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공간들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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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18년째 출간 소식이 뜨면 예약 주문을 하는 작가가 있다. 서재가 터져 나갈 만큼 책으로 싸여있는데도 ‘재미없는 책만 있다’고 혹평을 하는 아내가 유일하게 찾아서 읽는 작가가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아닌데도 내가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작가가 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다 읽지 않고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작가가 있다. 그가 바로 글 쓰는 사진작가 윤광준이다.



<내가 사랑한 공간들>은 물건을 주로 다룬 그간의 글과는 주제가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글을 가장 맛깔나게 쓰는 그가 ‘공간’을 선택한 이유를 상상해봤다. 답은 간단한 것 같다. 공간은 물건들의 집이니까. 한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이나 생활한 공간은 더 내밀하게 그 주인을 추억하게 한다. 나로 말하자면 서울로 떠나기 전까지 딸아이가 사용하던 방에 들어가거나,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의 휠체어를 끌고 산책하던 요양원 산책길을 재회하면 그리움이 치솟는다.



<내가 사랑한 공간들>은 말 그대로 윤광준 선생이 반해서 즐겨 찾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서울 6호선 녹사평역, 씨마크 호텔, 스타필드,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롯데 콘서트홀, 뮤지엄 산, 베어트리파크, 죽설헌, 보안 1942등.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반 가게로’ 찬사를 받는 ‘풍월당’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장소도 있지만 이름도 낯선 곳도 있다. 



‘서울 6호선 녹사평역’편은 유럽의 지하철 이야기라는 맛있는 반찬이 섞여서 윤광준 표 명품 요리가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편은 이 건물과 관련된 흥미로운 역사가 담겨 있어서 또 다른 현대사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겠다. ‘풍월당’ 편은 예술을 사랑하는 설립자의 맑은 영혼이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다가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다. 너무 반갑고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휙’책을 넘겨보지도 않고 바로 내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과연 글 잘 쓰는 윤광준 선생의 글은 따뜻하고 재미가 있는데 텍스트만 이어지더라. 아무리 글쓰기 실력이 수려하더라도 복잡한 구조를 가진 건축물을 설명하는데 사진이 없으면 답답하지 않은가.


 설명이 수려하면 더욱더 그렇다. 궁금하면 ‘휙’ 뒷장을 넘겨보면 되지 라고 충고하지 마시라. 텍스트에서 잠시라도 눈을 떼기 싫었으니까. 왜 등산을 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끊임없이 산길만 이어질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눈앞에 산 아래 장관이 펼쳐지는 순간 말이다. 이 책이 그랬다. 어느 순간 ‘공간’ 사진이 나타난다. 


글쓰기 실력에 어지간한 자신이 없으면 사진 자료를 먼저 제시하거나 텍스트와 함께 싣는다. 독자의 시선을 사진으로 장악하면 글쓰기 실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상쇄가 되니까. <내가 사랑한 공간들>은 그 반대다. 텍스트가 이어지고 사진이 나중에 등장한다. 이게 묘한 재미가 있더라. 오롯이 텍스트로만 건물의 모습을 상상하고 작가의 정감 있는 글을 더듬어 나가다 보면 사진작가 윤광준의 사진이 눈 앞에 펼쳐진다. 마치 베토벤 9번 교향곡에서 ‘환희의 송가’가 등장하는 장면과 같은 ‘탁 트임’을 맛보게 된다.

<내가 사랑한 공간들>은 가족과 함께 갈 만한 아름답고 재미난 공간이 많지만 내가 감탄했고 가장 윤광준답다고 생각한 부분은 ‘나의 화장실 순례기’ 편이다. 타일과 목재로 내부를 마감하고 둥근 세면대 거울이 걸린 ‘사운즈 한남’ 화장실, 묵직하고 차분한 ‘포시즌스 호텔 서울’ 화장실, 우아한 분위기의 조명과 차분한 색채의 조합이 세련된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화장실, 탄탄하게 짜 놓은 나무틀 사이로 볼일을 보는 ‘김제 망해사’ 해우소 등.



