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의 개미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3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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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체베의 마지막 장편소설을 읽으면서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 캉안과 절묘하게 오버랩하는 우리네 현대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소 희화조인 작가의 문체는 이 모든 게 한바탕의 희극인 양 기술하고 있다. 전반부에서 크리스가 증언하는 캉안 내각 각료들의 행동은 절대권력 앞에 무릎 꿇고 생존과 영달에 급급한 지식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제 좋은 날인가 나쁜 날인가는 각하가 잠자리에서 어떤 기분으로 일어나는가에 달려 있다. (P.10)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각하와, 크리스와 이켐은 소년 시절에 같은 학교에 다니며 수십 년간 서로 친구 사이였다. 이제 이켐은 국영 잡지의 편집장으로서 정부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논조의 글을 기고한다. 크리스는 공보장관으로서 각하와 이켐 사이를 중재하려고 하나 성공하지 못한다.

 

각하가 처음부터 무지막지한 독재자로 변모한 건 아니다. 단순한 군인으로서 뜻하지 않게 권력을 움켜잡게 되었고, 막강한 경쟁자를 제거하자 그는 절대권력의 맛을 느끼게 된다. 최고 권력자는 신비감을 주어야 하며, 누구보다도 우월한 지위에 있어야 한다. 이제 측근의 조언은 용납할 수 없다, 각하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이므로. 토사구팽. 개국공신의 말로가 대체로 비참한 까닭은 한때 군주가 자신과 비슷한 신분에 있었기 때문이다. 군주와 신하라는 절대적 신분 차이를 깊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목숨은 칼날에 스러지기 마련이다.

 

지금까진 여기 있는 이 보스가 자네나 다른 사람들이 보스 노릇하는 걸 허용해 주었기에 이 말이 자네한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은 안 되네, 크리스. 앞으로는 내가 보스 노릇을 할 거야. (P.247)

 

독재자일수록 표면상 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입법을 입맛에 맞게 하며, 법적으로 처리하기 곤란한 건을 처리해 주는 더러운 손을 신뢰한다는 점이 다르다. 크리스가 말했듯이 진짜 각료는 바로 그들이다. 모든 독재 권력이 처음부터 장기 집권을 획책하지 않는다. 나라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밝힌다. 그리고 선거에 나서서 합법적으로 권력을 쟁취한다. 이어서 장기 집권을 위한 수순을 밟는다. 자의반 타의반. 그들의 논리는 항상 비슷하다.

 

각하는 저희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큰 스승이십니다. 저희는 항상 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P.35)

 

국민들은 의사 표명을 했고, 그들이 바라는 바는 아주 명백합니다. 각하는 운명적으로 국민을 위해 평생 봉사하셔야 합니다.” (P.14)

 

이켐과 크리스는 비록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지만, 정권에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공보장관으로서 권력의 핵심에 머물 수도 있던 크리스의 고뇌는 이켐과 달리 한층 복합적이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는 전통 사회와 똑같이 오늘날의 여자들에게도 다른 모든 조처가 실패했을 때에만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맡기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그러니까 상벤의 영화에서 패배한 남자들이 내버린 창을 집어든 여자들처럼 말이다. (P.157)

 

크리스의 여자 친구 비어트리스는 또 다른 주요 인물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로서 그녀는 전반부에 크리스와의 관계에서 주목받았지만, 크리스와의 생이별 후 정신적 각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찍이 이켐에게 캉안 전통 사회의 남성 우위적 인식을 비판하는 지적 면모를 보이지만 대체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그녀였다. 각하의 부름에서 받은 모욕이 촉발한 오조 의식 등 전통문화와의 연계와, 하녀 애거서와 죽은 이켐의 연인 엘레와와의 유대감. 그리고 엘레와의 갓난아기를 위한 명명식 개최 등. 이제 비어트리스는 혼자서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역사상 명군이라 칭송받는 군주는 반대의견 개진을 장려하였다. 절대권력자의 뜻을 거스르는 발언은 누구나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견을 표할 수밖에 없는 신하와 참모의 뜻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각하를 지지하지 않는 아바존 지역에 대한 박해와 차별, 이켐과 같이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는 언론에 대한 탄압. 그것은 절대적인 오만함에 근거한 것이므로 쿠데타로 일거에 무너지게 되었던 것이다. 다만 쿠데타가 현상의 해결일지 또 다른 문제의 원인일지 작가는 말하지 않는다.

 

그건 끔찍하게 신랄한 농담이었어요. 자기 자신을 조롱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렇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그 두 사람, 크리스와 이켐이 훌륭한 거예요. 그들은 자신을 비웃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종종 그랬어요. 뭔가를 장악한 거만한 바보들은 스스로의 실수에 대해 자조적이지 못하죠.” (P.390)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신의 화살>은 이보 족의 전통문화가 서구 식민 세력의 침입으로 무너지는 역사적 과정을 객관적이며 장엄하게 기술하였다. 서구 식민체제의 유산으로 독립 후에도 여전히 아프리카는 표류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서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인가? 각하와 각료들은 모두 서구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서구의 민주적 가치는 등한시하고 외려 눈감는다. 헌신적인 독립 투사가 정권을 잡은 이후 무자비한 독재자로 전락하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겪었다. <사바나의 개미언덕>은 작가가 이제 그들 자신에 던지는 엄정한 질문이 아니겠는가. 비아프라 공화국 투쟁에 참여하였고, 나이지리의 정치 상황에 대한 반발로 훈장을 거부한 작가로서.

