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 - 소돔과 고모라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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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창조적 정신의 결핍으로 고통속에서도 멀리 보지 못한다. 가장 끔찍한 현실이 고통과 동시에 멋진 발견의 기쁨을 주는 것도, 그 현실이 우리가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오래전부터 반추해 온 것들에 하나의 새롭고도 선명한 형태를 주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의심은 나를 불안하게 하고 질투를 유발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심이 확신이 되면 나를 미치게 하지 않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3부 이야기인 잃시찾 7,8권은 <소돔과 고모라>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3부 이야기는 주로 게르망트(귀족)의 만찬과, 베르뒤랭(부르주아)의 만찬에 대한 이야기가 비교를 이루면서, 귀족의 몰락과 부르주아의 부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샤를뤼스와 쥐피행/모렐과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나오는데, 묘사되는 외모와는 다르게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는 "샤를뤼스"의 행동은 공감이 되기 보다는 어딘지 안쓰러운 느낌을 준다.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고 질투하는 그의 모습은 일반적인 보통사람의  사랑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3부에서 가장 인상깊은 이야기는 당연 "마르셀"과 "알베르틴"의 밀고 당기는 사랑과 "알베르틴"의 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였다.

이 책의 제목인 "소돔"이 남성 동성애를 의미한다면, "고모라"는 여성 동성애를 의미한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소돔"(이 책에서는 샤를뤼스)이 정신적으로는 여성적인 특성을 가짐에 따라 남성을 좋아하는 것이라면, "고모라"(이 책에서는 알베르틴)는 여성이 여성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소돔은 성도착자를 의미하며, 고모라가 동성애자를 의미한다.

우리의 주인공 "마르셀"은 "알베르틴"을 좋아하지만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녀와의 밀회를 즐길 뿐이다. ("마르셀"은 정말 많은 여성을 좋아하는, 완전한 이성애자이다.) 또한 3부의 초반에 우연히 목격한 "알베르틴"의 고모라적인 특성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알베르틴"은 이에 대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알베르틴"은 "마르셀"과의 육체적 관계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마르셀"의 주위에 있는 남자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를 통해 "마르셀"은 자연스럽게 "알베르틴"의 고모라적인 특성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게 된다. "마르셀"은 "알베르틴"이 남자를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녀가 양성애자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다.

[내게는 하나의 취향이 다른 취향을 배제할 수 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순진함이 있었다.] 41페이지


대신 "마르셀은"은 그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알베르틴"의 관심에 점점 엄청난 질투를 하게 되고 괴로워 하면서,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나의 질투로 말하자면, 내가 알베르틴과 영원히 결별할 때라야 거기서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음에도 이런 질투심이 오히려 가능한 한 그녀 곁에서 떨어져 있지 않도록 부추겼다.] 275페이지


"알베르틴"이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주는 태도에 대한 "마르셀"의 질투는 극에 달하게 되고, 그녀가 옆에 있어도 의심을 하고 없어도 의심을 하는 상태에 까지 이르게 된다. 예초부터 "마르셀"은 "알베르틴"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 그는 그녀와 해어질 결심을 하게 되고, 이별을 통보하기 위해 그녀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그녀와 대화를 하는 도중 "마르셀"은 자신이 예전에(1부에 나옴) 목격했던 고모라적인 특성을 가진 여성들과 "알베르틴"이 오랫동안 친한 사이라는 것을 듣게 되고, "마르셀"은 "알베르틴"이 고모라라는 데 대해 확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고뇌에 빠지게 된다.

[생루나 여느 젊은이를 통해 유발된 이런 종류의 질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경우 나는 기껏해야 연적을 두려워하며 이기려고 하기만 하면 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연적은 나와 비슷하지 않으며 또 무기도 달랐고, 나는 동일 지대에서 싸우거나 알베르틴에게 동일한 쾌락을 줄 수 없었으며, 또 그 쾌락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상상할 수 없었다.] 475페이지


객관적으로 봤을때는 그냥 헤어지면 되는건데, "마르셀"은 그렇게 해어지지 못하고, 결국 "알베르틴"을 완전히 소유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며,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선언을 한다. 그리고 3부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4부의 제목이 <갇힌 여인>인데 앞으로의 이야기가 완전 궁금해 진다.


3부인 <소돔과 고모라 2>의 경우 게르망트(귀족)가와  베르뒤랭(부르주아)가의 비교, 샤를뤼스를 중심으로 한 동성애(소돔) 이야기, 그리고  코타르 언어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나오는데, 나는 도대체 이러한 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책을 읽으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은  후 해설을 보고 아하! 하며 깨달았다. 역전과 전환이 프루스트 소설을 매력적으로 하는 주요 장치였던 것이다. 해설에 쓰인 말을 옮겨보면,

[역전과 전환이 프루스트의 소설을 사로잡는 주된 움직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준다. 그리하여 그것은

1. 성 : 남성미의 대표 주자인 샤를뤼스가 실제로는 여성

2. 정체성 : 사창가의 포주가 실은 러시아의 공주이자 대부호

3. 언어 :  타자의 말에 따라 수없이 변하는 코타르의 언어

의 흔들림으로 나타나며, 이 흔들림이 작품에 혁신적이고 전복적인 어조를 띠게 하는 것이다.] 530페이지


라고 한다. 뭔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 답지를 보고 깜짝 놀란 기분을 느꼈다.

