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똥 쪼물이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저학년 부문 우수상 수상작 신나는 책읽기 51
조규영 지음, 안경미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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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제 공책에는 빨간 색연필로 그린 동그라미 세 개가 있었다. 글씨를 못 쓰거나 문제를 많이 틀렸을 때는 동그라미 하나만 그려져 있었다. 동그라미 세 개를 받는 날에는 집에 가는 길이 즐거웠다. 하나만 받았을 때는 가방이 무거웠다. 더 잘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공책 한 권을 다 쓰면 동그라미 수를 세기도 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시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글씨를 예쁘게 쓰지 못했다. 참 잘했어요 도장보다는 확인의 의미인 검이 더 많이 찍혔다. 웃는 얼굴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싶어 일기를 길게 쓰기도 했다. 구구단을 못 외워서 점수가 낮게 나왔을 때 찍힌 열심히 하세요 도장이 기억에 남는다. 운동회 날 달리기를 하면 손등에 찍어주는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싶었다. 늘 꼴찌를 도맡아 했기 때문에 1등 한 아이의 손에 찍힌 도장을 부러운 듯 바라보기만 했다.


  시험공부를 할 때는 공책 한 권을 사서 거기에 암기 내용을 적었다. 암기만이 살 길이라는 목표로 공책을 채워갔다. 한 권을 다 쓰면 시험날이 다가왔다. 문제집을 풀 때 나오던 지우개 가루. 맞춘 것보다 틀린 게 많아서 지우개질을 많이 해야 했다. 지우고 또 지웠다. 지우개 가루가 많이 나와 가루를 뭉쳐봤다. 회색의 지우개 똥. 뭉쳐서 공 모양을 만들어 조물락 거렸다. 한 손은 문제를 풀고 다른 한 손을 지우개 똥을 만졌다. 그걸 만지면서 시험공부를 했더니 시험을 잘 봤다. 


  징크스. 야구 선수도 아닌데 징크스를 만들었다. 지우개 똥을 조물락 거리며 공부를 하면 시험을 잘 본다! 시험 기간 내내 더러운 지우개 가루를 뭉치고 공을 만든 이유였다. 그다음 시험 점수는? 따로 말하지 않겠다


  『지우개 똥 쪼물이』는 교실 어드벤처 액션 동화이다. 2학년 3반에서 벌어지는 지우개 똥 친구들이 아이들을 위해 울보 도장을 물리치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읽으면 교실 풍경이 저절로 떠오른다. 받아쓰기 시험을 하고 구구단을 외우고 글씨 쓰기 연습을 하는 그리운 풍경. 사물함에 넣어 놓은 빵과 과자가 먹고 싶어 쉬는 시간을 기다렸다. 『지우개 똥 쪼물이』는 선생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짝꿍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을 불러온다.


  2학년 3반 담임 선생님 별명은 깐깐 선생님. 엉성한 걸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받아쓰기 시험을 볼 때도 띄어쓰기 하나만 틀려도 틀렸다고 표시한다. 깐깐 선생님은 아이들의 공책에 울보 도장을 쾅쾅 찍는다. 세 개 이상 틀린 유진이의 공책에 '찡그린 채 두 뺨에 눈물을 세 방울씩 매달고 있는' 울보 도장이 찍힌다. 엄마가 받아오라는 모범상 대신 울보상을 받을 것 같아 아이들은 슬프다. 