윤광준 선생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극찬한 호텔 화장실은 장차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한 선물로 남겨둔다. 아직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모르는 듯한 아내가 가능한 한 늦게 이 책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한 공간들>을 서재 구석에 숨겨두기로 했다. <내가 사랑한 공간들>에 나오는 멋진 공간으로 아내를 데려가서 가장의 위엄을 뽐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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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1-30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래서 일전에 저의 서재에 그런 댓글을 남기셨군요. 아닌가...
전 반대로 화장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요즘도 가끔 안 좋은 꿈을 꾸곤 합니다.
윤광준 씨 글 잘 쓴다는 말은 들어 보긴했는데
읽어 볼 기회도 없을뿐만 아니라 잘 쓰면 얼마나 잘 쓰겠어 했는데
그러면 안 되겠네요.ㅠ
기억하겠습니다.^^

박균호 2019-11-30 17:5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고요. ^^ 윤광준 선생 사진 에세이 참 좋아요.
 

지난주 종조모께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장례식장에서 한나절 머물다가 집으로 내려왔다. 나에게는 넷째 할아버지의 아내가 되는 고인은 우리 집안에서 독특하고 특별한 분이셨다. 유교적 관습의 틀 속에서 옹기종기 유대관계를 지켜나가던 다른 친척과는 달리 깊은 산 속에 혼자 사는 꽃사슴과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탑골을 본거지로 하는 함양박씨 일족이라는 소속감과 유대관계를 다지는 명절과 제사에 일절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집안의 다른 여인네처럼 일찌감치 종갓집 와서 음식을 장만하고, 차례나 제사가 끝나면 큰 방에 둘러앉아 왁자지껄하게 수다를 떨다가, 늦은 오후가 되면 성미 급한 남편들의 재촉에 쫓겨 명절 음식을 싸 들고 길을 떠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서 유교적 제례에 불참했을 수도 있고 워낙 허약한 분이어서 귀향길 자체를 자제했을 수도 있겠다. 종조모님은 일찍이 병약한 건강 문제로 유명했던 분이다. 집안 아주머니들이 번갈아 가면서 종조모님을 대신해서 빨래해주었다니 ‘시집을 올 때부터 병자’였다는 말이 대단한 과장은 아닌 듯하다. 나는 잘 모르지만 젊은 시절부터 종조모님에 대한 주변의 건강에 대한 평판과 진단을 고려하면 50년 전에 고인이 되었다고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50년 전에도 ‘아니, 아직 그 사모님이 살아 계신단 말이냐?’며 오래 보지 못한 지인을 놀라게 한 분이다.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모르는 사이에 고인이 되어서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 계신 것으로 놀라게 한 분이 종조모님 말고 얼마나 더 있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시집온 이후로 평생 명절에 시댁을 찾지 않은 며느리를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아프고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식구로 여겼던 모양이다. 워낙 왜소하고 마른 체구이셨다. 종손인 나도 넷째 종조모님이 명절 때 고향에 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종조모님은 평생 명절 제사 차례에 불참했지만, 우리 집안 어른이라는 정체성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다른 어른에 비해서 어른으로서의 위세와 친근감 또한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어른과는 달리 종조모님을 뵐 때는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말을 하고, 옷깃을 한번이라도 더 여미고 인사를 했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50년 이상 이 세상을 함께 했지만 96세를 일기로 소천하신 작은 할머니를 뵌 적은 많지 않다. 20년 전인가 이런 일이 있었다. 작은 할아버지 댁을 인사차 갔었는데 할아버지는 어디 가시고 없고 할머니만 ‘이불을 끼고’ 안방에 앉아 계셨다. 근황을 여쭈니 ‘이불만 끼고’ 사신다고 하셨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오래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오랜만에 외출하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한 아이가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오더라는 것이다.

“너, 왜 나를 따라오니?”

