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 세종대왕께서 즉위하신 지 십오 년 되는 해, 홍화문(弘化門) 밖에 한 재상이 있었다. 성은 홍이요 이름은 문이니, 사람됨이 청렴강직(淸廉剛)하여 덕망이 높은 당대의 영웅이었다. 일찍 벼슬길에 올라 직위가 한림(翰林)에 이르러 그 명망이 조정에서 으뜸이었다. 임금께서 그 덕망을 높이 여기셔서벼슬을 올려 이조판서와 좌의정에 봉하셨다. 이에 승상이 감동하여 충성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를 갚으니, 사방에 일이 없고 도적이 없으며 연이어 풍년이 들고 나라가 태평하였다. - P9
잠에서 깨어 깨달으니 평생에 한번 올 대몽이었다. 마음속으로 ‘반드시 군자를 낳으리라.‘고 생각하여, 즉시 내당에 들어가 몸종을 물리치고 부인을 이끌어 취침코자 하였다. 부인이정색하고 말하였다. "승상은 한 나라의 재상입니다. 그 체면과 위상이 높으시거늘 한낮에 정실에 들어와 저를 노류장화(路柳墻花) 대하듯 하시니 재상의 체면이 어디에 있습니까?" 승상이 생각해도 부인의 말이 당연하지만, 그 좋은 꿈을 헛되어 할까 두려워 꿈 이야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연이어 간청하였다. 그러나 부인이 옷을 떨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 P12
주위가 고요하고 그윽한 틈을 타 춘섬을 이끌고 원앙지락(鴛鴦之樂)"을 이루니, 적잖이 화는 풀렸으나 못내 마음에 걸려하였다. - P13
춘섬이 비록 태생은 천하나 재주와 덕행이 순박하고 곧은지라, 뜻밖에 승상의 위엄으로 가까이 두시니 감히 어기지 못하고 순종한 후로는 그날부터 중문 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행실을 닦으며 지냈다. 과연 그달부터 태기가 있어 열 달을 채우자,거처하는 방에 오색구름이 영롱하며 향기가 기이한데, 진통끝에 아기를 낳으니 용모 뛰어난 사내아이였다. 삼 일 후에 승상이 들어와 보고 한편 기뻐하였으나 천한 몸에서 나게 된 것을 아까워하였다. 아이 이름을 길동이라 하였다. - P13
부인이 그 까닭을 물으니, 승상이 두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부인이 전날 내 말을 들었으면 이 아이가 부인 몸에서 태어났을 것이니, 어찌 천생이 되었겠소?" - P13
이제야 꿈꾼 이야기를 들려주니, 부인이 실망하고 슬퍼하며말하였다. "이것 또한 하늘이 정한 운수이니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하오리까." - P14
2.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다 - P15
"대장부가 세상에나매 공맹(孔孟)의 도학(道學)을 배워, 나가서는 장수가 되고 들어와서는 재상이 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대장의 도장을 허리에 차고 대장의 단상에 높이 앉아 천병만마(千兵萬馬)를 지휘하여, 남으로는 초나라를 치고북으로는 중원을 평정하며 서로는 촉나라를 쳐 업적을 이룬 후에 - P15
얼굴을 기린각(閣)에 빛내고, 이름을 후세에 전함이 대장부의 떳떳한 일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없다‘고 하였는데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세상 사람이 가난하고 천한 자라도 부형(兄)을 부형이라하는데, 나만 홀로 그러지 못하니 내 인생이 어찌 이러할까." - P16
"소인이 대감의 정기를 타 당당한 남자로 태어났으니 이만큼 즐거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평생 서러운 것은 아비를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못하는 것이니, 위아래 종들이 다 저를 천하게 보고, 친척과 오랜 친구마저도 저를 손가락질하며 아무개의 천생이라 이릅니다. 이런 원통한 일이 또어디에 있겠습니까?" - P16
