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가 일본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책의 제목이 『돌베개』이다. 돌베개를 베고 자야 하는 인생은 완벽한낭인의 상태이다. 완벽한 백수라야만 돌베개를 벨 수 있다. 이 배고픈 바위산에서 무슨 먹을 것이 있다고 양치질은 한단 말인가. 먹을것이 없어서 배를 곯고 사는 인생이 양치는 왜 하는가. 그럼에도 샘물로 양치질한다고 새겨놓았다. 침석과 수천이라는 글자는 인적이없고 산새 소리만 들리고 흰 구름만 보이는 이 첩첩산중에서 밥굶고 사는 단독자의 생활을 보여주는 글씨이다. 해방정국의 혼돈 상황에서 야산 이달이 은둔하며 제자들을 양성했던 석천암. 내가 인생의갈피를 잡지 못하고 낙담하던 시절에 나를 달래주던 대둔산과 석천암이다.

산이 너무 좋은 사람은 프로가 된다. 머리 깎고 승려가 되거나 도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산에서 한평생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뿌려놓은 인연이 많아서 세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처자식을 부양하고 생업에 종사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산에 자주 갈 수 없다. 대신에 그림을 그려놓고 보았다. 산에 못 가는 대신 방 안에다 그토록그리운 자연의 모습을 그려놓고 대리만족을 느꼈다. 산천에 대한 회귀, 대자연과의 합일, 이것이 동양 식자층의 구원관이었고, 그 구입을 간접적으로나마 충족하는 수단이 바로 산수화였다.

"한번은 망월사 법당을 짓느라고 소나무를 좀 베어냈지. 아, 그런데 그 소나무 베어낸 것이 산림법 위반이라 스님이 고발당했지. 그래서 검사 앞에서 조서를 받게 되었는데, 검사가 물었어. 스님 본적이 어딥니까?‘ ‘우리 아버지 자지 끄트머리‘ ‘스님 출생지가 어딥니까?‘ ‘우리 어머니 보지다.‘ 이 말을 들은 검사는 얼굴이 하얘져서 그만 스님을 돌려보낸 일이 있지."

부설 거사가 642년 창건한 바닷가 수행처, 망해사
내가 좋아하는 사찰은 대략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춘 곳이다. 첫째 호젓해야 한다.

둘째 고승들이 많이 머무른 곳이어야 한다. 고승들이 도를 닦던 절터는 그 터에 감돌고 있는 기운이 한결같이 강하면서 상쾌하게 마련이다.

셋째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야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대할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난다.

망해사는 잔잔한 출렁거림만이 물결치는 보림터인 것이다. 망해사마당 앞의 서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출렁거린다. 봉급쟁이들이여 한탄만 하지 말고 해 질 무렵 장엄하게 붉은빛이 감도는바닷물을 보러 오라. 

그 노을빛에 마음을 던져보라. 그리고 거기 돛대에 바람을 가득 안고 떠 있는 고깃배들을 보라, 고깃배들은 오늘도 떠 있지 않은가. 

도를 통한 도인들은 보립하기 위해서 여기 오겠지만, 먹고사느라고 온갖 세파에 시달리는 우리 중생은 정신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올 필요가 있는 절이 망해사이다. 망해사에는 세상사가 순조롭게 풀려서 걱정 없는 사람들은 찾아올 필요가 없다.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여, 부도난 인생들이여, 돈 없는 인생들이여, 이혼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여, 고독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여, 인생의 실패자들이여 모두 다 망해사로 오라. 그리고 진홍색의장엄한 저녁 노을빛에 저물어가는 바다를 보면서 난생처음인 것처럼 울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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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불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타이나 인도네시아, 미얀마를 비롯한 남방불교권에 가보면 한쪽 팔을 베고 누워있는 와불이 유달리 많이 조성돼 있는데, 이는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 중생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 위한 뜻일 게다.

안심사에 와서 앞산의 열반상을 한참 쳐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제 먹고살 것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쉬어보라는 메시지가 깃들어 있다. 서 있기보다는 앉아 있는 것이 편안하고, 앉아 있기보다는 누워 있는 것이 편안한 법이다. 그래서 절 이름을 지을 때 ‘안심사라고 지은 듯하다.

