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사과의 마음 - 테마소설 멜랑콜리 다산책방 테마소설
최민우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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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흔히 감기로 표현하곤 한다. 감기처럼 흔하지만 방치할 경우 큰 합병증으로 와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현남 오빠에게> <새벽의 방문자들> 등 테마소설이 페미니즘이였다면 이번 『보라색 사과의 마음』의 테마는 우울증이다.

우울증의 원인을 단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을까? 기질적으로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람도 있고 여자의 경우 산후 우울증,육아 우울증등 출산이라는 큰 일을 치룬 후 동반되는 우울증도 있다. 가족 또는 지인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로 겪게 되는 우울증 등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생기는 우울증도 있다. 특히 최근과 같이 급격한 변화와 불안정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경증의 정도만이 다를 뿐 모두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

《보라색 사과의 마음》의 인물들 또한 동생의 사고 이후 표현되지 못한 슬픔으로 인해 안에 고여버린 우울증이 있고 극도의 우울증 속에 생을 마감한 지인 J, 아이가 실종된 후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켜버린 아내가 있으며 직장 내에서의 재해로 인한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 우재등이 있다.

여섯 편의 단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증상으로 인한 외로움을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이 책의 표제작인 [보라색 사과의 마음]에서는 동생의 죽음 이후 뒷처리를 해 가고 부모님을 도와주지만 정작 자신은 감각을 잃어간다. 자신에게 놓여진 짐 앞에 긴 상실 앞에 홀로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던 은영, 그 은영에게 최근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는 아버지의 고백은 내게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다.

사과를 보라와 회색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 사과의 색깔을 빨강과 초록으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색깔을 느껴보라고 말할 수 없듯 은영의 숨겨져 있는 감정과 고통, 그 깊은 우물은 유족인 부모조차도 이해하지 못했고 남자친구마저 진저리를 내며 떠나가게 했다.

[알폰시나와 바다]에서 포르투칼 여행 중 몸을 던져 사망한 한 사건을 보며 중증의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다 끝내 바다에 몸을 던진 J를 떠올린다. 감정의 격동이 심한 나와 서서히 깊은 우울의 바다에 잠식해가는 J, 서로 힘든 시기에는 서로가 힘이 되어주었지만 나가 등단하고 조금씩 회복되어간 후 서서히 벌어지는 틈, 그 벌어지는 틈만크 J의 외로움도 우울증도 심해져만 간다. 보이는 질병이 아니기에, 눈으로 느껴지는 고통이 아니기에 더욱 더 외로운 우울증을 여섯 편의 소설들은 그려나간다. 그 우울증 속에 삶이 조금씩 파괴되어가는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외로운 병이지만 그럼에도 함께 있어주고 공감해 주는 한 사람이 있다. 아이를 잃은 자책감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켜나간 아내를 질책하지만 결국 아내를 잃지 않기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경조, 외로운 해운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던 미듬, 재해로 잃은 동료를 생각하며 힘들어하는 우재 곁에 함께 하는 준모등.. 서로의 존재는 한 줄기 희망이 되어준다. 우울증을 치료해 주지 못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 만으로 하루 하루를 견뎌간다.

공감해 주는 한 사람이 견뎌내주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질책하며 힘을 내서 극복해야지 않느냐는 질책은 그들을 더욱 고립시킨다. J가 울 때 침묵으로 함께 해 주었던 나로 인해 J가 버틸 수 있었지만 이력서를 왜 쓰지 않느냐며 일어서라고 독촉하는 순간 그 외로움은 질식시킬 것처럼 서서히 조여온다. 마치 수영에 낯선 해운이 미듬의 수영 페이스에 못 이기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것처럼 그들은 사회의 페이스에서 더욱 늦춰져 간다.

김남숙 작가의 단편 <귀>에서 나가 예지에게 자꾸 교회에 가라고만 되풀이하는 이야기 속에, 학교 말고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는 그 이야기 속에 공감이 아닌 판단 속에 예지가 주인공 나를 떠나게 한다.

