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은 통한다는 말이있다. 여기 이 소설의 두 주인공 고민중과 앤디(본명 강병균, 그의 형은 강세균)가 그 극적인 예가 될듯하다. 이름처럼 성격도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고민중,넉살좋고 성격급한 앤디. 이 둘의 여친이었던 한재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매개로 전 남친이었던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게 된다. 근육돼지(고민중의 표현)앤디는 한재연을 헬스장에서 만나 사귀었고 이 둘이 헤어진 후 출판사에서 일하던 고민중은 한재연의 소설을 계기로 연인이 된다. 한재연은 이른바 '병사'했지만 젊은 나이에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능력주의 본보기였던 집에서도 소외당한 작가지망생이자 시나리오작가였다. 죽은 후 납골당에서도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는 가여운 그녀의 유골을 어쩌다 보니 두 남자가 1주기 되던날 함께 탈취한다. 여행을 좋아하던 그녀를 자유롭고 탁트인 곳에 뿌려주기로 한 것. 여차저차 의견이 안맞아 다투면서 남해도 가고 제주도도 간다. 영화로 치면 로드무비쯤 되시겠다.
기사는 공원 입구에차를 세우고 3만 원을 불렀다. 이미 기가 꺾인 나는 뭐라 항변은 못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그에게 카드를 건넸다. 그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여기 들어오면 남는 게 없다며 다시 한 번 지역사회를 강조했다. 돌아갈 길을 생각해 그에게 미터기를 켜고 기다려달라 하려던 마음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였다. 소심하지만 뒤끝은 있는 나는 3만 원이 결제되고 돌아온 카드를 받고는 있는 힘껏 택시 문을 닫았다. 앙갚음이라도 하듯 먼지를 일으키며 택시는 사라졌다.- P14
고민중은 이런 캐릭터다. 동네 주민이 그 거리는 2만원이라고 알려줬는데도 택시기사의 바가지에 대꾸한번 제대로 못한다. 요즘은 왠만해서 카*오 택시등이 있어 바가지 걱정이 없지만 아무리 시골이라도 택시타기전에 00까지 가는데 얼마냐고 물어보면 되는데 왜 그말을 못하고 그냥 타느냔 말이지. 이 대목 읽는데 답답해서 혼났다. 그런 그는 오죽할까? 내내 이런 식인데 의외로 재미지다. 반면 한덩치 하는 앤디는 단순하긴 한데 결단력이 있다. 고민중도 앤디도 각자 지닌 성격탓에 나름의 삶의 역경과 희극이 있다. 두 사람은 재연이라는 죽은 여자친구 때문에 '연적'으로 아웅다웅하면서도 서로의 영향을 받고 조금씩 변화된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에 군불로 방이 덮혀지듯 우정을 점점 키워나간다.
"아따. 이모, 여전하요?" "나가 바빠 와볼 새가 없었구먼요. 내려오면 볼쎄 들러부렀지."
"거시기, 잘 있지요잉?" 앤디의 사투리가 짙어지고 있었다. 나는 몰리는 관심과 그에 따른앤디의 오지랖이 심히 부담스러운 나머지 1미터 정도 그에게서 떨어져 걸어가야 했다.- P101
두 사람의 로드 무비가 끝날때쯤 새로운 문제 하나가 드러난다. 문학,예술계의 고질적인 병폐. 과거 영화 시나리오를 준배하던 재연에게는 지도를 해주던 선배가 있었다. 그는 재연이 죽은 것을 알고 즉시 그녀의 작품을 자기 것인양 영화 시나리오로 내놓았는데 대박을 친다. 소심한 고민중과 병균은 다시한번 의기투합한다. 이 책을 펼치고부터 끝까지 거의 쉴틈없이 읽어냈던 것 같다. 두 남자의 유치한 실랑이부터 과거로 한번씩 돌아가 재연과 고민중의 만남에 대한 묘사까지 지루할새 없이 이어진다. 김호연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