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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평점 :
완벽한 아이
구석진 곳을 찾은 적이 있다. 구석진 곳 어딘가에 몸을 구겨 놓고 서럽게 울었던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음에, 부모님에 대한 서운함에 어딘가에 몸을 구겨 넣고 혼자 훌쩍이곤 했다. 그러다 조금 소리를 내서 훌쩍여도 보고, 시간이 지나면 구석진 곳에서 나와 조금 개방적인 곳에서 울어도 보고. 결국 내 서러움을 알아달라는 마음.
다른 형제와 차별하는 엄마가 계모 같을 때도 있었고, 엄하게 꾸중하는 아버지가 낯설 때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믿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나를 지켜줄 거야, 결국 그 모든 일이 나를 보호해 줄 거라는 믿음.
모드에겐 그런 건 없다. 세상 그 무엇보다 부모가 차갑다. 나를 죽일 수도, 나를 사지에 몰아 넣고, 나를 공포에 집어넣고 자근자근 씹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부모다.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완벽한 아이를 키우겠다는 아버지의 발상 자체부터가 미친 짓이다. 본인의 망상에 돈까지 있으니, 아이는 다치고 째지고 죽음의 공포 속에 한없이 고문 받는다.
정작 세상에서 지켜주겠다던 부모는, 바로 눈앞의 성폭력에도 눈 감는다.
어머니 또한 피해자다. 어린 시절 아마도 얼마간의 돈거래 끝에 팔려오지 않았을까.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철저히 키워졌다. 아마 어머니 또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아버지가 미우면서도, 그 미움에 대한 죄책감까지 어깨에 짊어지고, 거기다 사랑에 대한 갈구와 모드에 대한 질투. 그 엉킨 마음들을 어머니는 어떻게 끄집어내고 풀어내야 할지 모른다. 똑같이 구는 것, 어머니도 아버지가 두렵다. 증오하지만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어머니는 공범자가 된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여섯 살, 어머니는 여전히 여섯 살,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여섯 살이다.
그렇지만 모드는 성장한다. 그런 지옥 같은 곳에서도 꿈을 꾼다. 꿈을 꾸고 글을 쓰고, 악기를 연주한다. 모드를 견디게 한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을 준 강아지 린다와 늙은 말 아르튀르와 오리 피투. 그리고 모드를 품어 주고 사랑을 주고받은 동물들과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다.
별거 없다. 맛있는 걸 먹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간혹 상처도 받지만 돌아올 곳 집이 있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살아간다. 어린 시절 보호받았던 기억들, 행복했던 그 시절이 나이 들어 지치고 힘들 때 안식처가 되어준다. 그런 추억들과 사랑이 없다면 어른이 된 후의 삶은 참 힘들지 않을까. 모드에겐 돌아 갈 곳도, 마음의 안식처도 없다. 지옥에서 빠져 나온 것. 세상이 아무리 차갑고 냉혹해도 내 부모만큼이지 않을 것. 돌아갈 곳도 치유할 만한 추억도 없는 모드를 지켜준 건 동물들과 낯선 이들의 선함이다.
“인간은 더 없이 사악하고, 세상은 더 없이 위험하다”라며 철책을 두르고 아내와 모드를 가둔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모드에게 사악하고 위험한 존재다. 그런 아버지에게 첫 번째로 사육당한 어머니는 모드와 연대하며 탈출하기 보단, 아버지의 공범자가 된다.
지옥같은 나치 수용소에 대한 기록이나 소설들이 많다.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모드처럼 훈련을 받고 세상에 무심한 듯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행동했던 이들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사람다우려 노력했고, 마지막까지 가족과 삶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고, 무수한 아름다음 추억들을 붙잡아 잠들고 꿈꿨다. 그렇게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의 하루 하루를 이겨냈다.
반대로 모드는 그 지옥같은 집에서 탈출하며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아가며, 그 밝음으로 과거의 어린 시절 상처를 치유하는 중이다. 여전히 시간에 맞춰 벌떡 일어나고,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을 꾸지만, 타인들을 치유하고 같이 공감하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중. 모드의 영혼은 누군가의 글귀처럼 강철날개를 가지고 날아가고 있다.
(작가분은 1957년생 붉은닭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