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는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조금이지만 보람을 느꼈다. 결국 이렇게 되어 버린 거 상황을 즐기자고 만든 마음이었지만 그게 진심이 되었다.

 

병률씨.”

그녀는 아까전부터 멍하니 해바라기꽃을 보고 있는 병률을 불렀다.

 

“...으응?”

 

주목의 대상이 갑자기 되었기 때문에 m의장이 언론을 피하고, 그동안 평범한 선인이라는 걸 어필하라면서 지정해 준 고아원이었다. 근데 우습게도 당사자인 병률은 바깥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거나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당신 정말 출마할거야?”

 

“......”

 

지금이라도 포기하면 안돼?”

 

“...? 당신은 싫어?”

 

우리한텐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윤희는 되도록 강조점을 우리에 두었다.

 

처음부터 어울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병률은 윤희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우린, 좀 더 나은 인생을 살게 될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난 말이야. 당신이 경찰일때도 이런 걱정 해 본적 없어. 그리고 난 당신이 경찰이었을때가 더 나은 인생이었던 것 같아. ”

 

병률은 아내의 손을 꽉 잡았다.

 

내가 약속할게. 우린 좀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야.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

 

그럼 한가지만 더 약속해 줄래?”

 

?”

 

병률이 예전같은 미소는 아니었지만 환하게 미소를 짓는 게 좋았다. 윤희는 그 웃음이 좋았다.

 

당신 출마했다가 떨어지면 우리, 이런 시설같은데 들어가서 애들을 보는 거야. 우리 둘은 아이가 없으니까 그래도 될 것 같지 않아?”

 

으음..”

 

병률은 말인지 신음인지 모를 말을 흘리고는 다시 해바라기꽃에 눈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몇시간 뒤 두 사람은 m모 의장의 부름으로 고아원에서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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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지방에는 검무를 추는 기생이 신으로 추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녀가 무장도 아니고 일개 기생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그들 지방에는 예전 대대로 뛰어난 무장들이 신으로 추앙을 받아왔지만 이런 일은 드문 일이었다. 워낙 드문 일이라 월지방을 맡은 패관은 이런 말까지 할 정도였다.

 

앞으로는 개미가 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생이 검무를 잘춰서 신이 되는 세상이니까요.”

 

물론 대부분의 패관들이 인정하다시피 수도 대와 황제국의 모든 땅들은 황제를 살아있는 최고의 신으로 인정했다. 그런데도 월지방은 수많은 신들 중의 한명으로 황제는 아니더라도 무장급도 아닌 일개 기생을 신으로 삼음으로서 황제를 능멸한 것이었다.

 

기생이 신이면 어떻습니까?”

 

평복을 입고 찾아간 객주에서 들은 말이었다.

 

모든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는 세상은 행복한 것입니다.”

 

나는 어느 상인의 말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월지방에는 위와 같은 반역의 기가 충천해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랑안 지방의 사고와 같은 철을 해 놓기는 했으나 마음이 답답해져왔다.

과연 모든 이가 신이 되는 사회가 행복한 것일까?

물론 황제가 최고의 살아있는 신이라서 세상이 그렇게 행복한 것같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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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면 꽃이 피어난다.

나무에서 꽃이 피면 신랑 신부는 자리를 떠나 긴 여행을 떠난다.

그것을 신혼여행이라 부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은 성인식의 일종이다.

그들은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 긴 모험을 떠난다.

남자는 긴 칼을, 여자는 석궁을 들고 여행을 떠나

긴 여행동안 자신들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제압하고, 혹은 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꽃이 피어날 때쯤 되면 신랑과 신부는 돌아온다.

전리품, 혹은 부상과 함께.

그리고 돌아와 다시 서로 맞절을 한다. 그리고 꽃이 피어난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두 사람이 진정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꽃한송이를 신랑과 신부의 머리에 나눠서 꽂아준다.

그것이 이땅의 한 소수민족의 이야기이다.

나는 꽃 한송이 꽂아줄 여인도 없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항상 많은 민족들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구석이 있다. 이젠 꽃을 꽂아주는 풍습도 여러군데로 퍼져서 어느 민족이 첫 시작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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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한다. 그 옆에 누가 있어도 상관없다. 상어가 같이 달린다. 복숭아가 같이 달린다. 심지어 좀비가 같이 달린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때로는 붉은 어릿광대가 제 머리를 축구공 차듯이 차도 무슨 상관인가. 내가 내 삶의 순간을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달리기는 어느 시간이라도 상관없다. 아침이라도, 점심이라도. 심지어 맥도널드 햄버거를 들고 달린다고 해도. 소스를 질질 흘리면서 달린다고 해도. 저녁에 먹은 스테이크를 같이 먹은 맥주와 함께 게워내고 달린다고 해도.

