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엽은 그렇게 오래된 찻집은 아니었다. 시골에서 기본 20년 넘게 살아야 겨우 좀 살았군. 이라는 평판을 듣는 곳에서 죽일엽은 이제 겨우 발디딤을 시작한 아기였다.

이제 5년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치열한 질투와 질시를 이겨내기에는 죽일엽의 형편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죽일엽이 방송에 소개되고, 인근 입소문으로 흥해갈 기미가 보이자, 근처 농민들이 죽일엽이 하는 곳의 길을 막았다. 그리고 등록할 때도 일부러 빠지게 하거나 조합원으로 일할 때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이곳이 죽일엽입니다.”

 

다른 의원의 보좌관에서 병률의 보좌관이 된 젊은이가 불퉁한 어조로 말했다.

 

주인장을 만나야되지 않을까?”

 

병률의 말에 그는 심통맞은 얼굴로 대꾸했다.

 

만나서 뭐 하실 이야기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

 

잊지 마십시오. 당신은 아직 의원이 아닙니다.”

 

“......”

 

병률이 비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이지. 무슨 의도로 이곳에 보내셨는지 잘 알고 있어.”

사모님은요.”

 

죽일엽에 손님으로 들어가 있다는군. 10분 기다리면 오겠지.”

 

“...발악하는 주인장이랑 만날까봐 걱정되네요.”

 

죽일엽의 분위기는 침통했다. 오는 길, 가는 길을 다 막아버린 탓에 손님들이 잘 오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살려보겠다고 높은 분 사모님들이 움직이기도 했지만, 그저 요행히 비장의 차로 남겨둔 걸 탐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분위기다보니 늘 차맛에만 신경쓰다가 당한 일이라며 울화를 터뜨리는 남편도 걱정거리였다.

잘 마셨습니다.”

 

윤희는 그렇게 말하고 다구를 내려놓았다. 비록 제대로 된 교양있는 부인은 아니었지만 차를 마시고 난 후의 얼굴을 보면 그 모든 품위가 남겨 있는 것 같았다.

 

“......”

 

일어났을 때 순간 길준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양복이 늘 어색하던 그 길준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그녀가 아는 길준은...!

 

이 돈 받으시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시는 겁니다.”

 

결국 쫓겨나는 게 우리 신세군. 차농사만 열심히 지었는데...”

 

아니오.”

 

길준이(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천천히 말했다.

 

여기서 더 확장을 하시는 겁니다. 조금만 터를 옆으로 옮기면 되지요.”

 

“...길을 막고 있는 건 어떡하고.”

 

그 길도 걱정안하셔도 됩니다. 자기네들 길일때만 그렇죠.”

 

근데 이 돈은 왜...”

 

, 제가 사업을 좀 하려고 합니다.”

 

윤희는 그를 부르려다가 멈칫했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정신병원으로 들어간 후,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도주.

그 이후에 종적이 묘연했던 그가 사업가로 움직인다? 그것도 친한 친구인 병률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뭔가가 있었다.

 

차를 이용한 과자나 젤리같은 걸 만들어보려고요.”

 

“......”

 

그리고 두 사람이 자리를 옮겼다. 윤희는 더 이상 그들의 말을 듣지 못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윤희는 계산을 마치고 출입구로 나왔다.

남편과 보좌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남편은 아마 길준과 같은 편은 아니리라...그리고 남편에게 길준을 보았다는 말도 못하리라...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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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는 그러니까, 진짜 이준구가 아니라 가짜 이준구는(이제부터는 이준구라 칭한다.)그 동네에서 엄청난 재산가의 아들로 행동하면서 여러 모임에 다니기 시작했다.

죽일엽이라는 찻집도 알아두었고, 웬만한 토호들의 아내들의 얼굴도 잘 익혀 놓았다.

그중 절정이라면, 국회의장급이 되는 연줄을 만난 것이리라.

시골에도 정치적인 끈은 무서운 데가 있었다.

 

내가 모는 차는 그저 그런 쿠페나 폭스바겐같은 질 낮은 중고가 아니랍니다.”

 

전직 골프 선수였다는 그녀의 말에 주변 시골 부인들은 좀 아니꼽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시대가 변한 만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을리 만무했다.

 

폭스바겐도, 쿠페도 문제라면...”