“네, 할머니 저기 뒤에서 나쁜 아이들이 저를 따라와서 무서워요”

“아, 그래? 그럼 나하고 같이 가자. 이리 오너라”


아이를 만났다는 곳은 대구의 중심가 거리 중의 하나였고 할머니 말고도 지나가는 건장한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왜 자그마한 키에, 구부정한 허리, 마른 체구를 가진 병자로 보이는 할머니 품으로 들어오려고 했을까.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는데 나는 그 아이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할머니는 연약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영민함과 따뜻한 배려심이 묻어 나오는 눈빛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온화한 인상에서는 누구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의지와 힘이 내비치는 분이다. 품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를 내치지 않고 함께 걸었던 할머니의 행위에는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을 기도하면서 살아오신 따뜻한 분은 무서울 것도 주저할 것도 없으니까. 장례식장이 있는 안성에서 한참을 운전해서 대전 밑으로 오니까 도로는 한산했고 초저녁 밤은 고요했다. 고향 집 내 방에서 벽에 기대어 있다 보면 은은하게 교회 음악 소리가 들려올 시간이다.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마치 자장가로도 들리는 그 소리를 나는 무척 좋아했고 평온함을 느꼈었다.


어둠이 깔린 도롯가로는 안개처럼 수증기가 몽글몽글 올라가고 긴 여행에 지친 아내는 조수석에서 고요히 잠들고 있었다. 할머니와 나눴던 마치 꿈속에서 있었던 일로 느껴지는 추억이 생각났다. 


그날도 딱 지금처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초저녁이었다. 고향 집에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할머니셨다. “이 좋은 것을 나 혼자 누리고 죽으면 죄가 될 것 같아서‘전화를 하셨단다. 첫 마디를 듣고 할머니가 하도 오래 아프셔서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명약’이라도 알려주시려나 싶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교회’ 말씀을 하셨다. 


‘죽을 때까지 유교 사상을 버릴 수 없다’고 단언한 아버지의 아들이며, 그 아버지를 종교처럼 생각하는 아들인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다. 구미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한마디도 듣지 못하는 것이 탑골을 본거지로 하는 함양박씨 남자들의 주요한 특징이다. 할머니가 알려주신다는 것이 귀한 정보가 아니라는 실망감은 다소 실망감은 있었지만 대략 20분간의 말씀을 조신하고 귀하게 들었다.


 타고난 성품과는 다르게 말이다. 손자로서 어른의 말씀을 공손하게 들어야 한다는 윤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할머니의 말씀이 어찌나 따뜻했는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 할머니의 말씀은 온전히 손자에 대한 연민과 배려 그리고 사랑만 있었지 세속적인 다른 말로 부를 수 없었다. 간곡하게 ‘가까운 아무 교회나 다녀라’고 하시는데 ‘알겠어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밖 에 없지 않은가. 


무작정 할머니 품으로 와 함께 걸었던 그 아이도 나처럼 따뜻했을 것이다. 그날이 할머니와 내가 나눴던 처음이고 마지막 통화였다. 물론 예수님 믿으라는 이야기도 그랬다. 집으로 가는 길은 평온했지만, 할머니의 간곡하고 따뜻한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한 죄책감과 조문을 다 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문득 유난히 하늘이 포근하게 느껴져서 올려 보았다. 그림 같은 구름 위에서 할머니와 내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순간 할머니가 말씀하신 ‘이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은 멀지 않을 터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안방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 할머니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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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11-2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분간 잘 들어주시고 알겠어요 라고 대답해 주신 것으로 충분할 듯 합니다. 종조모께서도 만족하셨을 거에요. 종조모님도 훌륭하시지만 그 분 품성 자체로 인정하시고 평생 명절 차례 불참하셨어도 탓하지 않으신 다른 어르신들도 존경스럽습니다. 박균호 작가님 글에서 느껴지는 따스함도 물림인가 생각해봅니다^^

