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재미있는 세계사 1
송창국 지음 / 계림닷컴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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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대상의 세계사 입문용 만화다. 역시 아이의 책꽂이를 정리하는 김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읽어보게 되었다. 초등학생에게 세계사를 가르치는 것의 적절성 여부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온갖 유형의 WHYWHO 등으로 단련된 아이들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만화책에 지나지 않을 테니 나와는 견해가 다르리라.

 

1권은 문명의 시작과 고대의 세계를 표제로 하여 인류의 출현에서부터 서양은 로마 제국의 쇠망까지, 동양은 한나라의 멸망까지를 다루고 있다. 인도 문화와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기울여 별도의 장을 할애하고 있는 점이 기특하다.

 

애당초 방대한 세계사를 몇 권의 책에, 그것도 압축과 생략이 많은 만화 형식으로 구현하는 것은 무리한 작업이다.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태생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반면에 장점도 충분히 있는데, 세계사의 주요한 흐름을 간명하면서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나름 굵직한 인물과 사건을 빠뜨리지 않고 언급하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역사는 인간 활동의 연대기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커다란 도움이 된다. 개별사는 뼈대에 살을 붙이듯 나중에 차근차근 추가해도 충분하다. 이런 유형의 책일수록 편집의 객관성과 고증의 정확성이 필수적이다. 지은이의 약력은 알 수 없지만, 내용을 볼 때 편향되지 않고 중립적 견지로 골고루 수록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어린이는 책에 수록된 내용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잘못된 용어와 부정확한 사실(史實)은 어린 독자의 역사 인식에 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입문서 성격의 책일수록 편집의 엄밀성과 감수의 치밀성이 요구된다. 이 책은 이 점에서 최소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듯하다.

 

우선 인물과 사건 표기에 있어 무수한 오타가 난무하고 있다는 점을 든다. 지은이의 실수를 걸러내야 하는 게 편집자의 역할인데 아쉽다. 제아무리 좋은 내용도 편집 여하에 따라 빛을 잃기 쉽다. 빈도는 월등히 낮지만 사실(史實)의 오류는 사안이 중대하다. 이스라엘 역사는 솔로몬 왕의 사후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으로 분열됨을 보여준다. 이때 전자는 북부에, 후자는 남부에 각각 위치하는데, 책에서는 초반부는 위치상의 구분을 정확하게 표기하더니 중간부터 갑자기 남과 북을 뒤바꿔놓고 있다(P.76). 역시 편집상의 실수지만 단순한 오타의 차원을 넘어선다. 한 가지 더 언급한다면,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분명히 신전 사진 수록을 전제로 하는 대목(P.88)이건만 사진은 찾아볼 수 없어 어색하기 그지없다.

 

너무 비판적으로 지적하여 별 볼일 없는 책인 마냥 오해될 수 있지만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오히려 좋은 구성의 기획이 사소한 부주의로 가치가 저하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부디 제2권부터는 정상화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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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내 친구 작은걸음 큰걸음 1
구드룬 멥스 글, 마리 막스 그림, 문성원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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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이의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찾은 책이다. 독일 작가의 글인데, 수지와 한스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수지와 한스 할아버지는 혈연관계가 아니다. 뜻이 맞는 이웃 주민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서두에 친구가 된 지 3주가 되었다고 알려준다. 수지는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한스 할아버지에게 달려갈 정도라고 한다.

 

수지는 결코 얌전한 여자아이가 아니다. 한스 할아버지가 꼬마 도깨비라고 부르듯이 한마디로 말괄량이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나이 많은 노인에게 전력질주로 뛰어들어 넘어뜨리거나 길게 땋아 내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는 것은 예사다. 변기를 고장 내서 온 집안에 물이 철철 넘치게 하며, 할아버지의 옷가지를 자기 집의 세탁기로 돌리다가 고장 낼 뻔하는 귀여운 사고뭉치다. 수록된 9편의 이야기들은 재미와 동시에 기저에는 따뜻한 인정을 담고 있어 훈훈하기조차 하다.