<소돔과 고모라> 안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내가 쓴 리뷰에서는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진 못하고 제일 흥미있었던 "마르셀"과 "알베르틴"의 사랑 이야기만 정리했다. 실제로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미칠듯이 자세하게 쓰여져 있으니, 직접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마르셀"에게 독약이면서도 동시에 해독제일 수 밖에 없는 그녀 "알베르틴". "마르셀"은 질투에 눈이 먼 사랑의 아픔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알베르틴"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곧 9권을 읽어야 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뒤로 갈수록 오히려 이야기가 흥미로워 지는 것 같다. 거꾸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ps. "알베르틴"에 대한 "마르셀"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노래로 리뷰 끝.

농담 - 김동률
https://youtu.be/Y1_IErAHpxs

나를 휘저었죠 나는 흔들렸죠
헛된 상상들은 자꾸
넘쳐만 갔었죠 하지만
누굴 탓할까요 내가 바보였죠
그냥 흘러가는 말에
휩쓸려 버렸죠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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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7-18 19:25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왜 소돔과 고모라를 그렇게 나눴는지 직접 읽어봐야 알겠죠? 성경에는 남색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게다가 성폭력으로...

새파랑님 혹시 노래도 잘 하실듯!
김동률 노래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 갖고 계신거 아닐까요?

새파랑 2021-07-18 17:27   좋아요 7 | URL
제가 성경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성경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따로 분리되지 않고 타락한 도시로 명시되어 있다는데, 이 책에서는 그렇게 나누고 있더라구요. 일반적인 의미도 그렇다고 하는거 같아요 ㅎㅎ

김동률님 목소리랑 15퍼센트만 비슷했으면 좋겠네요 😑

모나리자 2021-07-18 17: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제 거의 끝나가시네요.ㅎ 대단하세요.^^
오늘도 엄청 덥네요. 건강 잘 챙기시고요.^^

새파랑 2021-07-18 17:29   좋아요 6 | URL
그래서 이번주말에는 책만 보고 있네요 ㅜㅜ 운동하고 싶은데 ㅋ 이제 두권 남았는데 이번주 한권 다음주 한권 읽으면 될거 같아요 😊 모나리자님도 완전 건강 잘 챙기세요~!!

독서괭 2021-07-18 17: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호오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에 이런 퀴어 요소가 나오다니.. 신기합니다. 꾸준히 읽어나가시는 것 대단해요. 그런데 “미칠듯이 자세”하다는 얘길 들으니 안 읽고 싶어지는 마음은 뭘까요 ㅎㅎㅎㅎ

새파랑 2021-07-18 19:09   좋아요 4 | URL
혹시 안읽으셨다면 강추합니다. 완전 신세계를 경험하실 수 있어요 😏

페넬로페 2021-07-18 18: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그저 단순하게 사는듯한 저의 생활도 누군가가 관찰해서 세밀하게 묘사한다면 저렇게 많은 얘기들이 나올까 궁금해집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구분이 흥미로워요. 이제 정말 끝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잃.사.찾을 다 읽고 난 후의 새파랑님의 최종적인 감상과 느낌을 기다립니다^^

새파랑 2021-07-18 19:11   좋아요 5 | URL
최종적인 감상은 힘들지 않을까요 😐
잃시찾 읽다보면 버지니아 울프 생각이 납니다~!!

청아 2021-07-18 18:3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호 벌써 8권을 클리어하셨군요! 저는 아직 절반정도ㅋㅋ얼마간 쉬었다가 다시 읽는데도 역시 재밌고 좋은 문장들이 곳곳에서 빛나네요. 김동률 농담은 안들어본거 같은데 가사가 마르셀의 심정 그대로인거같아 신기해요😊

새파랑 2021-07-18 19:14   좋아요 6 | URL
주말 끼니까 이틀 걸리더라구요~!! 전 다음주에 9권 읽을려고 계획중입니다 ^^ 김동률의 농담은 카니발 앨범에 있던 노래인데 다시 부른거에요. 더 좋아졌어요. 고급스러워짐. 완전 좋아요 😊

라로 2021-07-18 20:5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도대체 몇 권까지 있는지 몰라요!!^^;;;
대단하십니다. 저는 과연 그 책을 들게 되기나 할지....

새파랑 2021-07-18 21:08   좋아요 5 | URL
13권 일까요? ㅡㅡ 저도 사실 잘 모릅니다 하하 가지고 있는 건 10권 까지인데 더 있다고 합니다. 전 민음사 껀데 이건 아직 번역이 다 안됐다고 하고 다른 출판사에는 완결이 나왔는지는 몰라요 😊 라로님 이라면 일단 읽기 시작하면 그냥 완독하실거 같아요👍👍

scott 2021-07-18 20: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잃-시-찾 읽다가 이해가 안가는 부분 나오면
새파랑님 에게 물어볼겁니다 ㅎㅎㅎ

북플에서 농!담!
쿤데라 옹의 농담인줄

뜨거운 열탕 주말 날씨
새파랑님은 마르셀옹과 함께~(๑˙╰╯˙๑)

새파랑 2021-07-18 21:10   좋아요 5 | URL
역시 북플은 쿤데라가 대세군요~!! 스콧님이 잃시찾 이해안가는건 아마 없으실 테지만 혹시 있으시다면 프루스트 마니아 1위인 미미님께 물어보시는게 더 좋을 것 같아요 😄

레삭매냐 2021-07-18 22:3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엔딩이 가까워져 오는가
봅니다. 빠이팅입니다.