 

이준구에게는 처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모임에서는 여자들의 중심에 파고들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그들 중에는 이준구나 지윤을 기독교에 끌어들이려는 출중한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윤이 카톨릭 신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모임을 만들어 지윤을 나오게 했다.

 

여자들의 종교열정에는 가끔 그 불행한 결혼생활을 종교로 메꾸려는 부족함이 있었다.

 

엠브로시옹사의 블러디 메리가 내 품격을 살려주죠. 블러디 메리...아쉬운게 있다면 블러디 메리보다 일찍 단종된 블러디 나잇이라는 차가 있다는 거에요. 이렇게 영어로 말하면 감이 안 잡히는데 원어로 읽으면 그 발음이...정말 훌륭해요.”

 

발음 자랑인것인지, 차 자랑인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때 이준구가 한발 나섰다.

 

엥브로시옹사의 차라면 저도 한 대 갖고 있지요.”

 

“......”

 

그의 말에 흥미진진한 시선들이 그에게 향했다.

 

설마 그 말은...”

 

에이. 설마. 블러디 나잇이겠어요?”

 

그럼. 폭스바겐이나 쿠페쯤이야라고 말한 사모님도 보통은 아닌데, 그 이상 나오기 힘들지 않겠어요. 아마 블러디 메리쯤...”

 

잠깐 바깥을 보실까요?”

 

그는 창을 가린 커튼을 한 손으로 걷었다. 촤악. 하고 펼쳐진 창문 밑에는 1층 저 밑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운전사와 엥브로시옹사의 최고작 블러디 데이가 서 있었다. 물론 이 정도로만 해서야 상대에게 큰 한방을 먹일 수야 없었다.

그래서 이준구는 탈레랑의 방법을 썼다.

 

...저건.”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 실례. 태워드리고 싶지만...”

 

사장님!”

 

?”

 

숨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사모가 이준구의 고급 양복자락을 부여잡았다.

 

엥브로시엥사에서 절대로 다시 내놓지 않는다던 저 블러디데이...아무리 봐도 저건 중고가 아니에요. 도대체 어떻게...”

 

...”

 

이준구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제게는 쉽게 내주더군요. 아마도 각 국내외 인사들과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사모님께서는 더 이상 죽일엽 문제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으신 것 같으니 이만 모임을 파해도 괜찮겠죠? 사모님은 저기 육동리에 사신다고 하셨으니...좀 있다가 제 차를 구경한 후에 천천히 가시죠. 차를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까.마침 블러디 나잇이 아래에 있으니까요.”

 

전 괜찮아요. 그걸 한번만 잠시 착석만 해봐도...”

 

아니, 기왕 이렇게 된김에...”

 

이준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꺼내서 기사를 불렀다.

 

불렀으니 곧 타실 수 있을 겝니다.”

 

그렇게 죽일엽, 크리스천 개종 운동 모임이 끝났을 때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 차가 그렇게 됐다고? 정비를 잘못한 자네 잘못 아닌가. 상관없어. 블러디 데이로 태워드리면 되니까.”

 

그때 그리고 비친 창문으로 블러디 데이가 한 대 더 들어왔다.

강렬하진 않지만 은은한 빛을 발하는 블러디 데이는 몸체도 우아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우아함속에는 사고난 차량을 예리하게 뚫고 지나갈 정도의 강함도 숨겨져 잇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이준구가 말했다.

 

아까전에 제 기사가 들어오다가 잠깐 실수했다고 하더군요. 사모님의 차량이 전조등이 좀 깨진 것 같습니다.”

 

...”

 

눈앞에 있는 블러디 데이에 눈이 나가버린 사모는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요. 저런 차를 운전하는 기사가 실수할 리가...”

사모는 자신의 기사를 생각했다. 그다지 신통치 않다고 생각해왔기에 이번 기회에 잘라버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네에?”

 

블러디 데이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아주 잘 어울리는 리본도 매어다가요. 하하하하.”

 

, 정말요...”

 

농담은 농담이었지만, 얼마 뒤 그 사모는 자신의 앞으로 그 차를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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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나 나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그를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오. 황비?”

 

황제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아마 고문을 읽고 있었던 모양이다.

두툼한 소가죽이 죽간을 묶고 있는 옛 고서...

 

최근 있었던 왕국의 숭문관 탈주 사건 때문에...”

