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콜렛

줄리엣 비노쉬가 나오는 프랑스 영화. 어느 날 프랑스의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마을에 어느 한 여인이 초콜렛 가게를 열면서 마을이 일대 파란(?)을 격게된다. 그 마을은 알고보면 종교적 분위기를 가장한 억압과 위선 속에 사는 마을이다.

바로 초콜렛이 이 위선과 억압을 까발리며 동시에 치유한다. 어찌보면 페미니즘적 요소도 가지고 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영상미학이 뛰어나다.

 

2. 고스포드 파크

좀 오래 전에 본 영화라 제목이 확실히 맞는지 모르겠다.

탐정 영화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어느 부자가 사냥을 즐기기 위해 자기가 아는 친척, 친지들을 다 모은다. 그들에게 딸린 하인까지. 그곳이 일명 고스포드 파크. 그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인간군상들을 보여준다.

바람난 여주인. 겉으론 고상한 채 하지만 뒤에서 자기가 데리고 온 하녀에게 사람들의 온갖 흉을 다 보는 여주인의 고모인지 숙모인지 하는 할머니. 그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하녀. 하인을 가장한 작가. 나중에 그 정체를 알고 하인들의 세계에서 수모를 당한다. 그러고 보면 그 세계도 꽤 자존심 강한 세계다. 어련할까? 배경이 고풍스런 영국인데. 하인끼리 눈이 맞아 욕정을 나누기도하고, 창녀를 자처한 하인도 있다.        

어쨌든 영화가 참 인상적이다. 영화의 결말은 그 성의 주인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살해를 당한다. 그리고 사복 경찰관이 오고 뭔가 사건의 해결을 보여주려나 했는데 등장인물들을 다 해산시킨다. 집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뭐 이런 게 다 있담.

그러나 감독은 여느 탐정영화처럼 누가 죽였는가? 왜 죽였느냐를 추적하지 않는다. 단지 그 성에 모인 사람들의 인간군상을 그럴 듯하게 그러나 아무런 흥미나 자극없이 빼어난 연출력으로 보여준다. 등장인물의 대사도 특별히 튀거나 인상에 남을만한 대사는 한마디도 없는 듯하다. 참 그렇게 쓰고 그렇게 연출하기도 쉽지 않은데, 보고난 느낌은 잔잔한 여운만 남는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피한방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감독의 연출이 얼마나 절묘한지 말 다했지 뭐.

 

3. 남자태어나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이 거의 극찬해 마지않아 지난 어린이 날 tv를 통해 본 영화다. 나는 영화평론가의 말은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는 좀 믿어주자 해서 본 영화다. 근데 정말 좋은 영화다. 제목만 들으면 찐짜 남자가 되는 게 뭔지를 보여주겠다고 허세 부리다 결국 또라이짓이나 하고마는 걸 보여주 그렇고 그런 영화일 것도 같지만 전혀 아니다. 영화는 정말 순수하고 진지하고 동시에 재미있다.  왜 이런 영화가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했는지 모르겠다. 인물도 탄탄하고 조연들 또한 tv에서 한 조연한다는 사람들이 대거(?) 출연한 영화라 너무 괜찮았다. 

그 영화는 확실히 주인공 세명의 남자아이들이 권투로 승리를 쟁취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아서 좋다. 오히려 그랬으면 영웅담이 되었을 것이다. 감독은 그런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삶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사회는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규정된 이미지가 있다. 그것을 배재하고 그 나이 또래가 격을 수 있는 아픔과 희망, 좌절과 절망, 열등감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난 이런 영화를 만들 줄 아는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위의 세 작품을 안 본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 말 밖에는 해 줄 말이 없다. "그냥 일단 한번 보시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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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9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전 셋다 안봤는데요...^^;; 초콜렛은 제목을 많이 들어본 거 같아요. 다음에 한번 보도록 하겠숨다~ ^^

겨울 2004-05-09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콜렛, 줄리엣 비노쉬란 여배우의 나이듦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구요,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는 페미니즘 영화가 더불어 생각나네요. 조니 뎁은 여전히 근사했지만 줄리엣의 그늘에 그 카리스마가 묻혀 아쉬웠다는... 고스포드 파크는 두 번이나 시도했다가 결국 감상에 실패한 영화인데 몹시 피곤한 저녁에 관람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영화였어요.^^

stella.K 2004-05-10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님 말씀이 맞아요. 조니 뎁이 비노쉬의 연기에 좀 묻혔죠.