한 사람의 공감과 판단이 우울증의 무게를 힘들게 견디고 있는 한 사람을 이토록 달리 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정혜신 정신의학과 박사님의 저서 [당신이 옳다]에서 공감해 주는 능력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정신과 의사가 될 수 있다고 표현했다. 그 한 사람의 힘이 소설 곳곳에 표현되어 있다. 마지막 단편 이현석 작가의 <눈빛이 없어>에서 우재의 곁을 지키는 준모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잘 살아가지 못해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우재가 하루를 살아간다.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원인으로 인한 우울증의 증세와 함께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다만 하루 하루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느라 제대로 증세를 자각하지도 못하는 은영처럼 그렇게 우울증의 바다에서 침식되어가고 있다. 그 때 우리에겐 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 사람에게 함께 해 주고 손을 내밀어줄 때 우리는 견뎌낼 힘을 얻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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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의 세계 경제 여행 - 달러의 흐름으로 보는 세계 경제의 작동원리
다르시니 데이비드 지음, 박선령 옮김 / 센시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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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가장 인정해 주는 통화는 모두다 알다시피 달러이다.

엔화,유로, 파운드등 여러 기축통화가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제일 많이 통용되는 화폐는 단연 달러이다.

이 책의 저자 다르시니 데이비드는 이 1달러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달러가 각국에 맞춰 어떻게 쓰이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주며 읽는 독자에게 달러의 여행과 함께 세계곳곳을 누비며 국제경제의 흐름을 설명해주는 책이다.

1달러 여행의 출발지는 어디일까? 바로 달러의 발행지인 미국, 그것도 미국에서 저가의 제품을 공급함으로 많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윌마트로 출발한다.



저자 다르시니 데이비드는 먼저 이 달러가 위치해 있는 각 지역의 경제 흐름에 설명해 주는 것에 주목한다.

가령 첫 번째 출발지인 미국의 윌마트를 배경으로 윌마트가 어떻게 많은 제품들을 최저가 가격으로 고객들에게 납품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싸게 물건을 살 수 있으므로 가계 소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단면만 주로 보게 된다면 저자는 윌마트가 미국 본토보다 싼 중국산 제품을 대량 공급함으로 미국의 한 지역의 경제가 파괴되고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 그 어두운 면 또한 설명해준다

어느 한 면으로 치중되지 않고 균형적인 시선으로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렇게 미국의 윌마트 고객이 싼 중국산 라디오를 구매한 대가로 지불한 1달러는 윌마트의 주요 공급업체인 중국으로 흘러가게 되고 다시 중국이 저가의 물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된 배경과 중국의 외환보유 정책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중국에서 나이지리아 그리고 나리지리아에서 인도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전세계 곳곳을 누비는 달러의 여행과 함께 저자는 이 경제와 돈을 둘러싼 이해관계 속에 평등, 또는 인권 등의 가치가 무용지물이며 영원한 우방도 적국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장은 윌마트가 중국에 충실한 고객이겠지만 중국보다 더 싼 제조업체만 있다면 그동안의 관계는 헌 신같이 벗어 던질 수 있다. 나이지리아인들이 달러를 지불하고 인도에서 사 오는 인도쌀의 경우에도 그 쌀을 경작하는 인도 농부들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그 중간에 있는 중개업자들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됨은 국제 경제는 결코 평등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한 공동체로 관세 장벽등을 없애고 경제 공동체를 만들었지만 결국 업힌 자들보다 업은 자인 독일과 프랑스만이 경제혜택을 누리는 현실 또한 아무리 좋은 취지의 통합이라 하여도 힘의 역학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치는 경제와 전혀 동떨어질 수 없는 공존의 관계이다. 정치가 불안정하면 당연히 환율은 올라가기에 국제 정세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 정치상황에 따라서 새로운 산업이 부흥하거나 또는 기존 산업에 큰 타격을 입는다.

러시아가 왜 그토록 수많은 서방국가의 비난 속에서도 시리아 내전에서 독재자 바샤라 알아사드의 편을 들어주며 그 대가로 받는 그 거대한 이익 모두 화폐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깔려있다.

이는 화폐의 위력 앞에 정의, 인권, 평화의 가치가 무의미하며 냉정한 현실임을 일깨워준다.

저자는 이 책의 독자들이 달러가 세계를 여행하면서 각국의 역사와 정치 등의 배경을 상세히 설명해 줌으로 국제경제의 단면만이 아닌 각국의 현장과 함께 경제를 알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 준다.