새파랑 2021-07-19 00:00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 아껴읽어야 하나 빨리 읽어야 하나 고민중입니다 🤔

붕붕툐툐 2021-07-18 23: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히야~ 새파랑님 정말 감탄사밖에 안나옵니다~ 8권 완독 축하드리며 저는 3권까지만이라도 읽는게 목표인데.. 하...(먼산)

새파랑 2021-07-19 00:01   좋아요 5 | URL
툐툐님에게는 방학이 있으니 가능하십니다~!! 화이팅 😊

mini74 2021-07-19 13: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글 읽음 읽고 싶어지고ㅠㅠ 갈대같은 마음. 쌓이는 책들 ㅎㅎㅎ 새파랑님 완독 향해가시는 모습에 왜 제가 막 뿌듯하고 뭉클한거죠 ㅎㅎㅎㅎ 파이팅!!

새파랑 2021-07-19 13:13   좋아요 2 | URL
미니님 알리디너 📺 보바리 대 채털리 부인 잘 봤어요^^ 읽시찾도 한번 해주시면 좋을거 같은데😎

mini74 2021-07-19 13:14   좋아요 3 | URL
저 너무 놀래서 딸꾹질할 뻔 ㅎㅎㅎ. 새파랑님이 하셔야지요 ㅎㅎ저 2권까지 읽고 3권은 장바구니에 담기다 못해 푹 잠겨 있습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1-07-19 13:20   좋아요 3 | URL
전 아직 그정도의 내공이..... 미니님 하신다면 제가 빌려드릴수도 있습니다 😊

mini74 2021-07-19 13:22   좋아요 3 | URL
아니요 새파랑님. ㅎㅎㅎㅎ 정중히 거절합니다 ㅎㅎㅎ무서워요 제가 ㅠㅠ 안 읽어도 사긴 할 것 같아요. ㅎㅎㅎ

청아 2021-07-19 14:15   좋아요 3 | URL
지금 봤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아ㅠㅠㅋㅋ

scott 2021-07-19 16:54   좋아요 3 | URL
만화 권해드립니다

그림이 아주 훌륭해서
시대 분위기 인물들의 성격 파악까지 한눈에!

새파랑 2021-07-19 17:52   좋아요 3 | URL
저 10권 까지 완독하고 읽어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읽으면 더 좋을거 같아요 😊

희선 2021-07-20 0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글을 보고 노랫말을 보니 정말 마르셀 마음을 나타내는 듯하네요 헤어지려고 하면서 알베르틴이 고모라라는 것 때문에 고뇌하다니... 마르셀 재미있기도 하네요 마르셀은 힘들 텐데 그런 거 보고 재미있다고 했네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요


희선

새파랑 2021-07-20 08:40   좋아요 1 | URL
책에서도 보면 계속 감정이 변하는게 잘 그려져 있어요. 좀 안쓰러워요 😢
 

잃시찾 8권 읽기 끝~!! 이번 책도 어려웠지만 해설을 보니 조금 이해가 되었다. 질투도 많고 사랑하는 여인도 많고 예민한 ˝마르셀˝은 정말 순탄하게 살아가기 힘들거 같다.. 그래도 매력적인 남자는 맞음~!

291페이지 오타 발견 : 알베르틴를 → 알베르틴을


샤를뤼스 씨는 어떤 허구적인 일이 일시적으로나마 그에게 관능적 쾌락을 초래할 경우, 그 허구에 동의하고 잠시 후 쾌락이 소진되면 자신의 동의를 전적으로 취소한는 습관이 있었다.

(선택적 쾌락?? 이런 성향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 P278

어쩌면 나는 알베르틴을 사랑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사랑을 그녀가 알아차리도록 내버려 둘 용기는 없었다. 설령 그 사랑이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 해도, 경험에 의해 검증되지 않는 한 그것은 가치 없는 진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랑이란 내게 실현될 수 없으며 삶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의 질투로 말하자면, 내가 알베르틴과 영원히 결별할 때라야 거기서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음에도 이런 질투심이 오히려 가능한 한 그녀 곁에서 떨어져 있지 않도록 부추겼다. 나는 그녀  옆에서도 질투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질투를 내 마음속에 다시 깨어나게 하는 상황이 재개되지 않도록 조치했다.

(질투에 의한 사랑을 왜 하는 건지 공감은 가지 않지만 이해는 된다.) - P291

"잠시 후에, 그리고 오늘 저녁에 함께 산책하러 갈까요?" 그녀는 "그럼요, 기꺼이 가죠."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나의 긴 불안은 그녀의 장밋빛 얼굴에서 갑자기 감미로운 평온함으로 바뀌었고, 내게 지속적으로 폭풍우가 분 다음의 행복감과 안도감을 느끼게 해 주는 그 모습은 보다 소중한 것이 되었다. "얼마나 상냥하며,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가!"

(엄청난 생각과 엄청난 감정기복을 보여주는 마르셀) - P300

모렐의 처신에 익숙해지면서 모렐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이 얼마나 미미하며, 또 천박하지만 습관적인 것이 되어 버린 모렐의 친구 관계가 너무도 많은 장소와 시간을 차지해서, 그로부터 쫓겨난 자손심 센 대귀족이 애걸복걸하는데 아무 보람 없이 단 한시간도 주지 않는 모렐의 삶 속으로 자신이 결코 끼어들 수 없음을 깨달은 샤를뤼스 씨는, 음악가가 외 않을 거라고 굳게 확신했고, 또 이렇게 너무 멀리 나가서 그와의 사이가 영원히 틀어질까 봐 겁이 났던 차에 그의 모습을 보자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승리자임을 깨달은 그는 화해 조건을 제시하고, 가능한 한 거기서 자신에게 유리한 점을 꺼내려고 했다.

