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혜성. 마르틴 그로스만Martin Grossman이 독일 그로마우Gromau에서 1976년 2월에 찍은 사진이다. 이날 긴 혜성꼬리가 하늘을 휘황하게 장식했다. 혜성의 꼬리는 태양에 뿜어져 나오는 양성자와 전자가 얼음 등으로 구성된 혜성의 핵에서미세 고체 입자와 기체를 밀어내기 때문에 생긴다. 이 사진에서 혜성의 핵은 이미 지평선을 넘어갔지만 꼬리는 여전히 하늘에 있다. - P162

4. 천국과 지옥

나는 아홉 개의 세계를 기억한다.
스노리 스틸러슨이 쓴 아이슬란드 고대 신화집 에다. 1200년경

나는 죽음, 세상을 깨뜨리는 자가 되었노라.
<바가바드기타>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갈림길에는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문이나란히 서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 P163

결국 얼마나 긴시간 척도로 변화를 보느냐에 따라 ‘평온과 고요의 지구‘가 ‘격동과 소란의 행성‘이 될 수도 있다. 인생 100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라도 100만 년이라는 긴 세월에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20세기에도 아주 기이한 자연 현상이몇 건 일어났다. - P164

세계는 이 사건을 통해서 확실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즉 지구와근접 천체의 충돌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면, 현대 지구 문명이 엉뚱한 이유 때문에 핵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 P170

핼리의 1066년 출현은 노르만 인들이  기록해 놓았다. 그들에게 혜성의 출현은 어느왕국인가가 반드시 멸망하리라는 조짐이었으니, 어찌 보면 혜성이 정복왕 윌리엄 William the Conqueror을 북돋아 영국을 침략하게 한 장본인인 셈이다. 이 혜성의 출현은 바이외 태피스트리 Bayeux Tapestry에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 P175

1446년의 혜성은 역시 핼리혜성이었는데 유럽의 기독교도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기독교도들은 혜성은 신께서 보내시는 것이니 곧 신께서 터키 편에 서계신다는 뜻이 아닐까 걱정했던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 터키 군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기 때문이다. - P175

드디어 1707년에 이르러서 그의 친구 에드먼드 핼리 Edmund Hallely가1531년, 1607년, 1682년에 출현했던 혜성들이 모두 같은 혜성으로서76년마다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계산으로 밝혀냈다. 동시에 이 혜성이1758년에 다시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혜성은 때맞춰 나타났고 그래서핼리 사후에 이 혜성은 "핼리 혜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핼리혜성은 긴 인간사에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1986년에 다시 돌아오게 되면 최초의 혜성 탐사선의 표적이 될 것이다.

지구와 작은 혜성 조각이 충돌하면퉁구스카 사건과 같은 폭발이 일어나는데, 이런 사건은 대략 1,000년에한 번꼴로 발생한다. 그러나 핼리 혜성과 같이 지름이 대략 20킬로미터수준에 이르는, 비교적 커다란 혜성과 충돌할 확률은 기껏해야 10억년에 한 번꼴이다. - P183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제시한 것만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제시한가설들 중에도 훗날 틀렸다고 밝혀지는 것이 많다. 그러나 과학은 자기검증을 생명으로 한다. 과학의 세계에서 새로운 생각이 인정을 받으려면 증거 제시라는 엄격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 P195

벨리코프스키 건의 가장 서글픈 면은 그 가설이 틀렸다거나 그가 이미 입증된 사실을 간과해서가 아니라, 자칭 과학자라는 몇몇 이들이 벨리코프스키의 작업을 억압하려 했던 데에 있다.  - P195

과학은 자유로운 탐구 정신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했으며 자유로운 탐구가 곧 과학의 목적이다. 어떤 가설이든 그것이아무리 이상하더라도 그 가설이 지니는 장점을 잘 따져 봐 주어야 한다.
- P195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을 억압하는 일은 종교나 정치에서는 흔히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다. 이런자세의 과학이라면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 P195

우리는 어느 누가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할지 미리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자기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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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쓰 시리즈

01) 말하는 검──보통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는,
02) 흔들리는 바위──신비한 힘을 가진 소녀 오하쓰가,
03) 미인──기이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유미노스케 시리즈

04) 얼간이──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에서 생긴,
05) 하루살이──말썽을 해결하는 얼간이 무사 헤이시로와,
06) 진상──천재 미소년 유미노스케 콤비의 사건 해결집.