 

왕국에서 숭문관에 근무하던 죄수가 탈옥했다. 왕국의 왕비의 말에 의하면 숭문관은 본래 금강석으로 만든 가는 줄을 여러개 쳐놓기 때문에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안에서 안으로 이동하는 것은 가능하고-그것 또한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하지만.-특히 무공에 익숙한 자라면 가능하다고 했다.(그러나 이 경우에도 외부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 그거라면 들어 알고 있소,”

 

폐하. 패관들이 벌이는 행태가...”

 

당신은 그 패관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있는거요.”

 

황제는 말을 뚝 끊어버리고 다시 책에 집중했다.

 

폐하. 하지만 패관들의 행동이 너무 자유로워서, 그 권한을 남용하는 일이 잦습니다.”

 

“...황비.”

 

황제는 그제서야 책을 덮고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저번에 두던 오목을 마저 두려오?”

 

“......”

 

황제가 이렇게 나올때는 천천히 생각해보자는 뜻이 담겨 있다. 나는 옷을 단정히 하고 그의 맞은 편에 앉아 백알과 흑알, 바둑판을 꺼냈다. 황제와 나는 바둑을 뜰 줄 몰랐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궁에서 살면서 너무 바빠 바둑을 배울 틈이 없었고, 황제는 잡기에 신경쓸 시간이 없다고 바둑 기사들을 궁에서 몰아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둘은 직위에 맞지 않게 오목밖에는 둘 줄 몰랐다.

 

당신이...”

 

흰알을 골라서 천원지점에 둔 황제가 말했다.

 

왜 패관들을 그리 싫어하는지 모르겠소. 탈옥사건이 있기 전에도 내게 패관들의 수를 줄이자고 한 적 있지 않았소.”

 

폐하. 패설사관이 이번에 무장 하나를 데리고 나갔다가 거의 시체가 된 걸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까?”

 

무장의 말들을 들어보면 그자는 원래 그랬다고 하오. 그런 자를 데리고 나가서 반란을 제압하는데 성공까지 했으니 그만하면 되지 않았소. 나는 그자에게 유배형과 근신형을 내렸으니 그만하면 되었소.”

 

“......”

 

나는 오목이 되도록 쉽게 끝이 나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천천히 두었다. 어차피 시간 제한도 없으니 느리게 둘수록 황제의 시간은 내 것이 된다.

 

패관을 둔 것은 애초에 백성들의 말을 제대로 듣기 위함이요. 반란을 위한 패설이나, 참요같은 것도 무조건 억압하기 보다는 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 패관들은 바로 그러한 것들을 수집하기 위해 있는 것인데 그대는 지나치게 싫어하는 것 같소.”

 

황제는 모른다. 그 패설 하나하나에는 피가 맺혀 있다는 것을.

내가 황비가 된다는 예언 하나 때문에 일가가 다 몰살당한 적이 있다는 것을 황제는 모르고 있었다. 그 참요가 퍼졌던 걸 들었던 패관 하나가 입을 잘못 놀려 권세가의 가문에서 우리 집안을 다 몰살시켰던 것을. 후에 듣기로 그 뒤에 있던 것이 그 당시 황제가 되기 전의 황자였다는 말을 들었다.

아아, 황제는 몰라도 좋았다. 내가 당신에게 품는 감정이 무엇인지.

 

폐하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 당시 패관이 채미홍. 미축의 스승이 된다고 하던가...

처음에는 미축을 사랑하였다. 정원에서 검을 놀리던 모습, 그저 꿈의 공간처럼 여겨졌던 무림에서 왔던 그를. 하지만 그의 눈안에 있는 것은 자무홍꽃 아래 잠든 자신의 연인일뿐.

채미홍과 그의 관계를 알게 된 후로 그를 증오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아들과 나를 감싸던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증오하게 되었다.

 

그대가 황비가 된 것은 그 참요덕이 아니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을 순간 황제가 넘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참요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대를 황비로 삼지 않았을 것이오. 수많은 비빈들이 있는데 어째서 그대를 선택했는지 생각해 보기 바라오.”

 

나는 황제를 사랑할 수도 있었다. 황제도 나를 사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둘의 사이에는 강이 하나 있었다. 결코 건널 수 없는 원한이라는 강이.

