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견만리 : 미래의 기회 편 - 윤리, 기술, 중국, 교육 편 명견만리 시리즈
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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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견만리(明見萬里), ‘뛰어난 통찰력으로 미래의 일을 환하게 살펴서 알고 있다라는 사자성어를 주제로 다양한 강의를 진행하는 KBS프로그램이다. 그 중에 미래의 기회라는 테마를 가진 윤리, 기술, 중국, 교육편이 나왔는데, 1편에 이어서 정말 유익한 책이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김영란법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가끔 친구들이랑 김영란법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자기 밥을 자기 돈으로 사먹는 것이 그렇게 낯선 일인가라는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만큼 김영란법이 적용된 후의 격렬한 반응과 부정적인 예측이 놀랍기 때문이다. 각국의 부패인식지수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경제규모는 선진국에 가까운 것에 비해, 부패지수는 개도국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또한 엘리트카르텔유형에 속하는 국가로 분류되며, ‘여전히 공공분야의 부패가 일반적인 국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요즘의 상황을 보면 과연 엘리트카르텔수준인가 싶을 정도로, 황당한 기사들이 쏟아지곤 한다. 과도한 기업의 접대비나 뇌물을 통해 일을 해결하는 것이 당연시 하다 보면, 거기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이 법이 통과되면 경제적으로 손실이 날 것이라는 예측도 쏟아졌는데, 비슷한 수준의 규제를 하고 있는 미국, 일본 등의 나라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인가 하는 아주 1차원적인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차라리 이런 법으로 사회구성원 사이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더욱 밝아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나라가 거기에 대한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1990년대 태어난 중국의 청년을 일컷는 주링허우세대들이 새로운 창업을 위해 도전할 수 있게 해주는 중국정부의 투자와 지원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를 위해 일본의 사토리세대와 비슷한 ‘N포세대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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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당 정인보 평전 - 조선의 얼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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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잊혀진 아니 지워진 독립운동가들이 영화에 등장하고, 그들의 생애를 책으로도 만날 수 있는 세상이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만나게 된 위당 정인보’, 그의 호가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검색을 하다 보니, 대학을 다닐 때 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연세대에서 10년이 넘게 후학을 길러낸 교육자이기도 했고, 연세대에서는 민족사관 정립과 국학 진흥에 헌신한 선생을 기리기 위해위당관을 지정했던 것이다. ‘국학이라는 용어도 그가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국사와 국문학을 연구하는데 앞장서 조선의 역사와 조선의 얼이 그대로 사라지지 않도록 했던 분이기도 했다.

아주 가깝게는 어린 시절 배웠던 지금도 가사를 기억하는 ‘3.1절 노래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마땅한 분인데, 6.25때 피랍되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현대사연구가 및 정치평론가인 김상웅의 <위당 정인보>는 솔직히 쉬운 책은 아니다. 아무래도 독립운동가이자 최후의 양명학자였던 정인보의 삶을 그려내다 보니, 그의 글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부분이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이번 일이 다만 일시적으로 공의 묘소와 위토의 경매를 면하는 일이어서는 아니 된다. 이를 기회로 이순신의 무덤과 유적을 보존하는 일을 그의 종손에게서 떼어서 전 민족적인 어느 기관이 맡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산 경매문제에 붙여 쓴 글의 일부이다. 그는 충무공의 묘산이 은행으로 넘어가게 된 것을 알고 시론을 발표하여 민중들의 자발적인 모금 운동을 일으켰다. 그 글의 말미를 읽으며 그가 갖고 있는 혜안을 엿볼 수 있었다. 잠시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훼손된 역사가 아닌 조선의 역사와 얼을 그대로 전해주기 위해 정말 끊임없이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의 평전에 조선의 얼이라는 부제가 붙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앞으로도 잊혀져가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평전이 더욱 많이 나왔으면 한다. 칼보다 강한 붓으로 위당 정인보가 지키고자 했던 민족의 얼을 계속 지켜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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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체슬리 설렌버거.제프리 재슬로 지음, 신혜연 옮김 / 인간희극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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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개봉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본 한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은 ‘416 세월호 참사이다.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그 사건은 2009 1 15일에 일어났다.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한 직후 새떼와 충돌하는 버드 스트라이크를 겪은 여객기가 한 겨울의 허드슨 강에 불시착을 한 것이다. 이때 전투기 조종사 때부터 사용해온 호출명이자 애칭인 설리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은 초유의 불시착을 결정하는 것부터 구조활동까지 모든 것을 앞장서서 지휘했다. 155명 전원 생존이라는 기적을 이끌어내며, 미국사회에서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모두가 함께 했고 모두 살았다라며 자신 역시 그 155명 중에 한 명이었다고 말한다. 여러모로 대비가 많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날 그 1549편 여객기의 조종실 안에는 나와 제프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게 가르침을 주고 응원해주고 내 안의 가능성을 알아봐준 모든 멘토와 영웅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중략) 나는 그날 허드슨 강으로의 여정이 라과디아 공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수십 년 전 내 어린 시절의 집과 쿡 씨의 푸른 비행장, 텍사스 북부의 하늘, 지금 내가 아내 로리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집, 그리고 지금까지 지평선을 향해 몰았던 모든 비행기들 안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39p)