 

분명히 흥미진진함에도 이야기에 흠뻑 빠지지 못한다. 수지는 왜 한스 할아버지 하고만 놀까. 수지 엄마는 나오는데 수지 아빠는 왜 등장은 고사하고 언급되지 조차 않는 걸까. 한스 할아버지는 위층의 안나 할머니처럼 노인 아파트에 혼자 사는데 가족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읽어나가는 도중 뭔가 이상함과 함께 이런 의문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다들 내다 버릴 생각만 하지! 낡은 건 당장 내다 버리고, 무조건 새로 사는 게 옳은 일이야?” (P.87)

 

한스 할아버지네 세탁기가 고장 나자 버리고 새 세탁기를 살 것을 제안하는 수지에게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 지른다. 가난한 연금생활자 입장에서 당연한 반응이지만, 한편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고독한 노인네의 씁쓸한 심경을 표출한 발언이기도 하다.

 

외로운 아이와 고독한 노인의 만남과 교류. 이렇게 표현하면 왠지 구슬픈 어감이지만, 그들이 친구가 되어 서로를 의지하면서 삶의 기쁨과 활력을 되찾고 따뜻한 배려로 상호간에 소중한 존재가 되는 모습은 아름다운 동시에 흐뭇하다.

 

크리스마스이브, 수지는 쓸쓸하고 가엾은 한스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기뻐하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수지가 크리스마스의 참된 본질을 놓치고 상업주의에 매몰될 것을 우려한다. 아기 예수 탄생 놀이는 등장인물의 총출동의 장을 넘어 수지와 수지를 아끼는 주위 사람들이 진정으로 교감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인 동시 사람사이가 지향할 이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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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친구 뽑기 내 멋대로 뽑기
최은옥 지음, 김무연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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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찾은 책이다. 이전에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표지가 작품 내용을 한눈에 알려준다. 재미있는 친구, 마음씨 착한 친구, 운동 잘하는 친구, 똑똑한 친구, 말 잘 들어주는 친구가 들어있는 자판기. 원하는 친구를 아무거나 골라서 뽑으면 된다. 사람마다 원하는 친구 유형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태우는 매우 자기중심적이다. 축구를 잘 못하는 친구가 얄밉고, 새치기 봐주지 않는 친구도 괘씸하다. 맛있는 돈가스를 급식에서 더 주지 않는 친구에게 화가 나며, 조용하고 평범한 짝꿍이 탐탁지 않다. 그는 자신의 주위에 멋진 친구가 없어서 짜증난다.

 

놀이공원 자판기에서 뽑은 친구들도 잠시만 만족스러울 뿐 이내 싫증이 난다. 태우가 원하는 한 가지 특기만 뛰어날 뿐 다른 면은 전혀 꽝이다.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이라면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친구라고 외치겠지만, 그러면 동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동화는 항상 깨우침과 교훈을 목적한다.

 

나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불현 듯 외로움을 느끼기 십상이다. 언제나 영원할 것처럼 우정을 외치고 나날을 같이하던 친구들은 모두 사라진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속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단 한 명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속마음과는 달리 어색한 미소를 띤 채 입에 발린 소리만 늘어놓으며 낄낄거리는 게 우리네 인생사다.

 

나랑 오래오래 함께 있어 줄 수 있는 친구!” (P.81)

 

준수가 훨씬 더 현명하게 생각되는 까닭은 친구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서이다. 친구가 친구인 것은 결코 잘나서가 아니다. 준수는 태우보다 더욱 절실하다.

