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 이덕일의 한국사 4대 왜곡 바로잡기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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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류 사학계가 해방 후 60년이 지난 현재도 일제 식민사학의 왜곡된 논리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주요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스승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학문풍토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당대에 쓴 1차 사료를 직접 검토해가며 자신의 이론을 확립한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사학자들과 그 한국인 제자들의 눈으로 바라본 고대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기 때문이다. 고조선과 한나라 시대로 직접 들어가 그 시대의 사료로 분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43쪽

대단히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이병도가 황해도 황주를 둔유현이라고 본 근거는 동어와 둔유의 음이 비슷하다는 주장 하나뿐이다. 표의문자인 한자를 발음이 비슷하든 이유하나만으로 같다고 단정한 것은 언어학적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중략)게다가 '우동어홀' 중에서 우 자와 홀 자는 마음대로 빼버리고 동어만을 취해 '동어가 둔유와 같은 말을 달리 쓴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 논리적 비약에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아직까지도 주류 학설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16쪽

낙랑군은 평양 지역에 있었고, 대방군은 황해도에 있었고, 임둔군은 함경도에 있었다는 인식이 사학계 주류의 정설인 것이다. 조선사편수회의 역사관과 동일한 인식구조다. 이런 인식을 가진 학자들이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서라고 설치한 고구려연구재단과 동북아역사재단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국가의 지원을 받아 한국사를 연구하는 것이다.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또 존재할까? 한국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일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모든 학문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174쪽

21세기를 살아갈 미래의 주역들은 역사를 통해 타인의 존재가치와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상대주의적 세계관을 배우고 그 틀 속에서 개방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언제까지 미래의 주역들이 사대주의와 폐쇄적 획일주의 속에서 과거 퇴행을 지향했던 노론의 가치관을 합습해야 하는가?-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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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2 - 인조실록 - 명분에 사로잡혀 병란을 부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2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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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은 자신의 의지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연산군을 폐위시킨 신하들에 의하여 왕이 되었고, 준비되지 않은 채 왕위에 올라 별다른 업적없이 그의 여인들과 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조광조만이 유명하다. 하지만 인조는 자신이 직접 반정을 주도하여, 광해군을 몰아낸 뒤 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태종과 세조와는 달리, 모든 반정을 주도하였지만 별다른 계획이란 것이 없는 왕이없다, 오로지 광해군과는 다른 행동을 한다는 계획밖에는.. 현실적으로 명이 망하고 청이 흥하고 있다는 시대흐름조차 따르지 않은 채 무작정 명과의 의리만을 중시하고, 정묘호란을 통해 후금의 세력을 직접 느꼈음에도 계속해서 명과의 교류를 중시했던 왕.. 

반정을 통해 왕이 되었지만, 어느 것 하나 계획한 것도 자신의 이상도 없는 왕이었던 인조는 임진왜란에서 벗어난지 얼마안된 조선을 다시 한번 병자호란에 휩싸이게 만들 뿐이었다.. 척화도 좋고, 북벌도 좋지만 우선 실력을 쌓고, 병사들을 훈련시키며 체계화된 전략을 짜야하는 것이 전쟁인데, 말로만 걱정하고, 말로만 계획을 세웠으니 치욕스러운 삼전도의 굴욕을 면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자신의 무능력함과 현실파악부족으로 인해 세자가 청에 인질로 끌려갔음에도 청에 인정받는 세자의 모습에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워 소현세자를 박대하는 모습이란.. 소현세자가 의문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 크게 인심써서 인조의 잘못이 아니라고해도, 인조는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세자빈강씨를 사사하고, 세손들을 머나먼 제주도로 유배보내버렸다.. 한 나라의 왕이기전에 아들의 아버지로써, 할아버지로써 이게 가능한 행동인가? 아무리 권력에 눈이 멀었다고는 해도 자신의 아들인데..  