"어머니는 소자와 전생에 연분이 있어 이 세상에서 모자가되었으니, 낳아 길러 주신 은혜가 하늘과 같이 크고 넓습니다. 남아(男兒)가 세상에 나서 입신양명(立身揚名) 하여 위로 제사를 받들고, 부모의 길러주신 은혜를 만분의 하나라도 갚아야할 것인데, 이 몸은 팔자가 사납고 복이 없어 천생이 되어 남의천대를 받으니, 대장부가 어찌 구차하게 근본을 지켜 후회를하겠습니까? 이 몸은 당당히 조선국 병조판서 도장을 차고 상장군이 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산중에 들어가 세상 영욕(榮辱)을 잊고 살려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어머니는 자식의 사정을 살피셔서 아주 버린 듯이 잊고 계시면, 뒷날 소자 돌아와은혜를 갚을 날이 있을 것이니 그렇게만 짐작하고 계십시오." - P17
‘이놈이 본래 평범한 놈이 아니니, 또 천생(生)임을 한탄하여 만일분에 넘치는 마음을 먹으면, 대대로 나라에 충성하고은혜에 보답하였던 일이 쓸 데 없어지고 큰 화(禍)가 우리가문에 미칠 것이로다. 미리 저를 없애어 가문에 닥칠 화를 덜고자 하나 차마 인정에 못할 일이로구나‘ - P23
이때 투자는 비수를 들고 길동이 거처하는 별당에 가서 몸을 숨기고 길동이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까마귀가 창 밖에 와서 울고 가기에 속으로 크게 의심하여 말했다. "이 짐승이 무엇을 알기에 천기(天機)를 누설하는가? 길동은 실로 평범한 사람이 아니구나 반드시 뒷날 크게 쓰이리라." 그냥 돌아가려고 하다가 돈에 대한 욕심이 생겨 제 몸 생각을 못하였다. - P26
칼을 들어 머리를 베어특자의 주검 있는 쪽으로 던졌다.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여 바로 대감 앞에 나아가 이 변괴를 아뢰고 초낭을 베려하다가, 홀연 생각하기를 ‘남이 나를 저버릴지언정 어찌 내가 남을 저버리겠는가. 또 ‘내가 잠깐의 울분으로 어찌 인류(人)을 끊겠는가‘ 하고, 바로 대감 침소에 나아가 뜰아래 엎드렸다. 이때 대감이 잠에서 깨어 문 밖에 인기척이 나는 것을 이상히 여겨 창을 열고 보니, 길동이 뜰아래 엎드렸거늘 불러 말했다. "지금 밤이 이미 깊었거늘 네 어찌 자지 아니하고 무슨 까닭으로 이러느냐?" - P29
"아버지께서 오늘 저의 오랜 소원을 풀어 주시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으니 바라건대 아버지께서는 만세무강(萬世無疆)하소서." - P32
"소자가 이제 목숨을 구하고자 집을 떠납니다. 어머니는 불효자를 생각지 마시고 계시면 소자 돌아와뵐날이 있을 것이니, 달리 염려 마시고 삼가 조심하여 천금같이 귀한 몸을 보살피십시오." - P32
4. 활빈당 두령으로, 해인사와 함경 감영을 털다 - P36
‘내가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어 우연히 이곳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는 나로 하여금 하늘이 그렇게 시키신 것이로다. 이 내몸을 도적 소굴에 맡겨남아의 뜻과 기개를 펴 보리라.‘ 길동이 무리 가운데 나아가 이름을 밝히며 말했다. "나는 경성 홍승상의 아들인데, 사람을 죽이고 목숨을 지키고자 도망하여 사방을 돌아다니다가 오늘날 하늘의 뜻으로우연히 이곳에 이르렀으니, 내가 푸른 숲의 호걸 중 으뜸 장수가 되는 것이 어떻겠소?" - P37
용이 얕은 물에 잠기어 있으니 물고기와 자라가 쳐들어오고, 범이 깊은 숲을 잃으니 여우와 토끼에게 조롱을 당하는구나. 오래지 아니해서 풍운(風)을 얻으면 그 변화를 헤아리기어려우리로다. - P37
"우리가 이제는 백성의 재물은 추호도 건드리지 말고, 각 읍수령과 방백(方伯)들이 백성에게서 착취한 재물을 빼앗아 혹불쌍한 백성을 구제할 것이니, 이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活貧黨)‘이라 하리라." - P45
"함경 감영에서 군기와 곡식을 잃고 우리 종적은 알지 못하므로 그사이에 애매한 사람이 많이 다칠것이다. 내 몸이 지은 죄를 애매한 백성에게 돌려보내면 사람은 비록 알지 못할지라도 천벌이 두렵지 아니하겠는가?" 길동이 즉시 감영북문에 써 붙였다.