 

요새 아이는 친구를 만들고 어울릴 기회가 적다. 빡빡한 조기교육과 개인주의적 놀이문화가 한자녀 가족 풍조가 어울려 빚어낸 현상이다. 언젠가는 친구를 그닥 필요로 하지 않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자판기에서나마 친구를 구하려고 애쓰는 태우의 행동마저 정말로 귀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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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와 마시는 한 잔의 커피 - 명사와 함께하는 커피 5
매를린 홀랜드 지음, 김혜은 옮김 / 라이프맵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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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를 정리하다가 찾아낸 책이다. 내가 구매하거나 받은 것은 분명 아니므로 아마도 아내의 책일 것이다. 정말 작다, 판형을 논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손바닥만 한 크기. 알라딘 서점을 검색해보니 ‘OOO와 마시는 한 잔의 커피라는 제목으로 20권까지 시리즈가 나온 듯 한데 현재는 모두 절판이다.

 

이 책은 오스카 와일드의 삶과 문학을 소개하고 있는데, 구성면에서 독특하다. 먼저 간략하게 그의 일생에 대하여 기술한 후 저자와 오스카 와일드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는 형식을 사용한다. 와일드의 발언은 저자가 임의로 꾸며낸 게 아니라 서문에 따르면 그의 작품과 편지 등에서 인용하여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전혀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한 저자의 수고가 대단하다. 이 책의 저자인 메를린 홀랜드는 그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오스카 와일드의 아내가 연루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씨를 바꿨던 때문이라고 하니 이 사건의 여파가 그와 가족들에 미친 여파가 엄청났음을 알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인생은 불꽃놀이와 같았다. (P.15)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위와 같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명성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가 서서히 유명세를 얻고 마침내 절정의 순간에 오르던 찰나에 한순간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하였다.

 

우리가 아는 오스카 와일드는 심미주의 또는 예술지상주의의 대변자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 너무나도 멋지고 가슴 설레는 구호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심미주의를 주창하고 나선 연유가 전적으로 유명세를 얻기 위한 불순한 의도에 불과하지는 않다고 본다. 비록 상당 부분 그러한 목적도 있다고 하지만.

 

(심미주의는) 근본적으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 자체를 위한 예술활동을 말합니다......우리는 다만 사회의 추악함과 물질주의에 저항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P.49)

 

저는 비현실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을 표현하는 예술로 돌아가기를 바랐습니다......이 작품(<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인간의 관능을 찬양합니다. (P.67)

 

산업주의와 자본주의가 절정기에 접어들면서 사회는 물론 예술에서도 현실을 묘사하는 사실주의적 작풍이 주류가 되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의 독자성 내지 자율성을 주창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세속의 통속적 편견과 사회의 기율에 속박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동성애와 그로 인한 감옥생활을 빼놓고 그의 삶을 논할 수 없다. 그의 심미주의는 세기말 풍조에 기반한 것이기에 도덕적으로 퇴폐풍조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저자가 지적한 대로 가면을 쓴 그의 이중적 면모는 선천적 성격과 동성애로 시작된 후천적 경험이 결합된 결과로서 삶뿐만 아니라 작품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그의 이중성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인생이나 작품이나 똑같이 모순투성이라 혼란스럽다. 한마디로 어디까지가 설정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진면목인지 알 수가 없다. (P.27)

 

그의 작품은 빛나는 에피그램의 포장 아래 자포자기와 불법행위, 위장과 이중생활이라는 불편한 주제들을 감추고 있다. (P.23)

 

오늘날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내세울만한 사실은 아니지만 과거처럼 인륜의 죄악으로 간주되지도 않는다. 지금의 관점으로 오스카 와일드를 변호한다면 시대를 잘못 만난 죄로 동정 받아 마땅하다. 반면 당대의 실정법을 중시한다면 어떻든 시대의 윤리와 도덕을 위반한 점은 사실이므로 그의 유죄 또한 변함없다. 어쨌든 그가 유죄판결을 하고 감옥생활을 한 이후 그의 화려한 경력은 스러지고 가족 또한 풍비박산 되었다.