탐진치 삼독심 가운데 남자들이 대체적으로 참기 힘든 것이 진심, 즉 화내는 마음이다. 노인은 탐심이 많고, 여자는 치심, 남자는 진심이 많다. 화를 내게 되면 몸의 기혈이 엉망진창으로 뒤집히기 때문에 아주 해롭다. 도가에서는 섹스보다 더 해로운 것이 성내는 마음이라고 규정할 정도이다. 대체로 몸에 불기운이 많은 사람이화를 잘 내고 흥분을 잘한다. 물이 많으면 차분하고 능글능글하다.

"살다 보면 그렇게 되지요."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살다 보면 그렇게 되지요.‘ 이 짧은 한마디 속에는 인생의 수많은함축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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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 번쯤은 만화 속 캐릭터와 함께 항해해도, ‘동료가 되라’는 주인공의 말이 마치 차원 너머 나에게 하는 말인 듯 설레어도, 이 세계를 구해달라는 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도 될 텐데.

아무튼 이런 분위기는 만화를 본다는 것을 일종의 롤러코스터, 항해의 시작, 불시착과 표류로 여기는 나에게는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유치하다’. 사람들이 대체 어떤 대상에 이 말을 쓰는지 한참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 ‘유치하다’는 단어는 감상을 너무나 단편적으로 설명하고 작품을 납작하게 눌러버린다.

작품이 성숙하지 않다는 뜻으로 유치하다고 평가하는 걸까? 그렇다면 세상에 성숙한 작품이 있다는 것인데, 나는 성숙한 작품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작품은 시대에 따라, 읽는 이에 따라,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로 평가되니까.

사람들은 주인공이 감성 충만한 작품을 볼 때 ‘오글거린다’는 말을, 주인공이 완전한 선(善)일 때 ‘유치하다’는 말을 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와 인식을 확장하고(있다고 믿고), 정해진 틀을 벗어나려 노력하고(있다고 믿고), 뻔한 담론을 타파하려 하고(그렇겠지?), 관습을 의심하며 세상을 바꿔보려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선명한 선악 구도가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다(그런 사람들이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일본 만화 시장에 내적, 외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준 〈우주소년 아톰〉(1952년), 〈기동전사 건담〉(1979년), 〈아키라〉(1982년),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년) 같은 SF 작품들은 감시 사회, 운석 충돌, 지구 멸망, 전쟁 등의 소재를 다루며 전반적으로 종말과 전쟁의 불가피함, 패전국이라는 패배 의식, 그리고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 영웅 출현의 소망 등을 기저에 깔고 있다.

"우리들은 디지털 몬스터야!"
"우린 너희를 지키기 위해서 기다린 거야."

그 진화는 쿠가몬을 물리치고 이기기 위한 진화가 아니었다. 쿠가몬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진화였다.

언뜻 보면 비슷한 듯 보이지만, 무언가를 무찌르고 싶다는 마음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어느 것이 선행되느냐에 따라 그 색이 완전히 달라지고 디지몬은 후자였다. 디지몬은 아이들을 지키고 싶어했다.

나는 거기서 비밀의 열쇠를 돌려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열어버렸다.

나는 스스로 선택받은 아이가 되었지만, 차원의 문을 여는 디지바이스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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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아무튼, 디지몬 : "길고도 매우 짧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 천선란

이건 내가 디지몬과 영원히 이별하는 이야기다

"〈디지몬 어드벤처〉요."

〈디지몬 어드벤처〉는 정말로 SF 장르의 특성을 모두 충족시킨다. 결정적인 근거는 배경이 ‘디지털 세상’이라는 거다. 어떻게 SF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주인공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며, 그곳의 혼돈은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성인이 〈매트릭스〉의 가상현실에서 파란 약과 빨간 약의 혼돈에 갇혀 있을 때, 아이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디지몬 친구를 만났다. ‘선택받은 아이’가 되어 디지털 세상으로 갈 날을 기다리며 모니터에 괜히 말을 걸어보거나, 상상 속의 디지바이스*를 열심히 흔들며 새로운 세기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와 다를 바 없이 살던 일곱 명의 아이들이 비가 오던 어느 날 디지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버린 것이다.