창고의 곡식과 군기를 훔친 이는 활빈당 장수홍길동이라. - P47
하루는 길동이 생각하였다. ‘내 팔자가 무상하여 집에서 도망나와 몸을 숲속 도적 소굴에 의지하게 되었으나 본심이 아니다.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위로 임금을 도와 백성을 구하고 부모에게 영화를 드려야 할것이나, 남의 천대를 분히 여겨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차라리이를 기회로 삼아 큰 이름을 얻어 후세에 전하리라.‘ - P48
계단 아래 한 사람이 나서며 아뢰었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한 무리의 병사를 주시면 홍길동이란 큰 도적을 잡아 전하의 근심을 덜어 드리겠습니다." 모두가 보니 이는 곧 포도대장 이업이었다. 임금께서 기특하게 여겨 정예 군사 일천 명을 주시니, 이업은 곧바로 임금께하직 인사를 올리고 그날 즉시 출발하였다. 과천을 지나서는각각 군사를 나누어 떠나보내며 약속을 정하였다. "너희는 이러이러한 곳을 지나 아무 날 문경으로 모여라." 이업 자신은 변장한 차림새로 며칠 후에 한 곳에 이르렀다. - P51
"허망한 일이로다! 삼가입밖에 내지 말라." - P56
길동 등이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불도(佛道)라 하는 것이 세상을 속이고 백성을 혹하게 하여, 땅을 갈지 아니하고 백성의 곡식을 빼앗으며, 베도 짜지 아니하고 백성의 의복을 속여 입으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머리털과 피부를 훼손하여 오랑캐 모양을 숭상하며, 임금과 아비를 버리고 세금을 내지 않으니 이보다 더 불의(不義)한 일이없사옵니다. 군기를 가져간 이유는 신(臣) 등이 산중에 있으면서 병법을 익히다가 만일 난세가 오면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임금을 도와 태평을 이루고자 함이오며, 불을 놓되능이 있는곳에는 불길이 가지 않게 하였사옵니다. 신의 아비가 대대로나라의 녹을 받고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여 만분의일이라도 갚지 못할까 염려하거늘, 신이 어찌 외람되게 분에 넘는 마음을 두겠사옵니까? 죄를 따져도 죽음까지 이르지는 않을 텐데, 전하께서 조정의 신하들이 헐뜯는 소리만 들으시고이렇듯 크게 노하시니 신이 형벌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먼저 스스로 죽사오니 노여움을 더시기 바라옵니다." 여덟 길동이 한데 어우러져 죽었다. 주위에서 이상하게 여겨 자세히 보니 진짜 길동은 간 데 없고 허수아비 일곱뿐이었다. 임금께서 길동의 속임수를 보고 더욱 노하셔서 경상 감사에게 공문을 내려 길동을 잡을 것을 더욱 재촉하셨다. - P66
"이놈의 재주는 인력으로 잡지 못하겠구나. 민심이 이렇듯요동하고 그 재주가 기특하도다. 차라리 그 재주를 취하여 조정에 두어야겠다." 병조판서 직책을 내어 걸고 길동을 부르시니, 길동이 가마를 타고 하인 수십 명을 거느리고 동대문으로 들어왔다. 병조하인이 호위하여 대궐 아래에 이르니 길동이 엄숙히 절하고 아뢰었다. "천은이 망극하여 분에 넘치는 은혜로 대사마(大司馬)》에오르니, 망극한 신의 마음이성은을 만분의 일도 갚지 못할까황공하옵니다." 길동이 돌아갔다. 이후로는 길동이 다시 소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었다. 임금은 각도에 길동을 잡으라고 내린 명을 거두셨다. 39) 병조판서의 별칭. - P73
근처에 한 나라가 있으니 이름은 율도국이었다. 중국을 섬기지 아니하고 수십 대를 자손 대대로 이어 오며 널리 덕으로다스리니,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넉넉하였다. 길동이 군사들과 의논하며 말했다. "우리가 어찌 이 섬만 지키며 세월을 보내겠는가? 이제 율도국을 치고자 하니 각각 소견이 어떠한가?" 모든 사람이 즐겨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P94
의병장 홍길동은 삼가 글월을 율도왕좌하(座下)에 드리오니, 나라는 한 사람이 오래 지키지 못하는 것이오. 이런 까닭으로 은나라의 시조성탕은 하나라의 걸왕을 치고 주나라의 시조 무왕은 은나라의 주왕를 쫓아냈으니, 다 백성을 위하여 어지러운 시대를 평정했던 것이오. 이제 의병 이십만을 거느려 칠십여 성을 항복시키고 이에 이르렀으니, 왕은 대세를 능히 감당할 만하면 자웅을 겨루어 보고, 세력이 딸리면 일찍 항복하여 하늘의 명을 받으시오. 다시 위로하여 말했다. 백성을 위하여 쉬 항복하면 한 지방의 벼슬을 맡겨 그대의사직(社稷)을 망하게 하지는 않겠소. - P95
"우리 대왕은 선도(仙道)를 닦아 백일승천(白日昇天)하셨다." - P105
아름답구나! 길동이 행한 일들이여! 자신이 원한 것을 흔쾌하게 이룬 장부로다. 비록 천한 어미 몸에서 태어났으나 가슴에 쌓인 원한을 풀어버리고, 효성과 우애를 다 갖춰 한 몸의운수를 당당히 이루었으니, 고(古)에 희한한 일이기에 후세 사람에게 알리는 바이다. - P105
"소인이 평생 서러워하는 바는, 소인도 대감의 정기를 받아당당한 남자가 되었으니, 아버님이 낳으시고 어머님이 기르신은혜가 깊은데, 그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그 형을 형이라못하니,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길동이 눈물을 흘려 적삼을 적셨다. 공이 다 듣고 나서 비록 길동이 불쌍하지만, 그 뜻을 위로하면 마음이 방자해질 것을 염려하여 크게 꾸짖었다. "재상 집안에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이 너뿐이 아니거늘, 네 어찌 방자함이 이와 같으냐? 앞으로 이런 말을 또다시 하면 내 정녕 너를 눈앞에 두고 보지 않겠느니라." - P112
"옛날 장충의 아들 길사(吉山)은 천한 소생이로되, 열세살에 그 어미를 이별하고 운봉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아서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전하였으니, 소자도 그를 본받아 세상을 벗어나려 합니다. 어머니는 안심하시고 뒷날을 기다리십시오. 근래 곡산 어미의 행색을 보니 상공의 총애를 잃을까 ...