 

저는 희생양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살로메>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데카당스를 상징하는 저 또한 영국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가 상징하는 가식과 위선을 향해 계속해서 도전장을 던진 저는 영국사회의 반항아이자 위험인물이었으니까요. (P.103)

 

그의 주장처럼 그는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유명해지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룬 셈이다. 개인적으로 오스카 와일드는 선호 작가가 아니다. 어렴풋이 <행복한 왕자> 정도만 읽은 기억이 남아있다. 내게는 명성만이 자자한 작가에 지나지 않는다. 화려한 언변과 유머로 이름을 얻었을 뿐 실제 작품성은 수준 높지 않을 거라는 선입관이 잠재되어 있고, 또한 <옥중기><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으로 대표되는 작품세계가 취향에 호소하지 못하며, 마지막으로 동성애자로서 수감생활을 하였다는 작가 개인사가 마뜩치 않아서이다.

 

이 책 덕분에 조금이나마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오스카 와일드에 다가서지 못한 나로서는 그의 명성이 개인사의 에피소드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순전히 문학적 성취에 근거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차후 시간되는 대로 그의 작품을 찬찬히 읽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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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가장자리 레이첼 카슨 전집 3
레이첼 카슨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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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카슨 전집의 셋째 권이자 이른바 바다3부작의 마지막 편에 해당한다. 수 허벨(누구?)의 서문에 따르면 카슨은 당초 해안 동식물 안내서로 이 책을 구상하였다. 비록 중도에 집필 계획을 변경하였지만 그래서인지 다른 저작에 비해 이 책은 가이드북 성격이 짙다. 카슨이 바다시리즈로 이 책을 쓴 것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앞선 저작이 바다의 생물학과 지리학에 관한 것이라고 할 때, 바다의 일부이자 육지와의 접점인 해안을 빠뜨린다면 무언가 허전하였으리라. 우리들 대다수가 실제 바다를 접할 수 있는 곳이자 상대적으로 익숙한 바다의 장면은 바로 해안에 있다.

 

해안은 장구한 세계다. 육지와 바다가 존재해온 시기만큼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이곳 해안도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안은 끊임없는 창조와 끈질긴 삶의 본능에 관한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해안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하나의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관련성 속에서 생명이라는 복잡한 옷감을 직조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과 참다운 의미를 새삼스레 깨닫곤 한다. (P.26~27)

 

이 책에서 다루는 해안은 미국 동부의 해안지대다. 카슨의 말마따나 미국 동부의 대서양에 임한 해안은 암석 해안, 모래 해안, 그리고 산호 해안이 순차적으로 이어져 해안의 특성에 따른 해안 동식물의 다양한 생태를 비교 관찰할 수 있는 드문 곳이다. 해안의 유형에 따라 생물의 종이 다를 수 있음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조간대, 즉 저조선에서 고조선에 이르기까지 분포하는 해조류와 이들에 의지하면 살아가는 온갖 동물들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소개해 준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훌륭한 삽화도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어 설명하고 있는 생물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인터넷을 통해 대부분의 컬러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재에 비하면 1955년 당시로서는 커다란 노력을 기울인 셈이다.

 

카슨은 이 책에서 시종일관 라는 일인칭 화자를 내세운다. 덕분에 건조한 안내서가 아닌 에세이적 느낌을 책에 불어넣고 있다. 앞선 첫 번째 책을 흥미진진하게 감상하고 두 번째 책을 유익하게 읽은 나로서는 상대적으로 이 세 번째 책은 독파하기가 녹록치 않았다. 저자가 비록 내용 전개에 스토리를 불어넣으려고 애쓰지만 안내서 느낌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하였다는 생각이다. 또한 전 세계 바다를 종횡무진 하던 이전의 저작에 비해 미국 동부 해안이라는 제한된 지역을 다루고 있어 수만 리 떨어진 나로서는 실감과 동감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산호 해안 편을 읽으면서 플로리다키스라는 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시종 뇌리를 떠나지 않았으니 카슨의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작은 만을 굽어보는 동안 나는 해안이라는 이 가장자리 세계에서 육지와 바다가 서로 소통하고 있으며, 바다 생명체와 육지 생명체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과거를, 그리고 그날 아침 바닷물이 새의 발자취를 말끔히 씻어낸 것처럼 전에 이뤄진 많은 것을 지우면서 시간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P.32)