 

전작과 유사하게 나이지리아 전통문화에 대한 소개가 있지만, 이전처럼 그 자체가 목적이거나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식민 지배를 벗어나 독립을 이룬 때이므로 시기적으로도, 지향적으로도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민주적이고 발전적인 국가체제를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인지, 지역 차별적이고 남성 지배적인 전통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어떻게 해소하고 바람직한 사회 가치를 쌓아 올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담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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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아벨 콰르텟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연주 2

일시 : 2025년 9월 20일(토) 14:00

장소 :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연주 : 아벨 콰르텟

  - 윤은솔 (바이올린)

  - 박수현 (바이올린)

  - 박하문 (비올라)

  - 조형준 (첼로)

프로그램

  - 베토벤, 현악사중주 2번 G장조 Op.18-2

  - 베토벤, 현악사중주 10번 E flat 장조 Op.74 '하프'

  - 베토벤, 현악사중주 8번 E단조 Op.59-2 '라주모프스키 2번'


* 세줄평

사중주 2번의 첫음이 울리자마자 좋은 느낌이 들었다. 섬세하면서도 단정한 화음. 그동안 '하프'는 여러번 들으면서도 부제 이유를 몰랐는데, 실연으로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현장에서 듣는 피치카토의 명료함이란. 라주모프스키는 너무 강렬하기에 살짝 부담감이 있었는데, 해설과 연주를 듣고 나니 실내악에서 오케스트라의 울림을 지향하고자 했던 작곡가에게 공감한다. 현악사중주는 여전히 난제이지만 계속 부딪쳐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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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지젤(Giselle)

일시 : 2025년 9월 17일(수) 19:30

장소 :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음악 : 아돌프 아당

제작 

  - 연출 및 재안무 : 김광진

  - 조안무 및 객원 지도 : 유지숙

  - 지도위원 : 김미연

  - 지도위원 및 출연 : 박진현

출연

  - 김민아 (지젤)

  - 정용재 (알브레히트)

  - 이근희 (힐라리온)

  - 김지안 (바틸드)

  - 김광범 (쿨란드 대공)

  - 김소희, 류슬아, 이택영, 전우재 (패전트)

주관 : 서울시티발레단


* 세줄평

백만년만에 관람하는 발레다. 퇴근 후 어렵사리 노원문화예술회관을 찾아간다. 영상물로는 수차례 보았지만, 확실히 무대 실연으로 접하는 발레는 확연히 다르다. 훨씬 몰입감이 좋고, 단원들의 발소리마저 귀에 거슬리지 않고 공연의 일부로 여겨질 정도니까. 지젤은 1막과 2막의 분위기가 극적으로 대비되는 점을 살리는데 묘미가 있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매우 많아 놀랐다. 음악을 악단의 실제 협연이 아니라 녹음을 공연장 앰프와 스피커로 틀다 보니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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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329회 정기연주회 - 브루크너6

일시 : 2025년 9월 12일(금) 19:30

장소 :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연주

  - 지휘 : 아드리앙 페뤼숑

  - 바이올린 : 박은중

  - 연주 :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프로그램

  -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

  - 브루크너. 교향곡 6번 A장조


* 세줄평

늦어서 공연 시작 직전에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베토벤 곡의 독주자가 인상적이다. 섬세하며 고운 음색이다. 오케스트라의 파워풀함과 대비된다. 이곡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고 할까. 인터미션때 팜플렛을 살펴보니 아레테 콰르텟의 멤버임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브루크너 곡은 예전에 자주 들었지만 근래 소홀하였다. 뜻밖의 생소함이 신기하면서도 이질적이다. 중간중간 이런 대목이 있었나 할 정도로 파트마다 세부 음이 잘 들린다. 소위 브루크너다움은 좀 약하다는 느낌이다. 다음에는 좀 뒷자리 좌석에서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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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연극 <코리올라누스> (Coriolanus)

일시 : 2025년 9월 11일(목) 19:30

장소 : 서울연극창작센터 서울씨어터202

원작자 : 셰익스피어

연출 : 이현우

출연

  - 문병설 (카이우스 마르티우스)

  - 이성용 (메네니우스 아그리파)

  - 원영애 (볼룸니아)

  - 황건 (툴루스 오피디우스)

  - 서송희 (씨키니우스 벨루투스)

  - 정종관 (주니우스 브루투스)

주관 : (사)고대극회


* 세줄평

연극 관람은 까마득히 오래만이다. 셰익스피어 원작이라니 드문 초대권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수천 년 전 고대 로마의 정치 현실과 근래 국내 정치 상황이 절묘하게 맞물려 있다. 마르티우스, 즉 코리올라누스의 몰락은 분명 개인적 결함의 탓이 크다. 그가 조금만이라도 가면을 쓸 수 있었다면, 무서운 일이다. 민중은 절대선일까. 현대 민주주의 체제는 국민의 지지를 근간으로 하는데 그들의 판단과 선택은 무엇인가? 현대적 연출과, 혼신의 연기로 감동적인 공연이다. 세 시간 가까운 상연 시간으로 허리가 아픈 걸 제외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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