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새로 깐 기억이 선명한데 이상하게 물처럼 밍밍했던 소주.
"아무 맛이 안 나."
"소주가 물처럼 느껴지면 인생이 힘든 거야. 네가 지금 힘들어서 그래. 그만큼 힘든 거야."
"엄마, 지구는 왜 우주에 둥근 채로 있어? 근데 왜 인간은 밖에 못 나가고 지구에만 있어? 왜 다른 세계는 없어?"
디지몬 세계를 답답하게 느끼며, 내가 사는 이 세계로 오고 싶어서, 나에게 잘 지냈냐고 물어오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잊고 있던 〈디지몬 어드벤처〉를 1화부터 다시 보았다. 그 세계가 여전히 그곳에 있음에, 모니터 너머에 나처럼 답답해하는 고래가 갇혀 있음에 어떤 위로를 느꼈다.
내 왼팔에는 고래몬이 있다. 나는 디지몬 세계로 가는 것에 실패했지만, 고래몬은 더 큰 세계를 넘나들기를.
내 문장은 빛나지 않을 거야. 나한테 사랑이 없으니까.
한마디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단계를 깨고 올라가야 한다.
모험 만화에서 진화, 기술의 획득은 곧 성장이다. 디지몬이 진화하려면 아이들이 필요하고 아이들에게는 문장이 필요하다. 문장은 용기, 우정, 사랑, 지혜 따위의 추상적인 단어로 되어 있고 아이들이 성장하기 위해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십대 초반인 주인공들이 깨닫는 것은 바로 각자의 잠재력인 셈이다. 달리 말하면 그들이 타고난 재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다음 망상은 새벽마다 지구를 구하는 소녀 히어로였다. (가끔은 내가 히어로일 때도 있었지만)
"꼭 책을 읽어야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너 한글 쓸 줄 알잖아. 그럼 됐지."
그때 친구가 해준 말은 여태껏 내가 뼈에 새기고 있는 삶의 이정표 중 하나다.
공부는 더 자세히 알기 위한 후속 단계이지, 출발점에서부터 이고 가야 할 건 아니란 말이다.
"너는 지금 네 인생의 바닥을 치고 있구나. 실컷 쳐라. 지금 너는 네 안에 있는 이야기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바닥을 치는 시기인 거다. 그렇게 손바닥으로 자신의 바닥을 쳐봐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울릴 줄 아는 거야. 그 마음으로 소설을 써라."
한때는 상대방 탓이라 생각했고, 한때는 나에게 그 탓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건, 망할 놈의 상황 탓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죄송해서 사과한 적은 별로 없다. 어쩌겠는가. 내가 원하지 않았고,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것을. 중증 환자와 관련된 사정은 정말로 불가항력 같은 것인데. 하지만 꼬박꼬박 사과한다. 약속이 틀어진 것에 화가 나거나 실망했을 상대방을 위한 말이고, 동시에 환자인 가족을 지키기 위한 말이다.
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 택한 방법이 약속을 잡지 않는 거였다. 누구와 어떤 것도 기약하지 못했다. 내 삶은 엄마를 축으로 둔 회전체였다.
"아빠는 그렇게 생각해.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물론 엄마에게 더 좋았겠지만, 그게 정말 우리 삶의 최상이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 더 나쁜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어. 겪어보지 않은 세계가 최상일 거라 생각하지 마. 지금 우리의 현실이 가장 행복하고, 견딜 수 있는 상황일 거야."
아르바이트로 바득바득 모은 3백만 원을 다 쓸 순 없으니 그중 백만 원만 여행에 투자하기로 했다. 목적지 상하이, 기간 3박 4일, 목표 살아남기, 사유 도피.
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구가 감추고 있던 멋진 장면들을 보며 차차 알게 되었다. 내가 엄마를 살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이상하리만치 존재 이유를 절실하게 찾던 소녀가 드디어 이유를 찾은 것이다.
"나 소설 쓸래. 딱 1년 동안 소설에 매진할게. 그런데도 책도 못 내고 상도 못 타면 그때 깔끔하게 포기할게. 어때?" "그러든가." "마음대로 해."
다행히 그해 『무너진 다리』를 출간하고 『천 개의 파랑』으로 수상해서 아직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결말이다. 나의 디지몬이 기억하는 대로, 나는 작가가 되었다.
지금은 바이러스로부터 비교적 자유롭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여기저기서 퍼트린 악성 바이러스가 마구잡이로 활개 치고 그 바이러스와 대응하기 위해 백신 개발 역시 활발하게 일어나던 것을 생각하면 〈디지몬 어드벤처〉가 얼마나 그 시대를 담았는지 알 수 있다.
아포칼립스는 신약성경 마지막 권 『요한 묵시록』의 영어명이다. 여기서 ‘묵시’란 ‘숨겨진 어떤 것이 드러남’을 의미하는데, 원래 존재했으나 알아차리지 못했던 ‘예정된 종말’을 뜻한다. 즉, 묵시록은 하느님이 ‘선택받은 신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쓴 편지이다.
"내일은 어떻게 할 거야?" "글쎄. 내일은 모르겠는데."
나는 나를 살게 했던 디지털 세계를 떠나보낸다. 그래도 언젠가 정말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아주 옅은 희망은 마음 깊은 곳에 감춰두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