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비틀 킬러 시리즈 2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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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킬러들이 각자의 미션과 사연을 가진 채 모리오카 행 신칸센에 오른다.

아들을 중태에 빠뜨린 소년 왕자에게 복수하려는 왕년의 킬러 기무라’.

납치됐던 보스의 아들을 구하고 몸값이 든 트렁크를 운반하려는 콤비 킬러 밀감레몬’.

파트너인 마리아의 지시로 밀감레몬이 운반 중인 몸값 트렁크를 탈취하려는 나나오’.

그 외에 어딘가 수상쩍어 보이는 신칸센 안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인명을 놀잇감으로 여기는 14살 사이코패스 왕자의 잔혹하고도 교활한 잔꾀로 인해

시속 200km로 달리는 신칸센은 말 그대로 피범벅인 된 채 시체열차가 되고 만다.

종착역인 모리오카에 이르기 전에 과연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을 것인가?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이사카 고타로의 킬러 시리즈 3부작그래스호퍼’-‘마리아비틀’-‘악스로 이어집니다.

서평을 쓰지 않던 10년 전쯤 그래스호퍼를 읽었고,

두 번째 작품인 마리아비틀을 건너뛰고 세 번째 작품인 악스2년 전에 먼저 읽었는데,

사실 어느 작품을 먼저 읽든 큰 관계는 없습니다.

물론 (기억은 거의 안 나지만) ‘그래스호퍼에 등장했던 전설적인 킬러들의 이름이

마리아비틀곳곳에서 종종 언급되곤 하지만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져서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각자의 사연과 미션을 위해 신칸센에 오른 인물들은 마치 리그전처럼 충돌합니다.

거액의 몸값이 든 트렁크를 놓고 거친 숨바꼭질을 벌이던 그들은

상대가 동종업종에 종사하는 킬러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팽팽하게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잔혹하기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14살 사이코패스 왕자의 농간 덕분에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킬러들은 속절없이 피비린내를 자초하게 되는데,

예상치 못한 새 인물들까지 가세하면서 신칸센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대충돌은

종착역인 모리오카에 이를 때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집니다.

 

킬러들마다 제각각 독특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는 점이 내내 눈길을 끌었는데,

한때 잘 나가는 킬러였지만 지금은 알코올중독에 부모에게 어른 취급도 못 받는 기무라,

꼬마기차 토마스의 광팬이자 다분히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분위기 파악 잘 못하는 레몬,

킬러의 교과서 같은 예리함과 촉을 지닌 밀감,

머피의 법칙의 최대 피해자이자 사사건건 불운을 몰고 다니는 나나오 등

잔혹한 킬러지만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풀린 듯한 친근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희미하긴 하지만 시리즈 첫 작품인 그래스호퍼의 인상은 정말 재미있다!”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청부살인업자의 이야기라서 재미라는 표현 자체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설픈 주제의식이나 철학 같은 사족 없이 거침없이 폭주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비틀보다 먼저 읽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악스는 중도에 포기했는데,

아내에게 구박 받고 쩔쩔 매는 경력 20년의 살인청부업자라는 주인공 설정은 흥미로웠지만

그것 외에는 달리 읽을거리가 너무 없던 나머지 도중에 책을 덮고 말았습니다.

 

마리아비틀은 굳이 비교하자면 두 작품의 딱 중간쯤 되는 작품입니다.

휘몰아치는 재미와 긴장감은 그래스호퍼와 맞먹지만

왠지 재미있는 이야기그 이상의 뭔가를 담으려 했던 작가의 의도가 너무 도드라진 나머지

사족 같은 주제의식의 과잉이 눈에 거슬렸고 그 결과 분량도 지나쳤다는 생각입니다.

 

본편 뒤에 실린 일본 평론가의 해설이나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면,

“‘인간의 폭력과 악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라고 돼있는데,

사실 일반적인 폭력과 선악의 개념이 (킬러들이 주인공인) 이 작품에서 통용될 리 없으니

이런 소개 자체가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14살 사이코패스 왕자를 통해 용서 받을 수 없는 악에 대해 거듭 설파한 대목도

이야기의 본 흐름과 동떨어진 채 강요처럼 느껴져서 그다지 와 닿지 않았습니다.

