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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러시아의 시민들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백민석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으로 세상의 모순을 파헤치고 분노의 감수성을 일깨워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한국 문학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 온 소설가. 1995년 『문학과사회』에 「내가 사랑한 캔디」를 발표하며 소설가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소설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혀끝의 남자』 『수림』,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 『목화밭 엽기전』 『죽은 올빼미 농장』 『공포의 세기』 『교양과 광기의 일기』 『해피 아포칼립스!』 『버스킹』 에세이 『리플릿』 『아바나의 시민들』 『헤밍웨이: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가 있다. 2017년 [김현문학패]를 수상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그의 작품에는 대부분 소년이 등장한다. 어른인 등장인물 역시 심리적으로는 소년인 상태의 어른들로 보인다. 현실의 인물을 기준으로 볼 때 기괴한 인물을 등장시킨다고 평가받는 그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반사회적’ 경험으로 인해 날렵하면서도 냉소적인 문체를 구사한다. 이러한 문체는 힘 또는 권력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이해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작품을 들여다보자.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는 유치함을 가장한 대담한 글쓰기로 주목을 받고 있는 백민석의 연작소설집이다. 작가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생산해내기 시작한 인류의 신상품들을 만화처럼 그리고 있으며, 사회에 대한 음산한 해학과 통찰을 보여준다. 『내가 사랑한 캔디』는 백민석의 미혹과 파격의 소설로 평가받는다. 다양한 이미지와 비현실적인 시공간을 가진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발기부전에 시달리거나 동성애에 빠지거나 지강헌과 같은 총잡이를 꿈꾸는 '90년대 낙오자들'의 절망과 허기를 그려 내고 있다. 새로운 감성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창조한 이 소설은 90년대식 소설의 가능성을 예고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죽은 올빼미 농장』의 주인공은 도심에서만 성장한 전형적인 '아파트먼트 키드'로, 이미 서른이 넘긴 나이임에도 '인형하고만' 대화를 나누며 어린 시절 들었던 자장가 가사에 집착하기도 한다. 작가의 전유물인 ‘인형’과 ‘복화술’을 기반으로 ‘아파트먼트 키드’라는 기형적 인간의 내면을 탐사해나가는 작가의 상상력에는 보다 순화된 ‘인간적 순정’이 느껴진다. 저자는 “아파트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낸 아이들을 두고 내가 한 주장은 확신이 실린 것이 아니다. 아마도 소설 내적 원리에 충실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 주장들은 틀렸거나, 아니면 옳다 하더라도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할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힌다.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는 시종일관 유령이 출현한다. 그 유령은 동화적이거나 환상적인 귀신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그 자체다. 여기에 백민석이 말하는 공포가 있다. 그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그 공포로부터의 탈주이며 그 공포의 탈신비화 작업이다. 이 책에 대하여 평론가 손정수는 “백민석의 최근 소설들은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의 한 극단을 보여준다. 곧 "직사광선 아래 놓아둔 빠닥빠닥한 알루미늄 포일처럼 쿨하면서도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 그것이다. 일상화된 주체로서의 '나'에게 '무어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는 전조'처럼 다가오는 이 타자들의 세계, 그것은 텍스트화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도정 끝에서 백민석이 발견해낸 환각과도 같은 출구를 표상한다.”라고 평한다.
『목화밭 엽기전』는 납치, 린치, 강간, 살상, 포르노그라피... 시종 주위를 떠도는 언어들이 단말마의 비명 소리에 섞여 몸과 마음을 옭아매고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는 곳까지 철저하게 몰아세우는 충격적 소설이다. 문학평론가 황종연씨는 “『목화밭 엽기전』은 윤리가 부재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의 윤리적 가능성 자체를 조롱한다. 이를테면 인간이 야수의 상태를 넘어선 윤리적 존재라는 믿음은 작중인물들이 신랄하게 비웃고 있는 미신이다.”라는 평을 했다.
[예스24 제공]


혼자 여행하는 나는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상대도 없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게 된다.
그렇게 겨우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법을, 자신을 용서하는 일을 익히게 된다.
혼자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면 이런 이유에서이다.
자기 마음과 다니는 사람은 결국 외로움까지 용서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p16-17
코로나 19 사태로 온종일 가족들이 좁은 생활 반경 안에서 산다.