미시마야 시리즈

07) 흑백──‘우리는 왜 사랑과 인간관계에서
08) 안주──상처를 입고 또 상처를 주는가’
09) 피리술사──라는 운명철학적 질문을
10) 삼귀──괴담이라는 소재로 증폭시켜,
11) 금빛 눈의 고양이──단숨에 완성한 이야기로
12) 눈물점──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자신의 ‘라이프워크’
13) 영혼통행증──즉 필생의 과업으로 삼은 시리즈!


기타기타 시리즈

14) 기타기타 사건부──수수께끼와 괴담을 쫓는 문고상의 활약
15) 자오선(2022년 가을 출간예정)


바쁠 때 잠깐씩 읽으면 좋은 작품집

16) 인내상자──결코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에 얽힌 이야기.
17) 신이 없는 달──달력의 열두 달에 얽힌 열두 편의 기담.
18)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일곱 가지 불가사의.
19) 맏물 이야기──사건의 실마리를 요리에 숨겨놓은 소설.
20) 괴이──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임을 알려주는 이야기.
21) 그림자밟기──현대에서도 볼 수 있는 애틋한 사연들.


긴긴 밤에 읽으면 좋은 장편소설

22) 메롱──인간미 넘치는 다섯 귀신들의 한바탕 소동극.
23) 괴수전──봉준호의 <괴물>에서 힌트를 얻은 괴수 대활극.
24) 외딴집──미야베 미유키 에도 시대물의 끝판왕.

-알라딘 eBook <인내상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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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장편을 통틀어 가장 귀여운 귀신들이 단체로 출동하는 소설 『메롱』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숨기는 일이 한두 가지는 있는 법이고, 두 가지가 있으면 세 가지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세 가지가 있으면 더 많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지. 자, 오린 너는 이제 그만 자렴. 내가 여기에 있으면 아무리 무더워도 시원하게 잘 수 있을 테니 부채는 필요 없을 거야. 뭣하면 자장가도 한 소절 들려주마.”

이 대사를 살짝 인용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싶네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있으면 아무리 무더워도 시원하게 잘 수 있으니 부채는 필요 없지, 라고.