국제 정세의 감각이 없는 경제 흐름은 있을 수 없다. 날로 급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정확한 예측이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정확한 경제 흐름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나라를 알아야 하고 역사와 문화 등을 함께 아울러 알아야한다. '지피지기는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이에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이 책의 1달러와 함께 여행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숫자, 경제학에 여전히 약한 나지만 저자가 들러 주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끝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웃고 있는 자들 뒤에 울고 있는 자들이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만지는 이 한 장의 돈 위에 어떤 이들의 숨은 이야기가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경제초보자들 뿐만 아니라 경제의 흐름과 세계사 공부 두 마리의 토끼를 한 꺼번에 잡을 수 있는 책이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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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이모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1
박민정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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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작가인 박민정 작가의 [세실, 주희] 이후로 작가님의 후속작은 항상 내게 관심사였다.

수상작 이후 장편작인 <미스 플라이트> 또한 매우 좋았고 현대문학에서 주관하는 [서독 이모] 또한 작가의 이름만 보고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책이었다.

《서독 이모》에서 소설을 쓰는 주인공 우정에게는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교수로 재직중인 이모가 있다.

소설은 그 독일에 사는 이모, 통일된 독일에 살고 있지만 항상 자신을 서독 이모라고 부르는 경희 이모가 우정에게 '남북 데탕트'를 소설로 써 보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시작된다.

이모는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통일이 되어 동독 출신의 교수 클라우스와 결혼했다. 한국계 중국인으로 독일에 입양되었던 클라우스는 이모와 결혼 2년만에 실종되었고 이모는 그 후로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홀로 살고 있다.

결혼식을 제외하고 본 적이 없는 이모부의 존재는 우정에게는 미지의 존재와 같아고 엄마에게 물어도 "이모의 불행이 재미있냐"라는 엄마의 핀잔 앞에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실종된 이모부의 존재를 말할 수 없었다.

글을 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우정은 독일 통일 2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동독 출신의 학자가 서독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흡수되다시피 한 통일은 동독 지식인들에게 큰 고통이였음을 듣고 자신의 사라진 이모부를 떠올린다.

자본주의 체제에 수용당한 동독 출신의 지식인들의 연사를 통해 서독 대학 출신의 이모와 동독 출신의 이모부 사이를 소설로 쓰기로 결심한다.

《서독 이모》는 우정이 대학원 논문을 쓰기 위해 자신의 전공 교수가 아닌 독문과 교수인 최교수에게 지도를 받는 과정과 이모와 이모부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며 소설의 시나리오를 짜 맞추어가는 과정이 대비된다.

타 과 출신인 우정이 자신의 심사 교수인 최교수에게 다른 논문 주제로 정하는게 어떻겠느냐고 하소연해도 최교수는 독일어의 알파벳도 모르는 우정에게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작품의 번역을 하라고 강요한다.

내가 맞게 읽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러한 최교수와 우정의 모습이 통일된 후 동독과 서독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힘의 우위를 이용해 자신의 희망을 앞세워 능력에 부치는 논문 주제를 발표할 것을 강요하는 최교수의 모습이 힘이 강한 서독만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룬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우정이 발표를 하지만 다른 교수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는 모습과 우정이 독일 방문했을 때 동독의 지난 일반인들의 삶이 DDR 박물관에서 전시되어지는 모습이 동일하게 느껴졌다.

한국 출신이지만 서독의 대학에서 공부한 이모, 한국계지만 동독 출신에 동독을 지키고자 했던 이모부, 독일은 통일되었고 둘은 사랑해서 함께 살지만 없어지지 않는 이 간극을 이모는 우정에게 '남북 데탕트'를 주제로 소설을 써 보라고 권유한 건 우정의 소설을 통해서나마 클라우스를 이해해보려고 하는 이모의 마음이 아니였을까.

그리고 통일된 독일에서 살고 있지만 늘 자신을 굳이 서독이모라고 칭하는 이모의 모습은 서독과 동독이 느끼는 그 간극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였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소설은 127페이지 분량의 짧은 소설이지만 읽는 내내 질문하게 된다.