호밀밭 2004-05-1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콜렛과 고스포드 파크는 보았는데 남자 태어나다는 보지 못했네요.
고스포드 파크는 배우들도 화려하고, 결말도 신선해서 좋았어요. 하룻밤동안,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추리 소설,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초콜렛은 항상 우울할 때 보곤 하는 영화예요. 조니뎁의 영화들은 현실적이지 않아서 좋아요.
 
 전출처 : 보슬비 > 사진가가 된 발레리나

..

S#1-If I were a butterfly

오늘은 예전부터 한번은 꼭 다루고 싶었던 무용과 그 순간의 포착을 다룬 사진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할 작가는 엘레인 메이슨이란 전직 솔로이스트 무용가 입니다. 그녀는 화려했던 예전의 무용가로서의 삶과 그 이후에 무용작품만을 전속으로 찍는 작가로서 성장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 국립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3년에 걸쳐 작품의 주요배역을 맡았던 뛰어난 솔로이스트였던, 그녀는 지금 영국사진작가 협회로 부터 2년 연속 사진작가상을 거머쥐고 있는 세계적인 무용사진 작가입니다. 무용가 출신답게 무용이 가지는 가장 미학적 특징인 육체로 빚어내는 언어의 성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렌즈로 이것을 표현하는 작가가 된 것이죠.

S#2-Standing on the Tiptoe

저는 개인적으로 무용에 대한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제 서재 한켠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무용에 관한 많은 책들, 이덕희 선생님의 '발레에의 초대'라는 책을 시작으로 무용이란 예술언어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읽고 보고 해석하면서 많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도 새벽에 그곳의 발레학교를 다녔구요. 새벽의 여명과 함께 발레센타로 뛰어가 몸을 녹이고 몸의 구석구석을 찢어내는 일은 힘들었지만 참 해볼만한 경험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여기 캐나다로 유학오기 전에도 바로 국립 발레단에서 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서 현대적으로 구성된 몸의 움직임과 아름다움에 한장 취했더랬죠. 인간이 발끝으로 설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는군요. 발레에서 흔히 말하는 '쉬르라 뽀앵'은 그렇게 해서 무용의 역사 속으로 주요한 테크닉의 하나가 되어 갑니다.

S#3-Romeo & Juliet

아래 작품은 그녀가 최근에 찍은 영국 로얄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진입니다. 무용용어중에 '발레닥숑'이란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행동이 있는 발레, 이야기로 구성된 발레란 뜻이지요. 로미오와 줄리엣도 바로 이런 전통속에 위치하는 작품이구요. 엘레인 메이슨의 사진이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의 구성 속에서 육체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전달한다는 데 있습니다. 극적 구성일수록 무용수의 감정이 보는 이들에게 전달되는 '메타키네시스' 과정-무용가의 육체를 통해 빚어지는 영혼의 움직임이 관객에게 전달되는것-을 렌즈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좀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오네요. 죄송합니다^^

아래의 작품은 영국 로얄 발레단의 고정 작품중의 하나인 '마농 레스코'와 '오네긴'입니다. 오늘날의 현대발레는 고전의 매력과 역사성 속에서 새로운 변신을 많이 시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학부시절 참 소중하게 읽었던 연극미학책이 한권 있습니다. 피터 브룩이란 영국의 연출가가 쓴 '빈 공간'이라는 책인데요. 그는 여기서 장식과 소품, 화려한 의상으로 가득하지만 생명력이 없는 고전극을 '죽은 연극'이라고 규정합니다. 최근까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조의 호수'같은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변화없는 안무와 힘없는 율동, 고정된 법칙들이 바로 이러한 생명력을 빼앗아 가는 요소가 되는 것이죠.

엘레인 메이슨의 작품에서 바로 이러한 진부함과 싸우며 새로움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봅니다. 끊임없는 수련속에서 빚어지는 예술로서의 무용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치열하게 인간의 육체를 매개로 하는 예술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짙어가는 가을의 시간, 아마 한국에선 '이야기가 있는 발레'시리즈가 한창일것 같네요. 어떠세요? 오늘 한번쯤 친구 혹은 가족들과 무용한편 보러가시는 것은 말이에요......