(모렐과 샤를뤼스의 사랑싸움...나는 이런게 익숙하지 않다...) - P381

이렇듯 우리는 이론적으로는 항상 서로 솔직하게 설명하고 오해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삶에서는 그런 오해들이 얼마나 뒤섞이는지, 그 오해를 불식시키려면 그런 일이 가능한 드문 경우에, 친구가 우리의 잘못이라고 여기는 가상의 잘못보다 친구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뭔가를 폭로하거나, 혹은 오해를 받는 일보다 우리에게 더 고통스럽게 보이는 비밀을 폭로해야 한다.

( 오해를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해결한 것도 많은 고통이 따른다.) - P442

"당신을 몇주 전에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당신을 사랑했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내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가 있네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우린 자주 만나게 될 테니까요. 다른 사랑 때문에 내 마음이 슬프니, 당신이 내 마음을 달랠 수 있게 좀 도와주세요"

(앙드레에 대한 마르셀가 하고 싶었던 이 말은 결국 못하겠지?) - P463

우리는 흔히 창조적 정신의 결핍으로 고통속에서도 멀리 보지 못한다. 가장 끔찍한 현실이 고통과 동시에 멋진 발견의 기쁨을 주는 것도, 그 현실이 우리가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오래전부터 반추해 온 것들에 하나의 새롭고도 선명한 형태를 주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8권에서 가장 좋은 문장이다.) - P468

그녀는 바로 - 그녀만이 내게 줄 수 있는 -  나를 타오르게 하는 독약에 맞선 유일한 해독제를, 게다가 독약과 같은 종류의 약을 주었는데, 즉 하나는 달콤하고, 다른 하나는 쓴 것으로 둘 다 똑같이 알베르틴으로부터 온 것 이었다.  바로 그 순간 나의 병인 알베르틴은 내게 고통을 유발하기를 포기했고, 그러자 이번에는 나의 약인 알베르틴이 나를 회복기에 접어든 환자처럼 온순하게 만들었다.

(독약과 해독제 모두 동일한 사람인 알베르틴에게서 온다는 아이러니. 사랑은 다 그런 것 같다.)
- P473

생루나 여느 젊은이를 통해 유발된 이런 종류의 질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경우 나는 기껏해야 연적을 두려워하며 이기려고 하기만 하면 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연적은 나와 비슷하지 않으며 또 무기도 달랐고, 나는 동일 지대에서 싸우거나 알베르틴에게 동일한 쾌락을 줄 수 없었으며, 또 그 쾌락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이런 아이러니 라니...) - P475

성도착자인 샤를뤼스(남성의 몸 안에 여성의 영혼을 갖고 있는)가 진짜 남성을 찾는 것이라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성애자는 고모라에게만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해설에 있는 말..소돔과 고모라의 차이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를 했다....) - P510

역전과 전환이 프루스트의 소설을 사로잡는 주된 움직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준다. 그리하여 그것은

1. 성 : 남성미의 대표 주자인 샤를뤼스가 실제로는 여성

2. 정체성 : 사창가의 포주가 실은 러시아의 공주이자 대부호

3. 언어 : 타자의 말에 따라 수없이 변하는 코타르의 언어

의 흔들림으로 나타나며, 이 흔들림이 작품에 혁신적이고 전복적인 어조를 띠게 하는 것이다.

(해설을 읽고 무릎을 딱 쳤다. 와 이런 점 때문에 그렇게 대조적인 문장들이 계속 나왔구나..) - P530

게다가 남성 동성애자인 샤를뤼스에 대한 고찰이 외관과 깊이라는 유희 위에 축조되어 비교적 객관적 서술체로 드러난다면, 알베르틴에 대한 묘사는 질투에 사로잡힌 남자, 욕망하는 주체의 시선에 의한 지극히 혼란스러운 담론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 P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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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7-18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꼭 해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인간의 감정을 아주 다양하게 아주 확실하게 알게 되거든요. ^^

새파랑 2021-07-18 13:5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 저는 사랑에 관한 문장이랑 책이 좋더라구요 😊

서니데이 2021-07-18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오타가 있네요. 조사나 맞춤법이 틀린 것들 있으면 잘 보일 때도 있는데, 그냥 빨리 읽으면 문맥상 내용이 맞으면 잘 모르고 지나갈 때도 많은 것같아요. 새파랑님, 눈이 좋으십니다.^^

새파랑 2021-07-18 14:13   좋아요 1 | URL
밑줄긋기 옮기다 발견한거여서 ㅋ 저도 그냥 빨리 읽어요 ^^ 눈은 정말 좋습니다 😎
 

그동안 미뤄두었던 잃시찾 다시 읽기시작. 이젠 8권이다. 오늘 다 읽으려고 했는데 싶지 않네. 다 읽고 잔다 정말....