조선에만 틀어박혀 다른 나라가 돌아가는 사정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명과의 의리만을 추구했던 사대부들보다 청에서 직접 세계를 경험했고, 성리학이 아닌 다른 학문을 경험함으로써 조선의 발전을 가져올 수 도 있었을 소현세자를 잃게만든 인조.. 임진왜란을 겪은지 얼마 안된 나라에 다시 병자호란을 유발한 것도 그렇지만, 자신의 자식마저 져버린 그의 모습을 보며 광해군이 그리워질뿐이었다.. 수많은 옥사를 통해 자신의 형제들의 목숨을 빼앗고, 미신에 심취해 많은 재정을 낭비하였지만 그래도 명과 후금사이에 중립외교를 함으로써 외나무다리에 선 듯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선이란 나라를 벼랑끝으로 내몰지는 않은 그런 왕이었기에 차라리 인조보다는 광해군의 치하에서 조선은 더욱 평안하지않았을까 싶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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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 광해군일기 - 경험의 함정에 빠진 군주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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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란 참 허무한 것이기도, 무서운 것이기도 한가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고, 한 핏줄이며, 부모와 자식간임에도 권력앞에선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변해버리니 말이다.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청나라와 조선간의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청나라가 소현세자를 왕으로 추대할 것이라 여긴 인조가, 자신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의심하고 결국엔 아들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사고, 며느리의 집안은 물론이고 세손들까지 모두 유배보내버린 것처럼, 자신과는 다른 정치적 세력을 지녔다고 느낀 사도세자에게 몇번의 양위하는 시늉만 내다 결국 뒤주에 가두어 죽인 영조처럼, 선조 역시 임진왜란 당시 자신을 대신해 민심을 수습한 광해군을 너무나도 질투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그토록 미루던 세자자리에 즉위시키고, 전쟁이 끝나자 다시 선위 소동만을 일으킬 뿐 제대로 세자대접도 안해주고, 죽을 때에도 광해군을 걱정하기보단 영창대군을 부탁하였으니 아무리 온순하고 똑똑한 광해군일지라도 매일을 불안에 떨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신에 혹해 많은 돈을 낭비하게도 된 것이고, 자신의 권위를 흔드는 일에 누구보다도 민감하여 그 많은 옥사를 일으킨 것일지도....  

만약 선조가 영창대군을 부탁할 것이 아닌, 광해군에게 힘이 되주는 말을 했더라면, 명나라와는 상관없이 세자로 확고히 인정을 해주었더라면, 아니 광해군 스스로가 최고 권력을 갖게 된만큼,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만 안았더라면..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전쟁에 의한 상처를 복구하고, 더욱 강대한 조선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었을텐데.. 그런 능력을 그저 옥사에만 사용했던 광해군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만약 그가 계속해서 왕이었다면, 그의 중립외교로 병자호란을 겪지도 않았을텐데..  

조선 역사를 읽다보면 매번 그 놈의 장자와 차자, 그리고 직계혈통과 방계혈통, 적자와 서자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컴플렉스로 가득한 왕들과 머릿속엔 성리학과 소중화사상밖에 들어있지 않아 현실을 제대로 보기보단 무조건 중국만을 섬기면서 누구보다 많은 권력을 갖기 위해 온갖 모함을 하고, 편이 갈려 싸우기만 하는 신하들에 의해 조선은 한시도 평안할 날이 없던것 같다..  

양민은 자신들의 밥줄로, 노비는 자신의 재산으로 생각하며, 전쟁이 일어나면 자기 몸만 먼저 피하는 그 많은 사대부들의 끊임없는 탄언에 제 뜻을 펴지도 못하는 왕과 꼭 필요한 신하임에도 다른 신하의 말에 흔들리는 왕에 의해 제거되는 일이 반복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연산군은 폭군이 되어야만 했고, 광해군은 자신의 친형을 비롯한 수많은 형제를 죽여야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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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김대중 2 - 행동하는 양심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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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전대통령과 김대중전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악연인줄은 몰랐다.. 대통령의 자리에 있으면서,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이라 판단하여 선거자체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수를 쓰고, 가짜 선거명부를 만드는 부정을 저지르는 박정희전대통령의 모습은 조금은 의외였다. 

물론 박정희전대통령이 경제발전에 있어 많은 기여를 했지만 그가 장기독재집권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장기집권을 위해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많은 사람들을 탄압했고, 많은 면에 있어서 조심스레 살아야했던 시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김대중전대통령과 질기디 질긴 악연일줄이야.. 하기..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사람이 자신에겐 가장 큰 방해물이었을테니 박정희전대통령입장에선 반드시 막아야할 세력이었고, 방해해야할 세력이었던것은 같다. 

