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에 그린 인류의 미래, 섬뜩하다]
난 만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다. 그래서 남들이 다 보았다는 만화책 몇 종류 정도 보았을 뿐이고 그다지 흥미롭게? 본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래서 만화에는 유독 시선이 가지 않았지만, 20년 전에 만들어진 이 책에 대한 많은 이들의 호평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가 미래의 인류 이야기를 다룬 SF라고 하니 과연 작가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SF장르 중에서도 인류의 미래를 다룬 작품에는 살짝 경직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든 문학작품이든 인류의 미래를 그릴 때는 아무래도 암울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속에서 미래를 바라볼 때, 과학문명의 발달은 인류에게 긍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그보다 더 위험하거나 혹은 부정적인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인듯 하다. 이 작품 속에서의 미래는 긍정일까 부정일까? 책을 읽기도 전에 난 그런 의문부터 가지면서 읽기 시작한 듯하다.
이 작품이 국내 출시되기까지 25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한다. 해적판으로도 인기가 높았다고 하는데 작품을 읽으면서 마치 한 편의 SF영화를 보는듯한 치밀한 구성과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아마도 그런 탄탄한구성력이 독자를 매료시켰는가 보다.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단편을 조각조각 보여주는 듯한 이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나는 한 번으로는 갸우뚱 하면서 두어번을 읽어야 했다. 이러한 조각난 이야기의 구성은 작가가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천일야화의 구성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도 들려주는 스무날 밤의 는 천일야화의 날들보다 몇곱절은 더 많은 날들을 내포하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타임머신을 타고 공간이동을 하듯 자그마치 먼 인류의 3400여년의 세월을 담고 있다.
스텐리 큐브릭의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영향도 적잖이 받았음은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이야기 코드 속에서 찾을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시간의 검은 기둥에 빨려들어가 자신의 죽음과 미래의 탄생을 한꺼번에 보듯이 이 작품에서 사라져가는 인류와 재탄생하는 인류를 동시에 보게 된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하고 있는 인류의 미래를 보면서 역시 SF속의 미래는 두렵다는 생각이 다시금 모락모락 피어난다.
작품 속에서 섬뜩했던 몇몇 에피소드를 보면 로빈슨 부부가 자녀들 이야기이다. 이 부부의 수정란은 인류가 살기에 알맞은 별에 안착을 해야 수정란에서 비로소 태아가 된다. 그 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키워주는 로빈손 부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해야 하는데 이들은 아이들이 자립하는 그 순간 자신의 임무를 다 하고 아웃된다. 바로 임무가 주어진 로봇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만 남은 그 순간의 모습에서 다섯째 밤의 제목으로 붙여진 우주의 고아?가 섬뜩하기만 하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에 이 아이들과 현재의 지구인, 미래의 타키오니언이 한데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순간은 모든 것이 한점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우주의 이치가 한눈에 보이는 장면이 연출된다. 가장 인상적이 엔딩장면 중의 하나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인류는 늘 미래를 위해 발전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발전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되물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점차 다가오는 것 같다. 과학적 발전이든 문명의 발달이든 발달이라는 말에는 늘 뒤따라야 하는 그림자 같은 것이 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그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들이 부재한 과학과 문명의 발달은 결국 인류의 미래에 부정적인 요소가 될 것임은 불보듯 뻔한 사실이다. 그래서 냉혈한 과학자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이해하는 과학자를 우리는 더 신뢰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것은 과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인류가 함께 살기 위해서 그 근본이 되는 것이겠지..한 편의 만화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읽겠다고 덤비는 초등생 딸아이에게 이 작품은 잠시 유보해 두기로 했다. 아직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힘든 미래가 담긴 듯해서 ....아직까지는 밝은 미래를 더 많이 보여주고 싶은 엄마의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