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첫서리가 내렸네, 올해도 꽤 춥겠는걸─ 하며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는 초겨울 어느 아침에 마루겐 나가야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이 이웃집에 찾아가 장지를 드르륵 열어 보니 4첩 반짜리 다다미방 한가운데 다른 이도 아닌 구로베에가 난로 쬐는 고양이처럼 등을 구부리고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곤겐 님
에도 막부를 창시하여 백성들 사이에 신격화되어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이르는 존칭

선생이라는 것은 통칭이고, 본명은 가야마 마타에몬이다. 낭인이지만 마루겐 나가야에서는 유일한 사무라이이다. 읽기 쓰기는 물론 산술도 능해서 오카쓰네 아이를 비롯해서 나가야 아이들에게도 이것저것 가르쳐 준다. 그래서 선생 소리를 듣는 것이다.

오카쓰는 가슴이 점점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 두근거림은 선생 댁에 조림반찬을 가져다주거나 선생이 부탁한 바느질거리를 가져다주거나 선생과 잠깐 서서 이야기하거나 할 때 느끼는 기분 좋은 설렘은 아니었다.

인간은 모두 이렇게 은밀한 일을 벌이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래서 갑자기 죽어 버리면 그런 비밀이 전부 까발려져 마치 살아 있던 것 자체가 커다란 음모였던 양 보이게 되는 걸까.

"태산명동에 서일필(태산이 떠나갈 듯 요동을 치더니, 나온 것은 쥐새끼 한 마리에 불과하다)이었군."

─참 번거로운 관리인이었지.

구로베에는 예민한 사람이어서 마타에몬이 금지된 책을 숨겨두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려고 마타에몬이 집을 비운 동안 이 방에 숨어든 것이다. 한창 뒤지다가 수명이 다하다니, 참으로 딱한 이야기다. 하지만 덕분에 마타에몬이 살았다. 여차하면 구로베에를 베어야 할 참이었으니까.

─여하튼 나는 허망하게 죽어서는 절대 안 되는 몸이야.

─대체 신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에도 평민의 공동주택인 나가야는 도로에 면한 오모테나가야와 그 뒷골목에 자리한 우라나가야로 구성되었다. 점포와 살림집을 겸하는 오모테나가야는 가구당 면적이 넓고 2층 형식인 경우도 많으며 집세가 비쌌다. 뒷골목에 있는 우라나가야는 가구당 면적이 좁고 채광과 통풍이 좋지 않으며 점포 없이 살림집으로 쓰이는 만큼 집세가 저렴했다

벚꽃 철이 되면 가케우동보다 자루우동이 더 잘 팔린다. 실제로 그게 더 맛나게 느껴지고.

구매안내서1824년 에도의 각종 상점 2,600개를 안내하는 광고책이 오사카에서 발행되어 전국에서 많이 팔린 바 있다. 유명 필자가 글을 쓰고 저명한 화가 호쿠사이 등이 삽화가로 참여하여 총 3권으로 발행되었는데, 각 상점에서 게재료를 받아 제작하므로 게재료를 내지 않으면 아무리 유명한 가게라도 소개되지 않았다

"됐다. 나는 말이다, 오키치, 네가 오미요의 비밀을 다이코쿠야에 고자질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다. 하지만 너를 의심하는 모습을 너에게 분명히 보여 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래서 그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굳이 했던 것이고. 미안했다."

"저, 생각했었어요. 고자질할 수도 있다고." 오키치는 말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잖아. 대신 후카가와를 뜨기로 했고. 역시 너답구나. 너는 아마 그렇게 할 거라고 오미요도 말했었지."

"오미요 나름대로 저울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던 거지"라고 도쿠베에는 말했다.
"저울?"
"그래. 오미요만 올라가고 너는 밑으로 처져 버렸지. 하지만 그것만은 정말 대책이 없는 짓이었는데."

"너, 아침은 먹고 왔니?"

오킨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주머니는 걸음을 멈추었다. 저쪽에서 다가오는 커다란 짐수레를 보내기 위해서다. 상념에 빠져 있던 오하루는 당황하며 아주머니를 따라 걸음을 멈추었지만, 그래서 또 우산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수레에 뭐가 실렸는지 짚으로 싸고 새끼줄로 묶은 네모난 물건이 빼곡히 실려 있다. 꽤 무거워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가져다주기 전에는 이 수레꾼도 돈을 받지 못할 테고, 그러면 오늘 하루 밥을 굶을 것이다. 돈벌이란 그런 것이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덥거나 춥거나 불평 한 마디 흘리면 안 되는 거라고 엄마는 말했다.