그 영화의 원작인 이 책은 체슬린 설렌버거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영웅적인 한 사람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길 원하지 않는 듯 하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직업인으로서의 지식과 직업인으로서의 윤리가 아닐까 한다. 처음에는 왜 이런 사람이 없었을까라는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사람이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올 수 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영웅을 기다린다. 물론 영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을 조금 더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영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닐까 한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이 축적되어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말이다. 처음에는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기적적인 사건이 궁금했지만, 책을 읽을수록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기적은 그저 바라기만 한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적 역시 준비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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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
데이비드 밴 지음, 조연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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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길 바란단다. (중략) 우리 삶은 단 한 번뿐이야. 그래서 용서받길 바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는 거야. (181p)

자신이 바라는 것을 상대에게 말하는 것, 이루어지라고 계속 그렇게 말하고 결국 이루어내는 것, 과연 그것에 용서가 들어가도 될까? 데이비드 밴의 <아쿠아리움>을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 국제 축제에 참석차 방한했던 작가와의 서면인터뷰 글을 읽다 보니, “내 소설 중 비극이 아닌 작품은 처음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나는 그의 작품을 처음 읽는 것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이 이야기가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이런 것이 우리가 용서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모두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현재에 받아들이고 또 인식하면서 끌어안는 것, 천천히 내려놓는 것 말이다.(337p)

사실 나는 용서는 노력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문장이 그렇게 내 마음을 흔든 것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끌어안고, 내려놓아야 하는 것, 그런 것이 용서와 닮아 있는 감정일 것이다. 시간을 강물의 흐름에 비유하듯이, 인생 역시 아무리 거친 바위가 나를 할퀴어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물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그 곳에 던져두고 온 감정을 돌아봐야 했던 케이틀린의 엄마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열두 살, 마냥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소녀, 케이틀린이 20년이 흐른 후에 그 시절을 회상하는 식의 글임에도 그녀의 어머니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이 비극적으로 다가온 것일까?

그 유리 안쪽에서 녀석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우리를 보았을까? 아니면 그저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을? 거울로 만든 집처럼?(14p)

케이틀린은 엄마가 데리러 오기 전까지의 시간을 아쿠아리움에서 보낸다. 그녀에게 아쿠아리움은 하나의 세상이고, 또 그녀의 꿈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어류학자가 되어 수조가 아닌 바다로 떠나고 싶어하는 케이틀린에게 한 노인이 다가온다. 물고기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물고기에 자신을 투영하곤 한다. 어쩌면 그러한 교감이 있었고,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는 것에 외로움을 느끼던 케이틀린에게 외할아버지의 존재는 너무나 반가울 것이다. 문제는 엄마이다. 외할아버지는 엄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떠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케이틀린과 엄마가 갈등을 할 때마다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어쩌면 케이틀린의 생각과 달리 아쿠아리움은 물고기에게 지극히 안전한 곳일지도 모른다.

왜 굳이 바다로 나가야 할까? 왜 굳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고집스럽게 여러 가지 의문을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가족을 통해 이야기하는 상처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 올해 읽은 소설 중에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다만 그러한 감동과 아름다움에 빠지기 싫다고 투정하고 있는 나의 오기가 용렬해 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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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인간학 - 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이지수 옮김, 이진우 감수 / 다산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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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안티가 하는 일이라는 그래프를 본 적이 있다. 알아야 깔 수 있기 때문에, 안티는 팬이 하는 일과 90%정도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 그래프가 생각난 이유는 <니체의 인간학>이 저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니체를 정말로 싫어하는 일본의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부제인 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는 결국 저자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칸트 전문가인 그는 니체에 열광하는 일본의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니체를 공부했다. 그리고 착한 사람만큼 못된 사람은 없다라는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현대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유약함과 무기력함을 비판하기 위해 니체를 끌고 온 것이다. 사실 나는 칸트도 좋고, 니체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실존주의의 선구적 사상가인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이 어렵게 느껴져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물론 비판적인 시각이지만, 니체의 사상을 상당히 즉물적으로 풀어낸 책이 아닌가 한다. 도리어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할까?

물론 읽기 편한 책은 아니지만, 착한 사람에 대한 그의 비판은 어느 정도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더독 효과 [Underdog effect]라는 것이 있다. 대중이 약자라고 생각하는 대상을 응원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책을 읽으며 그 것이 많이 떠올랐다. 그저 약자로 보인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현상 아닌가. 사람들이 약자를 응원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약함과 결합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카지마 요시미치의 주장에 비추어 생각해보자면, 사람들은 결국 약함을 추구하고 약한 것에 동화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무한경쟁사회라고도 하고,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세상에서 참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사실 만만하게 읽을만한 책은 아니다. 도리어 감수의 글에 더욱 공감할 때가 많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위대한 철학가라는 이유로 그들의 생각이 진리가 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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