬는 것이다혼자 쉬는 숨은 없다.” 이런 믿음으로 매순간 형태를 달리하는 갖가지 어려움들을 당황하지 않고 하나씩 대응해가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서로를 구원하려는 분들이 많습니다공기과학과 정치 얘기를 읽으며 이 모든 노력 탓에 울컥합니다.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구분도 못하던 시절을 지나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KORUS-AQ 연구를 진행하여 휘발성유기화합물의 위험을 밝히고반복되는 감염병의 위기 대응책으로 역학 조사를 진행하고폭염을 기록하고 연구라는 실험들과 연구진들이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에어컨을 틀고 공기청정기를 돌리며 우리가 애써 구획했던 그 공기가 종래엔 바깥 공기와 다시 섞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당연한 일이지만 애써 일시적으로 외면했던 인정하게 되니 이분들이 꾸준히 연구와 실험을 계속해 오신 것이 구원과 의지처로 느껴집니다.

 

혼자 쉬는 숨은 없다는 문장은 더 이상 간명해질 수 없는 진실입니다오래 전 과학 공부한 생각만 말고 현재의 과학(science of the present), 공공의 과학(science for the public good), 돌봄의 과학(science as care)에 대해 새로 배워야할 때인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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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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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 오늘은 세계 한인의 날이라고 한다현재 조사된 수는 750만 명에 이른다유미리 작가는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 교포이다특별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을 표출하며 사는 양국이다상당 기간 보관만 한 이 책을 오늘을 계기 삼아 읽어 본다인터뷰에서 엿본이지메실어증별거가출정신병원 입원자살 시도...... 부디 늘 나쁘거나 아프지는 않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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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다섯 살 때 일본에 왔다한국 전쟁으로 인해 어머니가 나고 자란 마을은 주민끼리 서로 밀고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로 변했다할아버지는 공산주의가 혐의를 받고 투옥된 후 처형되기 직전에 탈옥해 홀로 일본으로 피신했다할머니는 어머니를 포함한 4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작은 어선을 타고 난민으로서 일본에 밀입국했다. (...)

 

일본에서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을 전례가 없을 정도로 서슴없이 하게 되었고 그 풍조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려면 싫으면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 “일본에서 나가라는 말을 가차 없이 퍼붓는다.

 

나는 내가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측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온 세계에 존재하는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는 2020년 도쿄올림픽 개회 기간에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과 쌍을 이루는 소설을 쓸 생각이다후쿠시마에서 오염 제거 작업원으로 일하다가 소모품처럼 버려지고 자살한 노숙자의 이야기이다.

 

나는 그의 인생과 죽음을 길 위에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의 존재를 죽음과 망각으로부터 건져 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무게를 양팔에 느끼면서 이야기를 써 나갈 생각이다.”

 

2019년 10월 20일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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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소설을 12년 전 구상하고 2006년 행행계(천황 관련 행사직전에 노숙자들을 강제 퇴거하는 특별 청소를 취재하였다고 한다황가(황궁근처 우에노 공원에서 사는 노숙인들은 이런 일을 주기적으로 겪게 된다.

 

이 책의 화자 가츠는 세계대전 후 고향에서 천황을 처음 보고 종교적인 황홀을 느꼈다고 한다이후 돈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올림픽 관련 시설 건설을 위한 막노동을 하며국가를 위한 노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살았으나아들이 죽고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시고부인도 갑작스럽게 죽은 후 잠을 잘 수가 없었다그가 노력한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고아들이 죽고 난 후자신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었는지 절감하고는 노력할 수 있는 마지막 기력을 잃어버린다.

 

걱정하는 딸과 손녀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싫어 도쿄에서 노숙을 시작했다결국 노숙자 신세가 되어 다시 만난 천황과 그의 메시지는 어떻게 들렸을까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그래서…… 그는 그런 선택을……절망 속에 머물던 그에게는 믿던 종교도 천황제도 구제와 도움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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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목적으로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을 다녀간 사람들은 아주 많을 것이다기계음이 들리는 듯한 제목처럼 유미리 작가는 눈물과 감동을 유도하지 않는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를 전한다자신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원망도 없다미련마저 없다죽는 날까지 그저 살아 있는 삶에서 가장 쉽게 사라져 버린 것은 감정일 지도 모르겠다.