 

저자는 해안 생태계를 소통과 리듬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바다의 가장자리는 동시에 육지의 가장자리이기도 하다. 해안을 통해서 바다와 육지의 광물은 물론 생물도 상호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해안을 구성하는 암석, 모래 및 산호는 모두 지질작용을 통해 바다와 육지가 오랜 세월 교차하며 생성한 산물이다. 조간대의 생물도 마찬가지다. 바다와 육지 중 한곳에 생의 비중을 더 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은 바다와 육지의 존재 모두를 필요로 한다.

 

해안 생물은 부지런해야 한다. 해조류는 조수가 빠지면 바닥에 널브러져 죽은 듯이 보이지만 조수가 들어오면 불현 듯 생명력을 되찾고 거대한 줄기와 잎들을 한껏 뻗친다. 반면 고둥과 게를 비롯한 많은 동물은 밀물의 시기에는 주거지에 칩거하다가 썰물이 시작되면 서둘러 나와서 먹이활동에 주력해야 한다. 이 모든 행동은 밀물과 썰물의 주기에 전적으로 맞추어져 있다.

 

조수가 빠져나가면 조간대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동물은 먹이가 거의 혹은 전혀 없다. 실제로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과정은 대개 바닷물이 해안에 들어차 있을 때 이루어진다. 따라서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활동과 휴식을 번갈아 반복하는 생명체의 생물학적 리듬에 반영된다. (P.58)

 

하지만 이 해저 숲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빛과 어둠의 교차에 의해서보다는 조수의 리듬에 의해서 더 잘 드러난다. 여기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삶은 바닷물의 유무에 좌우된다. 말하자면 이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날이 어두워지거나 밝아오는 현상이 아니라 바로 조수의 순환인 것이다. (P.113)

 

카슨은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안의 모습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형 상으로 접근하기 어려워 사람의 발자취가 닿지 못하는 곳, 사람들이 굳이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곳 속에서 발견하는 감동과 경이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다. 엎드려서 작은 틈을 통해 해안 동굴의 내부의 빛과 물의 조화, 나름의 안정된 생태계를 들여다보려고 애쓰는 카슨. 쪼그려 앉은 채로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조수 웅덩이의 신비한 세계에 마냥 경탄하는 카슨. 여기서 독자는 자연과 생물을 향한 저자의 근원적인 사랑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하게 된다.

 

저자가 소개하는 수많은 생물체를 한 번에 조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먼저 해안의 유형에 따라 만날 수 있는 생물종이 동일하지 않다. 게다가 그들 대다수는 일반 사람들의 시야에 미치지 않는 곳에 서식한다. 다행히 사람들 근처에 존재하는 경우도 그들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대에는 바위 틈바구니나 모래 깊숙이 은거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게들의 날쌘 움직임, 그리고 개펄에 숭숭 뚫린 작은 구멍들의 존재로 우리는 어렴풋한 일면만을 이해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상당수의 생물은 매우 미약하여 육안의 인식 범위에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 말은 카슨의 이 책 또는 다른 도감류를 손에 들고 해안가를 돌아다녀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저자가 미국 대서양 해안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쭉 훑어가면서 해안의 지리와 생물을 소개하는데 매진하는 연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맺음말에서 저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내 마음의 눈에는 해안의 여러 형태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패턴 속에서 통합되고 뒤섞이는 광경이 보이는 듯하다. 지구는 바다 자체처럼 쉼 없이 변화하고 있다......바다가 새로운 해안을 만들 때마다 생명체는 거기에 몰려들어 근거지를 마련하고 군체를 형성한다. 이렇듯 우리는 생명을 바다의 물리적 실재처럼 마치 손에 잡힐 듯한 힘으로 느낄 수 있다. 밀물이 그렇듯 결코 제 본분을 잊은 적이 없을 만큼 강력하고도 목적의식적인 힘으로서 말이다.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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