그렇기때문에 김대중전대통령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도 됐었고, 밝혀지진않았지만 자동차사고로 돌아가실때까지 절뚝거리며 걸을 수 밖에 없었고, 박정희 집권하에 감옥살이라는 고난을 겪으실 뿐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힘쓴 사람이 오히려 처벌받는 아이러니한 세상.. 그런 세상이 암살로 인해 막을 내릴 수 있게 되었고, 박정희전대통령이 암살당한 후 국무총리 최규하가 10대 대통령으로 선출, 이제 11대 대통령선거를 눈앞에 둔 채 '서울의 봄'이 오고 있었다.... 

※근데 읽다보니 박정희전대통령을 좋아하는 것도, 김대중전대통령을 싫어하는 것도 아닌 사람으로 느끼기에.. 그림이 조금은 편향적이다.. 사사건건 자신을 방해하는 김대중에 의해 분노하고, 모든 악업을 서슴지않고 하는 박정희전대통령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거의 매번 의연한 모습의 김대중전대통령의 모습..어느 한 쪽을 부각시키기위해 이렇게 한 것은 아닌지.. 물론 그리는 사람마음대로이긴하지만.. 어쩐지 읽는 내내 약간 불편한 마음이 들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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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김대중 1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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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을 받은 모습이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한 모습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김대중전대통령의 모습은 중학교 2학년,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의 모습이다. 그 무렵, 정치라곤 아무것도 모르고, 대선후보들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르면서 대한민국에 있어 가장 큰 일이었던 대통령선거는 나와 친구들에게도 커다란 일이었다.

그 때 후보였던 후덕한 할아버지의 이미지의 김대중전대통령과 약간은 차가워보이는 눈매의 이회창을 보며, 너무 차가워보이는 사람보단 인자해보이는 김대중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랬었고, 그해 겨울 정말로 김대중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어릴적 그렇게 인상이 좋은 김대중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한다고 친구들과 떠들었으면서도, 정작 김대중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인자하고, 후덕해보이는 할아버지".. 노벨평화상을 탄 대통령..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대통령..외엔 아는 것이 없다.

젊을 적 많은 고난을 겪었고, 여러번 대통령선거에 나온 대통령이라는 것은 TV를 통해 많이 들었지만 김대중전대통령이 젊었을 적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소신을 가지셨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그분을 잃은 지금에서야, 그분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하의도에 핀 인동초"는 김대중전대통령이 태어난 하의도의 서글픈 운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딸을 너무 사랑해 3도를 주겠다는 약속을 한 선조때문에, 그리고 그 약속의 이행을 요구한 인목대비 덕분에 하의도땅을 공주와 결혼한 홍씨가문에 주게 된 것이 농민들을 힘겨게 한 일의 시작이었다.

호조에 세금을 내고도 자신들에게 또 소작료를 내놓으라고 괴롭히고, 권리도 없으면선 일제강점기 일본인에게 하의도를 판 홍씨가문, 일제강점기 계속해서 바뀐 하의도의 주인이라는 일본인들, 그리고 광복 후 미국에 의해 다시 한번 수모를 겪으면서도 하의도 주민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일군 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어려운 환경이었던 하의도에서 김대중전대통령은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학생때에는 일본인 학생들에게, 회사원이 되어서는 징병검사를 하는 일본인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맞아가며, 나라를 빼앗긴 수모를 느껴가며 청년시절을 보내셨고, 독립을 맞이하였으며, 6.25전쟁을 겪게 되셨다..

자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족에게 총을 쏘아대던 전쟁 속에서 마구자비로 죽어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운좋게 동생과 함께 살아남았고, 그 전쟁이후 30대의 나이에 정치에 뜻을 두게 되셨다....

만약 이승만전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오래해먹으려고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돈으로 의원들을 매수하여 대통령직선제를 만드는 등의 어이없는 정치를 하지만 않았더라도 김대중전대통령은 정치를 하려는 마음을 먹진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말기나 광복후나 친일파들이 잘 살아가는 세상, 국민보단 자신을 생각하는 그런 모습에, 미약하나마 그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정치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김대중전대통령이셨다..

아직은 시작되지 않은 정치인생.. 1권은 그렇게, 정치를 하기 전 김대중전대통령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분의 역경과 고난은 지금부터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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