 

원전에서 반경 20km 이내 지역은 경계 구역으로 지정되는데한 마을을 봉쇄하기도 한다그 마을의 주민은 가족들이 타향으로 돈 벌러 가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난한 집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재해로 집을 잃은 이들어느 날 집이 경계 구역 안에 있어 이재민 생활을 하는 이들돈 벌기 위해 타향에서 살다 집을 읽은 이들이 노숙인들이 되는 것이다저자는 이런 고통을 겪는 이들의 아픔을 이어주는 경첩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믿는 정토진종의 사원인 하라마치 베쓰인이라는 절이 원전에서 25km 떨어진 곳에 있다본당에는 묘소가 없는 십여 개의 납골 단지가 안치되어 있는데연고가 없는 쓰나미 희생자와원전 사고 이재민그리고 오염 물질 제거 작업자의 유골이라고 한다.

 

2019년 당시에도 후쿠시마현 원전 주변 지역의 방사능 오염 물질을 제거를 위해 다른 지역에서 온 작업자들은 늘 만여 명이 장기로 머물렀다고 한다이들은 주로 오사카 니시나리구에서 모집되는데일용직 노동자노숙자조직푹력배성매매인들이 모인 빈민촌으로한 해 3백 명 이상이 길에 죽는다고 한다.

 

직업 소개 업자들은 실상 착취와 인신매매 일을 하며 모집된 사람들은 자세한 설명 없이 후쿠시마현 원전 주변 지역으로 온다고 한다알코올 의존증당뇨병간경변 등 중증질환을 앓는 고령자들도 포함되어 있다돈도 없고 건강보험가입도 안 되어 있으니 작업현장에서 쓰러지면 연고 없는 그곳에서 병들어 죽고 화장되고 재가 되는 것이다.

 

TV방송과 트위터에 드러난 노숙자를 보는 일본의 시선은 이렇다.

 

세금을 내지 않으니 대피소에서 쫓겨나는 게 당연하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무섭다.”

더럽다냄새를 참을 수 없다.”

지금까지 지붕 없이 길바닥에서 살던 자들이 재해가 일어나면 지붕 밑에서 살 수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재해가 일어난 직후에 모두가 혼란스럽고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그렇다고 타인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차별과 배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재해가 이렇게 잦은 나라에서 재해에 대비하는 인간에 대한 규칙이 없다는 것이 충격적이다오히려 차별과 배제 의견에 공감과 동정을 보낸다니, ‘협력하고 양보하고 예의 바른’ 일본인들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모두 예의 바르게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


차분하고 섬세하고 우울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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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두메르소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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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가체프 커피를 무척 좋아해서 설렙니다.
올 해 처음 마셔보는 예가체프입니다.
핸드드립 용으로 로스팅과 분쇄 잘 해 주신 것
행복하게 즐겨 보겠습니다.
도착이 고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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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이종필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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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하는 경험은 아니지만 간혹 어떤 교수는 학위 논문 쓴 이후로 공부를 한 적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반 백이 넘어 수십 년 전 자기 논문 자랑을 하는 이를 보면 난감하고 서글펐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박사 학위 논문은 이제 혼자서도 의제를 설정하고 연구할 훈련을 해보았습니다란 증명서이다말하자면 연구하며 살아보라는 자격증이랄까그러니 의무 과목 모두 사라진 원하는 주제에 집중하는 공부는 이후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학위를 공부면제 허가서로 사용하는 이들을 만나면 뭐 나도 졸업하면서 이제 누가 나보고 시험보라는 말은 더 안 하겠지” 란 오해도 하긴 했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구나 싶어 얼굴을 대신 붉히기도 했고밀도도 순도도 없을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부당한 형편에 마음이 타들어가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잠시 잠깐 한 공부로 오래 교직에 버틸 수도 있는 사람들이 잘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고전수조사를 하면 현재진행형인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20대까지 공부한 걸로 평생 먹고 살았다하지만 앞으로는 나이 예순에도 여든에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20대에 내가 무엇을 전공했는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떻게 학습하고 어떤 지식을 습득해 어떻게 자기만의 스토리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현실이 재빠르게 변하는 것에 비해 교육은 요지부동인 것만 같다, 한국은 정보교육 시간이 40시간 밖에 안 된다고 함!