2) 장길산 17세기 도적떼의 우두머리, 홍길동전』이 세종대왕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길동이 17세기에 활약한 장길산을 흠모하는 것은 시간적 오류임. - P113
"나도 너의 품은 한을 짐작하니, 오늘부터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르는 것을 허락하겠다." 길동이 다시 절을 하며 말했다. "소자의 가슴 절절한 한을 아버지께서 풀어 주시니 죽어도여한이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아버지께서는 만수무강하소서." - P121
이후로 길동은 스스로 호를 활빈당(活貧黨)이라 짓고 조선팔도를 다니며 각읍수령이 의롭지 못하게 모은 재물은 빼앗고, 지극히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은 도와주었다. 백성을 해치지 아니하고 나라에 속한 재물은 추호도 건드리지 않았다. 이윽고 도적들이 길동의 뜻한 바를 알고 따랐다. - P126
아무날 돈과 곡식을 도적질한 자는 활빈당의 우두머리 홍길동이라. 하기에 함경 감사가 군사를 출동하여 그 도적을 잡으려고하였다. - P127
요사스러운 신하 홍길동은 아무리 해도 잡히지 않을 것이나, 병조판서 벼슬을 내려주시면 잡히겠나이다. 임금께서 그 방을 보시고 신하들을 모아서 의논하시니, 신하들이 말했다. "이제 도적을 잡으려고 하다가 잡지 못하고 도리어 병조판서 벼슬을 내리는 것은 이웃 나라에 얼굴을 못 들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이옵니다." - P141
"길동의 신기한 재주는 고금(古今)에 드물도다. 길동이 지금조선을 떠나겠다고 하였으니, 다시는 폐를 끼칠 일이 없을 것이다. 길동이 비록 수상하기는 하나 일단 장부다운 호쾌한 마음을 가졌으니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팔도에 사면의 글을 내려 길동 잡는 일을 거두셨다. - P143
차설, 율도 왕이 삼년상을 마치니 대비가 이어서 세상을 떠났고 역시 아버지의 무덤 옆에 안장한 후 삼년상을 마쳤다. 왕이 삼자 이녀를 낳으니, 장자와차자는 백 씨 소생이고, 삼자와 차녀는 조 씨 소생이었다. 장자 현으로 세자를 삼고 나머지는 다 군(君)으로 봉하였다.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삼십 년만에 갑자기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니 나이 일흔두 살이었다. - P154
왕비가 이어서 죽으니 선능(先陵)에 안장한 후, 세자가 즉위하여 대를 이어 태평 성세를 누렸다. - P155
『홍길동전』은 최초의 국문소설이자 영웅소설이고 사회소설이다. 이 작품은 연산군 시절 실존 인물인 도적떼의 두령 홍길동을 소재로 하여 당시 사회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 준다. 이작품의 지은이가 허균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지만, 허균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다수 의견이다. - P157
허균(許筠, 1569~1618)은 조선이 낳은 천재 중의 천재다. 허균이 탁월한 시문을 지은 것은 그의 뛰어난 자질에 덧붙여 조선 중기 문화적 성취가 그 가문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화담 서경덕(徐敬德, 1498~1546)의 수제자였고, 삼당시인(詩人)인 손곡 이달, 명필 한석봉,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등이 자주 그의 집을 드나들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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