인내상자 | 미야베 미유키 저,이규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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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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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제국주의에 영합해 대중을 선동한 고고학자와 달리 전쟁 이후 참담한 사회 현실속에서 고고학 본연의 길을 걸어 그 학문적 성취를 이룬 고고학자도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88년에 제작한 <이웃집 토토로>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시골로 이사한 고고학자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두 자매가 숲속의 요정 토토로와 만나는 이야기를 믿고 동조해주는 유일한 사람인 아버지의 직업은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고고학자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 아버지는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다. 감독의 연출 노트에 따르면 아버지는 ˝젊은 고고학자로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면서 번역 작업으로 어렵게 생활한다. 지금은 혁명적인 새로운 학설을 담은 논문을 집필하기 위하여 강의할 때 이외에는 서재에 틀어 박혀 있다˝고 되어 있다.
감독이 모델로 삼은 실제 인물은 후지모리 에이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서 후지모리를 알았고, 평소에도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고 한다. 옆에서 지켜본 후지모리가 전쟁의 고통을 이겨내며 고고학을 연구하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서 이러한 설정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후지모리가 생각하던 혁명적인 설은 무엇일까.
당시까지 일본에서는 한국의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2300년 전 야요이시대가 되어서야 쌀농사를 짓는 농경이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지모리는 그보다 훨씬 이른3500년 전인 죠몽시대의 중기에 이미 농사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학계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독창적인 설을 주장한 후지모리인지라 실제 삶도 그리 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독창적인 가설 때문에 대학에 자리를 얻지 못하고 평생을 재야에서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후지모리는 1930년대부터 또 다른 일본 고고학계의 민간영웅인 모리모토 로쿠지와.
함께 ‘도쿄고고학회‘를 창시했다. 하지만 동료였던 모리모토는 어렵사리 떠난 파리 유학중에 큰 병을 얻어서 요절했고, 후지모리는 홀로 고군분투했다. 고생 끝에 그는 1941년에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독자적인 고고학 잡지를 간행하는 등 활약했다. 하지만 곧바로불어닥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태평양 전쟁으로 전쟁터에 끌려간 후지모리는 다행히 살아남아 일본의 패망을 보르네오섬에서 맞이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건강을 크게 해쳤고, 시간강사와 헌책방을 전전하다가 1973년에 세상을떴다.
하지만 일본의 많은 고고학자들은 그를 잊지 않았다. 재야에서 꾸준히 활동하던 그의모습에 일본인들은 열광했고, 그래서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고고학자로 꼽힌다. 지금도재야의 고고학자들을 위해 ‘후지모리 에이지상‘이 제정되어 매년 수여되고 있다.
전쟁 이후의 참혹한 상황을 에둘러 표현한 영화인 <이웃집 토토로>에 그를 등장시킨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과 전쟁이라는 탐욕 대신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을 그리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였던 것 같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숲속에 텃밭을 만들고 어린 자매가 토토로와 도토리를  주고받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바로 후지모리가 그린 죠몽시대 농사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후지모리는 죠몽시대에는 쌀 대신에 도토리를 채집하고 수수 같은 잡곡을  텃밭에서 경작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후지모리의 가설은 2000년대에 들어서 학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꽃가루 분석을 비롯한 여러 방법이 계속 개발되면서 죠몽시대에 원시적이나마 농사를 지었다는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후지모리의 가설은 당시 부족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유물에 대한 통찰력과 유적의 위치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나온 것이기에 더욱 돋보인다.
에가미 나부오와 후지모리 에이지는 전쟁을 겪으며 살았던 동시대의 고고학자였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달랐다. 한 명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부역했고, 또 한 명은전쟁으로 인해 그의 학문이 빛을 발하지 못했던 불운한 고고학자였다. 각종 영화나 매체에서 주로 비추어지는 모습은 에가미와 같이 전쟁과 함께 사방을 다니면서 다른 나라의 유물을 찾는 모습이다. 하지만 실제 고고학의 가치를 실현하고 발전시킨 사람들은 후지모리와 같이 자신이 살던 자연 속에서 사소해 보이는 유물을 통해 진정한 과거의 모습을찾으려 했던 숨어 있는 고고학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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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7-22 0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재밌네요, 이 책 집에 있는데,,, 강인욱 책들은 사놓기만 하고 아직 못읽었어요.

대장정 2024-07-22 08:56   좋아요 2 | URL
저도 읽은지 몇년되서 기억나는건 별로 없는데 대충 훝어보다보니 괜찮은 구절들이 많더라구요.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고고학 이야기 중에서 가장 상큼하게 지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책이다!"

강인욱 교수는 고고학자로서 드물게도 유라시아를 전공으로 삼고 있다. 나는 우리인문 분야에 강인욱 교수 같은 폭넓은 시각의 현장 고고학자가 있음을 항시 든든하게 생각해 왔다. 그는 석사과정을 마친 뒤 곧바로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이후 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중국의 여러 유적지 발굴에 참여하고 이를 보고서와 저서로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그가 지난 20여 년간 발굴 현장에서 겪은 체험을 기록한일종의 고고학적 에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물을 통하여 과거의 삶을 복원하는고고학이라는 학문의 참 가치와 고고학자로서의 보람을 말함과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역시 유라시아 대륙의 일부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나는 강교수의 이 생생한 증언록을 통해 고고학이라는 하나의 인문학이 대중과 행복하고도 즐겁게 만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 마지않는다.

_유홍준 미술사가, 명지대 석좌교수

우리가 들어본 고고학 이야기 중에서 가장 상큼하게 지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책이다. 그동안 고고학의 발굴과 연구과정의 뒷이야기를 쓴 책들이 있었지만, 이 책은유물에서 나는 오래된 곰팡이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지게 적었다. 고고학자는 몸은땅 속에 있어야 하지만 머리는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훨훨 다녀야 하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경우의 수를 꿰고 있어야 하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끊임없이 가설을 만들고 검증하는 만능학자이기도 하다. 강인욱 교수는 이러한 고고학자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학자이자 유물의 뒤에 숨겨져 있는 사람들을 따뜻한 감성으로 생각하는 고고학자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넘나드는 풍부한 고고학적인 지식 그리고 시간을 오르내리는 인간 경험을 토대로 유물을 맛깔스럽게 필자의 시각에서 해설한 새로운 설명들은 고고학을 멀리서 경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놀라운 흥분을 선사할 것이라 기대한다.
_배기동 고고학자