그는 모른다. 내가 그를 죽이고 무엇을 건설하려 하는지.

나도 모른다. 그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나를 어째서 황비에 까지 올렸는지.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것이다.

 

폐하 제가 이겼습니다.”

 

언젠가 나는 황제를 앞에 두고 말하리라. 내가 당신에게 복수를 했다고. 나의 대리자 제 6황자로 당신에게 복수했다고.

그리고 나는 그의 씨들을 다 죽여버린 후 황제가 되리라.

참요에 있던 그대로, 황비가 황제가 되었네. 그 참요대로.

그러기에 그 전에 미리 그 수를 읽을 패관들을 모조리 몰살하리라.

오목에서 이겼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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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턴데이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더 쌓여가는 책들...

그렇습니다. 또 지른 겁니다.T.T

이번에는 안나 카레니나 상  중 하...

딱히 문학동네에 애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민음사판은 저한테는 번역이 세게 느껴집니다.

하긴 안나 카레니나에 첫 도전한 판본도 문학동네판이었죠..

그때 3권만 읽고서는 생각보다 접근이 쉽다고는 생각했지만 딱히 상중 권을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만,사놓은 영화를 보니 괜찮지 않을까 싶어 다시 시작했습니다.

1년만의 재후죠. 후후.

1권의 안나 카레니나와 3권의 카레니나가 이미지가 정 반대가 되어서 저한테는 약간 충격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애정으로 시들어가는 모습이라니...

브론스키는 생각보다는 건실한 모습이었습니다. 남자들은 그 충격속에서도 잘 견디더군요.

특히나 카레닌.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딱 2권인데, 악이라도 쓸 줄 알았더니 점잖게 할말 다 하고 앉아서 인문학서적을 읽습니다. 오오, 생각보다 강적이십니다...

아무래도 여자 심리를 잘 쓴다고는 하지만,  남자 작가가 쓴 것이라서 그런가. 남자들의 이미지는 그렇게 극단적인 시련에 얽매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레빈은 다소 성자같은 이미지긴 하지요..

2권을 제외하고는 두 권은 이미 읽었으니, 과연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는 천천히 보면 되겠죠.

훌륭한 소설가는 거꾸로 읽어도 재미있는 소설을 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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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지 않겠다고 말했다.

더 이상 고민하지도 않겠다고 말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니까.

하지만 도움 받을 수 있다면 받겠다고 나는 말했다.

어느 누구도 내게 고개 젓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어떤 사람은 긍정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받아들인다는 얼굴로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나이 서른에 최초로 얻은 긍정이었다.

부모를 떠나서 처음으로 얻는 자유였다,

꿈은 항상 꿈꾼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찾으려 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서른 살에 배웠다,

 

 

 

아는 동생을 며칠 전에 만났다.

내 나이를 다시 살아가는 그 아이는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답을 내린 그 시기에 그 아이는 도로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 누가 맞는 답을 내린 건지는 모른다.

너무 일찍 답을 내었던가. 나는 나도 모르게 읊조리곤 한다.

어느 한 곳의 부품으로 부지런히 돌아가는 나에게 그 아이는 묻는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편안한 얼굴로 체념할 수 있느냐고.

내가 가진 무엇이 다른 사람에게는 실패나, 체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서른 다섯에 새로 배웠다.

 

 

 

나이 사십이 되면 또 무엇인가를 배울 것인가.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답을 해주고 싶지만,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열병에 정의를 내리고 약을 처방해 줄 수 없다.

그 상처가 곪고 진물과 고름이 흘러내려도 어느 누구도 답을 해줄 수 없다. 설마 직장이 없다고 해서 하늘에서, 아니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서 실업율을 떨어뜨리겠다고 정부에서 직업을 안겨줘도.

어느 누구도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는 내게 걸맞지 않는 직장이라고 할테고, 어느 누군가는 과분한 자리라고 할 것이다.

아니, 혈투를 벌여가면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고 해도 스스로에게 긍정하기란 참 힘든 일일 것이다.

답을 내려주는 것은 나이니까.

내가 서른에 답을 내렸고, 사십에 그걸 뒤집어 다시 답을 만들어내고. 오십에 또 새로운 답을 내리고 그리고 서서히 시들어갈 때라도. 만들어가는 답은 내게 소중하다.

적어도 그 답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한 나는 인생을 증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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