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층빌딩이 즐비한 강남이 아직 논두렁이던 시절, 그 땅을 개발해 시세차익으로 한 몫 잡아보겠다는 군부독재정권과 그 와중에 자신의 사욕을 채우려는 정권의 실세들, 그리고 다시 그들이 부리는 깡패들이 어울려 만들어 낸 욕망의 구렁텅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

 

     고아원에서 자란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은 친형제처럼 지내온 사이지만, 함께 살던 판잣집이 철거되면서 깡패집단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우연한 사고로 헤어진 두 사람은 3년 후 재회하고, 서로 다른 조직에 몸담게 된 그들은 이 진흙탕에서 몸 뉘일 곳 한 자리를 찾아 더러운 싸움을 시작한다.

 

 

 

 

2. 감상평 。。。。。。。   

 

     개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4천원에 내려 받을 수 있게 해 놨다. 극장상영이 끝나면 다운로드나 케이블방송 쪽으로 2차 판매가 시작되는 일이야 자연스럽지만, 가격이 이렇게 금방 떨어지는 건 좀 특이하다. 김래원, 이민호 같은 이름값 좀 있는 배우들이었는데도 이렇게 금방 싸게 나오는 건 그만큼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 아닌가도 싶다.

 

     사실 영화 내용 자체도 그다지 인상적인 부분이 없다. 스토리는 진부하고, 주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고, 시종일관 폭력의 폭격이 이뤄지다가 심지어 두 시간이 훨씬 넘는 런닝타임 때문에 지루하기까지 하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 하나는, 세상에 깡패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것. 어차피 이권으로 맺어진 인연은 더 많은 이권을 위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고, 돈 될 때야 형님 동생이지 돈 떨어지면 남보다 못한 관계로 전락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영화 속 수도 없이 등장하는 배신 장면을 통해 반복적으로 울려퍼진다.

 

 

     이 영화에 가장 필요했던 덕목은 절제가 아니었나 싶다. 이것저것 다 담아 넣다보니 확실히 어수선해진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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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가장자리 - 선생님도 학부모도 모르는
모토야마 리사 지음, 하성호 옮김 / 재미주의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1. 줄거리 。。。。。。。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해진 이지메를 소재로 한 일종의 교육만화다. 이 작품이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부분은 실제로 이와 관련된 일을 겪거나 지켜봤던 학생들이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야기들이라는 것. 총 마흔네 개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작가는 집단따돌림이 일어나는 이유와 그것에 참여하는 이들의 심리, 그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과 대처하는 방안 등을 풀어낸다.

 

 

2. 감상평 。。。。。。。  

 

     집단따돌림과 폭력 등 학교를 중심으로 한 십대들의 반사회적 행동들이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한국보다 일본이 먼저였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는 이 두 나라는 서로의 문제까지도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다. (물론 대개는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는 양상이지만, 이게 꼭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배워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학교폭력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젠 해외토픽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우리 곁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그 문제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학교폭력이란 게 그 원인을 규정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로 돌아가기도 한다. 가해자라고 해서 무슨 엄청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 자신도 다른 곳에서는 부모나 교사 등에 의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책을 보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그저 나쁜 놈들 잡아다 혼내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이 문제의 복잡함이 있다. 물론 가해자들의 행동은 그에 따른 처벌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그 아이들을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가는 사회구조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뿐이다. 아이들은 결국 어른들을 보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를 보고 닮아가는 게 아닌가.

 

     영화들마다 폭력배들의 의리를 멋지게 묘사하기에 바쁘고, 사람을 찌르고 때리는 수위는 시간이 갈수록 원색적으로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픽션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줄서고, 불의에 눈감고, 뒷돈 받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쁜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제대로 커가는 걸 바라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게 아닐까.