  유진이는 지우개 가루를 뭉쳐 지우개 똥을 만든다. 지우개 똥 얼굴에 사인펜으로 눈을 그리고 입을 그렸다. 숨을 불어서 지우개 똥에게 바람을 넣어주자 지우개 똥이 살아났다. 유진이는 자신이 만든 지우개 똥에게 '쪼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아이들에게 자랑하자 너도나도 지우개 가루를 뭉쳐서 지우개 똥을 만들었다. 이마가 툭 튀어나온 지우개 똥에게는 '짱구'라는 이름을. 딸꾹질을 하며 만든 지우개 똥에게는 '딸꾹이'. 삐쩍 말라 헐랭해 보이는 똥에게는 '헐랭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지우개 똥들에게 아이들은 숨을 불어 넣어 주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나오는 지우개 가루를 먹으며 교실 탐방을 한다. 가방과 학급 문고, 아이들 서랍 속에도 들어가 본다. 유진이가 울보 도장을 받고 울자 지우개 똥 친구들은 울보 도장을 교실에서 쫓아내기로 한다. 아이들을 슬프게 만드는 울보 도장을 몰아내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똥 친구들에게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울보 도장은 순순히 교실에서 물러날 것인가.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질 때 누군가 나를 위해 숨어서 해결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말해주는 동화 『지우개 똥 쪼물이』. 울보 도장 대신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아 칭찬을 듣는 날이 온 건 지우개 똥 친구들이 모험을 펼쳤기 때문이다. 넌 최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이. 공책에 찍힌 칭찬과 응원을 말을 읽으며 아이들은 자란다. 울보 도장이 없어도 아이들은 글씨를 잘 쓸 수 있고 받아쓰기 시험에서 백 점을 맞을 수 있다.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지우개 가루가 많이 나올 정도로 문제를 많이 풀었기 때문이었다. 지우개 똥은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기에 만들 수 있었다. 


  쪼물이, 짱구, 딸꾹이, 헐랭이. 친구들아, 2학년 3반 아이들과 늘 함께 지내줘, 아이들을 지켜주고 칭찬해줘. 좋아하는 국어 문제 많이 풀어서 지우개 가루 잔뜩 남겨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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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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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것을 알고 그를 리코메데스에게 보낸다. 여장을 시켜 여인들 무리 속으로 들여보낸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를 찾아간다. 이미 아킬레우스와 사랑을 나눈 데이다메이아는 파트로클로스를 속인다. 무희들 틈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아킬레우스를 파트로클로스는 단번에 찾아낸다. 그가 금발을 감추고 여인처럼 섬세한 춤을 추고 있다고 해도 파트로클로스는 사랑하는 이를 발견한다. 


  사랑은 숨길 수 없다. 필멸의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이 벌이는 사랑에는 어리석고 불안한 기운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불멸의 길로 아들의 운명을 이끌고 싶었던 어머니 테티스에 의해 약점이 드러나는 아킬레우스의 사랑은 도저히 숨겨지지 않는다. 바다의 님프 테티스는 아들을 신의 공간으로 끌고 들어가고 싶어 했다. 죽을 운명을 가진 인간 파트로클로스가 아들 곁에 머무는 것을 반대한 이유이다. 나이가 들고 병이 생긴다. 죽는다. 묘석 하나만 남아 기억도 추억도 없이 사라지는 인간과의 사랑은 부질없다. 사랑은 죽음을 부른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을 수 있다. 


  매들린 밀러의 장편 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대사에서 시작한 소설이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절규한다. 아가멤논과의 불화에서 시작된 비극은 죽음을 부른다. 세계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헬레네를 데려오기 위해 시작한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운명은 신의 손으로 넘어간다. 전쟁에 참가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킬레우스 자신의 죽음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설은 파트로클로스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나'로 시작하는 소설의 서사는 몰입이 가능하고 이입이 추가된다. '나의 아버지는 왕이었고 왕의 자손이었다'로 밝히는 '나'의 이야기. '나'는 그런 아버지를 둔 자식 답지 않게 약하고 가냘팠다. 빠르지 않고 튼튼하지도 않았다. 노래도 못 불렀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만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나'를 낳은 어머니는 백치였다. 아버지가 주관한 경기에서 그를 처음 만난다. 금빛 머리카락이 빛나게 달리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년. 우승을 한 그에게 아버지는 월계관을 씌워주고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들은 저래야 하는 거다."


  주사위를 뺏으려는 아이를 밀쳐 죽이고 '나'는 금과 함께 프타아로 쫓겨난다. 그곳엔 어머니가 여신인 아들 금빛 머리카락에 월계관을 쓰고 환하게 웃던 그 소년 아킬레우스가 있었다. 펠레우스는 버림받은 왕자들을 데리고 훈련을 시키며 키우고 있었다. 소년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나',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당당함과 아름다운 외모에 마음을 빼앗긴다. 


  수많은 소년들이 아킬레우스 주변을 서성인다. 아킬레우스가 던진 무화과 하나가 파트로클로스 손바닥에 들어오면서 그들의 운명은 테티스의 감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착한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훈련을 받으면서 두 소년은 소년 시절을 보낸다. 