[출처]뮤크박스'이사오 사사키와 시노자키의 Fly me to the Moon'

오늘 들으시는 곡은 일본의 대표적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와 첼리스트 시노자키의 공동 연주 작품인 Fly me to the Moon입니다. 가을의 달빛아래 몸을 맡기고 아름답게 하루를 마무리 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해보며.....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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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5-09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넘 좋네요! 퍼가요~^^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변하긴 변했나 보다. 이 책의 제목에서 나는, 무슨 짝사랑의 대상을 만났을 때의 첫느낌을 고백한 그런 책인 줄 알았다.  그리고 왜 덥석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했울까? 전에는 연애에 관한 책들은 별로 마음에 안 갔더랬다. 그런데 빗나가긴 했지만 어쨌든 난 그런 종류의 글인 줄 알고 첫장을 펼쳐 든 것이다.

처음엔 약간 후회도 했다. 책값에 비해 글자가 너무 듬성 듬성 박혀서 '아, 이런 책이라면 좀 나중에 읽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문장 하나 하나에 깊은 울림이 있었고 애정이 갔다. 

물론 딱히 이 책을 뭐라 규정하기가 어렵다. 시집도 아니고, 수필집도 아니고 소설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삶의 단상 내지는 저자가 문학에 대해서 또는 예술에 대해서, 나아서는 종교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를 그냥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담담하게 때로 시처럼, 잡문처럼 쓴 글이었다.  그리고 상당부분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저자는 <문학에 대한 절대적 의식 전환>에서 

   제가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학이 저를 빌어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입니다.(126p)

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문학을 선택하지 않고 문학이 자신을 선택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작가란 문학을 통해 조화로운 세상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만이 문학의 참된 가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작가 이외수는 그 범상치 않은 외모에서, 솔직히 그의 책들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도인 같은 이미지라 그는 문학을 통해 이상한 '썰'을 풀어대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먼저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 말씀에도 있는 듯,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건 정말 안 좋은 습성이다.

그의 글은 상당히 사고가 건전(?)하고 독설 같기도 하지만 치우침이 없다. 특히 기독교인이 아닐 텐데도 <성경 속의 한 구절에 관한 견해>  란글에서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가 웬만한 기독교인 보다 낫다는 생각도 해 보게한다.

나는 여기까지 쓰는데도 감성보다는 이성에 입각해서 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많은 서술이 필요하다. 여간 잘 씌여진 문장이 아니면 나도 서술적 문장은 안 좋아하는 편인데, 욕하면서 닮는다고 그게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감성을 적절히 조화시키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함축적으로 글을 쓰는 법을 배워나갈텐데 아직도 나에겐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시하는 뭔가의 사고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시는 잘 안 와닿고 낙서같은 글은 좀 경히 여기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사춘기 이후 전작주의 독서는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이외수...이 사람의 책이 뭐가 있지?' 라며 알라딘에서 <제목+ 저자> 의 창에서 이외수를 치게되고 그의 책 리스트를 꿸 수가 있었다. '자, 다음엔 그의 무슨 책을 읽을까? 외뿔? 벽오금학도? 칼...?'

젠장, 하지만 지금 읽을려고 쌓아둔 책이나 우선 다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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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5-08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중 <칼>이 가장 좋더군요.
시중에는 <그 푸르른 내 나이 스무살에는> 이 좋고요.

stella.K 2004-05-0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겠습니다. 참고하죠. 감사!^^
 

가장 일본적인 영화에서 '우리'를 만나다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 부산과 서울서
‘동경이야기’ ‘부초’ 등 17편 모아 상영
‘자연 안에 존재한 인간의 미약함’ 담아



▲ 일본 최고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오즈 야스지로. 그의 작품 17편을 한데 모은 회고전이 부산과 서울에서 연이어 열린다.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이 ‘시네마테크 부산’(8일~23일)과 서울 ‘하이퍼텍나다’(28일~6월10일)에서 연이어 열린다. ‘동경 이야기’ ‘부초’ 등 모두 17편이 상영되는 이번 회고전은 일본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손꼽히는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오즈 야스지로(1903-1963)의 이름이 일본 바깥으로 본격적으로 퍼져 나간 것은 1970년대나 되어서의 일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1950년대 초반부터 이미 국제적 신망을 얻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일본의 3대 거장 가운데 하나인 오즈의 진가가 사후에나 국제적으로 드러난 것은 꽤 늦은 셈이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오즈의 영화가 서구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일본적이기 때문에, 그래서 제대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지금도 여전히 오즈라고 하면 가장 일본적인 영화감독 가운데 하나로 불린다.


