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에 나올까 무서울 정도로 벌벌 떨게 만들었던 심은하의 녹색눈.
지금 보면 드라마 <M>은 낙태와 성폭행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공포로 극대화시킨 호러물이었다.
심은하의 마력
20년도 더 지난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본다는 건 대단한 결심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아주 광팬이 아니고서는 촌스러운 설정이나 어색한 연기에 공감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매우 단순한 줄거리의 <마지막 승부>를 볼 때도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했는데 하물며 복잡다단한 <M>은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기우였다. 도리어 지금 감각에 더 맞았다. 아니 그 당시가 더 제작환경이 독립적이고 실험적이었다는 생각까지 갖게 만든다. 대부분은 마리로 분한 심은하의 녹색눈만 기억날지는 모르겠지만 자세히 보면 현재의 미투운동과도 맞닿아 있다. 시골별장으로 놀러갔다가 겁탈을 당하려는 친구들을 도와주려다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게 되는 설정부터가 의미심장하다.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자 미국의 의사에게 보내지는데 어쩐 일인지 부모들은 안타까워하기는 커녕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알고 보니 마리는 원치않는 아이였으며 엄마는 출산과정에서 사망하고 새엄마가 들어와있다.
그렇게 서서히 잊혀져가는 줄 알았던 마리가 어느날 과거의 기억은 까막득히 잊은 채 의사가 되어 다시 나타나면서 사건은 복잡하게 꼬여들어간다. 그녀와 연인이던 이창훈이 마리 친구와 사귀는 사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끝에 마리는 자신을 되찾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데 과연 감독이 그런 모습을 바랄까?
여주인공 마리는 심은하가 맡았다. 그녀는 <마지막 승부>에서 다슬이역으로 큰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순종적인 제한된 연기밖에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드라마 M은 파격적인 변신이 가능했다. 게다가 당당히 주인공이었다, 물론 리스크도 컸지만.
그런데 예상과 달리 빵 터지고 말았다. 독자적이면서도 적극적인 그리고 치명적인 매력까지 선보이는 배역을 기가 막히게 소화했다. 불과 스무 두살의 나이에. 누군가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심은하의 최절정 리즈시절로 보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겁없이 마구 휘저으며 자신도 모르는 마력을 뽐낸건 <M>이었다.
덧붙이는 말
심은하의 은퇴는 여러 말을 남겼다. 이런 저런 추문에 피로감도 한몫을 했다. 이유를 떠나 잘한 선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나이 들어 이런 저런 소소한 역할을 맡기에는 카리스마가 워낙 강렬했다. 한국의 전형적인 미인이라고 보기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존재감이 있었다.