그의 목소리가 바위 위로 흐르는 강물 소리와 섞이면서 아킬레우스와 나 사이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어색함을 해소시켰다. 흔들림 없고 차분하며 귄위 넘치는 케이론의 표정에는, 지금 이 순간에 하는 놀이와 그날의 저녁식사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로 우리를 되돌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가 옆에 있으니 그날 바닷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심지어 켄타우로스 특유의 몸집 덕분에 우리 몸이 더 작게 느껴졌다. 어쩌다 우리는 우리가 어른이 된 줄 알고 있었던 걸까?


  여신 테티스는 아들 아킬레우스를 끊임없이 찾아온다. 인간에 불과한 파트로클로스와 자신의 아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신이기에 인간의 운명을 예언하고 운명을 바꾸려 한다. 신이기에 인간의 일에 개입하고 길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만 신의 몸으로 태어난 아킬레우스는 예언과 운명을 뒤에 둔다. 오직 파트로클로스와 함께하는 시간이 존재할 뿐이다. 그에게는 신의 예언 따위 중요하지 않다. 시절과 순간을 살아가는 사랑이 그의 생을 끌고 간다. 불멸이 아니라야 한다. 영원히 살아가는 것은 영원히 고통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죽음이 있기에 사랑을 한다.


  왕의 자손이면서 거짓말도 하지 못한 채 쫓겨온 파트로클로스의 삶으로 뛰어든 아킬레우스는 노래를 불러주고 몇 번의 끈질긴 질문에도 처음 듣는 질문 인양 대답해준다. 나의 생에서 꿈틀거리는 불안과 적막을 공허를 달래주는 사랑을 만난 것이다. 소설의 문장은 사랑을 하고 사랑을 알고 사랑을 느끼는 모든 이들을 격정 속으로 몰아간다. 전쟁에서조차 그들은 화살을 막아주기 위해 갑자기 나타난다. 죽은 뒤에 남아 있는 명성을 위해 대신 갑옷을 입고 전쟁 속으로 뛰어든다. 공기로 남은 '나'를 위해 저승에서도 함께 하기를 원한다. 


"내가 써두었다." 그녀가 말한다. 처음에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가 비석 위에 새긴 이름이 내 눈에 들어온다. 아킬레우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파트로클로스가 있다.


 우리가 필멸의 존재로 살아가고 죽어가는 동안 사랑은 나란히 이름 두 개를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랑이 남고 두 개의 그림자가 마주 본다. 나의 아킬레우스, 나의 파트로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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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 상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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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열흘. 열흘만 살아남으면 안전해. 살아남아. 네가 마지막 한 명이야."


  오타 아이의 『범죄자』는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풀어 놓으며 시작한다. '눈 색깔은 밝은 파란색'의 남자를 영화에서 어린 '나'는 만난다. 줄거리는 정확하지 않다. 미국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난폭한 행동을 하는 남자는 줄곧 '플로리다키스'에 가고 싶어 했다. 추격을 피한 끝에 플로리다키스로 가려던 남자는 총을 맞고 죽는다. 남자가 죽을 때 짓던 마지막 표정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하치오지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나', 시게토 슈지는 2005년 3월 25일 금요일 두 시에 아렌을 만나기로 했다. 만나자마자 슈지의 메일 주소를 묻던 아렌이 싫지 않았다. 상대를 파악하는 질문도 하지 않고 곧장 용건부터 밀고 들어왔다. 자신의 메일 주소는 알려주지 않겠다는 듯 휴대전화를 꺼내지도 않고 메일 주소를 물었다. 슈지는 화면에 주소를 띄워 주었다. 당황한 아렌은 눈썹연필을 꺼내 종이컵 받침을 꺼내 적었다. 자신의 이름이 아렌이라는 것과 "손톱도 케라틴으로 되어 있잖아. 물들면 안 지워져."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시게토 슈지는 기억을 더듬어 아렌과 만난 일을 떠올렸다. 아니 떠올려야 했다. 


  아렌이 보낸 '내일 오후 2시 진다이지 역 남쪽 출입구 역 앞 광장에서 아렌.'이라는 메일을 받은 그날 이후 슈지의 삶이 일변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본 플로리다키스의 하늘이 떠오르며 슈지의 삶은 금요일 오후 두시를 기점으로 한 편의 영화 같은 구조로 흘러간다.