박균호 2019-11-26 22:41   좋아요 0 | URL
늘 좋게 말씀해 주셔서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쓴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가 ‘세종도서’에 선정되었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우수 도서’에 연이은 경사입니다. 부족한 제가 책을 쓰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특히 원고 쓰는것이 어렵다고 ‘더 이상 못해먹겠다’며 투정을 부린 저를 다독거려주시고 아낌없는 조언을 주신 갈매나무출판사 박선경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는 고전을 색다르고 재미있는 시각으로 읽자는 생각으로 쓴 책인데 또 다른 독자의 또 다른 시각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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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1-25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축하합니다. 올해 좋은 일이 많으셨군요.
근데 원고료 반환에 계약 파기까지 하셨다니 마음 고생이 심하셨나 봅니다.
또 그런만큼 기쁨이 남다르시겠어요.^^

박균호 2019-11-25 16:49   좋아요 1 | URL
정말 고맙습니다. 파기를 하고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냥 원고 쓰기 힘들다고 투정 부린거에요.

빵굽는건축가 2019-11-25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박균호 2019-11-25 16:50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고맙습니다.

moonnight 2019-11-2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합니다. 고생하셨는데 보람도 크시겠어요^^

박균호 2019-11-26 11:23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sslmo 2019-11-26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이 책을 쓰시면서 힘들어 하시는 것도 지켜보았고,
읽어보고 한낱 투정에 지나지않으셨다는 걸 확인한 저로서는,
많이 축하드릴밖에요~^^

박균호 2019-11-26 23:16   좋아요 0 | URL
아, 따뜻한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어려서부터 성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전문가와 성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많은 두 아이의 엄마가 쓴 성교육 책이다. 자식이 대학 신입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성에 관해서는 아이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아재 독자로서는 더 이상 흥미로운 수 없는 책이다. 주문한 책을 기다리는 것은 항상 설레지만 이 책은 유난히 그랬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공동저자인 최은경 기자가 부디 발칙한 질문을 거침없이 해주기를 응원하면서 배송상황을 실시간으로 주시한 끝에 영접을 하였다.


최은경 기자와 나는 더 이상 성교육을 받고 실습(?)을 해볼 기대로 잠을 설칠 나이는 아니다. 다만 자식과 어떻게 섹스 이야기를 나눌지 모르는 부모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아이를 둔 부모가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길을 끌어서 베스트셀러가 되겠다는 욕심은 보이지 않고 부모가 알아야 할 필요한 성지식을 차분하고 자세하게 알려준다. 성교육 책에도 필수 교과목이 있다면 이 책이 교재가 되어야 한다.


요즘 학교에서는 예전과는 달리 성교육을 좀 더 많이 한다. 하지만 정규교과가 아니고 이따금씩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성 문제를 일상이 아닌 과외활동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성 교육 자체가 성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학교에서 성교육을 하고 있는데 민망하게 부모가 가정에서 성교육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이 의문에 대한 내 대답은 확고하다. ‘부모의 성교육은 학교와는 별개로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들이 실제로 만나는 성과 관련된 일들은 가정을 비롯한 학교 밖에서 주로 일어나지 않는가 말이다.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에는 성에 눈뜨기 시작하는 자식을 둔 부모라면 꼭 알아야 할 성지식과 이슈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망라되어 있다. 노브라, 19금 동영상, 화장하는 아이, 생리, 동성애, 낙태, 데이트 폭력, 정애인의 성, 성범죄 등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아이를 위한 성교육 강사가 아니고 학생이 먼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른이라면 이 책이 좋은 선생이 되어 줄 수 있겠다. 


생리 문제만 해도 그렇다. 생리 혈 자체에 나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고 생리대에 들어 있는 화학약품 때문에 불쾌한 냄새가 생성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생리하는 여자의 고생을 단지 생리통으로만 생각했던 무지도 반성하게 되었다. 자기도 느끼지 못하게 생리 혈이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굴을 낳은 느낌’이 난다니 그 불편함을 상상도 못하겠다. 이 책이 성을 배우지 못한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위생적이고 안전한 생리 컵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자상한 책이기도 하니까.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을 읽다가 육성으로 한탄하게 된 부분이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섹스를 ‘남자가 성기를 삽입하면서 시작되고 사정을 하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섹스는 남자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닌데 남자의 행위로 시작해서 끝나는 것이 섹스라는 인식이 만연한 것이다. 섹스의 주체로서 여성은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섹스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영접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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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11-21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대로된 성교육을 받지못해서 슬플때가많았답니다ㅜ

박균호 2019-11-21 17:32   좋아요 0 | URL
우리 같이 받아요. 성교육...ㅎ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 서재에 읽지 않은 책이 쌓여 있는 것은 책을 사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읽는 속도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일단 사는 즐거움을 누렸으니 더 이상의 용도가 없어져서 그냥 아무렇게나 내 팽겨 둔 이유가 더 크다.