 

 

     책은 이 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그 자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당사자인 아이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들어보는 것은, 어른들의 시각으로 문제를 또다시 제멋대로 정의하고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게 먼저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먼저 심각했던 일본은 우리보다 좀 더 많은 경험과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만화로 되어 있는 데다가, 어쭙잖은 이론과 분석 대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담아내려고 노력했기에 읽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일본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을 넘어가는 형태의 책은 보기에 불편했다. 일본만화를 자주 보는 아이들에겐 이쪽도 익숙한 걸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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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 기독교 생사학의 의미와 과제 기독교 인문 시리즈 6
곽혜원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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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은 현대인들의 죽음의 질이 상당할 정도로 낮아졌다고 지적한다. 특히 질병사의 원인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암을 예로 들면, 다수의 사람들이 임종직전까지 공격적인 항암치료를 받느라 심신이 모두 탈진된 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저자는 죽음에 대한 성숙한 성찰, 소위 죽음학에 대한 연구의 부족을 꼽는다.

 

     책은 죽음에 대한 오랜 고민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 특히 그 중에서도 기독교적 배경을 언급하는 데 몇 장을 할애한 뒤, 뇌사, 안락사 혹은 존엄사, 완화치료, 고독사 문제, 자살 등 실천적인 문제들에 관해 논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죽음에 대한 좀 더 깊은 논의와 정리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2. 감상평 。。。。。。。  

 

     책을 열면서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십수 차례 이상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고, 그 과정에서 예전엔 중환자실이라고 불렀던 집중치료실과 일반병실을 몇 번이나 오고 가셨더랬. 책에도 잠시 언급된 것처럼 집중치료실의 일상은 그 자체가 힘겨운 나날이다. 24시간 꺼지지 않은 조명에, 환자들마다 무거운 벽처럼 투박한 의료기기들에 둘러싸인 채 주기적으로 체크를 하는 간호사와 의사들의 점검을 받는다. 한밤중에도 불이 환하게 켜진 상황에서 제대로 잠을 자는 게 어디 쉬울까? 덕분에 그곳에 누워있는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쇠약해지는 게 다반사. 그리고 제법 여러 사람들이 운명을 하곤 한다.

 

     과연 그게 적절한 죽음의 과정일까. 이 책에서 저자가 묻는 질문은 곧 내가 품고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책은 막연하게 품고 있던 문제의식을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기하고 있어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죽음에 관한 주제로 박사 논문까지 썼던 저자답게,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단지 소개나 정리 개념을 넘어서 좀 더 실질적인 해결책에 관해 모색한다.

 

 

     사전의료의향서와 사전장례의향서의 작성부터, 호스피스와 완화의료의 필요성에 대한 강력한 제시는 흥미로웠고, 고독사와 자살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경제적 접근을 강력하게 반복하고 있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저자는 기독교적인 대안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이런 식의 사유가 나머지 내용들과 밀접하게 연결되기 보다는 좀 느슨하게 덧붙여진 듯한 느낌이다. 기독교적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독단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기독교적 접근 자체도 생각만큼 깊은 데까지 짚어주는 게 아니라 아쉽다.

 

     책의 마지막에 덧붙여진 서평은 비판적 고찰이라는 제목을 붙이기엔 확실히 부족해 보인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가지고 있는 전제가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전제가 어떤 부분에서 모자라고 부당한지를 논리적으로 밝혀내기 보다는 시종일관 감정적인 부정을 하는 데 급급했다. 차라리 뺐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일이 없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는 것도 바쁜데 죽는 일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은 강력하긴 하지만, 삶의 이유를 생각할 수 있는 건 인간다움의 한 특성이 아니겠는가.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그 삶마저 추하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을 제대로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회피나 외면이 아니라 제대로 된 수용과 대비를 위한 대화를 시작하기에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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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자리가 성서적 증인들의 자리보다 높이 위치한다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다.

신학자는 성서적 증인들보다

천문학, 지리학, 동물학, 심리학, 생리학 등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학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성서적 증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 칼 바르트, 개신교신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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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동하지 않는 전통과 정통을 붙잡고 '공동체' 말하면서,

사실상은 '집단주의'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공동체는 집단 의존적 개인들이 많이 모인 곳이 아니라,

자립적 개인들이 함께 모여서 상호의존을 경험할 때 가능할 것이다.

 

- 양희송,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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