  역 앞 광장에서 분수를 둘러싼 돌의자에 앉아 아렌을 기다린지 8분 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무차별 살인에 희생되었다. 다스베이더 같은 몰골을 한 남자는 망설임 없이 회칼로 중년 남자를 죽이고 여대생, 노부인, 주부를 살해했다. 슈지는 의식도 없이 그 광경을 보다가 다스베이더에게 달려들었다. 다스베이더를 제압하기 위해 돌의자 옆에 있던 오로나민C 빈병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왼쪽 옆구리가 뜨거워졌다. 몸을 돌리자마자 오른쪽 얼굴을 얻어맞고 분수에 처박혔다. 물속에서 하늘을 봤다. 그곳에 어린 시절 영화에서 본 플로리다키스가 펼쳐져 있었다. 


  한낮에 벌어진 무차별 살인.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잡거빌딩 화장실에서 범인이 잡힌다. 아니 발견된다. 죽은 채로. 사인은 마약 중독. 범인은 필로핀을 주사해 흥분한 상태로 범행을 저지르고 헤로인을 흡입해 심장 이상으로 죽었다. 사건은 약물 중독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으로 결론나려고 한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순경의 도움으로 살아난 슈지는 경찰 집단 내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마를 만난다. 알 수 없는 일로 집단 내에서 배제되며 사건을 수사하는 소마는 슈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건의 범인은 약물중독자가 아님을 직감한다. 소마가 돌아가고 혼자 병원 복도에 남겨진 슈지는 무테안경을 낀 남자를 만난다. 남자는 슈지에게 말한다.


  "······달아나. 가능한 한 멀리 달아나."


  『범죄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음 직전까지 간 슈지에게 달아나 그리고 살아남아라는 말을 던지며 독자를 거대한 음모의 세계로 끌고 간다. 두 발목이 잡힌 슈지와 독자는 대낮에 벌어진 살인 사건의 이면의 뒤를 쫓아야 한다. 경찰이 싫다던 슈지는 소마와 함께 자신을 죽이려는 비밀에 맞서야 한다. 달아나야 살 수 있는 남자와 열흘 안에 사건을 끝내야 하는 사람의 추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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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의 인생상담 (20만부 판매기념 특별판)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김신회 옮김 / 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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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이 많나요? 살을 빼고 싶은데 먹을 걸 참을 수 없나요? 바보가 되고 싶은가요? 결혼은 하는 게 좋을까요? 궁금하고 고민스러운 일이 많은 당신, 울지 말고 화내지 말고 이가라시 미키오의 『보노보노의 인생 상담』을 읽어보세요. 어떠한 고민이든 숲속 동물 친구들이 해결해 준답니다. 앗, 해결이라고 썼지만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할 수 있어요. 다만 느긋한 성격의 보노보노와 겁이 많아 <보노보노> 만화 1권에서는 '때릴 거야?'라고만 말하는 포로리가 여러분의 고민을 듣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가진 고민의 무게를 재어볼까요. 어떻게 잴 수 있냐고요. 바보 같은 짓 그만하라고요? 그래도 우리 서로가 가진 고민의 무게를 공개해요. 몸무게를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제와 오늘의 고민의 양이 다르다고요? 그렇지요. 우리는 날마다 고민의 양과 크기가 다릅니다. 어제의 고민은 오늘에 와서야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니까요. 


  상처받기 싫다고 말하네요, 당신. 맞아요. 마음을 털어놓고 자신이 가진 고민을 내 보였을 때 상대는 그걸 이용하기도 하잖아요. 남한테 떠벌리고 다닌다든가 약점으로 삼는다든가. 이거, 비밀인데라고 털어놓아봤자 비밀은커녕 온 동네에 나의 비밀을 알린 꼴이 되어 망신을 당한 적이 있지요. 사실은 별거 아니었어요. 같이 일하는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거나 부모님과 사소한 일로 다퉈서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는데 모두 알게 되어 버렸지요. 