이모와 이모부, 동독과 서독, 그리고 남한과 북한 등등.. 왜 우정은 이모와 이모부의 이야기를 끝내 미완인 채로 끝내게 되었을까 등등.. 이 묵직한 내용에 읽고 난 후에도 계속 생각에 잠기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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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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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이 한참이었을 때 직장 여성들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전자는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참았을까?"라며 피해자를 옹호하는 직원도 있었고 후자는 "지금이 어떤 사횐데 정말 말할 창구가 없었을까?"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미투 운동, 탈코르셋 등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면서도 페미니즘의 행렬에 동참하면서도 온전히 동의하지 못하는 데서 느끼는 불편함 등이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윤이형 작가의 소설 《붕대 감기》는 여성의 우정을 다룬 소설로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처럼 한 인물의 서사가 끝나면 그 서사의 주변인물이 다른 서사의 주인공으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모든 여성이 주인공이다. 먼저 미용실 실장인 혜미가 8개월 전 마지막 방문을 끝내고 방문하지 않는 여성 고객을 생각하며 시작된다. 매번 올 때마다 자신이 가지고 온 책을 읽던 그 고객에게 책을 선물한 후 방문이 뚝 끊겨버린 사실을 생각하며 혜미는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팀장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함몰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건만 갑작스런 아이의 사고로 8개월을 병상에서 간호하는 은정은 회사도 휴직하고 아이의 병간호에 지칠대로 지쳐있다. 아이의 입원이 장기전으로 흐름에 따라 남편과의 사이도 소원해지고 시댁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은정은 이방인처럼 또는 죄인처럼 혼자서 모든 상황을 묵묵히 감내한다. 오랜만에 집에 들러 무조건 걷던 곳 미용실에서 그녀는 미용실 앞에 비친 거울을 보며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소설은 그렇게 헤어 디자이너인 혜미가 은정을 생각함으로 은정에게 바톤을 넘겨주고 은정이 그 바톤을 이어 받아 미용실에서 자신의 머리를 잘라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던 또 다른 디자이너 지현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각각의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 소설 속의 인물들은 여성이면서 자신의 위치에 따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만큼 그 모든 것을 뛰어넘고 우정이 지속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가령 불법 촬영 피해자였던 친구의 영향으로 페미니즘에 동의하고 탈코르셋도 찬성하지만 사람들의 스타일을 빛내주는 자신의 직업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질까 두려워 불편함을 느끼는 지현,

전업맘이자 방과후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진경과 출판기획자이자 비혼여성인 진경의 친구 세연,

교수의 성추행을 고발했지만 윗세대들을 원망하지 않는 채이와 이 사태에 침묵으로 일관해 버리는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하는 후배 형은 등등..

한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그들의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에 이들의 우정의 틈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서로의 차이를 느끼면서도 더 불편해질까 두려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속에 과연 우정은 지속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고민 속에 저자는 채이와 형은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진경과 세현의 이야기 속에 한 가지를 제시해준다.


서로 가려는 방향이 전혀 다른데,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닌데,

억지로 함께 가자면서 차이를 뭉개버리는 게 옳아?

하지만 만나서 얘기하지 않으면 영원히 평행선이잖아.


이해하고 싶었어.

너의 그 단호함을, 너의 편협함까지도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 또한 자신의 생각이 다르기에 상처받을까봐 그 차이를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며 조심스러워한다. 하지만 진경이 자신과 다른 세연의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듯이, 형은과 채이가 서로의 차이를 두고 불꽃튀는 논쟁을 벌이는 모든 것들이 다양성을 인정하며 그 속에 서로의 모습을 온전히 보낼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이 하나가 되어 큰 우리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지난 여름 열렸던 페미니스트이자 소설가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내한강연회가 떠올랐다.

그 곳에서 저자는 최근 한국에서 탈코르셋 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들으며 답한 작가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탈코르셋 운동을 응원합니다. 다만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지 아니하는 다른 여성들을 절대 비난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다양성이 결여된 페미니즘은 없으며 이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다름을 걱정하지 말자. 우리는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인정 속에 서로의 관점을 나누면 된다.