 좋은 책은 사두면 언젠가는 읽게 되겠다는 기대는 별로 없다. 유혹하는 책을 발견하고, 주문하고, 택배를 기다리고, 도착한 택배를 열어서 새 책을 만지작거리는 몇 분 정도까지가 책과 관련된 나의 즐거움은 거의 끝난다. 철이 없는 것은 알겠는데 호사스러운 취미는 아니다. 한 달에40만 원 정도의 투자로 상위 1% 안에 들어가는 취미 생활이 책 사재기 말고 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은정 작가가 쓴 <눈물이 마르는 시간>은 사는 즐거움, 읽는 즐거움, 읽은 보람을 모두 만족시키는 희귀한 책이었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유난히 책을 사는 재미가 뛰어났고, 도착한 책은 ‘손맛’(적당한 크기, 재질, 재본 상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이 탁월했다. 표지는 화사한데 제목은 ‘멜랑꼴리’하다. 


평소대로라면 잡은 물고기를 통에 휙 던져 넣는 것처럼 내 서재나 책상 구석에 꾸겨 넣어야 하는데 이 책은 시선을 잡아끌었다. 읽기 시작했는데 온종일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쪽까지 읽고 나서야 이 책을 내려놓았다.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심정이 이해가 되겠더라.


읽고 나니까 이 책을 읽은 감상을 쓰고 싶어졌다. 내 글쓰기 인생에 졸음을 참아가면서 글을 쓴 것이 아마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책을 읽을 때 언제 가장 즐겁고 보람을 느끼는가 하면 책 속에서 꼭 나 같은 사람을 만날 때다. 현실 세계에서는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하고 별나다 싶은 나의 독특한 면을 책 속에서 캐릭터나 화자의 이야기 속에서 만나면 그것만큼 재미나고 위안이 되는 경우가 없다.


만선 하지 못하고 항구로 돌아오는 어선에 탄 선원의 근심을 읽어내고, 엄마가 없는 엄마를 위로할 줄 알며, 동네 할머니가 건네준 오래된 수저와 며칠 뒤에 세상을 달리한 그 할머니의 죽음 사이에 있는 개연성을 생각하는 공감이 감동적이었고 위로가 되었다. 정작 본인은 남들은 아름답고 늠름한 보는 나무를 ‘목매달기 딱 좋은 나무’로 보고 빚 독촉에 시달리는 궁핍하고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담담한 어조로 찬란한 슬픔을 말하는 이은정 작가의 글쓰기가 놀랍고 존경스럽다. 


쳐다보는 것만도 아까워서 눈물이 났던 그 사람이, 기필코 이생에 이 사랑 하나는 지키겠노라 다짐하게 했던 그 사람이, 이제는 남이 된 채 미안해, 미안해를 반복하며 내 우체통에 꽂혔다. 그 수많은 편지를 쓰며 그가 흘렸을 후회와 자책의 눈물 자국이 편지지에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나는 그저 할 만큼 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할 만큼 하고 미련 없이 당신 인생을 살라는 뜻이었다. 그는 이미 늦은 사람이었다.


이은정 작가만큼 책에 대한 진솔한 사랑을 보여준 사람을 보지 못했다. 꿈과 낭만이 담긴 수 백 권의 책을 헌책방에 팔아넘기기로 하고 트럭으로 실려 나갈 때 작가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책을 판 돈을 들고 내내 울었다. 나는 안다. 이은정 작가는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생명이 없는 물건에도 연민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 어머니가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났을 때 우리 아버지는 나를 두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쳐다보는 것만도 아까워서” 


<눈물이 마르는 시간>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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