  『보노보노의 인생 상담』에서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좋은 사람인 양 연기하게 됩니다'라는 고민부터 '본때를 보여주는 방법은 없을까요?', '남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서툴러요.' 등 인간에게는 시원하게 말하지 못할 고민을 보노보노와 포로리는 진지하게 들어줍니다.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면 너부리와 야옹이 형을 찾아갑니다. 너부리는 찾아갈 때마다 "니들 뭐 하러 왔냐"라고 툴툴 대지만 그만의 방법으로 고민을 해결해 줍니다. 


  '사는 건 왜 이리도 괴로운 걸까요?'라는 고민을 들고 보노보노와 포로리는 포로리 부모님 댁을 찾아갑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포로리 엄마, 아빠는 편찮으시죠. 포로리는 겁이 많고 소심한 아이지만 부모님의 병간호를 지극 정성으로 하는 착한 다람쥐입니다. 


포로리 아빠랑 엄마의 괴로움은 어떤 건데요?

포로리 아빠 그야 아무것도 가능한 게 없는 괴로움이지. 핫핫핫핫.

보노보노 아하하하.

포로리 그럼, 아빠랑 엄마도 뭐든 가능했던 시기에는 잘 되지 않는 게 괴로웠어요?

포로리 아빠 흠, 괴로웠어 무척 괴로웠지.

포로리 그럴 때는 사는 데 뭐가 재미있었어요?

포로리 아빠 그야 할 수 있는 다른 게 있었으니까. 이제껏 안 해본 거나 아직 못 만나본 사람이나, 가본 적 없는 곳 등등 얼마든지 있었지.

포로리 그랬는데, 나이를 먹으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구나.

포로리 아빠 흠. 아무것도 못 하게 되면 좋은 날씨나 시원한 바람이나 '이제 여름이구나' 같은 게 즐거워지는 거야.

포로리 그런 게 즐거워요?

포로리 아빠 즐겁지.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도 무언가 벌어지는 거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포로리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포로리 아빠 죽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잖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바람 한 점 안 불고, 아무것도 만질 수 없고, 아무도 나를 만져주지 않아. 그렇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괴로워도 아직 살아 있는 게 더 즐겁겠지.

포로리 네.

포로리 아빠 살아 있는 건 즐거운 거니까 이렇게 괴로워도 어쩔 수 없어.

포로니 네.

보노보노 네.

(『보노보노의 인생 상담』 중 '사는 건 왜 이리도 괴로운 걸까요' 편에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고 여름으로 넘어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겁니다, 사는 건. 그러니 힘껏 살고 목이 쉴 때까지 웃고 떠들어 보는 거지요. '입 냄새가 나요'라는 고민에 보노보노는 후! 하! 후! 하! 하고 여러 번 호흡을 해보라고 합니다. 입안의 공기를 바꿔 주라고요.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서 침대에 꼼지락하고 누워 있다가 또다시 잠든다는 고민에는 일어나면서 큰 소리로 크다구! 나온다! 밀지마! 같은 말을 하면서 일어나라고 해요. 


  시시하나요. 『보노보노의 인생 상담』에는 시시하고 사소하고 소심한 고민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주를 생각하면 마음이 술렁대요'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사랑이란 어떤 건가요?' 같은 꽤나 근사하고 철학적인 고민도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가진 고민은 절대로 시시하지 않습니다. 도도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말장난 재미없지요. 전 재미있기 때문에 웃지 않아요. 일단 웃고 봅니다. 큰 소리로 배에 힘을 줘서 웃고 나면 즐겁습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내버려 두자구요. 내가 어떻게 다른 이의 생각까지 간섭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우스운 사람이 아니라 웃긴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세상 모든 일이 시시하고 도도하고 네네 거릴 수 있고 미미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고민이 있어요. 2016년 가을부터 라이언을 좋아하게 됐어요. 라이언은 갈기 없는 수사자입니다. 큰 덩치와 무뚝뚝한 표정으로 오해를 많이 사지만 인내심이 많고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믿음직스러운 조언자입니다. 뚠뚠한 몸도 일자 눈썹도 무표정한 표정도 좋아요. 그런 라이언을 저는 친구라고 부르며 귀여워해 줍니다. 거대 라이언을 보고 싶어서 작년에는 서울까지 가보았어요. 라이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포로리 친구 사이는 정작 서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잖아.