물론 킬러가 주인공인 이야기니까 단지 말초적인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뜻도 아니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앞뒤 안 가리고 사람을 죽이는 킬러가 미화돼야 한다는 뜻도 아니지만,

거기에다 인간의 폭력과 악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포장을 씌우는 건

안 어울려도 한참 안 어울린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사카 고타로에게 흠뻑 빠진 건 처음 읽은 작품이 사신 치바그래스호퍼였기 때문인데

(아직 몇몇 대표작을 못 읽었지만) 고백하자면 제겐 이 두 작품이 그의 베스트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 뒤로 계속 아쉬움과 실망을 느껴왔다는 얘긴데,

아직 못 읽은 그의 대표작 중 한두 편 정도만이라도

사신 치바그래스호퍼의 감흥을 다시 한 번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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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모노클 시리즈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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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덟 번째로 만난 온다 리쿠입니다.

7~8년 전쯤 일반 미스터리라 할 수 있는 목요조곡’, ‘여름의 마지막 장미부터 시작했는데,

이후 읽은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꿀벌과 천둥까지 제외하면

제대로 된 온다 리쿠의 몽환적 세계를 겪은 것은

몽위’, ‘달의 뒷면’, ‘나와 춤을’, ‘Q&A’ 등 네 작품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표 시리즈인 도코노 시리즈’, ‘3월 시리즈’, ‘간바레 메구미 시리즈는 손도 못 댔으니

어쩌면 아직 온다 리쿠를 좀 안다.”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평 이전에 이렇듯 구구절절 긴 서설을 늘어놓은 이유는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다 리쿠의 전설적 데뷔작인 이 작품을 포함해서

책장 안에 그녀의 여러 작품이 꽤 오랫동안 방치돼있는 게 사실인데,

매번 손을 댔다가도 어떤 이유에선지 주저하다가 결국 다른 작품을 집어 들곤 했습니다.

그만큼 온다 리쿠의 몽환적 세계에 발을 디디는 게 쉽게 내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물론 몽위달의 뒷면처럼 정신을 혼미하게 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도 있지만,

역시 취향 면에서 보면 온다 리쿠는 전적으로 저와 잘 맞는 작가라고는 할 순 없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마력 덕분에 자꾸만 기웃거리게 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여섯 번째 사요코1991년에 발표된 온다 리쿠의 데뷔작입니다.

출판사가 정리한 간략한 줄거리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새 학기 첫날 사요코라는 여고생이 지방의 고등학교로 전학 온다.

이 학교에는 사요코라는 수수께끼의 괴담이 전해지고,

붉은 꽃과 열쇠를 물려받아 그해의 사요코로 지목된 자는

대대로 내려오는 특별한 의식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올해는 두 명의 사요코가 등장하고,

진짜 사요코의 정체를 밝히려 한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는데.

 

줄거리만 보면 학교괴담을 소재로 한 호러와 판타지로 보이지만

그에 못잖게 로맨스를 곁들인 10대의 성장기가 함께 그려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호러와 판타지 서사에도 불구하고 꽤 명쾌하게 읽힐 것 같지만

실은 지금까지 읽은 온다 리쿠의 어느 작품보다 읽는 내내 갈팡질팡했던 작품입니다.

호러와 판타지는 좀처럼 머릿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지 못했고,

로맨스와 성장기는 왠지 따로 놀고 있는 듯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무슨 이야기를 읽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습니다.

 

서평을 쓰기 전에 인터넷 서점과 블로그 등을 통해 여러 독자의 서평을 읽어봤지만,

다소 극과 극을 달리는 서평들을 보며 제가 영 잘못 읽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생각이 비슷한 서평에서 인상적인 구절들을 인용해보면,

 

오싹함과 무서움마저 없었다면 의미 없는 책이 될 뻔 했다.”

성장소설, 판타지, 괴담 그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끝나고 맙니다.”