해는 항상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 동쪽에서 달려 서쪽에서 마라톤을 끝낸다고 해도.

서쪽에서 달려 중간에 쥐가 나서 멈춘다 해도. 내가 달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당신은 달리기를 좋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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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이제 다깼는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미축의 얼굴이 보였다. 근심이라기엔 다소 밝은 그 얼굴에 잠시 궁금증이 생겼다.

 

대리는?”

 

대리답게 자네를 잘 짊어지고 왔더군. 그리고 이것도.”

 

미축이 두루마기 하나를 펼쳐보였다.

 

자네가 잃어버린 것이라고 그 친구가 말한 것인데, 그 독을 먹은 건 이야기 안하더군.”

 

?”

 

그 얼굴의 비밀이 잠시 풀렸다.

 

그 독을 먹인 것만으로도 자넨 패설사관직을 내놓아야 했었네만은...”

 

잠깐. 올해 황산 안 갔었나?”

 

그게 중요한가? 왕국의 패설사관이여.”

 

갑자기 격을 붙여 이야기하는 통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화미인의 초상화네. 자네의 그 유치한 계획을 패설사관부에서 알고 있었다네. 하지만 자네는 왕국의 패설사관을 할 정도로 유능한 자. 그래서 덫을 친거라더군.”

 

내가 급하게 두루마기를 풀자 그 안에서 눈부시게 아름답지 않은 화미인의 초상이 나타났다.

여기저기 기워진 자국이 있고, 낙서도 되어 있는 그 그림은 누가봐도 화미인의 것이 아니라고 할 터였다. 하지만...

 

진품이로군.”

 

궁중에 있던 물건이니까.”

 

미축은 가만히 앉아서 내 얼굴을 살폈다.

 

전에 듣자하니 왕실 패설사관에게 자리를 물려받을 때 꼭 패설사관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었지...근데 이 꼴인가. 고급 관리가 도둑질이라니...”

 

그게 도둑질이라고? 우라질! 황금만 썩어빠지게 있는 자들이 가끔 놀이삼아 찾는 귀한 유물들을 내가 미리 찾아서 간수하는게 뭐가 나쁘다는 건가. 내가 패설사관이 된 이유가 너같은 놈하고 똑같을 리가 없지. 그 이유는 너같은 흔한 사내가 알만한 이유가 아냐.”

 

그럴 줄 알았지.”

 

패설사관 미축은 혀를 쯧 찼다.

 

화미인 초상화는 결국 잃어버린 게 아니었군.”

 

잃어버릴 리 있나. 황제국의 조상 중 한명인데. 소금기둥 이야기는, 지배자의 쉬운 굴종에 의해서 노예가 된 자들이 꾸며낸 이야기지.”

 

근데 그 초상화 잘도 반출시켰군. 일어경에서 나온 말도 짜깁기 한건가. 흔한 사내라는 말 취소하네. 흔하진 않군.”

 

칭찬이 과분하군. 난 아니니까 칭찬할 필욘 없네.”

 

근데 황제국의 조상이라니...왕실 패설사관부에는 없는 도서인데...”

 

이야기는 벌써 붉은 까마귀에게 들었을텐데...”

 

미축이 말을 흐렸다.

 

“...자네도 붉은 까마귀를 아나?”

 

자네가 도적떼를 끌고 다녔던 건 적오에게 들었네. 적오도 이름자를 풀이하면 붉은 까마귀지. 적오가 적당히 손을 써서 도적떼들을 합당한 처분을 해놓았다고 하더군.”

 

그건 요물이잖나. 항상 붙잡고 벌을 주고, 도움은 안 받는다고 하지 않았나! 비겁하게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지 않고 요물의 힘을 빌리다니!”

자네덕분에 고향을 찾게 되었다더구만.”

 

적오 이야기를 살짝 매듭지으면서 미축은 미소를 지었다.

 

요물이지만, 자네같은 지능범을 잡을 때는 도움도 받아야지. 더더군다나 자네를 잡은 건 적오가 아니니까.”