찾아라 비밀의 열쇠*
* 한국판 〈디지몬 어드벤처〉 오프닝 곡 첫 가사.

〈디지몬 어드벤처〉는 7세 이용가로 분류된다. 다시 말해 당신이 7세 이상이라면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호자 지도 없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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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비우면 누구나 꽃을 피워 올릴 수 있는 이치
지공 스님은 1993년부터 이곳에 혼자 있다. 신도라고 탈탈 털어봐야 절 밑의 등에 시작움것이다. 전기 요금 전화 요금 내기도버거운 절이다. 지공 스님이 큰절 마다하고 굳이 구암사로 자청해온까닭은 사명감 때문이다.

사명감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지공 스님은 배고픈 절인 구암사를지키고 있는 것일까? 지공 스님의 사명감이란 무엇일까? 그 안에는조선 후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학승이었던 백파 대사의 법맥脈을이어간다는 자존심이 깔려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자존심, 자존심은 이해타산을 떠나게 만든다. 시절 인연이 좋았을 때는그처럼 들끓었던 제자들이,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니 간데없이사라졌다. 세상사 이런 것인가! ‘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처럼 지공 스님 혼자 외로운 구암사를 지키고 있다. 외롭고 배고픈 절이 된 구암사, 구암사에는 지공 스님과 노랗게 핀 수선화 단 둘이다 외로움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사찰 마당 화초밭의풀을 뽑고 있는 스님은 담담한 풍모를 지니고 있다. 묻는 말 외에는 일체 말이 없는 분이다.

"휴거헐거休去歇去면 철목개화鐵木開花라는 말이 있지요."
‘철목개화하는 데 몇 년 정도 걸립니까?"
"한 5년만 절 밖에 안 나가면 됩니다."

오랫동안 휴거헐거를 해서 그런 것일까. 지금 스님은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나는 그 담담함이 참으로 부러웠다. 장광설은 피곤을 가져오고 담담함은 생기를 준다. 지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만 말해야 한다. 서론을 과감하게 생략하고결론으로 직행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던가.

먼저 돈이 없어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이 어찌 청산을 그리워하겠는가. 중생은 바야흐로 돈이 없어야 고독을 알고, 고독을 응시하기 시작할 때 청산이 부르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청산이 좋아지기시작하면 그때부터 돈 버는 일과는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역마살이다. 역마살이 있으면 이상하게도 돌아다닐일이 많이 생긴다. 이산 저산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집구석에붙어 있을 날이 없게 마련이고, 사주팔자에 역마살 많은 사람치고일요일 날 방바닥에 누워 텔레비전 보는 사람 못 보았다. 사주의 인신사해 역마살이다.

다음 조건은 염증이다. 도시 생활이 왠지 이유 없이 싫어야한다. 싫어야 산속의 소나무가 어머니 품 같고 고향 같다. 염세증 환자로 분류될 수 있는 기준 중의 하나는 ‘범종 소리를 좋아하는가?‘이다. 석양이 오렌지색으로 변해 넘어갈 무렵, 인적이 드문 절간에서산허리를 타고 돌며 사라져가는 범종 소리를 듣고, 감정이 복받쳤던경험이 있는 사람은 일단 염세증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이들에게는공통적으로 도연명의 「귀거래사」나 장 그르니에의 「섬』을 좋아하는취향이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식견을 지녀야 한다. 식견이라고 하는 것은 교과서적인 이론에다가 풍부한 현장 경험이 합쳐졌을 때 생겨난다. 식견을지녀야만 답사 현장에 섰을 때 단서를 찾아낼 수 있고, 이 단서를 매개로 해 추리가 가능해지고, 추리를 따라가면서 과거, 역사 그리고옛사람들과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식견은 세월과 어느 정도비례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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