▲ 동경이야기
역동적인 이야기 전개와 그에 어울리는 동적인 영화 스타일을 구사한 구로사와가 서구적인 일본 영화감독이라면, 치밀하게 균형 잡힌 형식을 빌려 작은 이야기를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준 오즈는 일본적인 일본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 사실 오즈를 두고 무턱대고 일본적이라고만 정의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여하튼 그가 영화사의 그 어떤 감독들의 것과도 구별되는 독자적이고 매혹적이며 아름다운 세계를 구축했다는 데에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오즈의 영화들을 두고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영화사에 존재하는 신성한 보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에 이어 다시 한번 그 보물들과 만날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 꽁치이야기
오즈의 세계와 마주하는 순간 아마도 우선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세계가 구성되는 독특한 방식일 것이다. 오즈는 통상적으로 눈높이라고 여겨지는 것보다 낮은 위치에다가 카메라를 배치했다. 그는 그 같은 ‘오즈의 시선’으로 시각적 아름다움과 표현의 효과가 돋보이는 구도를 만들어내고는 보는 이들을 손님으로 자신의 세계에 정중하게 초대했다. 오즈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카메라의 움직임을 비롯한 다른 수사적인 테크닉들은 거의 필요가 없었다. 그는 엄정한 시선만을 가지고서도 풍경과 표정과 감정을 스크린 위에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오즈는 금욕주의가 하나의 풍성한 영화미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또 하나의 위대한 영화감독이었던 것이다.


▲ 부초
오즈는 종종 자신을 ‘두부 장수’에 비유하곤 했다. 두부장수가 공장에서 똑같은 모양을 한 두부를 만들어 팔듯이, 자신은 동일한 형식과 이야기를 가진 영화로부터의 변주를 해가며 영화를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사실 ‘늦봄’ 이후 오즈의 영화들은 거의 바뀌지 않는 형식으로 유사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줬다. 이를테면 ‘늦봄’에서 다뤄진, 딸을 시집보내고 쓸쓸히 홀로 남게 되는 부모의 이야기는 ‘가을 햇살’과 ‘꽁치의 맛’에서 되풀이되곤 했던 것이다. 오즈의 후기 영화들은 이처럼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갈등과 문제들을 다룬 ‘홈드라마’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오즈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동경이야기’처럼 그의 홈드라마는 전통적인 가족이 막 붕괴되기 시작하던 당시의 일본사회를 반영한다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도 그것에는 부모 자식 사이의 소원해져 가는 관계나 늙어간다는 것 같이 보편적인 울림을 가진 이야기들이 절제를 지키면서도 효과적으로 담겨 있기에 그 사회 역사적 맥락을 벗어난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가 있었다. 한편으로 오즈 영화가 갖는 보편성의 근원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동경이야기’는 겉보기로는 가족상의 변화를 다룬 영화 정도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아래로는 시간과 인생이 흘러간다는 것에 대해 성찰하는 영화라는 또 다른 면모가 숨어 있다.

그처럼 오즈의 영화가 사실 다루고자 하는 것은 단지 결혼과 늙음이란 현상이 아니라 그처럼 자연의 사이클 안에 위치한 인간이란 존재의 미약함 쪽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일본적이라고 하는 오즈의 영화가 우리 같은 후세의 ‘외국인’의 마음을 여전히 깊이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닐까.

(홍성남·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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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5-07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나왔을 무렵의 인터뷰에서 오스 야스지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8월의 크리스마스도 그런 분위기라고 했었는데 볼 기회가 없었어요. 한 번 보고 싶네요.

stella.K 2004-05-07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것만큼은 볼까 합니다.
 

멋진 것도 좋지만 좀 알만하게 짓자고요~
知的약자 따돌리는 언어폭력일 수도…



“이번 정류장은 월드메리디앙, 월드메리디앙 아파트입니다. 다음은 ….” “머라하노? 월드메리 맞나?” “그런갑네예.” 친척집을 찾아온 듯한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이렇게 어림짐작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주공 2단지, 잠실 시영, 상계 8단지, 호수마을, 효자촌 같은 아파트 이름은 이제 역사 저편으로 밀려났다. 에클라트니 XI니, 암호 같고 약호 같은 요즘 아파트, 주상복합건물의 이름은 난해한 외국어 그 자체다. 집 한 채가 소망인 서민들에게뿐 아니라, 웬만한 자산가들에게도 부동산이 곧 재산이자 재테크이고, 미래 투자인 한국 현실 때문일까. 꿈이며 이데아인 아파트 이름을 누구나 쉽게 알아먹을 건설사 이름이나 무슨 무슨 마을 식의 순진한 작명법으로 짓는 것은 시대의 요구에 거스르는 태도다.

