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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이야기 1 - 세 어머니
시모무라 고진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9년 4월
평점 :
[20년간 집필한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
문학작품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집필을 시작하게 되는 걸까? 저명한 교육자이자 작가인 시모무라 고진은 내게 그리 친숙한 사람은 아니지만 20여년간 지로 이야기를 집필했다는 말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 작품, 아니 한 인물의 출생에서부터 모든 성장을 담고자 한 그의 마음은 지로라는 인물을 통해서 당시 시대상과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인생관을 담아내고자 했음이리라. 그래서 이런 작가들을 통해서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책상에 앉아서 집필을 하는 작가들의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고 감사하게 된다.
지로이야기.... 이 소설은 지로라는 한 아이의 출생과 성장을 담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태어나자 마자 엄마인 오타미의 손을 떠나서 학교 교지기로 있는 오하마의 손에서 성장하게 되는 지로. 우리나라의 경우 대갓집 마님의 자녀가 클 때는 유모가 함께 살면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아이를 완전히 다른 집에서 키우는 상황은 약간 당황스럽다. 부모 곁에서 떨어져 자란 지로가 엄마인 오타미보다 유모인 오하마를 따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간신히 오하마를 떠나 가게된 집에서는 자신을 반겨준 이보다는 냉담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지로가 가족 속에서 자신의 부재를 느끼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할머니나 엄마인 오타미가 왜그렇게 지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가 하는 점이다. 명확한 이유는 없지만 이 둘의 차별이 지로를 더 강하게 만들거나 혹은 자기 존재감에 더 집착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에 보았던 <TV문학관>이나 일본이나 중국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최근에 본 영화 가운데서는 <집으로>의 장면이 순간순간 떠오르는 건 이 소설이 감각적이거나 극적인 요소를 담아내기 보다는 성장하는 지로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수식어로 설명을 하려고 하지도 않고 고집스럽지만 영악하고 강한 지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에 주변 사람과의 어울림과 마찰이 자연스럽기만 한다.
새학교 건물이 들어서면서 교지기를 하던 오하마네 가족이 탄광촌으로 떠나버리게 되는 일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오하마와 지로는 한방에서 잠을 자지만 지로가 깨기 전, 새벽녘에 홀연히 떠나버린 오하마. 지로는 하루종일 안절부절하면서 오하마를 찾아다니고 가족중 그 누구도 떠남에 대해서 입에 담지 않는다. 다 허물어진 학교의 교지기 방에서 드디어 혼자만의 울음을 떠뜨리는 지로를 보면서 이별을 통해 성장하는 한 소년을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지로의 이별은 이 한 순간만이 아니다. 첫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류이치의 누나 하루코가 도쿄로 떠나버린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외로움을 맛보았고, 자신에게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폐병으로 숨을 거둔 엄마를 간호하고 떠나보내면서는 새로운 모정을 느끼게도 된다. 오하마보다도 더 먼 곳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지로의 변하는 모습은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을 통해서 수없이 변해가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기에 크고 작은 삶의 사건들을 통해서 성장하는 지로의 모습이 애틋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늘 지로의 편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아버지 슌스케 역시 지로 이야기에서 오랫동안 기억되는 사람이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자기 아들을 믿어주는 아버지였기에 지로에게는 최고의 우상이었다. 아이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거름이 되어서 성장하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슌스케를 통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집안의 몰락과 어머니의 죽음, 그렇게 해서 유모와 어머니에 이어 또 하나의 어머니를 갖게 되는 지로. 지로가 성장하는 만큼 새롭게 세상을 헤아리는 법을 작가는 가르쳐주고 있다. 어머니의 임종과 집안의 몰락을 통해서 성장한 지로는 더 이상 어린 날, 화약을 가지고 놀다가 놀래 자빠지던 지로가 아니다.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만큼 지로의 생각을 키워가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 그가 작가이면서 동시에 저명한 교육자였다는 말이 실감나는 작품이다.
물론 작가가 원하는 만큼 지로의 이야기를 더 할 수는 없었지만, 유년시절의 지로를 통해서도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감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지로 앞에 놓일런지... 지로의 성장에 다시 한번 동행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