 

지인들과 함께 읽는 중에 감격에 겨운 감상을 전해 들었다수학은 짜증스럽게 어렵고 물리학은 외계 학문이라 여기면서도 나와의 느슨한 우정을 오래 유지하는 별난 이는 이 책을 읽고 자신과 수많은 이들이 왜 과학을 어려워하는지 이해했다고 한다.

 

과학은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닐뿐더러 본질적으로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 관한 지식체계이다인간에 관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게 낯설다우주의 언어는 인간에게 아주 낯설다그래서 과학이 어렵다.”

 

과학은 수학으로 이루어진 지식체계다과학을 기술하기 위해 수학을 언어로 사용한다마치 미국인과 대화하기 위해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나는 그 수학이라는 언어사용이 서툴러 과학을 멀리했다.”

 

발췌해 준 문장들을 보고 내가 그 오랜 세월 했던 말은 무엇이었나뒤끝이 불멸을 획득할 뻔 했지만 동의할 수밖에수학은 언어이고 낯선 언어이고 그러니 외국어를 처음 배우듯 접근해야 한다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철학은 우주라는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우주는 항상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그러나 이것을 이해하려면 우주의 언어를 먼저 배워야 한다자연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황금계량자(1623)>

 

물론 우리 모두가 과학자가 될 수는 없다중요한 것은 과학적’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그리고 이것은 무척 중요하다과학적 태도를 중시하지 않으면 손바닥에 왕(자를 그려 넣고 의지하게 된다.

 

오랜 세월 친구들은 내가 보수(保守)적이라 놀렸다부정할 생각은 없다나는 보수(補修)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니까.


과학자들은 보수적이다새로운 현상을 앞에 두고 적극적인 귀납주의자가 되기보다 엄격한 보수주의자가 되는 이유는기존의 체계 안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도 그 현상이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야 새로운 체계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 검증의 단계를 일단 넘어서면 과학자들은 열렬한 혁명주의자가 되어 좌고우면하지 않고 새 체계를 받아들인다.”

 

엄격한 보수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열렬한 혁명주의자인 사람들. (...) 나는 진보적인 사람이고자 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도 해보지 못했던 것 때문이 아닐까날씨에기분에내 성질에 못 이겨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내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반성한다.”

 

이종필 교수는 입자물리학을 전공했다물리학 전공자인 나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샅샅이 잘 안다대학원에서 입자물리를 전공하고 싶다고 하자 지도교수는 백 번의 다짐을 하라고 하셨다마치기도 어렵고 취직도 어렵고 연구 기회도 (거의없고 고통의 삶이 탄탄대로로 펼쳐진 길이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시대를 조명하고 시대를 고민하고 도움이 되기 위해 집필한 이 책이 반갑고 감사하고 서글프다과학의 보편성을 담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량화와 환원주의한국의 과학이 지적 한탕주의 인생 한 방이란 양아치 문화와 결이 같다그리고 산업 자본에 완전히 모조리 포섭된 과학기술 연구이 모든 것들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당위는 인정하지만 어떻게 가능한지 내부자로서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과학을 하든 다른 무엇을 하든가장 중요한 것은 “NIV(Nullius in verba*), 무엇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 믿는다그리고 과학은 그 목적에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쉽고 편리한 도구이다.

 

* The Royal Society's motto 'Nullius in verba' is taken to mean 'take nobody's word for it'.

 

초능력도 재능도 필요 없고감각기관을 동원해서 관찰을 잘 하면 된다그렇게 포집한 데이터를 보고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적 통찰이다정보 축적 단 거짓과장비약은 없어야 한다 과 협력소통공유네트워킹 그리고 관계의 유지 관리가 과학 활동의 비법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모아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일이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나의 시각나의 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로부터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정보를 얻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저자는 뉴노멀 시대를 맞아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입자물리학자의 이야기도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진지한 제안과 정책으로 고려되면 무척 기쁠 것이다대개가 논쟁적이지 않고 보편적 가치에 안온하게 머무는 메시지들이다언제나 그렇듯 꿈이 작은 나는 과학상식이 널리 통용되어 손 씻을 때 손가락만 씻는 사람이 없는 사회도 무척 기쁠 것 같다.