건설사 이름 대신 새로운 브랜드명이 도입된 것은 90년대 말부터. 삼성건설이 밑도 끝도 없는 한자명 ‘래미안(來·美·安)’이란 이름을 아파트에 붙인 뒤 ‘미래의 아름답고 편안한 아파트’라고 그럴듯하게 해몽한 게 인기를 끌자, 너도나도 새로운 작명법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꿈에그린, 어울림, 풍요로운, 해오름, 푸르지오 등 우리 말을 원용한 이름도 있지만, 대세는 역시 외국어. Extra Intelligent(특별한 지성)라는 뜻의 ‘자이(XI)’, ‘소유했다’는 뜻의 ‘위브(We’ve)’ 같은 이름이 뒤따랐다.

그러나 이처럼 난해하기만 한 아파트 이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싶은 범상한 인간의 소박한 꿈이 여전히 스며 있다. 아파트 이름 뒤에 붙은 빌(ville)이 그것이다. 네오빌, 수퍼빌, 그린빌, 노스빌, 쉐르빌(소중한 공간), 미켈란 쉐르빌(미켈란젤로+소중한 공간), 나띠르빌(자연의 마을), 상떼빌(건강한 마을)….

그런가 하면, 남다른 ‘호화로움’을 위세로 과시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작명도 넘쳐난다. 골든(황금)으로는 이제 성이 안 차는 마당이니, 플래티넘(백금), 하이페리온(빛의 신)을 거쳐 파크 리젠시(공원+섭정), 아크로비스타(최정상+전망), 리버아크로파크(강변의 정상 공원)로 거창하게 발전한다. 서울 도곡동의 고급 주상복합 ‘타워 팰리스’ 등장 이후 ‘팰리스(성)’자가 붙은 것이 새 유행이다. 루체 팰리스(달빛 궁전), 로열 팰리스(귀족의 성)에서 이젠 까놓고 캐슬(성)까지 등장했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알아먹는 영어 대신 프랑스어로 뭔가 조금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좇기도 한다. 르 메이에르(최고), 월드 메르디앙(세계의 자오선), 에클라트(갈채)가 좋은 예다. 비틀스가 노래했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 제목으로 쓴 ‘노르웨이의 숲’까지, 건물 이름은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한다.

이런 엄청난 아파트 작명법의 바탕에는 ‘꿈’에 대한 욕망이 있다. 채완 동덕여대 교수는 지난달 열린 한국사회언어학회와 담화인지언어학회 공동학술대회에서 30년간의 아파트 이름 작명법을 분석, “임대아파트에 비해 고급아파트일수록 현학적인 이름이 많으며, 이 경우 팰리스, 로얄, 스위트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고급 이름짓기’는 건설사의 전략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서울 반포 미도아파트는 외관을 도색하며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센트럴 빌’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이 지역 부동산중개소의 한 관계자는 “타워 팰리스 이후, 아파트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때 완전히 분위기를 바꿔 그런 이름으로 가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꿈이 현실을 배반하듯, 이름은 언제나 현실보다 앞서 간다. 10평 안팎의 아파트에 ‘맨션’이란 이름을 달았던 70년대와 20·30평 안팎의 서민 주택에 ‘팰리스’가 붙은 것은 차라리 소망의 발원(發願)이라고나 하자. 현실에서 더 큰 문제는 아파트 단지 이름이 곧 버스 정거장 이름이 되는 우리 상황에서 빚어지는 의사 소통 불능의 문제다. ‘에클라트 지나서 이니그마빌을 끼고 좌회전해서 상떼빌에서 우회전’의 우리 동네 작명법은 지적(知的) 약자를 배제 시키는 횡포다. ‘월가의 부동산’이라는 경기도 분당 신도시의 한 부동산업소 이름은 부동산을 둘러싼 욕망과 상상력의 거울이다.

(박은주기자 zeeny@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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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5-0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파트 이름이 너무 이런 식이 되니 싫던데...오히려 우스워 보여요.

비로그인 2004-05-0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아파트 이름들에 이런 뜻들이 있었군요. 정말 이름만으로 위화감 주는 집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럴거 같으니 안타깝네요...

stella.K 2004-05-0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메시지 2004-05-07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언어학 전공자의 과격한 말씀.
"그 동네 뜯어서 옮겼으면 좋겠어. 민족은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 특징인데. 자꾸 다른 말만 좋아하면 다른 민족으로 독립시켜버려. 보는 사람들 짜증만 나니까." 세대나 계층간의 언어 차이가 심해지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반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