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세월을 보낸다. 이때 도련님은 올라갈 적에 숙소마다 잠 못 이뤄, 보고지고 나의 사랑 밤낮으로 보고지고, 그리운 우리 사랑, 날 보내고 그리는 마음 속히 만나 풀리라. 날이 갈수록 마음 굳게 먹고 과거급제하여 외직으로 나가기를 바라더라. - P93
이때 몇 달 만에 신관 사또가 부임하니 자하골 변학도라 하는양반이라. 문필도 볼 만하고 인물 풍채 활달하고 풍류에 통달하여 외입 또한 좋아하되, 한갓 흠이 성격이 괴팍한 중에 가끔씩미친 듯이 날뛰는 증상을 겸하여 혹 실덕(德)도 하고 잘못 처결하는 일이 간간이 있는 것이라. 세상에 아는 사람은 다 고집불통이라 하겠다. 부하 관리들이 사또를 맞이하러 간다. "부하 관리들 대령이오." "이방이오." "감상 126)이오." - P94
사또 매우 기뻐 춘향더러 분부하되, "오늘부터 몸단장 바르게 하고 수청을 거행하라." "사또 분부 황송하나 일부종사(從事) 바라오니 분부시행못하겠소." 사또 웃으며 말한다. "아름답도다. 계집이로다. 네가 진정 열녀로다. 네 정절 굳은 마음 어찌 그리 어여쁘냐 - P109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요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라. 절개를 본받고자 하옵는데 계속 이렇게 분부하시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옵고 열녀불경이부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 P111
이때 회계 나리가 썩 나서 하는 말이, "네 여봐라. 어 그년 요망한 년이고, 사또 일생 소원이 천하의 일색(一色)이라. 네 여러 번 사양할 게 무엇이냐? 사또께옵서 너를 추켜세워 하시는 말씀이지 너 같은 기생 무리에게 수절이 무엇이며 정절이 무엇인가? 구관은 전송하고 신관 사또 영접함이 법도에 당연하고 사리에도 당연커든 괴이한 말 하지 말라. 너희 같은 천한 기생 무리에게 ‘충렬(忠烈)‘ 두 자가 웬말이냐?" - P111
춘향이 악을 쓰며 하는 말이, "유부녀 겁탈하는 것은 죄 아니고 무엇이오?" 사또 기가 막혀 어찌 하시던지 책상을 두드릴 제, 탕건이 벗어지고 상투가 탁 풀리고 첫마디가 목이 쉬어, "이년을 잡아 내리라." 호령하니 골방에서 수청들던 통인, "예." 하고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주루루 끄어내며 "급창" 156) "예." - P113
집장사령 161) 여쭈오되, "사또 분부 지엄한데 저만한 년을 무슨 사정 두오리까. 이년! 다리를 까딱도 하지 말라. 만일 움직이다가는 뼈가 부러지리라." 호통하고 들어서서는 구호에 발맞추어 서면서 춘향에게 조용히 하는 말이, "한두 대만 견디소. 어쩔 수가 없네. 요 다리는 요리 틀고 저다리는 저리 트소." "매우 쳐라." "예잇, 때리오." 딱 붙이니 부러진 형장 막대는 푸르르 날아 공중에 빙빙 솟아대뜰 아래 떨어지고, 춘향이는 아무쪼록 아픈 데를 참으려고 이를 복복 갈며 고개만 빙빙 돌리면서, "애고 이게 웬일이여." - P115
춘향이는 저절로 설움 겨워 맞으면서 우는데, "일편단심 굳은 마음은 일부종사하려는 뜻이오니 일개 형벌로 치옵신들 일 년이 다 못 가서 잠시라도 변하리까?" 이때 남원부 한량이며 남녀노소 없이 모두 모여 구경할 제 좌우의 한량들이, "모질구나 모질구나. 우리 골 원님이 모질구나. 저런 형벌이왜 있으며 저런 매질이 왜 있을까. 집장사령놈잘 보아 두어라. 삼문三門) 밖 나오면 패죽이리라." KA보고 듣는 사람이야 눈물 아니흘릴 자 있으랴. 둘째 매를 딱붙이니, - P117