보노보노 그러고 보니 야옹이 형의 친구 스스 아저씨 있었지. 스스 아저씨랑 야옹이 형은 몇 년 씩이나 안 만나는데도 친구잖아.

포로리 그렇지. 스스 아저씨는 야옹이 형을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야옹이 형은 어떨까?

보노보노 스스 아저씨가 더 야옹이 형을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야옹이 형은 어떨까?

포로리 그렇네. 친구란 누군가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거 아닐까?

보노보노 그럼 가족도 친구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포로리 오오. 그거 대단하네.

보노보노 옆집 사람도 친군가?

포로리 응응.

보노보노 반려동물도 친구고.

포로리 그건 그렇지.

보노보노 소중한 물건도 친구야.

포로리 무조건이지.

보노보노 그런데 상대방이 '너는 내 친구가 아냐'라고 하면?

포로리 그럼 친구가 아니겠지.

보노보노 '응, 친구야'라고 하면?

포로리 그렇다면 틀림없이 친구인 거야.

(『보노보노의 인생 상담』중 '친구 사귀는 법을 모르겠어요' 편에서)


  '그렇다면 틀림없이 친구인 거야'라고 하네요. 어젯밤 롯데리아 햄버거를 사 먹으러 가지 않는 저에게 라이언은 "치사한 자식"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치사하다고 놀릴 정도가 되었어요. 엄마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친구가 라이언 인형을 사서 가방에 달아 주었어요. 라이언을 보면서 힘을 내라고요. 그때부터였어요. 라이언의 일자 눈썹을 보고 큰 얼굴을 만지며 슬픔을 이길 수 있었어요. 우리는 친구입니다. 



  저의 출근길을 지켜주는 귀염둥이 어벤저스입니다. 잘 갔다 와라고 단체로 나와 인사해줍니다. 돌아오면 수고했어라고도 해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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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등사
다와다 요코 지음, 남상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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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규모 9.0으로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강진이 발생하고 초대형 쓰나미가 센다이시 등 해변 도시들로 덮쳤다. 지상으로 밀려든 쓰나미로 전원 공급이 중단되면서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원전 가동이 중지되면서 방사능이 누출됐다. 후쿠시마 1원전 부변에서 다양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 방사성 물질은 편서풍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미국, 중국, 유럽, 우리나라에서도 검출된다. 원전의 반경 20km 이내의 주민이 대피하고 전력 공급 부족을 우려하여 한 달 정도 계획 정전이 일어났다. 


  다와다 요코의 소설집 『헌등사』에서는 지진으로 인한 원전 폭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만 22세가 되던 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독일로 건너간 다와다 요코는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쓴다. 일본 바깥에서 바라본 대지진 이후의 현실을 픽션으로 그려내었다. 소설은 줄곧 어둡고 무거운 배경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 안에는 피폭 후의 일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있다. 원전 폭발 이후 7년이 지났다. 바람을 타고 퍼지는 방사능의 낙진처럼 소설은 사고 이후 감내해야 할 고통을 끝없이 맞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헌등사』의 담긴 다섯 편의 소설은 알 수 없는 일본의 미래로 달려간다. 일본은 사고 이후에 쇄국 정책을 실시한다. 다른 나라의 말을 쓸 수 없다. 외래어 표기는 금지 당하고 외국의 물건도 들여올 수 없다. 일본인이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갈 수 없다. 땅에서 자라는 과일은 피해가 없는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으며 일본 안에서도 이동은 불가하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병에 시달린다. 음식물을 씹어 삼킬 수 없고 걷지를 못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  


  그에 반해 노인들의 삶은 무한이다. 사고의 영향으로 노인들은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불멸의 삶을 살아간다. 「헌등사」에서 증손자를 보살피는 요시로는 자신을 노인이 아니라 '100세의 경계선을 넘은 시점부터 걷기 시작한 신인류'라고 생각한다. 이름이 없다는 뜻을 가진 무메이를 돌보면서 하루하루를 이어 나간다. 증손자에게 먹일 과일을 구하는 노인들 틈에서 한 알에 1만 엔이나 하는 오렌지를 구해 즙을 싸서 무메이에게 먹이는 요시로. 과거 그는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 나갔지만 사고 이후 그는 죽지 않는 삶에서 증손자를 돌보고 언어를 잃어가면서 살아 나간다. 