 

사물에도 일부러 지능을 집어넣으려는 초지능의 시대에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지능을 안 쓰려고 하는 것일까?”

 

초연결성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혼자 잘하던 시대는 끝났다.” (...) 다 같이 잘하는 시대에 필요한 덕목은 소통협력공유탈 중심 등의 가치이다.”

 

초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수평적이고 분권적인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수평과 분권은 사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고도 할 수 있다. (...) 최소한의 권한이 있어야 밑에서도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을 하게 된다이는 앞서 말했던 초지능성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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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리더 세종 - 대한민국 천년의 미래를 묻다
양형일 지음 / 밥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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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 왕()을 그리고 대선에 출마한 후보 덕분에 우리나라에 왕이 있냐고 묻는 아이들이 있고부모들은 대한민국이 공화국이고 공화국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일에 직면했다고 하니모든 일에는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면이 있구나 싶다.

 

주말에 십 대 아이들이 읽고 둔 책들을 혼자 읽어 보는 것이 일종의 의식인데 왕 중에서도 대왕이라 불리는 세종에 관한 책이 완독 책장에 올려 있다. 이번 생에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하고 싶다는 야망은 깔끔하게 포기해야 할 듯하고, 그 탓은 아니지만 가장 익숙한 왕의 업적을 정리하는 것도 선명하지 않다.

 

대략 독서를 하는 입장에서 세종이 각종 분야의 책들을 가능한 많이 읽은 점은 이의 없이 존경스럽다읽고 마는 것도 아니고 당대 누구와 토론을 해도 주도했다니 이해력도 남달랐을 것이다.

 

건국 초기이긴 하나 왕족이 유학 경서만이 아니라정치행정역사종교율례지리천문운학문학수학, 화음악문화농사경제군사병법 등의 독서를 했으니 총괄업무에 유용할 지식을 바탕에 둔 것은 분명하다.

 

무식하거나 수신이 안 된 군주가 치세를 바르게 할 수 없음은 고금의 정치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몇 해 전 다른 책을 읽다 알게 된 사실인데세종이 취한 조치들 중 노비에 관한 세세한 처우들이 인상적이었다이 내용만 보면 현대사회가 오히려 인권 부재의 사회처럼 느껴질 정도이다과장이라 느끼실 분들은 보도 자료나 기억을 비교하며 정리한 바를 읽어 보시기 바란다.

 

관노비나 사노비도 질환에 시달리는 자들은 노역에 동원할 수 없다.

노비에게 가혹하게 상처를 입히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 자는 엄벌에 처하도록 했다.

질환이 있는 군졸은 부역을 면하게 하고이미 동원된 경우에는 중단시키도록 했다.

임신한 노비가 죄를 지어 하옥된 경우 특별 보살핌을 지시했고 고신(고문)을 금지했다.

산모와 태아에게 위해가 될 처벌을 배제했다.

관노비는 출산 시 1백일의 휴가를산기가 임박해서는 1개월의 출산 전 휴가를 주었다.

출산 휴가는 산모와 남편 모두에게 주었다.

세종 12년 10월 9출산휴가를 법제화하도록 명했다.

 

일하다 아파도 아픈 사람보고 아픈 거 증명하라고 하고죽어도 책임자 처벌도 없고계속 죽어도 개선도 없고출산휴가로 눈치 보는 직군이 더 많고뭐라도 입법화하려면 힘껏 애써도 몇 년 만에 발의될까 말까이다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독서 목록에 수학이 있어 궁금했는데 세종 시대 수학자 김빈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엔지니어와 테크니션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 저만 그렇다고 오해하는 건가요 - 경우들이 있는데이 둘은 하는 일이 다르다엔지니어는 발명이나 디자인을 하는 수학자나 물리학자인 경우가 많다짐작에 장영실은 테크니션이었을 듯 한데 천재 개발자의 이미지가 강해 실상이 좀 궁금했다.