 

뭐라고!”

 

적오는 그녀처럼 나이가 많지 않다네. 아마 어미를 찾게 된 모양이야.”

 

“.....”

 

흐뭇해하는군. 황산에 가지도 않고, 그 요물년에게 단단히 홀린 모양이지.”

 

“...뭐라 말하든 좋다네. 난 황실의 패설사관이니까.”

 

영혼을 잃은 장교는 어찌 되었나. 영혼을 빨아들이는 돌을 가지고 있다는 적오가 데리고 있지 않았나? 근데 분명히 붉은 까마귀가 그 사내를 데리고 있던데...”

 

그는 여전히 적오와 함께 있다네. 영혼을 돌려달라 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네만... 아마 어미가 맞긴 한 모양이지. 적오의 모습을 하고, 그 비슷한 종자를 데리고 다니는 걸 보면...”

 

그래, 대충 상황 돌아가는 건 알았고. 내 처분은?”

 

“...왕께서 처분을 내리시길 기다려야지. 아니면...”

 

미축은 흘깃 침상 저편을 쳐다보았다. 사락거리는 비단천 소리와 함께 옥음이 들려왔다.

 

왕실을 기망하고, 왕실의 물품을 몰래 보관한 죄 위중하나. 패설사관의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왕비였다.

 

강등하여 왕실 비밀 박물관장이 되게 하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후후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단지 지금부터 그대는 세상에 없는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아우들은.”

 

처음으로 왕비에게 반말을 했다. 빈정대곤 했지만 반말은 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반말을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진심이 담긴, 애절한 한마디였다.

 

목을 베어 햇볕이 쪼이는 곳에 두었지요. 왕과 왕비는 바보일지는 모르지만, 비위를 거스리는 자를 못 알아보진 않는답니다. 그대의 팔을 자르지 않고 그대 팔 노릇 하는 자들을 없앴으니 앞으로는 순순히 박물관을 지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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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은 그 명이 짧다. 명장 또한 그 명이 짧다. 미인이나 명장은 왕이 아끼지만, 자기 자신의 만족만을 찾기 때문에 미인은 정치놀음에 희생되고, 명장은 두 번 다시 같은 물건을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죽음을 당하게 된다.

나는 손가락으로 새로 들어온 도자기를 매만졌다. 흠결없이 매끄러운 도자기를 나는 손으로 내리쳐 깨버렸다.

 

나으리.”

 

명장이 아니라 특장이라는 명을 받아도 아깝지 않을 젊은이가 겁에 질린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이번에도 형편이 없는겝니까?”

 

“......”

 

패설사관은 수많은 정치와 민초들을 본다. 그 와중에 사그라져가는 역사를 본다. 하지만 나는 그 사건 이후 왕실에 갇혀 왕실에 어울리는 호사스러운 도자기들을 수집한다.

화려한 물건들, 잔인하고 인정사정없는 왕실에 어울리는 물건들을.

 

자넨, 다음주까지 멀리 떠나게.”

 

내 말에 그가 눈알을 굴레굴레 굴렸다,

 

어디로 가란 말씀이신지...”

 

납품받을 건 없네. 자넨 이대로도 장인이니, 멀리 가서 살게나. 자네 솜씨 정도면 먹고 살만할게야.”

 

화미인이 살아남았던 것은 소금기둥이 되어서가 아니라, 왕보다 더한 권력에게 의탁했기 때문이다. 영웅왕은 왕이었지만 원래 신분은 상인이었다.

그런 자가 소금기둥이라는 민담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은 그가 왕으로서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황제국에 무릎을 굽혔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때문이었다.

그래서 왕실에는 없고 황제국 패설사관부에는 있었던 것이다.

받는 대접이란 바로 그림에 낙서나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먹고 살만하면 그대로 만족하느냐?”

 

어느새 목소리가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먹고 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소. 하지만 형제들을 희생시키고 살았으니...”

 

“...영혼이 없는 자로 살겠구나.”

 

적오의 긴 머리칼이 내 어깨를 스쳤다.

요물이라고 욕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애초에 내게 이 길을 열어주었던 것은 그녀였으니까.

 

가자꾸나. 작은 아이야. 아직 더 넓은 세상을 보아야 할 의무가 네겐 있단다.”

 

그녀의 손을 나는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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