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아닌 아이들 생각으로

잠에서 깬

어버이날 아침

 

 

세월호 안에서

아이들이 "움직이지 못 한" 지

스무사흘 째인 날 아침

 

 

오늘 이후

내 생에 남은 모든

어버이날 아침은

 

 

아이들 생각으로 이리 아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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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서 자다 깨어보니

 

 김기택


배 위에서 잠이 들었다.
바람소리에도 흔들렸고 물소리에도 흔들렸다.
망망대해 나 혼자였지만
물소리 바람소리 사방에서 소란스러웠다.
오래 전부터 들어온 소리처럼 편안하였다.
바다처럼 커다란 아가미로 숨쉬었다.
출렁거리는 들숨 날숨마다
무수한 햇빛 방울이 다닥다닥 달려 있었다.

갑자기 파도가 커지고 높아지더니
배가 한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중심을 잃고 물에 빠지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전동차 안이었다.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 낀 채 서 있었다.
나는 선 채로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거친 파도소리를 내며
급제동으로 쓰러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       *       *

 

악무한, 의 

악몽

부디, 잠에서

깨,

.......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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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고 찬란한 당신을

 

이 병률

 

 

풀어지게

 

허공에다 놓아줄까

 

번지게

 

물속에다 놓아줄까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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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이 수명

 

자신을 찍으려는 도끼가 왔을 때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도끼로부터 도망가다가 도끼를 삼켰다.

 

폭풍우 몰아치던 밤

나무는 번개를 삼켰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더 깊이 찔리는 번개를 삼켰다.

 

 

*       *       *

 

나무가 저를 죽이려는 도끼, 번개를 삼켰다, 할 때 대뜸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삼키다는 말은 두 가지 대칭되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는, 억지로 참다.

예컨대 그는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외면과 체념입니다.

 

다른 하나는, 큰 힘으로 쓸어 가거나 없애버리다.

예컨대 거대한 불길이 마을 하나를 송두리째 삼키고 말았다.

직면과 관통입니다.

 

울분을 삼키듯 상처를 삼킨다는 느낌인가요?

불길이 마을을 삼키듯 상처를 삼킨다는 느낌인가요?

 

이 느낌 차이에서 상처는 지속, 증폭되기도 하고 반대로 치유되기도 합니다.

이는 흐느끼면서 우는 것과 엉엉 소리내어 통곡하는 것의 차이와 같습니다.

흐느끼면 슬픔에 휘감깁니다.

통곡하면 슬픔이 뿌려집니다.

 

다시 한 번 위 시를 천천히 읽어보시겠습니까?

 

생떼 같은 세온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상처를 어찌 삼켜야 할까요?

이 슬픔을 어찌 울어야 할까요?

이 차이의 공동체적 함의는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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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는 이제 정치학이 아니라 정신병리학의 소관처럼 보인다. 이 정권은 환자다. 그들에게는 초자아가 없는가.....없는 것 같다. 그러니 죄의식도 없는 것이다. 이드만 있는 권력이라니.....아직도 사죄하는 사람은 없다. 본래 이드는 사죄하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5년 전 용산참사 열흘 뒤 쓴 글이다.

마치 오늘 쓴 것 같지 않은가.

우리는 결국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을 경우, 되풀이하는 형벌을 받은 것이다.

어른이 죄 짓고 벌은 아이들에게 뒤집어씌웠으니 겹죄를 지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혁명의 역사를 쓰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그야말로 끝이다.

고요히 깊은 호흡으로 흰 칼날 파르라니 갈 일이다.

여기서 비로소 참된 치유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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