 

세종 자신이 산학을 숙지하기도 했고당대 뛰어난 수학자 김빈과 자격루혼천의 등을 개발했다당시 학문도 아니고 중인 계급이나 관심을 갖는 분야로 취급되던 것을 전제군주가 공부하고 개발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알고 읽어도 신기하다수학에 능한자를 능자 기술기예에 숙달된 자라고 불렀다니 애들 모아 놓고 암산 대회하던 괴이한 대회들이 스쳐간다.

 

세종 15년 8월 (...) 인쇄된 책은 집현전호조서운관 등의 부서에 배포하여 익히도록 했다수학이 사대부들의 학문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당면한 문제 해결에 골몰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계획과 뜻이 있던 왕이라 볼 수 있다물론 건국한 아버지가 여러 정리를 말끔히 하고 권력을 넘겨 준 배경도 컸을 것이다반대 세력도 세를 구축한 집권 세력도 없는 새 왕조새롭게 잘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겠고 독서량과 지식이 많은 군주가 왕위에 올라 소위 시너지 효과가 컸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시대에는 더욱 중요했던 용인술에 대해 토사구팽은 자주 들었으나 대의멸친은 처음이다대의를 위해서라면 가까운 사람들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현대 정치와는 같고도 좀 다른 의미를 갖는다흔히 사람들은 측근인맥낙하산 인사에 대해 부정적 경험과 언론의 과장되고 의도된 조작 이미지 탓이긴 하지만 무조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범죄의 지름길로 취급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가장 믿음직한 형님 국가로 여기는 미국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백악관 전 직원이 바뀌는 수준의 대대적 인사가 이루어진다행정부 구성 역시 일단 첫 근무 시작하는 첫 단계에 이미 수십 수백 명이 당선자의 자기 사람들로 구성된다정치적 목적과 구상이 같고 이해를 하는 사람들끼리 일해야 일이 되지 않겠는가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늘공이 관료마피아로 불리는 이유도 고민할 문제이다.

 

감시와 비판을 할 것은 관계의 거리가 아니라 직책에 합당한 능력을 갖추었는가 이다그래서 더 철저하고 어려운 과정일 수도 있다물론 남의 시선과 판단을 전혀 신경 안 쓰는 트럼프 같은 존재라면 문제가 커지긴 하나그건 그런 인물을 당선시킨 모두의 책임이고 망가지는 정치를 지켜보는 고통은 그 대가이다.

 

현대 정치야 직에서 쫓겨 가는 경우가 최악이겠지만 생사여탈권을 가진 전제 군주 시대에도 왕에게 쓴 소리를 하던 이들이 있다는 것도 놀랍고 어쨌든 불충한 신하에게 유배나 사약을 내린 적도 없는 세종도 놀랍다근무환경이 괜찮았겠다 싶은 부러운 생각도 살짝 든다.

 

“‘언문의 힘은 바로 과학성과 편의성에 있다자음과 모음의 조합에 의해 표현하지 못할 소리와 말이 없다정인지 표현대로 머리가 좀 있는 사람은 반나절이면 이해할 수 있고아무리 머리가 나쁜 사람일지라도 터득하고 배우는데 열흘을 넘기지 않는다.”

 

이 문장은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을 보면 잘 보인다문자가 조합 구성되기 때문에 뜻을 전혀 몰라도 글자는 다 읽을 수 있는 수준에 먼저 오른다그렇다고 만병통치약처럼 '못할 게 없다'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경험도 있다자모가 번갈아 등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한글식 표기를 하면 음절이 대체로 늘어난.

 

1: English e,i 2음절발음 잉리ㅅ 한글잉글리쉬

2: Dark Knight a, i 2음절 닥나잇 한글다크나이트

 

물론 이런 별 거 아닌 지적보다는 나라말과 글에 담은 뜻과 정신 - ‘독립된 자주 문화 문명국이라는 세종의 지평 이 중요하다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부재할 것이다.

 

나라를 보존하며 일으키기 위해서는 나라의 바탕을 굳건하게 하여야 하며나라의 바탕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말과 글을 존중하며 써야 한다모든 문명 강국들이 자기 나라의 문자를 존중하고 사용하는 것도 그 까닭이다.” 


 주시경의 지론이었다. 이후 뜻이 같은 서재필은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을 창간한다.

 

곧 한글날이다나에게는 일 년에 한 번 언어가 사고(思考)를 규정한다는즉 나를 규정한다는 것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하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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