행복이란 그 자체로 완전히 소유할 수 없으며, 또 이런 불완전함이 행복을 느끼는 사람의 탓이지 행복을 주는 사람의 탓은 아님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나이에 아직 알베르틴이 머물러 있으므로, 그녀가 느끼는 환멸의 원인을 내게 돌리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행복의 불완전함은 행복을 주는 사람이 아닌 느끼는 사람의 탓이다.) - P9

우리는 이세상에 우리 모습과 비슷한 다른 삶이 존재하기를 열정적으로 소망한다. 그러나 이 다른 삶을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의 삶에서도 몇 해만 지나면 우리의 옛 모습, 영원히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모습에 불충실하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 P15

"해수욕과 여행을 하며 보내는 삶은,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연극에는 무대보다 더 많은 배우들이, 배우들보다는 더 많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있다는 걸 가르쳐 주네요"

(그래도 무대보다는 세상이라는 곳이 더 많은 변수를 가진다.) - P19

그대 무심한 나그네여.
내 어깨에 이마를 대고 꿈을 꾸지 않으려오? - P25

내게는 하나의 취향이 다른 취향을 배제할 수 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순진함이 있었다.

(두개의 취향이 있을 수도 있다.) - P41

제게 게르망트 부인에대해 말씀하셨죠. 두 분의 차이를 말씀드리죠. 베르뒤랭 부인은 훌륭한 귀부인이고, 게르망트 공작 부인은 틀림없이 가난뱅이일 겁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시겠죠? 어쨌든 게르망트네 사람들이 베르뒤랭네 집에 가든 가지 않든 베르뒤랭 부인은 아주 훌륭한 분들, 모든 귀족들을 초대한답니다. - P51

나는 담배를 피우던 그 아름다운 아가씨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으며, 그녀가 누구인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녀를 생각하면서 미칠 듯한 욕망에 사로잡힌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욕망의 회귀는 우리가 다시 이 소녀들을 만나 동일한 기쁨을 느끼기를 바란다면, 십년 전의 해로 되돌아가야 하고 그동안 소녀도 퇴색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때로 한 존재를 다시 만날 수는 있지만 시간은 폐지하지 못한다.

(시간은 거스를 수 없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없다.) - P57

불확실했던 그녀의 사회적 인격이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분명해졌는데, 마치 하나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애쓰다가 그동안 모호하게 남아 있던 온갖 것을 밝혀 주는 단어 하나를, 사람인 경우에는 이름을 아는 것과도 같았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전에는 온갖 선입견을 갖지만 누구인지 알게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 P74

우리가 거짓말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들에게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다 보면 거짓말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 P101

샤를뤼스 씨의 슬픔 - 그의 가상 결투 - 대서양 횡단 철도의 역들 - 알베르틴에게 지친 나는 결별을 원한다

(3장 완전 재미 있을 듯~!!)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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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7-17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안쪽은 선명한 레몬색이네요.
겉 표지도 예쁘지만, 안쪽도 단색이 아니라 프린트가 있어서 좋네요.
밑줄긋기 된 내용도 잘 읽었습니다.
새파랑님,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과 좋은 밤 되세요.^^

새파랑 2021-07-17 22:22   좋아요 1 | URL
잃시찾은 겉표지도 좋고 속표지도 좋고 내용도 좋고 ^^ 즐거운 밤 되세요~!!

페크pek0501 2021-07-18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실한 독서인에게 응원의 박수를 짝짝짝!!! 칩니다.

새파랑 2021-07-18 13:54   좋아요 0 | URL
어제 다 못읽고 이제 겨우 읽었어요ㅜㅜ 그래도 아직 책을 한권 더 읽을 시간이 있어서 좋네요 ^^
 
벚꽃동산 열린책들 세계문학 22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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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중했던 것이 사라져만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적 있나요?


단편의 황제 체호프의 희곡은 어떨까? 나는 예전에 희곡 읽기를 어려워 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희곡 읽기에 재미를 느껴서 주 1회 희곡 1편 읽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나에게 있어서 희곡 읽기가 힘든 이유는 등장인물별로 대사가 나오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많아질 경우에는 누가 누구인지 햇갈려서 초반에 내용 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계속 앞부분의 등장인물 소개 페이지 부분으로 돌아가야 해서 집중력도 떨어지고.

그래서 나름 요령이 생겼는데, 우선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을 어느정도 외운 다음 읽기를 시작하고, 그 다음에는 등장인물 페이지를 복사하거나 사진을 찍어서 바로 옆에 놓고 책을 읽는 것이다.
(쓰고 보니 특별한 요령이 아닌 것 같다...)

특히 극악 부도한 러시아의 경우, 사람 이름이 부칭, 성, 애칭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문제는 희곡 대본에 명시되는 등장인물 이름과 대화에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건 러시아 소설을 읽다보면 느끼는 어려움과 동일한 건데, 러시아 작품의 경우 특유의 이름 파악의 어려움에 직면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갈매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꼰스딴찐 가브릴로비치 뜨레쁠례프˝를 예로 들자면,

꼰스딴찐(이름),  가브릴로비치(부칭), 뜨레쁠례프(성) 인데, 작품에서는 아래와 같이 4가지로 불리거나 표현된다.

1. 뜨레쁠례프 : 희곡 대사명
2. 꼬스짜 : 가족 등 친한 사람이 부르는 애칭
3. 꼰스딴찐  가브릴로비치 : 제 3자가 부르는 일반적인 표현
4. 꼰스딴찐 : 이것도 친밀한 표현

여기에 가족이나 형제자매 등 이름이 비슷한 또다른 인물이 등장하면 혼란은 증가한다.