학교 괴담으로 나가다가 괴담이 빠져버리는 이야기.”

 

무슨 내용으로 서평을 써야 할지조차 막막했던 게 사실인데,

쓰다 보니 주절주절 별 알맹이도 없는 넋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 막막한 건, 책장에 아직도 갇혀 있는 십여 편의 온다 리쿠의 작품들인데,

언젠가 읽기야 읽겠지만 어느 대목에서라도 여섯 번째 사요코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면

아무래도 쉽사리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누구라도 이 작품의 미덕이라든가 작가의 진의를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고마운 일일 텐데

그걸 듣고도 과연 제가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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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배신 스토리콜렉터 84
로렌 노스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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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행기 사고로 남편 마크를 잃은 테스는 깊은 절망과 우울에서 허우적댑니다.

그녀의 유일한 의지처이자 안식처는 곧 8살이 되는 아들 제이미가 전부.

그런 그녀에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들이 몰아닥칩니다.

갑자기 찾아온 사별 전문상담사 셸리, 동생 마크의 빚을 갚으라며 유산 정리를 보채는 이안,

어느 날인가부터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것만 같은 정체불명의 불길한 사내,

그리고 마크가 남긴 막대한 보험금과 그가 테스 몰래 추진하던 비밀 프로젝트의 진실 등

테스는 항우울제로 인해 몽롱한 상태에서 마주친 이 모든 사태들이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 ● ●

 

최근 몇 년간 영미권의 여성-가족 심리스릴러가 봇물처럼 출간돼왔는데,

완벽한 배신역시 가족의 붕괴를 겪은 30대 중반의 여성 테스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시작과 동시에 칼에 찔린 상태로 병원에 입원한 테스의 상황과 함께

(테스에 따르면) 아들 제이미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설명됩니다.

이어 50여일 전으로 되돌아가 테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밀도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테스의 심문 장면, 상담사 셸리와 마크의 형 이안의 진술 장면이 끼어드는데

덕분에 누가 테스를 찔렀는가?’ ‘테스의 주장대로 제이미는 납치됐나?’라는 미스터리가

마지막 장에 이를 때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전개됩니다.

 

마치 테스가 죽은 남편 마크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구어체로 쓰인 문장들은

테스의 불안과 공포, 절망과 자학의 감정을 더욱 애절하고 피부에 와 닿게 만듭니다.

남편 마크와 아들 제이미의 존재가 이 세상의 전부였던 테스에게

마크의 죽음과 제이미의 이른 사춘기 같은 반항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인데,

그런 심정들을 저 세상에 있는 마크에게 절절이 풀어놓는 듯한 감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 미처 몰랐던 마크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는 것과 함께

마크가 남긴 유산을 노리는 듯한 미지의 인물들로 인한 불안과 공포 역시

객관적인 서술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강력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완벽한 배신이란 제목은 꽤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제목입니다.

말 그대로의 배신이란 의미만 있다면 이야기가 다소 싱거울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아무래도 과연 누가 테스를 배신했는가?”라는 의문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작가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모든 등장인물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곤

독자로 하여금 그 미스터리의 진실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르러 보기 좋게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칩니다.

, ‘진범 찾기를 엔딩으로 삼았던 기존의 심리스릴러와는 사뭇 다른,

오히려 가슴이 먹먹해지는 심정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됩니다.

 

다만, 450여 페이지 내내 한탄과 후회와 자책에 빠진 테스를 바라보는 일은 힘에 부칩니다.

1인칭 편지체의 문장은 앞서 얘기한 장점과 미덕도 갖춘 게 분명하지만

반대로 그 안의 감정들이 너무 농도 짙게 전달되기 때문에 피로감을 높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 ‘반칙까지는 아니어도 앞서 읽은 분량들을 조금은 허망하게 만드는 엔딩 역시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몇몇 트릭과 장치와 인물의 비밀은 다소 쉽고 안이하게 설명되거나 해소되기 때문입니다.

 

첫 장편에서 이만한 결과를 낸 걸 보면 작가의 필력이 평범치 않아 보이는 것은 분명합니다.