강인욱 교수는 이야기꾼 고고학자이다. 이 책에서 그는 먼 과거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과 죽음에서 만나는 여러 주제를 유적과 유물로 쉽고도 흥미 있게풀어낸다. 더불어 그 자체가 역사가 되어 버린 여러 나라 고고학자들의 갖가지 발굴 에피소드도 종횡무진 다루고 있다.
그의 이러한 글쓰기는 일찍이 러시아 유학에서 시작하여 수십 년에 걸쳐 유라시아대륙의 수많은 유적 현장과 박물관, 연구소를 두루 섭렵하고 체험하여 얻어진 소중한 결과물인 것이다. 친근한 주제를 쉽게 풀어낸 고고학 교양서로서 일반시민과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개발에 따른 구제발굴 현장에 내몰린 한국의 젊은 고고학도들도 단숨에 끝까지 읽어낼 수 있고 새겨볼 만한 고고학 안내서라 생각되어 이에적극 추천한다.
_이청규 한국고고학회 회장, 영남대 교수

제가 고고학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던 건 지난 2016년 러시아에서 조선시대의 미라와 관련한 발표를 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한국의 미라 자료를 소개하면서 1998년에 안동에서 발견된 이응태 묘의 출토품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31살에 요절한 남편을 떠나보내는 부인이 써서 무덤 속에 넣어준 마지막 편지인 <원이 어머니의 편지>는 지금 다시 떠올려 보아도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당신 생전에 함께 누워서 다른 사람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라고 말하곤 하셨지요. … 이 편지를 보시고 제발 오늘 꿈에서만이라도 나와 주세요."

저는 이 책에서 유물을 통해 과거 사람들과 더 가깝게 만나보고자 합니다. 미지의 땅을 찾아가 수많은 유물과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 느낀 감동을 여러분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발굴 현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혹은 흐릿한 숙소의 등불 아래에서 메모했던 저만의 노트를 이제 꺼내 보이겠습니다.

잔설이 남아 있는 울란바토르에서 강인욱

고고학,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라는 다리

"시간여행은 너무나 위험해. 차라리 여자처럼 다른 우주의 신비를 연구하는 게  나을지도."
영화 <백 투 더 퓨처 2>에서 에머트 브라운 박사가 한 말

영화에서 이 괴짜 박사는 결혼을 안 한 노총각으로 나온다.

언제부턴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상황이 흔해졌다. 다른 시간대로 빨려 들어간다는 설정은 어쩌면 21세기에 우주여행을 떠나는 것보다도 더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간여행이라는 테마에 쉽게 몰입한다. 그만큼 우리는 미래로의 혹은 과거로의 여행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유물을 찾고 연구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보물찾기가 아니라 바로 현재의 삶을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최초로 과거의 유물을 인식하는 고고학적인 활동을 한 때는 언제였을까. 현재 알려진 가장 구체적인 증거는 터키에위치한, 8000년 전의 것으로 알려진 차탈 후유크(또는 차탈 회익) 유적이다.

시간여행을 꿈꾸는 인간의 판타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고고학이 발달해서사람들이 꿈꾸던 찬란한 과거 같은 건 없다고 밝혀진다 해도 혹은 인류가 바라마지않는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시간여행을 꿈꿀 것이다. 그 이유는지금이라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과 색다른 시공간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호기심에 있다.