강무소講武所 에도 막부가 설립한 무예 훈련 기관

오하루의 집으로 가난이라는 글자가 말도 없이 뚱하니 다가와 처음에는 마루턱에 한쪽 발을 올리고 다음에는 두 발을 올리더니 이어서 완전히 올라서고, 마침내 자리를 잡고 앉아 버렸다.

스나무라 간척지는 혼조 후카가와 지역의 동쪽 끝에 있는 지역으로, 현재의 도쿄 고토쿠江東区에 속한다. 혼조 후카가와 지역과 마찬가지로 강 하구의 습지대를 간척하여 조성한 지역이며, 주로 에도에 청과물을 공급하는 농경지로 이용되었다.

약재상에서 약을 받은 다음에는 품에 꼭 품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많지 않은 그늘을 골라 걸었지만 아무리 오하루라도 걸음이 느려졌다. 땀이 흐르고 목은 바짝 말랐다. 지주 집에 돌아가면 빨래장으로 가서 우물물을 바닥이 드러나도록 다 마셔 버려야지, 하고 생각했다.

─엄마는 건강하시니?
그날 이치타로의 물음에, 네, 건강하세요, 우리 식구는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라고 대답하지 못했던 것처럼 엄마 앞에서도 입을 다물어 버렸다.

─엄마 잘 모셔라. 부탁해, 오하루 짱.
지금은 그것만 기억해 두자. 죽어 버린 사람과 나눈 약속이므로 어길 수는 없다. 나는 그 사람의 부탁을 받았다. 그 사람이 단 한 번, 스스로 정한 약속을 깨면서까지 전하고 싶었던 부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이 작품집 『인내상자』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마음속에 단단히 봉인해 두고 살아가는 이들에 관한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일화는 희극이지만, 미야베 미유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비극이네요. 슬프고 애틋합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장편을 통틀어 가장 귀여운 귀신들이 단체로 출동하는 소설 『메롱』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숨기는 일이 한두 가지는 있는 법이고, 두 가지가 있으면 세 가지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세 가지가 있으면 더 많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지. 자, 오린 너는 이제 그만 자렴. 내가 여기에 있으면 아무리 무더워도 시원하게 잘 수 있을 테니 부채는 필요 없을 거야. 뭣하면 자장가도 한 소절 들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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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이텐구水天宮
에도 니혼바시에 있던 신사. 규슈 후쿠오카에 있는 스이텐구 신사의 분사. 건강한 출산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젊은 부부의 참배가 많다

5인조
평민 구역인 마치를 관할하는 파수막은 그 동네의 유지들이 월번제, 즉 한 달을 근무하고 교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관할 구역이 크거나 마치 두세 개가 합동으로 운영하는 파수막이면 5인조가 근무하지만 보통은 3인조로 운영되었다

"엄마는 아빠가 죽어서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자 우리를 키울 수 없었어. 그래서─ 부모한테 버림받은 척해서 다른 집에 의붓자식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했어. 언젠가는 꼭 데리러 오겠다면서."

그렇게 말머리를 놓으며 오노부는 자기 내력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자식들을 가게에 취직시키고 급료를 선불로 받거나 여기저기 팔아넘겨서 그 돈으로 먹고사는 한심한 남녀였던 모양이다. 오노부를 미아로 만든 것도 그게 처음이 아니었고, 더구나 미아가 생기면 그 지역 파수막에서 맡아 준다는 관습도 다 알고 하는 잔꾀였다고 한다.

"얘야, 진심으로 말하는데, 너는 이제 우리 딸이야. 여기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 관계도 없다.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고 손주도 보여 줘, 그렇게 누누이 말씀하시더라."

그러니까 부디 그날 밤 있었던 일만은 평생 내 가슴에만 담아두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이치베에가 오타키에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 동네에서 발견되는 미아는 어떤 사연이 있든 간에 다 우리가 데려다가 귀하게 키워 보지 않겠나. 우리가 죽인 아기에게 속죄하는 의미로.

그것이 두 사람이 평생 숨겨 온 비밀이었다.

그렇게 살던 오타키는 마침내 그 비밀을 짊어지고 무덤으로 들어갔다.