일탈을 꿈꾸기 힘든 요즘 더없이 갑갑한 마음을 분출할 곳이 없다.
부엌에선 온종일 끼니를 기다리는 배고픈 영혼들을 채워줄 음식 만들기에
지겹도록 치열하고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두번은 배달음식으로 대충 때우기도 하지만
삼시세끼 한 상차림을 내놓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본지 오래됐다.
올해 여름 휴가도 엎어지고 지금까지 버텨온 시간들은
별 탈 없이 지내며 별 일 없는 매일의 하루를 묵묵히 지내오는 가족들이 있어서 버텼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음 한켠엔 언제가 가볼 혼자만의 여행을 늘 꿈꾼다.
엄마가 아닌 나로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대하는 마음이 전보다는 다르다.
여행서를 가끔 찾아서 보기도 하지만,
요즘 때엔 책을 넘길 때마다 매 컷들을 더 눈에 담으려 애쓴다.
작가의 글들을 더 아로새기며 읽는다.
가보지 못할 곳, 갈 수 없는 곳이 될지도 모르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경험'이 아닌 '상상'을 끌어낼
이미지 가득한 막연한 동경만 마음에 가득 품을 뿐이다.
그래서 이 글이 더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는 것만 같다.
여행에서 혼자 천천히 거리를 거닐고
낯선 풍경 속에서 천천히 스며들어
나에게 너그러워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우린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더 책을 읽는 내내 시린 마음으로
몽환적인 꿈을 꾸는 듯했다.
넵스키 대로와 폰탄카강이 만나는 지점 근처에 있는 한 독립 서점은 잊지 못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조명을 패션 잡화점만큼 환하게 밝히고 실내를 젊은 감각으로 꾸며 놓았으면서도,
서점이라는 역할에 충실하게 책과 책장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서점은 어딘지 시대를 거스르는 우중충한 곳이고 러시아는 더할 것이라는 내 편견을 단번에 잊게 만든 곳이었다.
/p68
국내 여행지도 매 휴가때마다 들리는 코스는 독립서점이다.
해외 여행도 매한가지일테다.
아직 해외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는터라
품고 있는 판타지가 대단히 넘쳐난다.
빈티지한 감성이 물씬 나는 코지한 분위기의 서점안에서
낯선 외국 사람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상상해왔던 멋진 사진 한 컷을 눈에 담고 올 수 있을거란 기대감이 있다.
그 공간안에 내가 실제한다면 더 놀랄 일이 될 것이다.
책에 실린 한 컷의 사진과 부연 설명으로
내 머릿 속 가득 배루른 행복감을 연상 시킨다.
별 것 아닌 행복이 작은 책에 스며 있는 것 같아 천천히 속도감을 줄이며 읽는다.
<죄와 벌>은 소설이지만, 인문이나 배경은 도스토옙스키가 살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실제 빈민가를 모델로 삼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살던 건물들은 그의 아파트와 같은 거리에 있었고,
등장인물들은 그와 함께 피곤한 삶을 나누던 이웃들이었다.
/p204
혁명을 이루려다 살인자가 된 라스콜리니코프도 그의 도끼에 맞아 죽은 전당포 노인도
이웃한다는 건 소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특별한 장소에서의 풍경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곳의 날씨 조차도 현실적이지 않을 것만 같은 상상이
현실로 맞닥뜨려질 때 좀 더 가까이서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리라.
다닐 수 있으면 최소한으로 먹고 부지런히 걷고 싶다.
여행이라는 것이 특별한 장소에서 느끼는 특별한 경험 정도로 생각했던 것에서
더 확장된 의미로 다가오는 건
요즘의 때에 더 살아갈 날들과 살아온 날들을 떠올려보는 소중한 순간순간임을 더 떠올리게 만든다.
가보지 못한 나라에 대한 막연한 동경 이상으로
이 책을 여행 가이드 삼아 가지고 다니면 좋을 책이라고 보기 보다는
혼자 떠나는 여행이 주는 심연의 외로움과 고독을 뛰어넘는 발견을
선물할 수 있는 소중한 책 같아서 애틋한 마음이 든다.
예상할 수 없는 내일을 살아가지만
일상 속에서 특별한 경험을 매번 꿈꿀 수 있는 한 권의 책으로
난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다.
다음 여행지는 어떤 책으로 고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