죽은 이를 위한 사랑의 흔적
"공동묘지의 언덕 위에서 나는 영생을  갈구하던 영혼들의 얼굴을 보았다."
- 드미트리 플라빈스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2005년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보통 "당신이 매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다보면 언젠가 당신은 바르게 살게 될 것이다"로 해석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청중들은 웃기 시작했다. 그 뜻이 중의적이기 때문이다. "매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결국은 당신은 그 말이 맞다는(즉, 죽는다는 것을 알테니"라는 의미도 된다. 이 당시 스티브 잡스는 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하던 중이었다.
아마 잡스에게도 삶은 중의적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는 저승사자가 삼도천을 헤쳐 나가는 장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승으로 가는 길을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가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그리스 신화의스틱스가 그러하고 우리의 삼도천이 그러하다. 그리고 많은 고고학적 유물에서도 그러한 증거들이 나온다. 4000년 전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중국 신장 지역에 위치한 유적인샤오허에는 사막이라는 기후적 특징 덕에 거의 완벽하게 매장 당시의 형태가 보존되어있다. 이 무덤은 마치 수십 대의 배가 무리를 지어 사막을 가로지르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그 관의 끝에는 마치 배의 노처럼 생긴 표식, 즉 묘비석을 세웠다. 사막에서 발견된 샤오허 무덤은 학익진을 펴고 바다를 헤엄치는 배처럼 사막에 펼쳐져 있다.

불에 깃든 황홀과 허무
"만약 네가 먼저 잿더미로 되지 않는다면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불의 사용과 인류의 진화
1991년 11월, 록스타 프레디 머큐리의 사망 이후 그의 집안은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파르시라는 것이 알려졌다. 그의 가족은 프레디 머큐리를 조로아스터교식으로 장례를 지내길 원했다. 전통적인 조로아스터교의 경우 조장이 원칙이다. 시신을잘게 해체해서 독수리가 쪼아 먹은 후에 남은 뼈를 항아리에 담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영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하지 않고 교회에서 조로아스터교 사제가 주재하는 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 사제는 프레디 머큐리의 장례식 전 과정을 고대 아베스타어로 진행했다고 한다. 장례식 후에 그의 시신은 화장되었고, 유골은지금도 어딘가에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은 에이즈라는 질병과조로아스터교라는 종교에 대한 관심도 증폭시켰다.

술, 신이 허락한 음료
"진실은 와인에 있다."
-라틴어 속담

성스러운 두려움 느끼며 두 눈을 감을지니
그는 꿀 같은 이슬을 빨고
천국의 우유를 마실지니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 비틀즈

이 노래는 하늘을 헤엄치는 루시라는 여성을 묘사한 것이다. 1960년대 유행하던 LSD의 환각을 경험한 비틀즈의 멤버들이 만들었다. 노래 제목의 앞글자만 따면 바로 LSD가 된다. 한편, 고고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노래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최초의 여성 고인류를 발굴했던 고고학자들은 당시 현장에서 듣던 이 노래에서 착안해 그 여성을 ‘루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마음을 울리는 소리 없는 음악
"말이 사라지고 나면, 음악이 시작된다."
-하인리히 하이네

샤먼과 뮤즈
2015년 카자흐스탄의 세계문화유산인 탐갈리 암각화를 조사했을 때였다. 알마티에서 차로 다섯 시간을 달리면 병풍처럼 늘어진 바위산이 나온다. 그 바위산 곳곳에는3000년 전에 그려진 암각화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유라시아 곳곳에 암각화 유적이 있지만, 특히 탐갈리 유적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샤먼을둘러싸고 춤을 추는 그림은 생동감이 넘쳐 마치 차가운 돌에서 음악소리가 나는 것만 같았다. 탐갈리 암각화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은 유라시아의 어느 유적에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빛바랜 유물에 숨어 있는 화려함
"색은 영혼을 직접 올리는 힘이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

흉노의 기동력 있는 기마술과 가공할 철제무기의 위력은 유라시아 최강이었다. 기원전 3세기에 흉노에 맞서 만리장성을 쌓다 국력을 소진한 진나라는 멸망했고, 그 다음에등장한 한나라 또한 흉노의 존재 때문에 골치 아파했다. 흉노를 계승한 훈족은 유럽사를바꿀 정도였다.

한나라도 처음에는 진시황처럼 무력으로 흉노를 꺾으려 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은 기원전 200년, 흉노 토벌에 나섰지만, 오히려 백등산 지역에서 포위되어 죽을 처지에 놓였다. 유방은 흉노 선우의 왕비에게 뇌물을 바쳐 가까스로 살아남았는데, 중국 군대를다 무찔러 버리면 앞으로 조공을 받을 수 없다는 왕비의 얄팍한 생각 덕분이었다.