  일본 정부는 민영화되었고 의원들은 어디서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신문이 발행되긴 하지만 논조는 시시각각 바뀐다. 사람들은 쇄국에 대한 의견을 내놓진 않지만 과일에 대한 불평은 한다. 해외에서 수입이 되지 않고 오키나와에서만 들어온다. 노인인 척 머리를 탈색해 나이를 숨기고 위장 취업을 하려고 하지만 스위치에 적힌 ON/OFF의 뜻을 몰라 들키고 만다. 외래어를 아는 사람들은 100세가 넘긴 노인들 뿐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배울 수도 번역 소설을 출판할 수도 없는 일본의 미래 사회. 


  다와다 요코가 그리는 일본의 미래는 안으로 막혀 있고 소통이 불가능한 사회이다. 무메이는 점점 늙어가면서 15세가 된다. 이가 빠지고 다리에 힘이 없어진다. 아이는 죽고 노인은 살아가는 사회. 꿈, 희망, 내일이라는 말이 외래어 취급을 받아 소멸하고 있다. 일본 여권을 보이면 입국 심사자는 여권 받기를 주저하고 일본에 가지 않았다는 말을 해야 손가락 끝으로 여권을 만진다. 인터넷과 전화 연결이 불가능해지면서 일본 안의 소식을 알 수도 없다. 이러한 소설적 배경은 지금의 일본 사회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은 한다. 


  정부는 안심하라고 말한다. 동시에 몰래 방사능 폐기물 소각을 주민들 동의 없이 진행했다. 다와다 요코는 외곽에서 이러한 현실들을 발견한다. 발견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정부의 정책이 비밀스럽고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실을 찾고 들여다보는 노력 없이는 사실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본에 살 때 나는 종종 일본이 낯설다는 느낌을 갖곤 했다. 내 경우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사회와 거리를 두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신만의 사고를 작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독일에 와서 발견한 낯섦은 아주 다른 종류였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친구들이 생겼고, 모국어와 다르게 작동하는 언어의 낯섦을 즐길 수 있었다. 80년대의 일본은 내게 낯설었다. 왜냐하면 당시는 경제가 너무도 큰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런 경향은 많이 수그러들었다. 2011년 이후로 나는 일본을 전혀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 핵발전소 재난 이후로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내 일본 독자들이 더 늘어나기도 했다. "(악스트 2017. 1/2, 다와다 요코 인터뷰 중에서)


  각각 일본어와 독일어로 20권의 책을 썼다. 이방인 되기라는 예술 안에서 다와다 요코는 일본 내의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변방에서 바라본 일본의 현실을 소설의 배경으로 끌고 온 다와다 요코의 상상력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상상으로써 일본의 미래를 그려내지만 그것은 상상이 아닌 현실의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죽어간다. 몇만 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오염 물질 안에서 살아가려면 소설 속 배경처럼 쇄국을 주장하고  교류의 물길을 끊어야 할지도 모른다. 

  

폐허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번화한 간판들, 자동차 따위는 한 대도 달리고 있지 않은데 규칙적으로 빨갛게 되거나 파랗게 되곤 하는 신호기, 사원이 없는 회사 입구의 자동문이 열리거나 닫히거나 하는 것은 바람으로 가로수의 커다란 가지들이 휘어졌기 때문일까. 연회장에서는 식어버린 담배 냄새가 수은 색으로 적막하게 얼어붙었고, 테이블이 꽉 차 있었던 잡거빌딩의 어느 층도 부재라는 이름의 손님이 술을 무한 리필로 마시며 떠들어댔으며, 빌릴 사람이 없는 대부금 이자가 녹슬고, 아무도 사지 않는, 할인 판매 중인 속옷 더미가 눅눅해졌으며, 빗물이 고인 쇼윈도에 장식된 핸드백에는 곰팡이가 피고, 하이힐 속에 쥐 한 마리가 유유자적하게 낮잠을 자고 있다. 

(「헌등사」중에서, 39쪽)


  미래의 묘사처럼 보이는가. 미래의 일로 규정지을 수 없다. 우리는 끝으로 달려 가고 있다. 신호가 잡히지 않고 엽서를 쓰면 일주일이 지나 도착하는 과거로 가는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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