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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이 책은?
이 책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는 ‘신실재론’을 논하는 철학책이다.
저자는 마르쿠스 가브리엘, <본대학과 하이델베르크대학을 거치며 철학, 고전문헌학, 현대 독일문학을 공부했다. 2005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9세에 2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본대학교 철학과에 사상 최연소 석좌교수로 발탁되었고, 인식론과 근현대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동 대학의 국제철학센터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책을 펴고 읽기 전에 표지에 나온 글부터 살펴보고 가자.
-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
- 전 세계가 주목하는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통쾌하고 예리하게 파헤치는 옳고 그름의 철학.
- 모든 것이 모호한 경계 속에 어떻게 삶의 중심을 지켜낼 것인가.
이런 것들이 이 책의 주제가 될 것이다. 그런 주제에 대하여 살펴보자는 기대를 가지고 읽어본다.
몇 가지 개념 정리할 필요가 있다.
‘신실재론 (또는 새 리얼리즘)’ :
저자의 다른 책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에서는 ‘New Realism’을 ‘새로운 리얼리즘’이라 번역해 놓았다.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김희상 번역, 열린 책들)
새로운 리얼리즘은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을 넘어선 시대를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철학적 태도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인류의 위대한 구원의 약속, 곧 종교에서 근대과학을 거쳐 좌파와 우파의 전체주의라는 정치이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원의 약속이 처참하게 좌절한 이래 모든 것을 처음부터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려는 시도였다.
그리하여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만 하는 인생의 의미가 존재한다는 환상으로부터 풀어주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은 또 다른 환상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환상에 꼼짝없이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말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인류가 선사 시대 이후 하나의 거대한 집단적 환각, 곧 형이상학에 시달려왔다고 우리를 가르치려 들었다. (위의 책 10쪽에서 인용)
그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이후를 생각하는 철학이 바로 신실재론, 새로운 리얼리즘이다.
철학에 관심이 있어 여러 책을 보고 있었는데, 철학이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와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 그 시초를 두고 있다면 신실재론까지 뻗어가고 있는 게, 철학의 현재 모습이다.
해서 이 책은 현대의 철학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도록 해준다.
신실재론은 탈진실이라는 말이 확산되고, 포풀리즘의 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치는 오늘날의 세상에 응답하기 위해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철학이다. (4쪽)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라는 책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
신은 죽었다. 근대라는 ‘장대한 약속’도 죽었다. 이러한 ‘죽음’을 거친 우리는 닻을 잃고 표류하는 배와 같다. 그 바람에 지금 이 세계는 ‘좋았던 옛 시절’, 즉 19세기의 ‘국민 국가’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5쪽)
나는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세운 보호주의나 EU의 와해 현상을 볼 때 세계사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곤 했다. (119쪽)
요는 ‘국민국가’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국민국가’가 어때서 그렇게 여긴다는 것인가?
저자는 ‘국민국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유럽은 완전히 붕괴 상태에 놓여있다.
사실상 EU는 대부분의 국가가 경제상, 군사상의 관계로 얽혀있는 취약한 구조다.
오늘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헝가리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모두 예전 형태의 모델로 되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15쪽)
국민국가와 관련해서는 의태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국가 규모의 의태가 일어나고 있다. (18쪽)
‘의태(擬態)’의 원 뜻은, 생물이 공격이나 자기 방어를 위해서 몸체의 색과 모양을 주변의 동식물이나 자연환경과 똑같이 위장하는 것이다. (18쪽)
이 말은 이 책에서 이렇게 쓰인다.
실상은 가려지고 다른 모습으로 위장되어 있다. (21쪽)
오늘날 전세계는 사람의 인식을 조작하는 비즈니스가 횡행하고 있다. 각국의 행위자들이 완전히 엉터리로 자신을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23쪽)
소셜 미디어는 완전한 의태다. 소셜 미디어가 사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26쪽)
그것이 인터넷의 수법이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왜곡된 정보를 심어주며 우리의 지성을 잠식한다. (28쪽)
그래서 표상의 위기가 초래되는 것이다.
표상의 위기란 이미지가 진실을 덮어 은폐하고 있는 상황을 뜻한다. (31쪽)
저자는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위기를 다섯 가지로 보고 있는데, 그 다섯 가지는
가치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자본주의의 위기, 테크놀로지의 위기, 표상의 위기를 말한다.