언제쯤 신작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작가목록에 올려놓아도 모자람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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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립트 스토리콜렉터 15
아르노 슈트로벨 지음, 박계수 옮김 / 북로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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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르노 슈트로벨은 2015이라는 작품으로 먼저 만난 적이 있습니다.

여자들을 관에 가둔 채 생매장시키는 범인이 등장하는 끔찍한 이야기인데,

스크립트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훨씬 더 잔혹한 범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극단적인 소시오패스에 의한 예측불허의 범죄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이 심리 스릴러의 분위기를 띄고 있는데 반해

스크립트는 사건 중심의 정통 스릴러로서 확연히 다른 색깔을 지닌 작품입니다.

 

여자를 살해하고 피부를 벗겨낸 뒤 소설을 새겨 소포로 보내는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문제는 범인이 한 스릴러 작가의 소설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 소설에 따르면 앞으로도 숱한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경찰은 경악합니다.

이 사건을 맡은 함부르크 경찰서 안드레아 마티센과 슈테판 에르트만은

유력 신문사 사장의 딸을 포함 최소 두 명 이상이 납치된 사실을 파악하고 수사에 나서는데,

소설을 쓴 작가, 담당 편집자, 출판사 관계자, 소설가의 광팬이자 서점주인 등

이 사건으로 인해 이익을 볼 수 있는 인물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수사는 혼선을 겪게 됩니다.

 

사건 자체도 끔찍하지만 잔혹한 범죄를 다룬 소설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 이전에 다른 지역에서도 이 소설가의 소설을 모방한 잔혹범죄가 벌어진 적이 있었고

그 사건이 현재까지도 미제 상태라는 설정 때문에 독자는 더더욱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소설가의 광팬인 불특정 소시오패스의 미친 범죄인지,

소설이 화제가 되면서 물질적 이익을 볼 소설 관계자의 계획범죄인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수사를 맡은 마티센과 에르트만의 초동 수사가 무척 흥미롭게 전개되는데,

그에 덧붙여 두 형사의 특별한 관계도 독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입니다.

 

에르트만은 매사에 교과서적인 태도만 보이는 상관 마티센이 사사건건 못마땅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맡을 수도 있던 수사본부장 대리 자리를 그녀가 차지한 게 결정타였는데,

그런 마티센이 실은 상부로부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곤

점차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물론 상부에 함께 저항하는 파트너로 발전하게 됩니다.

두 사람의 케미가 메인 사건 못잖게 흥미진진한 덕분에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나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장점도 많은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는데,

가장 큰 건 이야기의 몸통, 그러니까 마티센과 에르트만의 수사 과정입니다.

요점만 이야기하면, 이들의 수사는 소설 관계자들에 대한 반복적인 탐문이 전부입니다.

그들의 집을 찾아가고,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됩니다.

물론 누구도 범인이 될 수 있다는 독자의 의혹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반복되다 보니 독자 입장에선 솔직히 좀 지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막판에 결정적 단서를 찾아내고 예상외의 진범을 특정하는 대목은 나름 스릴감이 높지만

중간 과정의 느슨함은 예전에 읽은 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던 점이라

아무래도 작가의 고유한 특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소한 것 두 가지만 더 얘기하면,

마티센과 에르트만은 범죄의 원작인 소설을 거의 읽지 않고 남에게 떠맡기듯 하는데,

그 소설은 범행 과정과 동기는 물론 다음 범행을 예측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될 수도 있지만

정작 수사를 맡은 두 주인공은 그다지 소설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치 그 소설을 읽어버리면 수사가 너무 빨리 끝날 수도 있어서 일부러 회피한 느낌이랄까요?

또 하나는 이름까지 부여되고도 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는 일부 조연들의 문제인데,

심지어 주요 용의자이자 납치된 여성의 남자친구는 중반부터 아예 보이지도 않습니다.

