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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 어이없고 황당하고 늘 후회하면서도 또 떠나고야 마는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7년 8월
평점 :
책 제목이 참으로 독특하였습니다.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작가가 누구지?
하던 찰나에 그녀와의 인연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그녀를 통해 조금은 느리더라도, 조금은 주저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세계를 그리며 넓혀감을 느끼게 해 주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엔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역시나 그녀는 조금 달랐습니다.
원에서 조금씩 벗어난 나선을 그리던 것처럼 이번에도 여행에 대한 시선이 남달랐습니다.
"그 개고생을 해놓고, 왜 또 짐을 꾸리고 있는 걸까?"
그녀의 가식 0% 여행 에세이.
또다시 그녀의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프롤로그>를 살펴보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나는 회춘이라도 한 것처럼, 고국에서라면 겪지 않아도 될 난처한 상황에 놓이고 낯선 곳에 도착하고 당황하고 절망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끔찍하게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길을 헤매거나 길을 묻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남에게서 괴롭힘을 당하는 일들을. 일상에서는 하지 않아도 좋을 일들을.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 놓이는 일들을.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이런 게 여행이라면 나는 여행이 싫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 page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는 이유.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싫어하는 여행을 나는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것들을 곱절은 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렀을 때, 가끔은 싫어하는 것들이 가장 즐거웠던 일이 되기도 한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 page 12
그러므로 내게 여행이란 건 '가장 먼 곳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좋든 싫든 그것이 나다. 그게 '진정한 나'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의 일부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하여 여행이 끝날 때마다 나는 같은 사람인 채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 그건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보너스 같은 것이다. - page 13
아마 그녀만이 이런 이유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닐것입니다.
나 자신도, 우리 모두 자신의 또 다른 이면을 느끼기 위해, 좀 더 자라난 나를 발견하기 위해 떠남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여행.
역시나 독특한 매력이 듬뿍 담겨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 그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은 진정한 여행자라는 느낌이 들곤 하였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녀의 여행 중 와 닿았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여행을 시작한 지 이틀 후에 볼일이 있어 엄마가 안양의 우리 집에 들렀다. 나는 태국 남부의 소도시, 끄라비의 바다 앞에 서서 엄마가 보낸 문자를 받았다.
'전기장판 꺼져 있음.'
그 소식을 듣고 나니 바다가 2퍼센트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이 여행과 여행 중인 우리가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행운아이고, 지금의 시련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집도 불타지 않았다. 우리에겐 돌아갈 곳이 있다.
그러고 보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어쩌면 그게 여행의 가장 멋진 점인지도 모른다. - page 83 ~ 84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이 끝나고 돌아갈 곳, 집이 있다는 것.
그 곳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주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에 우리의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저번 책과의 연결고리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새 직장에서 일하게 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인생의 행로를 쉽게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사는게 지도 위의 선과 면처럼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힘들어봤자 꼬불꼬불한 길일 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힘들고 위험해져도 오리털 점퍼 같은 대비책만 있으면 괜찮으리라 믿었다.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변할 수 있고, 성장하며,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믿었다. 영화나 책에 나오는 이들처럼.
그렇지만 실제의 세상은 지도나 약도 속의 세상과는 달랐다. 그것은 처음 우에노역 출입구를 빠져나왔을 때 맞닥뜨린 풍경과 비슷한 곳이었다. 아무리 약도 속 경로를 유심히 들여다보았어도, '출입구를 나와 직진한 후 우회전해서 다시 직진, 그리고 왼쪽'이라 수십 번을 외웠어도, 실제의 길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 나는 그 길 위의 수많은 것들에 상처받지 않고, 놀라지 않고, 번뇌하지 않고, 의연하게 통과해야만 했다. - page 373 ~ 374
모든게 원처럼, 지도 위의 선과 면처럼 단순하지 않기에 인생이 다이나믹하면서 즐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나니 스스로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여행을 왜 하는지......
나의 성장과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기대하지 못했던 나를 만나는 일, 여행.
그곳으로 또다시 떠남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