이러한 점을 사전에 인지하고 희곡과 러시아 작품 읽으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한번 적어봤다.
(쓰고 보니 다른 분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두가 너무 길었는데 이번에 읽은 <벚꽃 동산>은 체호프의 희곡 6편이 실린 작품으로, 내가 읽은 체호프의 세번째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별 아홉개~!! 웃음과 사랑과 풍자가 가득한 작품으로 체호프의 단편을 좋아하거나 희곡을 좋아하는 사람 모두 만족할만한 작품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은 <청혼>, <어쩔 수 없이 비극 배우>, <기념일>, <갈매기>, <바냐 아저씨>, <벚꽃동산>  여섯 작품이다.

앞의 세 작품은 희극적인 희곡으로 아주 짧지만 연극을  보는 재미를 주는 단막 웃음극 이다.


<청혼>

이웃집 여인에게 청혼하기 위해 방문한 남자. 하지만 땅의 소유와 어느 집 개가 더 우수하냐는 문제가 언급되자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싸우게 되는데, 어느새 자기가 방문한 목적도 잊은채 화를 내며 돌아선다. 남자는 과연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비극 배우>

직장에서 치이고 집안에서 치이는 한 남자가 친구집에 방문하여 친구에게 신세한탄을 하는 이야기. 그는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지만 친구 역시 위안이 되지 못하는 이야기. 남자는 과연 비극배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기념일>

한 신용 조합에서 경리로 일하는 남자. 그는 조합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댓가는 보잘것 없고, 그의 노력은 모두 대표이사의 공이 된다. 지금도 그는 작성하고 있는 보고서의 기한을 맞추기 위해 열일중이다. 하지만 계속 그의 일을 방해하는 요인이 나타난다. 대표이사의 말 걸기, 대표이사 아내의 요란스러운 방문,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방문하여 떼를 쓰는 일반인까지. 결국 폭발한 남자는 돌아버리게 되고 난동을 피운다. 남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여기까지 언급한 세 작품은 정말 짧은 단막극이고, 아래의 세 작품은 어느정도 분량이 있는 희곡으로, 코메디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내포하는 의미는 다소 진지하고 다 읽고 나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갈매기>

희곡 작가를 희망하는 청년인 ˝뜨레쁠례프˝에게는 어머니이자 아름다운 여배우인 ˝아르까지나˝,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고 그의 희곡을 연기하는 ˝니나˝가 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에게는 젊고 유능한 작가인 ˝뜨레고린˝이라는 애인이 있었고, 어머니는 아들인 ˝뜨레쁠례프˝에게 대단히 인색하며, 아들의 재능을 무시한다.

˝뜨레쁠례프˝는 어머니와 지인들 앞에서 자신의 연극을 선보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를 무시하게 되고 그는 이예 상처를 받는다. 게다가 ˝니나˝는 그의 어머니의 정부인 ˝뜨레고린˝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화가난 ˝뜨레쁠례프˝는 갈매기를 죽여서 ˝니나˝에게 보여주면서 자신도 곧 죽을거라고 말한다.

그에게서 어머니와 사랑하는 사람인 ˝니나˝를 뺏아갔으며, 자기보다 재능이 훨씬 뛰어난 ˝뜨레고린˝에 대한 질투는 극에 달한다. 모든걸 뺏기고 자괴감밖에 느낄 수 없는 ˝뜨레쁠례프˝,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어머니와 ˝니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글을 쓴다. 하지만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직접 확인한 그는 자포자기의 상태가 된다.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지만, 모든 걸 잃어버린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주변사람은 모두 행복한데 나만 불행하면 얼마나 우울할까? 아직도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그녀를 떠난사람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걸 직접 듣는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주인공인 ˝뜨레쁠례프˝의 감정에 이입되어 책을 읽다보면 그의 슬픔이 그대로 느껴진다.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공감이 되고. 등장인물이 많고 분량도 적지 않지만 완전히 몰입하여 읽었다.



<바냐 아저씨>

이 단편 제목의 바냐는 본명이 ˝보이니쯔끼 이반 빼뜨로비치˝로, 예칭이 ˝바냐˝이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참 복잡하다. 퇴직한 교수인 ˝세례브랴꼬프˝는 첫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딸인 ˝소피아˝를 낳았다. 하지만 그녀는 죽고, 두번째 부인인 젊고 아름다운 ˝옐례나˝와 재혼한다.

제목인 ˝바냐 아저씨˝의 ˝바냐는˝ 첫번째 부인의 동생이다. 그런데 ˝바냐˝는 ˝옐례나˝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 그리고 ˝바냐˝는 ˝세례브랴꼬프˝ 가 한동안 없었던 그의 집에 살면서 그의 딸인 ˝소피아˝와 함께 그의 집안 업무를 한다. 이후 ˝옐레나˝ 부부가 돌아와서 이들은 함께 지내게 되는데 꼬이고 꼬인 관계, 사랑에 대한 감정도 꼬일대로 꼬여 있었기 때문에 점점 복잡한 상황이 연출된다.

게다가 ˝옐레나˝는 아름다운 외모로 모두 그녀에 대해 연정을 품지만, 딸인 ˝소냐˝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한다.

모두에게 사랑받은 여인이지만 이미 늙고 병에 걸린 남편 대한 사랑은 많이 식어버린  ˝옐레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그에 따른 질투, 자신의 업적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바냐˝, 친모를 잃고 아버지는 관심도 없고 단지 집안을 위해 일해왔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 당하는 ˝소피아˝ 등 어딘지 모르게 하나씩 결핍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벚꽃 동산>

이 책의 표제작인 ˝벚꽃 동산˝은 세상이 변해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재산을 소비하면서 살아가는 세 모녀가 결국은 자신의 고향이자 어린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는 ˝벚꽃 동산˝을 상실하게 되는 이야기 이다.

