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는 이 작품을 막스 브로트 앞에서 읽어 줄 때 끊임없이 웃었다고 한다. P.122 작품소개 중
충분히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이런 독특한 소재는 아직까지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작가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무척 재밌었나보다. 난 어릴 때 처음 이 작품을 읽으며 좀 끔찍하지만 커다란 바퀴벌레를 상상했다. 그것도 사람만큼 큰 바퀴벌레. 물론 내가 상상한 바퀴벌레는 갑충은 아니다. 카프카가 묘사한 디테일과 그것이 집안이라는 곳에 있다는 점으로 그렇게 미루어 짐작했었다. 나보코프는 이것을 딱정벌레라고 단언했다고한다. 카프카는 영리하게도 표지에 어떠한 벌레 그림도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출판사에 요청했다. 그래서 이 갑충의 모습을 독자 나름의 판단에 맡겼다.
가장 재밌었던 대목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침대에서 눈을 떠 자신이 갑충으로 변한 것을 인지하고도 출근하려 이것저것 신경쓰는 부분이었다. 계속 해서 이런식의 진지함이 이 황당한 상황에 깔려있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 우리는 습관을 반복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도 어느정도 기존에 갖고 있던 습관의 영향을 받는다. 그레고르도 그랬다. 그는 우선 알람을 보고 늦잠을 잔 것을 깨달아 당황하지만 늦게라도 일터에 나가려고 한다. 그레고르는 근면한 직원이고 빚을 갚아가는 중이며 부모님과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충인데다 -갑충의 가장 무력한 상태로- 배를 위로 한채 뒤집어져 있는 그는 이런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어머니는 옆으로 비켜서더니 꽃무늬가 있는 벽지에 붙어 있는 엄청 커다란 갈색 얼룩을 발견하고는 절규하듯 거친 목소리로 외쳐 대는 것이었다. "아니, 맙소사, 대체 저게 뭐야!" 자신이 본 얼룩이 그레고르라는 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이었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마냥 양팔을 쫙 벌린 채 소파위로 푹 쓰러지더니, 다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P.66
가족들은 하나둘씩 그의 심각한 상태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목소리도 차츰 사람의 형태를 잃어버려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다. 일단 엄마는 기절하고 아버지는 거북해하면서 냉담하게 대응하며, 여동생만이 그런대로 그레고르를 챙긴다. 당황스러운 상황은 숨쉴틈없이 이어진다. 얼마나 근면했는지 회사에서 왜 출근하지 않았냐며 지배인이 집에 찾아오기도 한다. 갑충으로 변한 모습을 보게된 지배인은 도망가듯 사라진다. 수입의 유일한 원천이었던 그레고르의 이런 '변신'은 그가 직장을 잃게 만들고 결국 가족들이 각각 일터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레고르에게 의지해 무력하게 집에만 있던 아버지는 이제 은행에서 경비일을 하게 되면서 더 활력적으로 바뀌고 더 젊어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집에만 틀어박혀 소심했던 여동생도 일을 하게되고 점차 가족내에서 중요한 결정권자가 되어간다. 시간이 계속 흐르자 가족들은 돈도 벌어오지 못하고 집안에서 거추장스럽게 이곳저곳을(심지어 벽이나 천장을) 기어다니는 그레고르를 부담스러워하게 된다. 어느새 그의 방은 창고처럼 각종 버려진 물건들과 쓰레기로 가득차게 된다.
가족은 무엇을 주면 그레고르가 특별히 좋아할지에 대해 이제 더는 곰곰 생각하지 않았다. 여동생은 아침과 점심에 가게로 달려가기 전에 아무 음식이나 급히 그레고르의 방에 발로 쑥 밀어 넣었다가 저녁이면 빗자루로 한 번 쓸어 냈다. P.79
굳이 이게 무슨 의미일까 곰곰히 생각하며 읽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 상황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그레고르가 갑충류가 아닌 돼지나 염소로 변했다면 이렇게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조그맣고 징그러울 수도 있는 갑충류가 사람처럼 커다랗게 변해 집안 한구석에서 떡하니 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일단은 그로테스크하다. 그 존재를 늘 의식하고 가끔은 거북함을 억누르고 지켜봐야하는 가족. 한동안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으면서 이제는 냉정해진 그들의 변화를 바라보며 이제는 자신이 사람인지 갑충류인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그레고르. 소설에서 때로 극단적 상상을 통해 직접적인 설명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받을수도 있다. 읽던도중 카프카의 변신을 읽어보지 않았던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줄거리를 조금 설명했더니 35주년 세트를 바로 샀다고 한다. 나도모르게 얼렁뚱땅 한 건 해버렸다. 다시 읽어도 놀라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