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야지

 

독서실에 산 적이 있다. 집에서 직장까지 편도로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만약 일터가 평생직장이라면 이사도 고려해봤겠지만. 결국 그 곳에서는 정확하게 1년을 일했다. 고시원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힘든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햇빛을 잘 보지 못한다는 건 가장 치명적이다. 겨우 손바닥만한 창문이 있는 공간을 구했지만 어쩐 일인지 햇살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사방으로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늘 축축한 기분으로 비몽사몽 눈을 뜨곤 했다.

 

영어 표현에 Rise and Shine이 있다. 일어나야지라는 뜻이다. 물론 Get Up이라는 말도 있지만 훨씬 더 자주 쓰인다. 이유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반지하나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낡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당장은 아침에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이 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아 아침이구나 햇빛을 보러 나가자라는 마음으로 일어난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만약 그럴 상상이 도저히 일어나지 않는다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기분을 가볍게 하면 어떨까? 그리고 가까운 공원에라도 가서 소리를 냅따 질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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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열여섯

 

3월의 광란이라 불리는 미국 대학 농구 소식을 듣다 SWEET 16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영미권에서는 열여섯이라는 나이를 굉장이 중요하게 여겨 파티를 연다. 특히 여성의 경우 더이상 아이가 아닌 숙녀라는 의미에서 성대하게 행사를 치른다.

 

농구 경기에서는 32강전에서 이겨 16강에 진출한 것을 숙녀파티와 비교해 달콤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다. 여하튼 우리나이로 하면 고 2인데, 서양이나 동양이나 꽃다운 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의 열여섯살이 성인대접을 받으며 서로 축하하기 바쁜 반면 우리는 고3을 앞둔 바로 전단계라 전의를 불태운다. 그중에는 대학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는 친구들도 있을텐데 말이다. 인생의 황금기를 만끽하는 사람과 우울하게 지내는 이들간에는 나중에 자라서도 행복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말

 

매년 3월 미국에서는 전미대학농구선수권대회를 연다. 다른 팀과 달리 거의 모든 대학이 농구팀을 보유하고 있어 대학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응원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오죽하면 3월의 광란March Madness라고 부르겠는가? 흥미로은 건 정통의 강호가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꼴지 시드를 받아 겨우 참가한 팀이 톱 시드킴을 무찌르기도 한다. 이런 이변이 더욱 흥미를 끄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올해 나는 조심스레 듀크대를 우승후보로 꼽는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팀웍이면 팀웍 뭐 하나 빠지는게 없이 탄탄하다. 물론 예외는 있게 마련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았던 미시건 주립대학이 나가 떨어진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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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이 하나일 수밖에 없는 건 같은 언어를 쓰기 때문만은 아니다. 식성도 마찬가지다. 그깟 이데올로기때문에, 정확하게 말하면 외세에 의해 치러진 대리전쟁, 몇십년간 떨어져 산다는 건 한마디로 넌센스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는 관광상품이 아니다

 

 

우리는 잊고 산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다는 것을. 파주에서 차로 20분이면 바로 북한땅인데.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거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건 떨어져 사는게 정상은 아니다. 막연히 언젠가 합칠 것이라 생각만 해서는 안된다.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오느냐다. 양 국가의 정상이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충분히 준비를 한 다음 하나의 국가로 합치든 아니면 한 국가 두 체제의 연방제를 합의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기에 어떤 변수가 터질지 알 수가 없다. 남과 북 어느 한쪽에서 쿠테타가 발생하여 전쟁으로 확전될지도 모른다.

 

영화 <강철비>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여 만들었다. 북한 최고존엄의 유고를 전제로 남과 북의 치열한 공방전을 담았다. 그 중심에는 정우성과 곽도원이 있다. 북한 장교 역을 맡은 정우성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이질감이 든 반면 청와대 수석 역의 곽도원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여전히 기분 나쁜(?), 분명히 선한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연기로 정면승부를 했다. 어떤 역을 맡아도 느물거리는 그의 캐릭터는 확실한 장점이다.

 

먼 훗날 분단이 끝나면 우리는 현실에서는 평화를 누릴지 몰라도 영화의 중요한 소재 하나는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지위를 잃게 될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통일이 되어야 한다. 따로 떨어져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같은 국수를 깽깽이와 잔치로 부르는 것은 허용하더라도.   

 

덧붙이는 말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들라면 역시 국수다. 어쩌면 그리 허겁지겁 맛깔나게 먹던지 보는 내내 침이 고였다. 알고 보니 체인이었고 다행히 집 근처에 있었다. 이번 주말엔 무조건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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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3-20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 국수집 파주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거 아니었어요?
어느 체인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시겠는지요?ㅋ

저도 강철비 재밌게 봤어요.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꽤 탄탄하던데.
맞습니다. 분단은 관광상품이 아니죠.

카이지 2018-03-20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cafe.naver.com/recipe2015/122991
http://cafe.naver.com/crv/62014

본점은 망향비빔국수 5사단 인근이라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18-03-20 19:26   좋아요 0 | URL
헉, 너무 머네요.
그런데 그런 국수 체인점이 있다니 놀랍네요.
제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꿈에 나올까 무서울 정도로 벌벌 떨게 만들었던 심은하의 녹색눈. 