 

독일 또는 북유럽 특유의 잔혹한 소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번 도전해볼만한 작품이고,

제 서평이나 출판사 소개글만 보고도 속이 불편한 독자라면 피하는 게 좋은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론 무척 좋아하는 장르지만 이야기 몸통의 느슨함 때문에 별 하나를 뺐는데,

이 점은 독자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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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전화
야쿠마루 가쿠 지음, 최재호 옮김 / 북플라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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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비리 혐의로 경찰을 그만두고 연이어 가족이 해체되는 아픔까지 겪은 아사쿠라 신지.

어느 날, 이혼한 아내 나오미와 살던 딸 아즈사가 유괴되면서 끔찍한 악몽이 시작되는데,

아사쿠라는 나오미에게 유괴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말 것을 요구하며 직접 수사에 나섭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아사쿠라는 딸의 유괴 사건이 단순히 몸값만 노린 것이 아니라

3년 전 자신이 경찰을 그만둬야만 했던 사건과 연관 있음을 깨닫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 ● ●

 

4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을 다섯 줄 정도의 줄거리로 요약했지만

사실 이 작품의 볼륨감은 6~700여 페이지 분량의 작품에 못잖게 방대하고 복잡합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먹는 숨 가쁜 추격 액션과 함께

막판까지 익명의 전화로 아사쿠라와 나오미를 조종하는 미스터리한 유괴범의 목적,

아사쿠라 가족의 비극을 갖고 온 3년 전 사건의 비밀, 경찰 내부의 수상쩍은 움직임 등

한시도 쉬어갈 틈 없이 엄청난 속도로 이야기가 폭주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경찰이었지만 더는 경찰을 믿을 수 없어 외인부대같은 조력자들을 구한 아사쿠라는

전처인 나오미에게도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친 채 고독한 추격전을 시작합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유괴범이 요구한 미션을 완수해야 하는 아사쿠라의 쉴 틈 없는 분투는

글로 읽고 있는데도 숨이 차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급경사의 빠른 롤러코스터 같습니다.

나오미 역시 아사쿠라가 감춘 3년 전 과거와 현재 유괴사건의 연관성을 찾아 나서는데,

아사쿠라처럼 전직 경찰이었던 나오미는 딸이 유괴된 공포에 빠진 상태에서도

차분히 아사쿠라가 감춘 비밀과 진실을 찾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합니다.

 

출판사 측에서 극히 일부만의 내용을 인터넷 서점에 소개한 걸 보면

서평을 통해 그 이상의 내용을 기술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는데,

어차피 이 방대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할 방법이 없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스포일러를 피하는 선에서 소개할 수 있는 내용은 대략 이 정도가 전부인 셈인데,

이만한 떡밥에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이라면 충분히 관심을 끌고도 남는다는 생각입니다.

매번 극적인 사건과 설정이 녹아든 사회파 미스터리를 터뜨려온 야쿠마루 가쿠가

유괴사건이라는 더는 새롭지 않은 소재를 어떻게 묵직한 주제의식 속에 담아냈는지

그의 팬이든 아니든 한번쯤은 접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조금 긴 사족으로...

같은 원작자, 같은 번역가, 같은 출판사의 작품인데

형사의 눈빛에선 못 느꼈던 번역과 오타의 문제가 종종 눈에 띈 건 옥의 티였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의 오타(‘나오미나모이, ‘키시타니카시타니)는 물론,

줄 바꿈이 제대로 안 되거나 조사의 오타도 눈에 띄었고

비교적 쉽고 단순한 야쿠마루 가쿠의 문장이 다소 모호하게 번역된 경우도 간혹 있었습니다.

번역의 문제인지 편집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좀더 세심한 마무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일러두기를 통해) 화폐단위를 ‘1=10이라고 전제한 뒤 대신 으로 표기했는데

이건 번역의 기초적인 상식에도 맞지 않아 보였고,

아사쿠라와 그 조력자들이 계속 카카오톡 단톡방을 통해 소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라인처럼 일본에서 카카오톡이 상용화돼있어서 원작에도 그렇게 표기된 건지,

아니면 번역가가 임의로 카카오톡으로 번역한 것인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만일 번역가의 임의라면 이 역시 너무 어이없는 오류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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