그렇게 소중했던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곳은 과연 소중했던 것이었을까? 그들 가족에게 벚꽃 동산은 어떤 의미였을까? 벚꽃동산을 잃어버리게 된 원인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그들은 사랑하는 벚꽃동산을 과거로만 남겨두게 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소중한 것은 결국 사라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벚꽃동산을 읽으면서 주인이었던 ˝라네프스까야˝에게 비난의 감정 보다는 오히려 많은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이 사라져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감정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아닌 걸 알면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그 안쓰러움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 해결책을 알고 있지만 그저 바라만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도 분명히 있다.



여섯편의 단편 줄거리를 모두 쓰려고 하다보니 글이 길어져서 가장 좋았던 벚꽃동산의 이야기를 많이 쓰지 못했다. 결론은 여섯 작품 모두 좋다. <벚꽃 동산>은 특히 좋았고, <갈매기>는 처음 읽었을 때는 이해가 잘 안됐지만 한번 더 읽고 감탄했다. (벚꽃 동산과 갈매기는 두번씩 읽었다.)



길게 쓰이고 자세히 설명되어야 하며 오래 생각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 있다. 반면 길이는 짧더라도 단어의 배치와 조합 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는 문장도 있다.  체호프의 문장이 바로 그런 문장이라 생각한다.

체호프의 문장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다 읽고나면 다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아련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래서 고전을 읽는 것이고, 이런 작품을 명작이라고 하나 보다. 역시 러시아는 정말 좋은 나라다. 스탈린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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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17 09:1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등 댓글 찜! !

새파랑 2021-07-17 09:43   좋아요 4 | URL
1등 🎁을 드리고 싶어요 ^^

반유행열반인 2021-07-17 09:5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물한살에 아는 언니 따라 가서 벚꽃 동산 연극을 봤었는데 놀랍게도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ㅋㅋㅋ언니가 아는 분이 배우셔서 커튼콜 끝나고 뵈러 갔는데 와 연극 분장은 진짜 진하다 하고 놀란 기억이랑 극장 앞 포차에서 어묵 사 먹은 거만 기억남 ㅋㅋㅋ

새파랑 2021-07-17 09:57   좋아요 5 | URL
벚꽃동산이 우리나라에서도 연극으로도 했었군요. 정말 보고 싶네요. 완전 부럽습니다~!! 전 도대체 전 스물한살에 뭘 한건지 😞

페넬로페 2021-07-17 15: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말 러시아인의 이름은 참 그렇죠~~
분량이 최소한 두 권정도 되어야 글이 끝나갈 무렵 겨우 이름을 분간할 수 있는데 이 책엔 6편이 들어있어 엄청 헷갈리겠어요. 체홉의 벚꽃동산과 갈매기가 유명한데 아직 못읽었어요.
올해 한 작품이라도 입문하고 싶어요~~

새파랑 2021-07-17 10:48   좋아요 5 | URL
벚꽃동산하고 갈매기가 유명한 작품이었군요~!! 저도 이 두 작품이 가장 좋더라구요 👍👍
이 작품에 등장인물들도 그런데다가 작품도 여섯편이어서 그런지 리뷰를 쓰면서 내용이 머리속에서 막섞이는 기분이 들었어요 😐

scott 2021-07-17 12: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체호프의 희곡 작품은 매년 가을 마다 국립극장에 연극을 올리는데
코로나로 언제 가능 할지 모르겠네요
몇년에 한번씩 현대카드와 엘지 아트 센터에서 러시아 거장 연출가들이 내한 공연 하는 작품들은
새로운 해석과 연출 무대 예술로 체호프의 극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유툽에 가면 다양한 체호프의 작품을 볼수 있어요

새파랑 2021-07-17 12:15   좋아요 5 | URL
스콧님은 연극까지 AI ~!! 정말 가서 보고 싶네요~!! 스콧님 덕분에 읽게 된 이책 완전 좋음 😊

붕붕툐툐 2021-07-17 12: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ㅎㅎ스탈린 의문의 1패.(물론 당해도 쌈..ㅋㅋㅋ) 저도 너무나 좋아하는 체홉의 희곡집 읽으셨군용~
이거 무대 올라가서 다같이 보러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새파랑님 이번 주도 희곡읽기 미션 클리어!!^^

새파랑 2021-07-17 13:05   좋아요 5 | URL
역시 희곡 천재 툐툐님은 읽으신 작품이군요~!! 저 이번주 희곡책 두권 읽었어요 😎

mini74 2021-07-17 22: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주요등장인물들을 저는 색칠하면서 읽어요. 근데 이게 또 문제더라고요. 다음에 읽을 때 아무 생각없이 칠한 빨간 색이 뭔가 등장인물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느낌 ㅎㅎ발음도 어렵네요 꼰수딴찐 ~~ 재미있겠어요. *^^*

그레이스 2021-07-17 18:53   좋아요 5 | URL
ㅎㅎ

새파랑 2021-07-17 21:52   좋아요 3 | URL
색칠까지 하시면서 읽는군요. 역시 다 나름의 방법이 있나보네요. 러시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언제나 어려운거 같아요 ㅠㅠ

희선 2021-07-18 00: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사람은 이름 외우기 힘들겠습니다 성은 여성과 남성이 다르기도 하더군요 그런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지... 여러 권 읽다보면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도 할까요 새파랑 님은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보셨으니 체호프 소설과 희곡 그렇게 힘들지 않게 만났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1-07-18 09:54   좋아요 2 | URL
많이 읽어봐도 여전히 어려운 부분은 있는거 같아요 ㅎㅎ 그래서 책 읽는 속도는 좀 느려지지만 왠지 더 흥미로운거 같아요. 해석하며 읽는 기분?😊
 

체호프는 단편도 잘쓰고, 희곡도 잘쓰네~! 멋진 단편을 읽는 기분으로 희곡을 읽었다. 너무 좋다. 안타까운 사랑과 인생의 이야기.






