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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빛나는 순간 ㅣ 푸른도서관 6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3년 4월
평점 :

우와.
이금이 작가님의 책이 인기가 높은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 책은 특히나 더 재미있었다.
눈높이가 다른 두 친구. 둘 중 하나는 모범생이 분명한 듯 한데, 그들이 서로를 쏘아보듯 쳐다보고 있다.
꽃이 화려하게 핀 어느 나무 앞에서 말이다.
워낙 두꺼운 책들이 많아서 300여페이지의 책은 그리 두껍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참 많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것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말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영동은 내 친구의 고향이라 한번 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세워졌다는 태명고는 아마 가상의 학교겠지만, 실제 가본 곳이 소설 속 배경으로 등장하니 더욱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내 가장 친한 친구의 고향, 친구에게 이 책 이야길 들려주면 참 좋아할 것이다.
기차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내려가고 있는 지오.
고등학교 1학년때 잠깐 같은 기숙사 방을 썼던 친구에게 갑작스러운 메일이 하나 왔다. 일방적으로 어느 날에 추풍령역으로 오라는 것.
전교 1등으로 입학한 그 친구가 외국 유학을 갔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시골에서 불러내다니, 사수라도 하고 있는건가 싶었는데, 때마침 여자친구인 해수와 이별을 했던 터라 지오는 도피마냥 한번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가보기로 결심하고 내려가던 차였다.
영동군의 자수성가한 사업가가 영동의 학교 하나를 사들여 최신 기숙학교로 재탄생시켰다. 이름은 태명고.
전국의 내노라하는 선생님들을 영입하고, 전국 최상위 학생들이 응모하는 여러 학교들의 경쟁률이 드높은 빈 틈을 노리고 만들어진 학교였다.
캐나다에서 살다 온 지오는 영어 특기자로 입학할 수 있었고 전교 1등으로 입학한 석주는 같이 경쟁해온 다른 친구들이 들어갈 명문학교에 용꼬리로 들어가느니, 태명고에 들어가 내신도 높이자는 뱀대가리 작전 (엄마의 계획)의 일환으로 시골 영동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었다.
이 둘 외에도 양근석, 오한결, 이렇게 네 사람이 한 방 식구가 되었다.
지오는 또래 아이들보다 한살이 많았고,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듯 쿨하게 굴었지만 마마보이라 놀리던 석주의 엄마와의 통화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자신의 엄마는 캐나다에 살고 있어서 자주 통화를 할 수 없었기에.
석주는 엄마의 바램대로 열심히 공부를 해 보답을 하고 싶었다. 최고가 되어야만 했다. 한눈에도 놀기만 좋아할 것 같은 룸메이트들이 부담스러웠다. 성적 위주의 삶을 살던 석주에게 태명고에서 숨쉴틈은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와 비슷해보이는 개 한마리였다.
두 아이는 아주 우연히 자전거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모의고사 성적이 형편없이 나오자 엄마를 실망시킬 수 없던 석주는 집에 갈 생각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도 없는 기숙사에 몰래 처박혀 하루를 나볼까했는데 방방마다 돌아보는 사감 때문에 어쩔수없이 쫓기듯 기숙사에서 내몰렸다. 그리고 지오조차 같이 얼쩡거리는 통에 어찌하다보니 둘이 같이 어울려 역에 세워둔 자전거를 빌려타자는 지오의 제안대로 일탈같은 여행을 하게 된 것이었다.
깜깜한 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은 기분이 좋긴 했으나 그들계획대로 큰 마을에 간다는 것이 길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지나가던 아저씨의 호의로 두 소년은 아저씨의 집에 가 하룻밤 숙박을 하고 밥까지 얻어먹게 되었다.
과수원을 하는 아저씨에게는 그들보다 한살 어린 딸 은설이 있었고, 호리호리한 몸매와 목소리에 석주는 가슴이 설렜지만 가까이에서 본 은설의 얼굴은 뮬란과도 같은 얼굴이라 실망스러웠다.
공부만 하던 석주가 은설이를 보고 설렜다 가슴이 식었다 다시 설렜다 하는 과정이 마치 한 친구를 들여다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때 다니던 학원에 그런 친구가 하나 있었다. 남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은 친구였는데, 여자아이들과 한 학원을 다니다보니 조금씩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 아이를 좋아했다가 엇갈린 사랑이 되자, 본격적으로 다른 아이를 정말정말 좋아하기 시작한 아이가 있었다. 정말 성적이 좋은 친구였는데 한참 공부에 매진해야할때 그래서였는지 원하던 대학을 안가고 전혀 엉뚱한 데를 가게 되어 주위에서도 걱정이 많았는데. 석주를 보니 그 친구가 생각난다.
책 속의 석주의 결정에 대해 어른들의 시각에서만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제 아들 문제라면 저도 석주 엄마처럼 날을 세울런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석주의 이야기는 아름답기만 하다.
그리고, 지오. 지오와 석주는 서로에게 절친은 아니었지만 그 짧은 자전거 여행 하나로 얼마든지 더 친해질 수 있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리고, 몇년이 흘러 다시 만나 후, 그때보다도 훨씬 더 친해진 마음을 얻게 된다.
두 아이의 부모 모두 요즘 부모들처럼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집들의 이야기이다.
지오네는 아빠가 나서서 기러기를 자처하며 아이들을 캐나다로 유학 보낼 정도로 열성적이었고, 석주네도 형과 아버지 모두 명문대학을 나와 석주 또한 당연히 그 길을 걷는게 정석이다 믿는 집안의 자제였다. 그러니 전국 최고 명문까지는 아니지만, 신생 학교긴 하지만 전국구로 최상위권 아이들을 모집한 태명고의 학생이 되었겠지만.
요즘의 교육열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아이들이 정말 행복하다는게 무얼까. 분명 부모들도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며 그렇게 키워나가는 것일텐데.. 자신들의 인생까지 희생해가며 아이들에게 쏟아부은 열정이 그들에게 안겨주는 건 무엇일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물가에 있어 보마 깨진 얼음장이 흘러가다 반짝 하고 빛나는 순간이 있제. 돌에 걸리거나 수면이 갑자기 낮아져가 얼음장이 곧추설 땐 기라. 그때 햇빛이 반사돼가 빛나는 긴데 그 빛이 을매나 이쁜지 모린다. 얼음장이 그런 빛을 낼라 카믄 일단 깨져야 하고 돌부리나 굴곡진 길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기라.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지 싶다. 인생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겄나. 사는 기 평탄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 고난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마 그제사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기다. 303.30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