지금 보면 드라마 <M>은 낙태와 성폭행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공포로 극대화시킨 호러물이었다.

 

심은하의 마력

 

 

20년도 더 지난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본다는 건 대단한 결심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아주 광팬이 아니고서는 촌스러운 설정이나 어색한 연기에 공감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매우 단순한 줄거리의 <마지막 승부>를 볼 때도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했는데 하물며 복잡다단한 <M>은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기우였다. 도리어 지금 감각에 더 맞았다. 아니 그 당시가 더 제작환경이 독립적이고 실험적이었다는 생각까지 갖게 만든다. 대부분은 마리로 분한 심은하의 녹색눈만 기억날지는 모르겠지만 자세히 보면 현재의 미투운동과도 맞닿아 있다. 시골별장으로 놀러갔다가 겁탈을 당하려는 친구들을 도와주려다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게 되는 설정부터가 의미심장하다.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자 미국의 의사에게 보내지는데 어쩐 일인지 부모들은 안타까워하기는 커녕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알고 보니 마리는 원치않는 아이였으며 엄마는 출산과정에서 사망하고 새엄마가 들어와있다.

 

그렇게 서서히 잊혀져가는 줄 알았던 마리가 어느날 과거의 기억은 까막득히 잊은 채 의사가 되어 다시 나타나면서 사건은 복잡하게 꼬여들어간다. 그녀와 연인이던 이창훈이 마리 친구와 사귀는 사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끝에 마리는 자신을 되찾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데 과연 감독이 그런 모습을 바랄까?

 

여주인공 마리는 심은하가 맡았다. 그녀는 <마지막 승부>에서 다슬이역으로 큰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순종적인 제한된 연기밖에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드라마 M은 파격적인 변신이 가능했다. 게다가 당당히 주인공이었다, 물론 리스크도 컸지만.

 

그런데 예상과 달리 빵 터지고 말았다. 독자적이면서도 적극적인 그리고 치명적인 매력까지 선보이는 배역을 기가 막히게 소화했다. 불과 스무 두살의 나이에. 누군가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심은하의 최절정 리즈시절로 보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겁없이 마구 휘저으며 자신도 모르는 마력을 뽐낸건 <M>이었다.

 

덧붙이는 말

 

심은하의 은퇴는 여러 말을 남겼다. 이런 저런 추문에 피로감도 한몫을 했다. 이유를 떠나 잘한 선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나이 들어 이런 저런 소소한 역할을 맡기에는 카리스마가 워낙 강렬했다. 한국의 전형적인 미인이라고 보기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존재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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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케쉔 2018-06-24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원은 1994년 당시 데뷔도 안 했고 심은하란 세대가 다른데 감독이 하지원을 염두에 뒀다니 이 무슨 시대안맞는 소린가요?하지원은 그보다 5년이나 지난 1999년에 학교2로 데뷔했습니다

카이지 2018-06-25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적 감사합니다.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드라마 M의 후속작 M2의 여주인공 후보로 하지원이 물망에 올랐습니다. M과 M2를 헷갈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고쳐서 다시 올렸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2005년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M2를 제작하려고 했으나 같은 해 2월 최문순 대표이사 사장이 취임한 직후 백지화됐다. 하지원이 여주인공 물망에 올랐었다.
 

근사한 멍청이

 

듣기만 해도 기분좋아지는 단어가 있다. 영어 Nice도 그 중 하나다. 우리 말로는 멋진, 근사한이라고 할 수 있다. 둘다 상쾌하지만 아무래도 Nice의 어감이 더 산뜻하다. 그래서인지 나이스를 이름으로 한 회사도 많고 아이돌 그룹들도 제목이나 가사에 많이 쓴다. 세븐틴의 아주 나이스가 대표적이다. 노래도 타이틀만큼 신난다.

 

그러나 나이스의 어원은 뜻밖에도 멍청이다. 라틴어 Nescius는 아는게 없는, 무식한 이라는 뜻이다. 이 말이 영어로 넘어오면서 까다로운, 엄격한이라는 의미로 변형되어 쓰이다 지금의 풀이로 정착했다. 정말 백팔십도 변한 셈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가장 꼴불견인게 아는척, 잘난척, 있는척 하는 사람이다. 반면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면 왠지 배려받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 기자들은 허름한 복장으로 유명한데, 우리나라는 예외인 경우도 있지만, 그 이유는 취재를 받는 사람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일부러 초라하게 다니는 것이다. 요컨데 나이스는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어도 상대를 배려하여 귀를 기울이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비록 겉으로는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덧붙이는 말

 

나이스가 가장 인상적으로 쓰인 이야기중에는 아기사슴 밤비가 있다. 친구들과 신나에 놀고 돌아온 밤비는 엄마에게 동무들의 단점을 말하며 투덜댄다. 그러자 어미는 정색을 하고 경고한다.

 

If you can't say somthing nice, don't say nothing at all.

근사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면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이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 늘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이 글을 쓰며 다시 끄집어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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