연대는 한 마음이 아니다. 연대는 우리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더 큰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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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머리 앤 특서 청소년문학 10
고정욱 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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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오빠와 여동생이 있다. 큰딸인 나를 낳은 후 엄마가 동생을 임신하셨을 때 아빠는 내심 아들을 원하셨다고 한다. 그당시 초음파가 없던 시절, 성별구분은 어려웠고 아들이 있음에도 또 다른 아들을 기대하셨던 아빠는 딸이라는 말을 듣고 눈물지으셨다고 한다. 그 때의 이야기를 부모님은 우스개소리로 말씀하시지만 여동생에게는 남녀차별하지 말라며 큰 소리로 외치곤 했다.

『빡빡머리 앤』은 청소년들의 시각에서 보여지는 이 사회 속의 '불균형한 성평등'에 대하여 여섯 명의 작가들이 쓴 청소년문학 단편집이다.

그간 시중에 젠더, 또는 남녀차별 등이 성인의 시각에서 그려졌다면 이 『빡빡머리 앤』의 여섯 편의 단편들은 청소년들, 학교 그리고 어른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서 주로 그려진다.

여섯 명의 앤들은 아직 부모의 보호 아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주변의 차별을 감당해야 한다.

축구에 유능한 자질이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시합을 거부당했던 조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이면서 비난의 화살을 받고 평생 멍에를 지고 살아가다 그 무게에 눌러 쓰러져간 언니,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한 대리용으로 자신의 희망을 억누를 것을 강요받는 해미,

성추행을 당하고 주변에 침묵을 강요받는 현진과 천경

존경하는 아버지가 여고생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인 사실에 직면한 윤아

이 책 속에 그려지는 앤들은 유난히 여성에게 전해져 오는 억압에 의해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다. 성인인 여성들이 주로 겪는 차별이 있다면 청소년들에게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지는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

진로를 선택하는 것조차 '여자 주제에' '여자는 힘이 약해서 안 돼'라며 시작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그들의 희망과 생각을 차단해버린다. 모두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라는 흔해 빠진 변명 속에서..

조앤 또한 축구의 희망이 차단되었고 요리를 좋아하는 해미 또한 요리는 하찮은 것이라 간주하는 부모의 생각 아래 자신의 꿈을 발설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언니가 죽었다》의 살인과 다름없는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이지만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삼고 피해자에게 손가락질로 인해 동네에서 쫓겨다니시피한 언니, 그리고 그 족쇄를 끝내 벗어내지 못했던 언니의 일생이 자신에게 또 다시 족쇄가 되어버린 엄마를 향해 내뱉는 딸 주연이 엄마에게 던진 한 마디는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 묵직함을 남긴다.


말하지 않고 묻어두어서 이모 인생이 나아진 게 뭐 있어?


침묵이 오히려 이모의 인생을 진흙 속에 내던져졌다.

한 때 미투운동이 한참이었을 때, 미투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그 때 당시 침묵하다가 왜 이제서야 고발하냐는 식으로 비난하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기득권의 시각으로 본 그들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약자의 입장, "을"의 입장에서 볼 수 없는 그들의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침묵하라는 사회의 암묵적인 요구에 순응했지만 그 침묵이 그들을 구원해 주지 못했기에 이제 살려고 목소리를 높여 외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임을 기득권은 알지 못했다.

단편 《마카롱 굽는 시간》에서 아들만을 선호하는 시어머니에 반발해 큰딸 준성을 성공시키려 하지만 큰 딸 준성을 명문대 이과에 진학하려는 어머니의 욕심 또한 잠재되어있는 남녀차별의 한 모습임을 준성의 시각에서 보여준다.

시대에 의해 억눌린 자신의 삶을 자녀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심리로 인해 자녀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이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했던 모순이 낳은 하나의 부작용이었다.


다행이 이 책 속에 그려지는 앤들이 자신의 굴레를 깨고 자신만의 날개를 펴고 비상하기로 결심하면서 각 소설들은 끝을 맺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결심이 마침표가 아닌 또 하나의 시작임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또 다른 차별과 편견이 있을 것이고 성장해 갈수록 더욱 더 큰 공격이 강해질 것이다.

이 시대의 많은 앤들이 더 활짝 날아오를 수 있도록 하는 건 결국 어른인 우리의 역할인 것 같다.

우리와 같은,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억압이 그들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어른인 우리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한참 자라나고 있는 내 딸들에게도 여성이라는 이름보다 그저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로 대접받길 자라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의 많은 앤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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