"아무 데 살든지라니. 당신은 눈구멍 귓구멍 없나? 지금 춘향이가 수청 아니 든다 하고 형장 맞고 갇혔으니, 기생집에 그런열녀 세상에 드문지라. 옥결 같은 춘향 몸에 자네 같은 동냥치가추잡한 말 하다가는 빌어먹지도 못하고 굶어 뒤지리. 올라간 이도령인지 삼 도령인지 그놈의 자식은 한번 간 후 소식이 없으니, 사람이 그렇고는 벼슬은커녕 내 좆도 못 되지." "어 그게 무슨 말버릇인고?" "왜? 뭐 잘못되었나?"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아무리 남이라고 하지만 말버릇이 너무고약한고." "자네가 철모르는 말을 하니 그렇지." 수작을 끝내고 돌아서며, - P154
하직하고 한 모퉁이를 돌아드니 아이 하나 온다. 지팡이 막대끌면서 시조(時調) 절반, 사설(辭) 절반 섞어 하되, "오늘이 며칠이고, 천릿길 한양성을 며칠이나 걸어 올라가랴. 조자룡이 강을 넘던 청총마가 있었다면 하루만에 가련마는 불쌍하다. 춘향이는 이서방을 생각하여 옥중에 갇히어서 목숨이경각이라. 불쌍하다. 몹쓸 양반이 서방은 한번 간 후 소식을 끊어버리니 양반의 도리는 원래 그러한가." - P155
지난 해 어느 때에 님을 이별하였던고 엊그제 겨울눈이 내리더니 또 가을이 되었네 미친바람 깊은 밤에 눈물이 눈 같으니 어찌하여 남원 옥중의 죄수가 되었는고
거세하시군별첩(去歲何時君別妾) 고작이동설우동(已冬雪又動秋)라. 광풍반야누여설(狂風半夜淚如雪)하니 하위남원옥중수(何爲南原獄中囚)라. - P158
금준미주(金樽美酒)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着)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이 글 뜻은, - P175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 P176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르다 목 들여라." 관청색(官廳色)은 상을 잃고 문짝을 이고 내달으니, 서리, 역졸 달려들어 후닥딱. "애고 나 죽네." - P179
"기생 월매의 딸이온데 관청에서 포악한 죄로 옥중에 있삽내다." "무슨 죄인고?" 형리 아뢰되, 본관사또 수청 들라고 불렀더니 수절이 정절이라 수정 아니들려 하고 사또에게 악을 쓰며 달려든 춘향이로소이다." 어사또 분부하되, "너 같은 년이 수절한다고 관장(官長)에게 포악하였으니 살기를 바랄쏘냐. 죽어 마땅하되 내 수청도 거역할까?" 춘향이 기가 막혀, "내려오는 관장마다 모두 명관(官)이로구나. 어사또 들으시오. 층암절벽 높은 바위가 바람 분들 무너지며, 청송녹죽 푸른나무가 눈이 온들 변하리까. 그런 분부 마옵시고 어서 바삐 죽여주오." 하며, "향단아, 서방님 어디 계신가 보아라. 어젯밤에 옥 문간에 와계실 제 천만 당부하였더니 어디를 가셨는지 나 죽는 줄 모르는가." 어사또 분부하되, "얼굴 들어 나를 보라." - P181
이때 어사또는 좌도와 우도의 읍들을 순찰하여 민정을 살핀후에, 서울로 올라가 임금께 절을 하니 판서, 참판, 참의들이 입시하시어 보고서를 살핀다. 임금께서 크게 칭찬하시며 즉시 이조참의 대사성을 봉하시고 춘향으로 정렬부인을 봉하신다. 은혜에 감사드리고 물러나와 부모께 뵈오니 성(聖恩)을 못 잊어 하시더라. 이때 이조판서 호조판서,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 다 지내고 퇴임한 후에 정렬부인으로 더불어 백년동락(百年同樂)할새, 정렬부인에게 삼남삼녀(三男三女)를 두었으니 모두가 총명하여 그 부친보다 낫더라. 일품 관직이 대대로 이어져 길이 전하더라.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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