길 건너편에서 오유키가 되돌아온다. 혼자였다. 적어도 오늘은.
이치베에는 담배를 끄고 뜰로 내려섰다. 올가을은 도라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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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데는 지장 없대. 재혼은 안 했대. 이런저런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사람을 쓸 정도로 바빠졌대. 이제 너희를 거둘 수 있다. 15년이나 걸렸지만 약속을 지키러 왔다─ 울면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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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됐잖아요. 이제부터 아저씨랑 나랑 꾀를 내어 우리 집에서 백 냥을 받아 내자니까."

신나이
샤미센을 연주하며 부르는 가부키 곡으로, 18세기 중반 쓰루가 신나이鶴賀新内에 의해 정립되었다. 점차 가부키 무대를 떠나 거리와 연회에서도 연주되게 되었으며, 19세기 초에 크게 유행했다

데라코야
에도 시대 평민 자녀를 가르치던 서당으로, 상업과 처세에 필요한 실용적인 내용을 가르쳤다

"친구가 생기면 오시나 씨도 차차 잊게 되지 않을까요? 도련님은 남자니까 앞으로 점원과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겁니다."

잠시 후 오캇피키가 치켜뜬 의심의 눈초리보다 미노키치가 흘린 식은땀의 양과 튀어나간 침방울의 기세가 승리를 거두었다. 도신은 천천히 일어섰다.

요즘 미노키치는 딸 오시마를 걱정하면서 고이치로 생각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시나가 잘했다는 종이접기를 종종 해 보곤 한다. 종이학을 벌써 많이 접었다. 올해가 끝날 즈음에는 아마 천 마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고민 끝에 신변 보호를 부탁하기로 결심하기까지 가스케는 세 번이나 칼에 찔려 죽었다. 세 번 다 꿈속의 일이지만, 땀에 푹 젖어 화들짝 놀라 깨어나기 직전, 베인 자리를 꽉 누른 손바닥에 느껴지는 피는 도저히 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감촉이었다. 식욕이 똑 떨어졌지만 먹지 않으면 못 버틴다는 생각에 아침밥을 꾸역꾸역 집어넣다가도 젓가락을 쥔 손에 문득 그 감촉이 되살아나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칼을 찬 사무라이가 옆에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힘 센 조닌이 몽둥이 들고 서 있는 것보다 비실비실하더라도 사무라이가 칼을 차고 서 있는 게 더 세 보이는 거유. 정말이라니께."

다만 가스케에게는 잘된 일이고 오린과 유키치에게는 불행하게도, 이자의 머릿속은 달밤의 게처럼 든 것이 별로 없었다.

달빛 환한 밤이면 게는 달빛이 두려워 먹이활동을 하지 않아 속살이 부실하다는 설이 있어, 흔히 실속 없는 것을 뜻한다

"고자카이 나리는 8년 전까지 어느 번의 에도 번저에서 고위직으로 일하고 있었네. 지체 높은 분이었지. 그런데 고자카이 나리가 얼마나 믿음직스러웠는지 주군의 부인이 무슨 일에나 고자카이, 고자카이 하니까 주군이 시샘을 했대. 쉽게 말해서 아내가 고자카이와 은밀히 정을 통하는 게 아닌가 의심한 것이지."

"하지만 번 내부에서도 주군의 광기를 걱정하는 사람은 많아. 특히 세자가 그런 부친을 빨리 은퇴시키고 스스로 주군에 오르는 것이 가문의 안정에도 도움이 되겠다 생각하고 열심히 손을 쓰고 있다더군. 세자와 그 측근들은 고자카이처럼 유능한 사람을 근거도 없이 숙청할 수는 없다며 지금까지 은밀히 보호해 주고 있었던 모양이야. 주군을 은퇴시킬 때까지만 견디라고 고자카이 나리께도 약속했다지. 그래서 고자카이 나리도 에도를 뜨지 않고 숨어 살고 있었던 거야."

"조만간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라고 대답했다.
"우리 번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분이시니까."

불하미
다이묘는 농민에게 거둔 쌀 중에서 자가 소비분과 가신단에 주는 급여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시중에 내다팔아 번 재정에 충당했는데, 이렇게 내다파는 쌀을 말한다

‘주로쿠야十六夜’는 ‘이자요이’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자요이’는 나가려 해도 좀처럼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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