Chapter 3 가치의 위기 : 비인간화, 보편적인 가치, 니힐리즘
나는 항상 우리에게는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관이 있으며, 다른 문화가 그것을 덮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왔다.
분쟁은 상대가 자신과 반대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일어난다. (60쪽)
아픔을 대하는 인간의 행동도 세계 공통이다. 물론 아픔을 느끼지 않는 척할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특정한 행동을 일으킨다. 그것은 우리가 같은 종의 동물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보편적인 윤리관에는 생물학적인 기반이 있다. (61쪽)
도덕은 가르칠까 말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필수 과목이다. 그리고 도덕을 가르칠 때에는 도덕적인 객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89쪽)
Chapter 4 민주주의의 위기 : 양식, 문화적 다원성, 다양성의 역설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92쪽)
모든 일이 항상 바로바로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만족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적 사고다. (95쪽)
Chapter 5 자본주의의 위기 : 공면역주의, 자기 세계화, 도덕적 기업
자본주의에 닥친 근본적인 위기는 사람들이 ‘세계화’라고 특징짓는 지점에 있다. (118쪽)
현대의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착취당하는 그룹을 만들어내게 되어 있다. (133쪽)
Chapter 6 테크놀로지의 위기 : 인공적인 지능, GAFA 대항책, 부드러운 독재국가
지능이란 부여받은 시간 내에 부여받은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169쪽)
이 책에서 눈여겨 봐야 할 항목이 있다.
<우리는 GAFA 에 무상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라는 항목이다.
저자는 이렇게 운을 뗀다.
가파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권세를 휘두르는 이 4대 기업이 오늘날 전 세계를 통치하고 있다. 가파의 통치를 저지해야 마땅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 규칙이나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그들이 더 이상 꿈쩍이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 (177쪽)
왜 그런가, 저자의 말을 더 들어보자.
가파는 데이터로 이익을 얻고 있다.
데이터는 알고리즘과 내가 행하는 인풋 사이에 있는 차이다.
먼저 인풋을 살펴보면, 내가 어떤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SNS 에 올린다고 하자.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이 사진으로 이익을 올린다. 사진을 찍어, 다시 말하면 그런 수고를 하여 수고스럽게 사진을 올리면 신경도 쓰지 않던 그런 기업에 가치를 생성하게 되고, 이익을 올린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은 그런 사진을 찍어올린 사람에게 얼마를 지급할까? 제로다.
그런 현상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가파에 대해 일정한 조치를 취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의 이런 제안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이런 글을 읽어보면 금방 납득이 될 것이다.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모델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기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고, 더 많은 사람을 플랫폼으로 모아 데이터를 수집하여 최적화된 광고로 수입을 올리는 것’이다.
(『플랫폼 제국의 시나리오』, 다나카 미치아키, 49쪽)
Chapter 7 표상의 위기 : 사실, 가짜 뉴스, 미국의 병
표상의 위기는 이미지와 인간의 관계성을 나타낸다. (188쪽)
이미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이런 귀결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보고 ‘진짜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이미지가 실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미지는 쉽게 조작된다. 사람들은 이미지 배후에 있는 진실, 스크린의 이면에 있는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우매해진다. 스크린의 개념이 잘 못 되었기에 현실이 스크린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다. (192쪽)
누군가 A 에 대하여 갖고 있는 이미지가 ‘A는 인생을 행복하게 누리고 있다’라면 A는 메타 수준에서 인생을 향유하기 시작한다. 즉, 인생 자체가 아니라 ‘인생의 이미지’를 향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페이스북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미지 때문이다. (198쪽)
여기서 이 말 상기할 필요가 있다.
소셜 미디어는 완전한 의태다. 소셜 미디어가 사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26쪽)
다시, 신실재론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에서는 무엇이 진실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탈진실의 자세다.
그러나 신실재론은 진실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종의 동물이므로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브리엘은 우리 삶의 기반이 되는 보편적인 가치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게 신실재론을 가장 대표하는 말이 될 것이다. (5쪽)
다시 앞으로 돌아가, 표지에 나왔던 이 책의 주제.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위기, 모든 것이 모호한 경계 속에 어떻게 삶의 중심을 지켜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신실재론이 적절한 대답이 될 것이다.
도덕은 가르칠까 말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필수 과목이다. 그리고 도덕을 가르칠 때에는 도덕적인 객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89쪽)
따라서, 신실재론은 인간으로서 삶의 중심을 지켜내면서 살아가기 위해 지녀야 할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