<바냐 아저씨>
나는 앉아 눈을 감고는, 이렇게 말이야, 생각하지. 백 년, 2백 년 후에 사는 사람들, 우리가 이렇게 그들을 위해 길을 냈는데, 그들이 우리를 좋게 기억해 줄까? 유모,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야.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더라도 신께서는 기억하실 겁니다.

(누군가는 기억해 줄 것이다...) - P151

과거는 하찮은 일에 바보같이 닳아 버렸다. 현재도 무섭도록 허망하다. 바로 이게 나의 삶이고 나의 사랑입니다. 그걸 어디로 치우고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내 감정은 구멍으로 기어든, 햇빛처럼 헛되이 사라집니다. 나 자신도 사라집니다.

(바나 아저씨가 느끼는 심정.) - P171

<벚꽃동산>
나는 내 돈 뿐만 아니라 남의 돈도 다루기 때문에 늘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고 삽니다. 그런데 일을 좀 해보면 정직하고 제대로 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따금 잠이 오지 않으면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느님, 당신은 우리에게 거대한 숲과 끝없는 벌판과 지평선을 주셨나이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들도 실제에 맞게 거인이 되어야 할 겁니다.

(러시아적인 스케일의 생각이 필요하다. 큰땅, 큰사람.) - P263

류보비 안드레예브나 :
진실이랴뇨? 당신은 진실이 어디에 있고 거짓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치 시력을 잃은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당신은 힘든 문제들을 모두 대담하게 해결하지만, 그건 당신이 젊고 또 자신의 문제로 고난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요? 당신은 용감하게 미래를 바라보지만, 그건 당신이 젊고 또 자신의 문제로 고난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요? 당신은 용감하게 미래를 바라보지만, 그건 현실이 당신의 젊은 눈에 가려서 무서운 것이 보이지 않고 예상되지도 않기 때문 아닌가요? - P276

알다시피 나는 여기서 태어났어요. 여기서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사셨죠. 이 집을 사랑합니다. 벚꽃동산이 없는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그러니 꼭 팔아야 한다면, 이 동산과 함께 나를 팔아요.

(과거 때문에 현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일까?) - P277

아냐 : 벚꽃 동산은 팔렸어요, 이제는 없어요. 이것은 사실, 사실리에요.그렇지만 울지 마세요, 엄마. 엄마에게는 생활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훌륭하고 순수한 영혼이 있잖아요...함께 이곳을 떠나요, 떠나요...이곳보다 더 화려한 새 동산을 만들어요. 새로운 동산을 보시면, 기쁨이, 깊고 편안한 기쁨이 엄마의 영혼에 깃들 거에요, 마치 석양의 태양처럼 미소짓게 될 거에요. 엄마! 우리 떠나요,

(뿔뿔이 흩어져 버린 그들 가족은 새로운 동산을 찾을 수 있을까?) - P288

<갈매기>
뜨레쁠례프 : 나는 외롭습니다.아무도 따뜻하게 감싸 주지 않지요. 땅 속데 갇혀 있는 듯 춥습니다. 그래도 무엇을 써도 온통 건조하고 냉담하고 우울합니다. 여기에 남아 줘요. 니나, 부탁합니다. 아니면 나와 함께 떠나요. - P142

뜨레쁠례프 : (슬프게) 당신은 당신의 길을 찾으셨군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군요. 하지만 나는 공상과 환상의 혼돈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누구에게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나에게는 신념도 없습니다. 소명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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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16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벚꽃 동산>에는 진짜 명문장이 있습니다.

˝인생은 아주 천박해. 원수라 해도 이런 인생을 권하고 싶지 않아.˝ (33쪽)



새파랑 2021-07-16 16:26   좋아요 0 | URL
이책 완전 좋아요 😭 이 문장도 찾아봐야 할거 같아요. 책은 새벽에 다 읽었어요 😊

scott 2021-07-16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낼 새파랑님
벚꽃 동산
리뷰 쓰신다에 한표 던짐 🤚🤚🤚🤚🤚

새파랑 2021-07-17 08:24   좋아요 1 | URL
리뷰는 어제 다 썼는데 불금이어서 퇴근 후에 책도 못읽고 북플도 못했어요 ㅜㅜ
스콧님 예측대로 오늘 리뷰 올림 😊 미래 예측 AI 스콧님~

희선 2021-07-17 0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편뿐 아니라 희곡도 마음에 드셨군요 희곡 여러 편 보셔서 즐거웠을 것 같네요 체호프 희곡은 짧은 것도 있더군요 그런 것도 무대에서 할 수 있을지... 짧은 거 여러 편 하면 될지...


희선

새파랑 2021-07-17 08:25   좋아요 2 | URL
ㅋ 정말 짧은 희곡 한편만 무대에서 하기에는 힘들거 같아요. 희선님 완전 예리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