백등산 전투 이후 한나라의 정책은 바뀌었다. 한나라는 무력으로 흉노에 대응하기보다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선물로 흉노의 마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나라는 매년정월에 엄청난 양의 비단, 칠기 등의 사치품은 물론이고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왕소군을 비롯한 공녀들을 바쳤다. 한나라 조정이 받은 경제적 타격은 컸다. 하지만 조공품의 공세를 통해 흉노의 풍습을 바꿀 수 있었다. 원래 봄과 가을에만 모이던 흉노의 부족장들은 중국으로부터 받은 공물을 나누기 위해 한겨울인 정월에도 모였다.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땅이나 곡식이 아니라 전쟁으로 얻은 전리품을 부하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중요한 통치수단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조공품이 매년 들어오게 되니 흉노로서도 굳이주변 지역을 정복할 동기가 사라졌고, 점차 그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 전 유라시아의 최대 군사강국이었던 흉노를 무너뜨린 것은 강대한 군사력이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간파하고 흔들던 중국의 화려한 사치품들이었던 것이다. 단조로운 초원의 빛깔에 싫증을 내어 아름다운 빛깔을 탐한 결과가 나라의 멸망이라니. 진정한경국지색은 이런 것이 아닐까.

지난 세월의 향기
"향기는 말, 외모, 감정이나 의지의 힘보다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중에서

발해인들도 돼지고기를 좋아했을까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보시오,
그러면 난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보지요."
브리야 사바랭, 미식의 생리학 중에서

중국 황제도 반한고 조선의 젓갈
"오뉴월 보리밥엔 새우젓이오. 한겨울 김치국엔 어리굴젓이오. 장장 나지 않는 꼴뚜기젓이오. 막걸리 안주 삼는 갈치젓일세."
〈새우젓 파는 소리〉(노동요)

몸에 새겨진 시간의 기억

그는 이발사의 비누칠, 면도, 마사지에 몸을 맡겼다.
이발사는 돈을 더 받지도 않고 그의 어깨와 등도 솜씨좋게 주물러서 근육을 풀어주었다.
왕릉은 새로 깎은 머리에 시원한 바람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평생 한 번이니 괜찮아!"
펄벅, 「대지」 중에서

어느덧 우리는 몸으로 느끼는 기억이 적어지고 있다. 영화 <루시>의 여주인공(스칼렛요한슨)이 약물의 효과로 인해 자신의 모든 인생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한 행동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모유를 먹은 그 순간과 자신의 이마에 했던수천 번의 입맞춤을 기억한다고 말한 것이었다. 내게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파괴와 복원,
고고학 발굴의 패러독스
"고고학 발굴이란, 일종의 유적 파괴 행위이다."
김원룡(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정년논총에 수록된 회고록에서

고고학을 꽃피우게 한 제국주의
"이 3억 인의 인도인이 열등한 민족이고우리는 우수한 인종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흥미 있는 일이었지요."
레오나르드 펄, 돼지와 진주 중에서

전쟁 속의 고고학
"모든 페이지에는 승리가 가득하다.
그 누가 승전 잔치를 준비했는가?
10년을 두고 위대한 영웅들이 탄생하고 있다.
그 대가는 누가 치렀는가?
너무나 많은 기록만큼이나 생겨나는 너무나 많은 의문들."
베르톨트 브레히트,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중에서

모티머 휠러는 말했다.
"고고학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이다."
전직 군인으로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의 고고학과 군사법에 의거한 현장 고고학의 기틀을 세웠던 영국의 고고학자.

문명은 짧고 인생은 길다
"문명이란 어둠과 혼돈의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얇은 얼음장과 같다."
-워너 헤어초크

그들은 왜 유물을 위조했는가
"조상의 위대함이 나의 위대함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정예푸

고고학자의 시행착오와 해프닝
"비판받기 싫다면 아무 짓 하지 말고, 아무 말도 마시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시길."
엠버트 허버드

황금유물을 둘러싼 운명들
"난 황금 구덩이를 두 번 발견했지요. 영광을 얻기위해서가 아니라 유물에 숨겨진 진실을 위해서요."
아프가니스탄 황금을 발굴한 고고학자 사리아니디

고고학이 밝히는 미래
"전에 있던 것도 다시 있을 것이며이미 한 일도 다시 하게 될 것이니세상에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나니."
전도서 1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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